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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예술론에서 예술가의 특징

문서에서 하이데거 예술론의 특성 (페이지 24-28)

앞서 하이데거 예술론에서 작품의 범위에 대해 제한규정을 하였다. 다음으 로는 하이데거가 예술가에 대해 어떻게 규정하고 있으며, 예술가의 작품에 대한 개입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하이데거의 예 52) M. Heidegger, “Der Ursprung des Kunstwerkes”, pp. 51-52 (「예술작품의 근원」, pp.

91-92).

술론에서 예술가과 창작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이미 국내 연구에서 충분히 다루 어진 바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단히 예술가에 대한 정의만 살펴본 뒤 예술가 의 창작과정 참여 문제에 대해 논하도록 한다.53)

하이데거는 창작(Schaffen)을 “산출되는 것 안으로 출현하게 하는 것(das Hervorgehenlassen in ein Hervorgebrachtes)”으로 규정한다. 이 규정 바로 뒤에 하이데거는 “작품이 작품화된다(Werkwerden)는 것은 진리가 생성되고 일어나는 하나의 방식이다”54)라고 언급한다. 이와 같은 규정은 동시에 한 가지 전제를 함 축하고 있다. 바로 예술가의 창작행위를 전적으로 예술가 개인의 행위라고 보는, 근대미학의 관점은 잘못되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하이데거가 천재 중심의 미학 적 관점을 부정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하이데거의 입 장에는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창작행위(여기서의 창작행위에는 사유의 일종으로 서의 시 짓기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만 한다)의 특성이 세계와의 만남에 의해서, 존재와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기본 틀로서 제시되어 있다.

다음의 언급을 살펴보자.

앞에서 언급한 ‘창작행위’와 지금 말한 ‘원함’이라는 말 속에서는, 자기 자신 을 목적으로 설정하여 [그 목적에 도달하고자] 애쓰는 그런 주체의 [작위 적] 실행능력이나 행동은 전혀 사유되고 있지 않다.55)56)

하이데거는 창작행위를 주체의 행위로 보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창작 행위는 작가의 실행능력으로 이해되거나, 단독자이자 근대적 주체인 한 개인의

53) 하이데거 예술론에서 예술가와 창작에 대한 선행연구로는 다음을 보라: 김동규, 「예술 작품의 존재론적 토포스」, pp. 117-145, 박유정, 「하이데거 예술론에서 창작의 의미」, pp. 245-257.

54) M. Heidegger, “Der Ursprung des Kunstwerkes”, p. 48 (「예술작품의 근원」, p. 85).

55) M. Heidegger, “Der Ursprung des Kunstwerkes”, p. 55 (「예술작품의 근원」, p. 98).

56) 여기서 ‘원함(Wollen)’은 “실존하는 인간이 존재의 비은폐성 안으로 자기를 탈자적으 로 관여시키는 행위(das ekstatische Sicheinlassen)”로 설명되고 있다. M. Heidegger,

“Der Ursprung des Kunstwerkes”, p. 55 (「예술작품의 근원」, p. 97).

능동적 과정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작가는 창작에 있어서 일종의 수 동적인 역할을 할 뿐이며, 창작의 과정 이후에는 작품 안에 남지 않는 존재이다.

이에 대한 언급을 보자.

‘창작된 존재가 작품으로부터 나타난다(Hervorkommen)’고 함은, 분명히 어 떤 위대한 예술가가 그 작품을 만들었으리라는 점이 그 작품에서 뚜렷이 나타나야 한다는 사실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창작된 작품이 어떤 유능 한 작가가 이루어낸 업적으로 입증됨으로써 그 작가가 대중적 흠모의 대상 으로 추앙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뜻하지도 않는다. 즉 [그것은] 누구누구의 작품이 잘 알려져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예술작품이] 만 들어졌다(factum est, 되었다)는 단순한 사실만이 작품 속에서 열린 장 가 운에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57)

여기서 작가는 예술작품의 완성 이후 완전히 소멸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 다. 작가는 작품이 완성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로 축소되고, 거기에는 어떤 서명이 나 개인적 기입도 포함되어 있지 않게 된다. 작품은 그것이 작품으로서 드러나게 되었다는 사실 만으로 작가를 표시하고 있을 뿐이다.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예술 가는 이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이데거가 왜 이런 방식의 예술가 상을 만들었는가의 물음은 하이데거 예술철학의 전체 구도를 살펴볼 때 답이 주어질 수 있다. 다음의 인용을 보자.

진정한 양식의 예술적 형상은 그 자체가 자신에 의해 환히 밝혀져 자기 안 에 보존되는 세계의 현현(Epiphanie)입니다.58)

57) M. Heidegger, “Der Ursprung des Kunstwerkes”, pp. 52-53 (「예술작품의 근원」, p.

93).

58) M. Heidegger, “Zu einem Vers von Mörike. Ein Briefwechsel mit Martin Heidegger von Emil Staiger (1951)”, in: Aus der Erfahrung des Denkens, GA. Bd.13 (Frank-furt/M: Vittorio Klostermann 1983), p. 106, M. 하이데거, 「뫼리케의 시구에 대하여:

에밀 슈타이거와 하이데거의 서신 교환」, 사유의 경험으로부터, 신상희 옮김 (길 2012), p. 153.

이 짧은 문장에서 하이데거는 그가 평생 유지했던 예술작품에 대한 기본적 신념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예술의 형상(das Kunstgebilde)은 세계의 현현 으로 설명되고 있다. 즉 예술작품은 세계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예술가는 “자주적 주체의 천재적 수행능력”에 의해서 규정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샘터에서 물을 길어내는 자와 같은 것으로 이해되어야 만 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창작(Schaffen)을 길어냄(Schöpfen)으로 설명한다.59) 그러므로 예술가는 순전히 자신의 의도대로 계획하여 자신이 완전하게 개입한 작 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는 자신이 만난 어떤 감추어져 있던 존재 를 창작의 과정에서 그것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창 작 과정은 완전히 예술가가 장악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가 아무 런 개입도 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아닌 것이 된다.60)

앞서 설명된 바와 같은 작가의 독특한 특성을, 창작행위에 있어서 상대적으 로 ‘수동적’인 존재라거나 ‘기여’하는 자로서의 예술가로 설명하는 해석가들도 있 다.61) 하지만 엄격히 따지자면 하이데거의 예술가는 ‘수동적’이거나 ‘능동적’인 자 가 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말을 건네 오는 것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기여자에 가까운 존재이다. 그러므로 하이데거에게 있어서도 결코 예술가는 수동적인 입장 에만 처하는 것은 아니다. 하이데거 본인도 창작하는 자가 없이는 작품이 있을 수 없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62) 그렇지만 작가 본인이 자신의 작품을 온전히 알 거나 완전히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 또한 상식적인 지적이다. 현장의 예술 59) M. Heidegger, “Der Ursprung des Kunstwerkes”, p. 63 (「예술작품의 근원」, p. 111).

60) 하이데거의 창작에 대한 입장은 존재와 시간을 비롯한 주요 하이데거 저작에서 취 하는, 사유하는 현존재에 대한 기본적 입장과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또한 철 학사적으로는 실재와 해석의 문제로까지 환원되는 아주 근원적인 철학적 과제와 맞닿 아 있는 것으로서, 하이데거는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예술론에서 다시 한 번 ‘창작’이 라는 개념에서 표현한 것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61) C. Taylor, “The Work of Art as Hermeneutic Process: An Artist ‘Takes On’

Heidegger”, in: Visual Arts Research, vol. 15, issue 2 (1989), pp. 52-57, R. M.

Vabalaitė, “Activity and Passivity in the Creation of Art: Heidegger and Later Philosophers”, in: Filosofija, Sociologija, T. 28, Nr. 1 (2017), pp. 3-10.

62) M. Heidegger, “Der Ursprung des Kunstwerkes”, p. 54 (「예술작품의 근원」, p. 96).

가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한다. 칸딘스키는 말했다.

예술가는 예술에 대한 자신의 책무,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책무를 인식하고, 또한 자기 자신을 그 상황의 주인으로서 관찰할 것이 아니라 고 결한 목적을 지닌, 명확하고, 위대하며, 신성한 심부름꾼으로서 관찰해야만 하는 것이다.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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