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감상자 또는 보존자의 지위

문서에서 하이데거 예술론의 특성 (페이지 28-35)

하이데거가 감상자에게 독특한 지위를 부여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이데거는 작품을 진리 일어남의 터전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예술작 품을 통해 사유를 하는 과정 일체가 작품의 작품존재에 대한 해명인 동시에, 그 과정에 길어내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읽어냄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작품의 근 원」이라는 글 자체도 부분적으로는 작품에 대한 읽어냄, 그리고 작품에 대한 사 유가 된다. 작품에 대한 사유를 작품에 대한 감상과 일치시키고 있는 하이데거 예술론의 특징 때문에, 하이데거 또한 「예술작품의 근원」에서 감상자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이데거는 “창작됨이 없이는, 어떤 작품도 존재할 수 없듯이, ― 그래서 본 질적으로 작품은 창작하는 자를 필요로 하지만 ― 보존하는 자가 없다면 창작된 것 자체도 존재하게 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하이데거는 보존하 는 자(Bewahrenden) 라는 말로 감상자를 규정짓고 있다. 여기서 감상자는 창작된 것(das Geschffene)을 작품(das Werk)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해 주는 능동적인 역 할이 강조되고 있다. “‘작품을 하나의 작품으로 존재하게 함(sein lassen)’, 바로 이러한 태도를 우리는 [작품을 참답게 보존하는] 작품의 보존이라고 말한다”.64)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감상자는 단지 작품 외부에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작품에 63) V. 칸딘스키,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권영필 옮김 (열화당 2000), p. 129.

64) M. Heidegger, “Der Ursprung des Kunstwerkes”, p. 54 (「예술작품의 근원」, p. 96).

직접적으로 개입해, 그 작품을 작품으로 보존(Bewahrung)하는 자이다.

하이데거는 “‘작품을 보존함’은 작품 속에서 일어나는 존재자의 열려 있음 안에 서-있음(Innestehen in der Offenheit des Seinden)을 뜻한다”65)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러한 보존자의 활동은 다시금 앎(Wissen)으로 규정되고 있다. 그러므로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창작의 행위가 ‘앎’의 행위였던 만큼이나 보존자의 행위 또 한 ‘앎’으로 규정되는 것이다(테크네와의 연관에서).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 이데거에게 있어서 작품은 ‘창작’만큼이나 ‘보존’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면서, ‘창작’

과 ‘보존’이라는 두 행위는 작품을 진리가 일어나기 위한 터전으로 만든다는 의미 에서 유사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하이데거는 다음과 같이 말 한다.

작품의 창작된 존재에는 본질적으로 창작하는 자만이 아니라 보존하는 자 도 또한 속해 있다. 그러나 작품은 창작하는 자를 그의 본질에서 가능하게 하고 또 그의 본질로부터 보존하는 자를 필요로 하는 그런 것이다.66)

하이데거는 이와 같은 규정을 통해 감상자의 지위를 ‘보존자’로 격상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규정성은 단지 감상자의 강조뿐만 아니라, 작품의 공공적 성격에 대한 묘사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67) 이는 즉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예술가의

65) M. Heidegger, “Der Ursprung des Kunstwerkes”, p. 54 (「예술작품의 근원」, p. 97).

66) M. Heidegger, “Der Ursprung des Kunstwerkes”, p. 58 (「예술작품의 근원」, p. 103).

67) 하이데거와 관련하여 공공성(publicness)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부분 이다. 하이데거 개인의 사회적 활동에 대한 과오는 논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존 재와 시간에서 “공공성(Öffentlichkeit)”개념을 부정적으로 사용한 사실, 그리고 최근 발간된 “검은 노트(Schwarze Hefte)”에서의 반셈족주의적 견해들이 종합적으로 작용 하여 이 “공공성”개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하게 형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서는 하이데거의 “공공성” 개념이나 하이데거의 과오에 대해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예술작품의 근원」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작품의 공공적 성격에 대해 논하려 는 것이다. 이는 하이데거에 대한 추종적 해석이라기보다는 적극적 해석이라는 점에 서 하이데거의 “공공성” 개념에 대한 논의와는 결을 달리한다. 그러므로 이 글은 하이 데거의 과오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하되, 그의 예술철학적 작업에 대해서는 재해석

순수하게 개인적인 표현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반드시 감상자가 개입하여 그것 에 대해 일정한 해석을 할 때만 온전히 작품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 하는 것이다. 이처럼 감상자가 작품에 개입하여 그 안에서 밝혀질 수 있는 진리 를 전혀 드러내지 못한다면, 창작물은 그저 창작된 사물로서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작품은 작품존재가 되기 위해서 지속적인 해석을 요한다. 작품이 양식사적으로 아무리 위대한 성취를 달성했다 하더라도, 창고에 갇혀 그저 예술작품의 사물적 성격으로만 존재하고 있다면, 이것은 예술 작품으로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작품이 감상자에게 공개되어 끊임없이 해석되 고, 이를 통해 사유를 생산해 낼 때에만 작품은 작품존재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 이다.

그런데 만약 이처럼 작품존재가 감상자에게 의존적인 것으로 규정된다면, 작품은 그저 감상자의 자유로운 해석에 내맡겨져 그저 임의적으로 해석되고 대중 의 잡담거리가 되는 것이 아닌지 물을 수 있다. 하이데거는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예술작품이 신발이라는 도구가 진실로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우리의 진술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채색하고 덧칠한 것과 같 은 주관적 행위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최악의 자기기만일 것 이다.68)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을 통해 사유하는 것(감상하는 것)은 절대로 주관적 행 위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주장하고 있다.69) 이러한 주장에는 하이데거가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 대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의견, 즉 존재의 진리는 인간 현존재 가 일방적으로 밝혀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그저 수동적으로 전달받는

을 통해 현대적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입장에 서 있다.

68) M. Heidegger, “Der Ursprung des Kunstwerkes”, p. 21 (「예술작품의 근원」, p. 45).

69) 감상의 주관적 성격을 강조하는 의견에 반대하는 연구로는 다음을 보라: 설민, 「하이 데거와 예술의 진리」, pp. 73-96.

것도 아니라는 존재론적 전제가 함축되어 있다. 이를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의 해 석에 적용해, 보존이라는 행위를 설명한다. 하이데거는 작품을 감상하며 보존하는 행위를 “작품을 작품으로 존재하게 함”이라는 행위로 규정하며, 또한 동시에 “이 러한 보존을 위해서, 작품은 자신의 창작된 존재 속에서 현실적인 것으로서, 다시 말해 이제는 참답게 작품적으로 현존하는 것으로서 스스로를 내어준다”70)고 설명 한다.

그러므로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작품의 감상은 순전히 개인의 주관적인 감상 이 될 수 없다. 작품의 해석은 반드시 그 작품이 감상자와 만나 발생하는 진리에 대한 해석이 되어야만 하며, 이 해석은 작품 체험의 인상에 대한 임의적인 전개 나 세간에 떠도는 작품에 대한 부차적인 사실들에 대한 잡담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Ⅶ. 결론

앞서 하이데거의 예술철학의 기본 구도와 고유의 전제들에 대해 먼저 정리 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 예술가, 감상자에 대한 하이데거의 견해를 소개하였다.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이 세 요소는 매우 독특하게 정의되어 있어서, 실제 예술 현장이나 일상에서 접하는 통상적 용어와는 분명하게 구분되어야만 한다. 이 세 요소는 하이데거 예술론이 실제 예술계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하기에 이런 구분은 더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 용어의 부정확한 이해나 부적합한 적용이 하이 데거 예술철학에 대한 오해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엄격한 이해를 시 도해 명확히 드러나게 된 점은, 다수의 이론가들이 그렇듯 하이데거 또한 모든 예술작품에 대한 예술론을 서술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많은 예술론이 그렇듯 이, 예술작품에 대한 일반이론을 제시한다는 것은 임의적으로 예술의 경계를 설 정할 위험성을 내포하게 된다. 예술이라는 인간의 활동은 단순하게 하나로 묶어 70) M. Heidegger, “Der Ursprung des Kunstwerkes”, p. 54 (「예술작품의 근원」, p. 96).

그 본질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다양하며, 삶의 도처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것 이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동시에 예술철학으로서 예술 일반과 작품 일반에 대한 일종의 일반론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예술작품을 예술사적 성격으로 범 주화하여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철학적 관점에서 조명하여 규정하는 것이다.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예술작품은 순전히 내적인 관점에서 규정되어야 하며, 그 안에 대상화 가능한 것을 표현하고 있어야만 해석이 가능한 존재로서 작품이 된다는 점이 논의되었다. 바로 이 점이 첫 번째로 하이데거의 작품존재를 설명하 는 중요한 특징으로 제시되었다. 그리고 창작자와 보존자, 즉 예술가와 감상자를 작품에 대한 공동의 참여자로 제시하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예술론이 하이데거 예술철학의 또 다른 특성이다. 이와 같은 방식의 이해를 통해, 창작자의 입장에서 는 자유의 제약을, 보존자의 입장에서는 해석에의 개입이라는 힘의 재배분이 일 어나게 되었다. 즉 하이데거의 예술론에서는 근대적 미학의 입장에 비해서 예술 가가 작품에 개입할 여지는 더 적은 것으로 평가되었으며, 감상자의 개입의 폭은 더 큰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하이데거 예술이론의 특성은 어떤 효과를 가져왔으며, 왜 독특하다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정리해 보자. 우선 하이데거는 예술이라고 하는 인간의 행위를 사유의 한 방식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수작업의

그렇다면 이와 같은 하이데거 예술이론의 특성은 어떤 효과를 가져왔으며, 왜 독특하다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정리해 보자. 우선 하이데거는 예술이라고 하는 인간의 행위를 사유의 한 방식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수작업의

문서에서 하이데거 예술론의 특성 (페이지 28-35)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