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주선기념박물관 학예연구원❘
Ⅱ. 해평윤씨의 염습의殮襲衣 분류
1. 출토 경위
언급한 바와 같이 해평윤씨의 유물은 출토 과정에서 복식 전문가가 참여하지 않은 채 온
전히 문중에 의해 진행된 작업이다. 세부적인 염습 상황은 알 수 없으나 다행히 문중 관계 자의 출토 경험으로 통해 염습별 복식 분류는 가능하였다.
24세손 이상룡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파주에서의 이장 작업은 2001년 6월 4일 오전 8시 경에 경기도 양평군 고주내 고읍리에 소재한 15세손 이형보 공과 두번째 부인 해평윤씨의 묘를 문중 어른들이 모셔져 있는 파주로 옮기는 작업이 실시되었다. 묘 터가 국토 개발로 국가에 수용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이형보공은 일찍 상처하여 두 번의 혼례를 치렀으며 두 부인 모두 해평윤씨 집안이다. 파주로 옮겨와서 기존에 모셔져 있던 해평윤씨 묘와 합묘하 는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20M를 아래로 이동하는 작업 중에 첫 번 째 부인의 묘에서 63점 의 유물이 발견된 것이다. 이날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여서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 아래 10명이 참여하여 작업이 이루어졌다. 부인의 묘를 파묘 해보니 관 주위가 회곽으로 둘러져 있었으며, 포크레인을 이용한 분리 작업을 실시하였다. 나타난 관은 이중관이었다 고 하며 내관의 관 뚜껑을 열었을 때 관 안에는 옷이 가득 차 있었다. 옷은 손을 댈 수 없 을 정도로 차갑고 성애가 낀 상태로 물기가 가득하였다고 한다. 옷을 염습별로 분류한 후 의 시신은 거의 미라 상태였으며, 머리카락도 남아 있었다고 한다.
염습 단계별로 수습된 유물은 습의 13점, 소렴 4점, 대렴 5점, 보공 41점으로 총 63점이 다.(표 1 참조)
염습단계 수량 복식 내용 유물번호
습의 13점 허리띠, 적삼, 저고리 3점, 당의, 원삼, 원삼대, 속곳,
단속곳, 치마, 멱목, 여모 No.9566~No.9578 소렴 4점 자수저고리, 당의, 장옷, 소렴금 No.9579~No.9582 대렴 5점 당의, 저고리 2점, 치마, 대렴금 No.9583~No.9587 보공 41점 저고리 27점, 적삼 1점, 치마 8점, 바지 1점
허리띠 2점, 베개 1점, 관내의 1점 No.9588~No.9628
<표 1> 염습 단계별 해평윤씨 출토 복식
2. 염습 단계별 분류
출토 복식은 현재까지 조선시대로 한정되어 있다. 이는 고려 말 신진 유학자들이 중국으
로부터 들여온 주자가례朱子家禮에 기준한 유교적 매장제도에 따른 것이며, 또한 시신이
해평윤씨의 염습별 유물은 습의 13점, 소렴 4점, 대렴 5점, 보공 41점으로 분류되었다.
염습의 분류는 가능하였지만, 대렴이나 소렴의 수습의 세부 순서는 보존되지 못하였다. 하 지만 습의는 팔이 끼워져 있거나 깃 고대를 징궈둔 형태로 보존되어 수의 입은 차례가 확 인 가능하였다.
사망 후 망자를 싸는 과정에서 사용된 물품들을 통틀어 염습구라고 하며 이 중 첫번째 단계가 ‘습襲’이다. 습은 일반인에게는 수의라는 쉬운 말로 전해지고 있다. 해평윤씨의 습 襲에 사용된 것은 13점이다. 수의로 입은 옷은 웃옷이 8점, 아래옷이 3점이이며, 부속품은 수습 과정에서 온전히 수습되지 못하여 멱목과 여모만이 남아 있다. 가장 안에 입은 것을 시작으로 허리띠, 적삼, 끝동 달린 민저고리, 삼회장저고리, 장식 없는 민저고리, 연화문단 겹당의, 연화문사 홑원삼과 원삼대圓衫帶의 순으로 입었다. 하의는 속곳, 겹단속곳, 모란무 늬 겹치마를 입고 있었다. 수습 당시 저고리 3점은 깃을 징군 흔적이 남아있어 한꺼번에 입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1> 인골과 수의 위치 <그림 2> 깃 고대가 징궈진 수의용 저고리
<그림 3> 원삼 허리에 둘러져 있는 원삼대. 겨드랑이 아래로 원삼과 원삼대를 함께 징줘주었다.
<그림 4> 원삼 겨드랑 아래 묶어 주었던 실밥 표시
소렴小殮은 습의를 다시 옷으로 감싸주는 소렴의와 이 위에 이불로 다시 감싸고 묶어주 는데 사용되는 소렴금에 종교와 횡교를 통틀어 소렴구라 한다. 해평윤씨의 소렴에 사용된 것은 모두 4점이 수습되었다. 자수저고리 1점, 당의 1점, 장옷 1점, 소렴금 1점이다. 수습 과정에서 종교와 횡교는 수습되지 못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그림 5> 소렴과 대렴 위치 <그림 6> 소렴을 싸준 소렴금. 출토 당시는 붉은 기운이 남아있었다.
사망 후 망자를 싸는 과정에서 사용된 물품들을 통틀어 염습구라고 하며 이 중 3번째 단 계가 ‘대렴大斂’이다. 소렴의 밖을 다시 싸는 옷이 대렴의大斂衣이며 이를 다시 대렴이불로 감싸고 종교 횡교로 묶는 것을 통틀어 대렴구라고 한다. 대렴大斂에 사용된 것은 모두 5점 이다. 홑당의 1점, 회장저고리 2점, 겹치마 1점, 대렴금 1점이다. 소렴과 마찬가지로 종교 와 횡교는 수습되지 못하였다.
보공補空은 관 안에 염습구를 모두 넣은 후에도 남은 공간을 채워주는 옷과 물품을 뜻한 다. 해평윤씨의 보공은 모두 41점으로 종류별로는 저고리 27점, 적삼 1점, 치마 8점, 바지 1점, 허리띠 2점, 베개 1점, 관내의 1점이다. 특히 소렴, 대렴, 보공 옷은 본인의 평상시 옷 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평소 가까웠던 주면 인물들, 즉, 배우자를 포함하여 친지들이 보내 온 수례襚禮 관습이 있어 묘주와 성별이 다르거나 크기가 다른 옷들이 넣어지기도 한다.
해평윤씨의 것에서는 육안으로 쉽게 판별되는 수례지의襚禮之衣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림 7> 보공품 위치 <그림 8> 보공으로 넣어준 저고리. 공간을 규모있게 채우기 위해 접어서 넣어주었다.
이외에도 시신을 죽은 자가 누구인지를 기록해 관을 덮어놓은 명정銘旌, 그리고 관의 덮 개인 구의柩衣 등 다양한 치관제구治棺諸具가 있으나 해평윤씨의 묘에서는 수습되지 못하 여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