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주선기념박물관 학예연구원❘
Ⅲ. 해평윤씨 출토 복식의 종류별 특징
8. 바지류
여자의 바지류는 주로 속옷으로 착용되었는데 현재까지 조사된 바에 따르면 임진왜란 이전의 남자바지와 여성의 속옷과 동일하며 부리와 바지통이 직선인 직배래 형태가 주류를 이룬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세종 13년 8월 기록에 “본국의 바지는 넓고 커 비용 이 많이 든다. 중국의 바지는 세 폭이면 된다.”17)고 나타나 유물의 결과들과 일치한다. 임 란 직후부터는 사폭바지가 등장하는데 심재(1722~1784)는 송천필담松泉筆譚에서 “선조 임진왜란 후에 … 우리나라 남자는 중국에서 전래된 당고(唐袴)를 입게 되었고 여자는 종
17) 朝鮮王朝實錄, 世宗 13年 8月 戊午. “本國之袴 寬大故多費 上國之袴 三幅可縫”
래에 남자가 입던 고장고古長袴와 광고廣袴를 함께 입게 되었다”18)라고 하였다.
때 적당한 치수이다. 또 밑아래 길이 29~34㎝로 밑위가 3배 이상으로 길기 때문에 말기를 가슴까지 올려도 활동에 불편함이 없을 듯하다.
누비바지[N0.9624]는 紬로 만들었는데 6.2㎝ 너비로 너른 간격으로 누빔된 것인데, 넓은 누비 간격과 넓은 바느질 땀으로 보아 원래는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이 들어 있었던 솜누 비 바지로 추정된다. 좌우 가랑이에 삼각형바대가 달린 개당고開襠袴이며 단속곳처럼 부 리에 덧단을 달아 스란단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바지는 허리둘레 81㎝로 단속곳과 달리 입을 때 허리에 둘렀을 것으로 추정되며 사폭바지 형태지만 옷의 크기로 보아 여성의 옷으 로 볼수 있다.
② 재봉법
속곳과 단속곳 누비바지는 모두 옆선에 21.5~25㎝ 트임을 주어 말기가 옆으로 끈을 매 어 주도록 되어있다. 이때 단속곳과 누비바지는 옆선이 골선이어서 인위적으로 절개하여 트임을 주었다. 바지 상부에 잡힌 주름은 외주름이며 겹옷의 경우 안감과 함께 주름 잡아 주었는데 주름 간격은 불규칙하다. 말기에 달린 끈은 끼워지거나 겉에서 눌러 박았으며 밑 아래 삼각바대는 모두 골로 접어 부착되어 있다.
속곳[N0.9574]은 합당고형 홑옷이다. 말기는 겹으로 만들어 홑으로 된 끈이 끼워져 있는 데 끈 상부를 특별히 5.5㎝ 정도를 겹으로 처리하여 봉재 부분이 미어지는 것을 방지하였 다. 말기에서 아래로 41㎝ 내려온 지점에 홑으로 된 삼각바대가 달렸으며, 바대 안쪽에 직 사각형 가래 바대를 좌우로 부착하여 바대의 시접을 정돈하였다. 홑옷이어서 옆트임과 바 지 부리를 1㎝ 두 번 접어 공그르기로 마무리하였다.
단속곳[N0.9575]은 합당고형 겹옷이다. 겉감은 만자 바탕의 화문단, 안감은 주紬, 허리말 기는 원형 학 무늬 문주紋紬 이다. 겹옷이어서 옆트임 부분에 특별한 선단은 없다. 말기 끝에서 아래로 35㎝ 내려온 지점에 가랑이 사이에 삼각형 바대가 달렸다. 바지 부리를 완 성한 후에 12.5㎝ 스란단을 덧단 형식으로 달았는데, 한 변을 골선으로 접어 겹으로 만든 후 변사 부분을 안감쪽 1.2㎝만큼 넣어서 바느질 한 후 겉으로 걷어 올려 겉감 부리에서 스란단이 완성된다. 스란단은 안감과 함께 바느질하여 부착하였기 때문에 안감에는 2~2.5
㎝ 간격의 시침선이 나타나 있다.
<그림 50> 삼각형 바대와 속으로 달린 직사각형 가래 바대[N0.9574]
<그림 51> 변사를 이용한 스란단 안쪽 모습[N0.9575]
누비바지[N0.9624]는 밑 트인 개당고형 겹바지이다. 6.2㎝ 너비로 규칙적인 누비선이 있 는 것으로 보아 사이에 있었던 면솜이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름 잡은 좌우 바지통이 허리선 중심에서 10㎝ 정도 겹치도록 하여 말기가 달려 있다. 이때 말기는 옆이 트여 끈이 부착되어 있다. 앞뒤 허리선 아래로 한쪽은 54㎝, 반대쪽은 57㎝ 내려와서 삼각바대가 좌 우로 달려있는데 삼각바대가 부착 지점이 차이가 나는 것은 착장 시 삼각 바대가 자연스럽 게 여며지도록 배려한 것이다. 바지 부리는 바지통보다 좁게 되어 사폭바지 부리와 같은 데, 바지 완성 후 부리 겉면에 너비 13㎝ 덧단을 부리에 둘러주어 부착하였다.
<그림 52> 삼각무 모습 <그림 53> 삼각무 펼친 모습
<그림 54> 부리의 선단 <그림 55> 부리 선단 모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