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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지혜는 어떻게 성숙되어 가는가?

<걷는수행>은 부처님께서 몸소 실천하셨던 수행양식입니다. 보리수 아래에 서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신 뒤에도 보리수 옆에 있는 경행처(Caṅkamana)에 서 1주일간을 집중적으로 <경행>하셨고, 그로부터 대열반에 이르실 때까지 밤낮으로 <걷는수행>(경행)을 실천해 보이셨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들 또한 혼자서 혹은 무리를 지어서 <걷는수행>을 하였는데, 아라한 성자가 된 이후 에도 그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은 걸으면서 무엇을 하였으며, <걸음>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아난다 존자께서는 밤새도록 경행처를 거닐면서 무엇을 했으며, 피로를 느낀 존자께서 자세를 바꾸어 누우려는 순간에 깨달 은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경전상에 <걷는수행>의 방법이나 그 깨달 음의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초기 경전 전체를 관통 하고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온·오취온(五蘊·五取蘊)에 대한 관찰과 이해 입니다. 오온에 대한 관찰을 통해 오온의 특성인 무상·고·무아를 깨달아 해탈 열반에 이르는 것이 공식 명문화되어 있습니다.

‘오온’이 무엇입니까? 사람(나)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의 5가지 구성요소 아닙 니까? 즉, 물질(몸)과 느낌, 표상인식, 의도, 의식(마음) 즉, ‘몸과 마음’ 아닌 가요? 이 5가지 구성요소에 집착돼 있는 것을 ‘나’ 혹은 ‘너’라고 하지 않습니 까? 오온(오취온)을 떠나서는 결코 ‘나’ ‘너’ ‘세상’ ‘우주’의 실체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따마 붓다께서는 2600년 전에 이미 그 실체를 깨달아 설 파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호흡이 24시간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지속되는 것처럼, 오온(오취온) 역시 앉 아있을 때나 서있을 때나 누워있을 때나 걸어가고 있을 때에도 시간과 장소 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온(오취온)은 가장 직 접적인 수행주제입니다. 오온(오취온)의 작용은 특히 안정적인 걸음 속에서 잘 관찰됩니다. 부처님께서 ‘연기(緣起)의 법칙을 일어나는 데로, 소멸하는 데 로 관하셨다’는 것은 바로 ‘오온의 생성과 소멸’ ‘오온의 윤회’ 통찰하셨다는 뜻입니다. 즉, 오온의 생멸윤회를 파악하시고는, 그 핵심 연결고리인 ‘무지’와

‘갈애’ 끊어 마침내 생사해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8정도경>에는 오온(오취온)에 대한 관찰방법이 설해져 있습니다. 즉,

‘정념(正念, Sammā-sati)’1) 부분에서 이르시길,

Katamā ca bhikkhave <sammā sati>.

Idha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Ayaṁ vuccati bhikkhave <sammā sati>.

빅쿠들이여! <바른 사띠>란 무엇인가? 빅쿠들이여! 여기 빅쿠가, 몸에 있어 몸을 관찰하면서, 노력과 올바른 앎에 의한 사띠로써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며 머문다.

느낌에 있어 느낌을 관찰하면서, 노력과 올바른 앎에 의한 사띠로써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며 머문다.

마음에 있어 마음을 관찰하면서, 노력과 올바른 앎에 의한 사띠로써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며 머문다.

법에 있어 법을 관찰하면서, 노력과 올바른 앎에 의한 사띠로써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며 머문다.

빅쿠들이여! 이런 것을 <바른 사띠>라 한다.

즉, 4가지 염처(念處)인 몸, 느낌 ,마음, 법을 관찰한다는 것은 바로 오온(오취 온)을 관찰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대념처경(四念處經)』의 ‘법념처

1) 정념(正念, Sammā-sati) : <기억><잊지 않음><새김><놓치지 않음> 등의 의미를 지닌 ‘사띠’ 라는 용어를 <8정도경>에서는 독립적으로 쓰지 않고, 노력(아-따-삐-)과 올바른 앎(삼빠자-노-)에 의한 사띠(sati), 즉 노력(아-따-삐-)과 올바른 앎(삼빠자-노-)이 함께 작용할 때 진정한 의미의 바른사띠(삼마사띠)가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로, 한국에서 ‘사띠’의 번역어 중 하나로 통용되고 있는 ‘알아차림’은 엄밀히 말해 ‘사띠’에 대한 한글 번역어로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으나, 붓다께서 친히 설하신 <8정성도경>의 ‘삼마 사띠’에 근거할 때는 비교적 유용한 용어가 아닐까 사료됩니다.

(法念處)’ 부분에서는 ‘오취온’ 즉 ‘집착의 다섯 무더기’에 대한 관찰이 구체적 으로 설해져 있습니다. ‘6가지 안밖의 감각기관 관찰’이나 ‘4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한 관찰‘ 역시 오취온의 관찰영역에 포함됩니다. (특히, 四聖諦 중 에서 ’苦聖蹄‘ 부분)

걷는 동작인 <걸음걸이>를 통해서 오온(色 ,受, 想, 行, 識)을 관찰하는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色(물질) - 발의 움직임, 들어올릴 때의 가벼움, 내릴 때의 무거움 등.

受(느낌) - 걸어갈 때 발에서 느껴지는 좋은 느낌, 싫은 느낌, 덤덤한 느낌.

想(인식) - 무심히 걸을 때는 모르다가 걸음걸이에 의식을 집중하는 순간 이것이 ‘걸음’이다 ‘걸어거고 있음’ 이다라고 걸음을 인식하는 것.

行(의도) - 걸어가다가 장애물 앞에서 걸음을 멈출 때 그 멈추려는 의도, 발을 들 때 들려는 의도, 방향을 바꿀 때 바꾸려는 의도 등

識(의식) - 발의 움직임을 아는 마음, 느낌을 아는 마음, 지각(표상인식)된 것을 아는 마음, 의도를 아는 마음, 걷는 동안 나타나는 온갖 심리현상을 인식해서 아는 마음.

이 모든 것들을 <걷는수행>을 통해 관찰할 수 있습니다. <좌선수행>에서는 그와 같은 오온(오취온)을 생생하게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걷는수행>을 통해서는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오온의 요소들인 움직임, 무거움, 가벼움, 느 낌, 정신적 의도, 아는 마음 등을 볼 수 있고, 그 생멸현상을 관찰할 수 있습 니다.

불교가 출현한 이래 2600년간 지속되어온 <걷는수행>이 마침내, 제6차 경전 결집(1954~6)을 주도한 세계적인 수행스승 <마하시 사야도>에 의해 구체적 인 수행방법으로 정리되어져 세계 곳곳에 전파되었습니다. 이 승 역시 마하 시 사야도의 가르침을 따라 지금까지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이 글의 말미에는, 이 승이 한때 미얀마의 ‘마하시 수도원’에서 배우고 경험 했던 <걷는수행>의 구체적인 방식을 나름대로 정리하여 실어 놓았습니다.

(2012년 남산 대원정사에서 한국테라와다불교 <담마스쿨>이 운영되었었는 데, 그때 ‘수행의 실재’라는 과목의 교재로 사용하기 위해 이 승이 엮었던 책

『 완전한 행복에 이르는 길』에 실려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하시 사야도의 가르침(방식)에 따르면 <걷는수행>의 시작은 물질(色) 즉, 4 大(지수화풍)에 대한 관찰로부터 출발합니다. 4大는 12가지의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① 흙의 성질 – 단단함, 말랑함, 거칠음, 메끄러움, 무거움, 가벼움,

② 물의 성질 – 유동성, 응집

③ 불의 성질 – 열기, 냉기

④ 바람 성질 – 움직임, 힘

이 12가지 성질 중 1개를 ‘있는 그대로’ 인지하고 있다면, 알아차리고 있다 면, 오온(五蘊) 중에서 ’색온(色蘊)‘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망상 없이, 선입견 없이, 고정관념 없이 ‘있는 그대로의 ’색온(色蘊)‘을 관찰 할 때, 비로소 그 물 질이 지닌 변화하는 속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리적 성질의 끊임없는 생성 과 소멸을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걸을 때의 느낌, 걸음이라는 인식, 걸으려 는 의도, 걷고 있음을 아는 마음 등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 하다 보면, 그 것들의 무상한 성품을 깨닫게 됩니다. 통찰력이 약할 때는 어렴풋이 보이다 가 통찰지혜가 성숙되면서 오온의 모든 현상을 무상으로 철견하게 됩니다.

‘법(法, Dhamma)’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법 앞에서 의기소침해하 지 마십시오. 법을 이해한다는 것은 탐험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는 것처럼 큰 위험을 담보로 하는 것이 아니며, 로켓트를 타고 미지의 우주를 탐사하는 일도 아닙니다. 지금, 여기(나의 몸과 마음) 오취온 안에서 벌어지 고 있는 일들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밖의 일에 관심을 두는 데에 길들여져 있어서 그렇지 안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조금씩 길러 나간다면, 그리하여 인 식 하나만 살짝 전환해 놓는다면, 오온을 이해하고 그 특성을 깨닫는 것은 떨어진 홍시를 줍는 것보다 쉬운 일입니다.

<걷는수행>을 통해 오온을 1차적으로 이해한 것만으로도 수행의 작지 않은 진전을 본 것입니다. 마치 산 속에서 잃어버린 소를 찾아 헤매던 목동이 저 만치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를 발견한 것과도 같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조 심스럽게 소에게로 다가가 고삐를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모든 일 에는 순서가 있는 법. 서둘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수행의 길로 나아가다보 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수행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수행한다고 10년을 헤매다녀도 잃어 버린 소의 발자국 하나 발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법을 체험하여 고통의 소멸에 이를 수 있도록 가장 쉬운 방법 을 찾아내 가르쳐 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사대오온을 가지고 계셨고 우리 도 사대오온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오온과 우리의 오온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바로 색온이다’ 라고 선언하는 데 주저 할 필요 없습니다. 물질의 성질은 분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가르 침을 따라, 밖으로 향하던 마음의 시선을 돌이켜 안(오온)을 주의 깊게 들여 다본다면 ‘이것이 느낌이다’ ‘이것이 지각인식이다’ ‘이것이 의도다’ ‘이것이 아는 마음이다’ 라고 누구라도 선언할 수 있습니다.

연기법(緣起法)은 부처님의 핵심 깨달음 내용입니다. ‘인과의 법칙’ 즉 ‘원인 결과의 법칙’은 ‘연기법’의 다른 말입니다. 초심자들도 <걷는수행>을 통해

‘인과의 법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은 불 가분의 인과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몸을 떠난 마음이 존속할 수 없고, 마음 이 사라진 몸은 이미 살아있는 몸이 아닙니다. <걷는수행>을 하다 보면 곧 몸과 마음의 관계를 원인과 결과로써 이해하는 당계가 펼쳐집니다. 인과를 깨닫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윤회의 진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존재는 영원 하다’라는 사견과 함께 생사를 반복할 뿐입니다.

‘원인결과의 법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뜰에서 <걷는수행>을 하고 있던 한 수행자가 차가운 빗방울이 살갗에 떨어 지자 재빨리 처마 밑으로 몸을 옮겼다면, 빗방울은 원인이 되고 장소를 옮기 려는 의도는 결과가 됩니다. 다시 그 의도가 원인이 되어 몸이 옮겨지는 결 과가 나타납니다. 발을 들어 올리려는 마음은 원인이고 들어 올려진 발은 결 과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발드는 동작이 원인이 되어 발들음을 인식하는 결 과가 나타납니다. 걷다가 눈으로 대상을 바라볼 때도 눈 · · 대상 ·의식은 원 인이 되고, 보고 있는 것은 결과가 됩니다. 또한 보는 것이 원인이 되어 보 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오온의 작용,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이처럼 ‘원인과 결과’라고 하는 ‘인과의 법칙’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닙바나를 성취하기 전까지는 이 세상의 그 누구 도 인과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인과의 법칙은 닙바나(열반)에 이르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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