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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속성 강화와 대중화

근대 초기 지식인들이 소설을 교화와 계몽의 효율적 수단으로 삼은 것은 대중에 대한 파급력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술국치 이후 소설은 이념이나 사상 전 파 기능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일제에 의한 언론 탄압으로 역사‧전기소설 류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진 것이다. 실제로 1912년에 이르러 ‘치안 방해와 풍속 괴란’의 혐의로 역사소설과 전기소설 중 상당수가 금서 처분을 받는다. 이에 비해 신 소설은 미신타파‧신교육 사상‧계급성 초월‧자유연애 사상 등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자주적 국권 회복이나 독립 쟁취를 주제로 삼고 있는 작품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다. 이처럼 사상성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신소설은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지 만, 그렇다고 억압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여기에 국문운동과 활 자본 소설의 대량 출판으로 서민 독자층이 확충되고, 신문과 출판사의 상업성이 결 부되어 신소설의 통속화가 빠르게 진행된 것이다.

상업 전략과 관련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충동 구매를 촉구하는 방법은 서 발비평, 신문의 광고문, 소설 예고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앞에서 살펴본 「화의 혈」 서언에서 ‘샹쾌고 슯흐고 즐겁고 위고 우슌 것이 모도다 됴흔 료가 되야 긔자의 붓을 라 미가 진진 쇼셜’이 된다는 주장과, 말미의 ‘이 쇼셜을 긔록

 스로 그 미와 그 영향이 잇슴’이란 표현이 모두 흥미를 느끼기에 충분한 소설 임을 강조하고 있다.

신문사에서 신소설의 상업적 측면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는지는 다음 글 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이 쇼셜의 미가 로 우리의 죠션과 밋 우리가 미잇다 일컷던 여러 쇼셜 에 사양치 안이 것은 미리 보증 일이라

쇼셜 가온의 디명과 인명은 아못조록 우리의 입으로 옴기기 쉽고 우리의 귀에 얼른 익도록 곳쳣스니 이 쇼셜 지은이의게 야 허물이 적지안나 그로 인

야 쇼셜의 은 결코 변 리가 업고 우리에 보 이에게 도리혀 얼마쯤 미

도울줄 각 바이라

쇼셜 가온에 혹시 알지 못 물졍과 풍속은 그런 것이 잇로 일 쇼셜의

에 알기 쉽도록 간졀히 설명을  계획이라32)

인용문은 철저하게 독자의 취향을 염두에 두고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전에 등장하는 지명과 인명을 모두 우리 것으로 바꾸고, 날마다 신문에 게재된 소설의 말미에 도움글을 싣겠다는 것이 이를 입증해 준다. 특히 그 동안 독자의 인기를 끌었던 다른 소설과 견주어 흥미성이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소설을 하나의 상품으로 파악하는 신문사의 입장을 대변 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원」은 「捨小舟」라는 일본 작품을 이상협이 번안한 소설이다. 이 작품이 연재 되는 동안 많은 독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연일 독후감 형식의 편지가 신문지상에 연재될 정도였다. 또한 이 작품을 각색한 희곡은 서구식 무대 위에서 공연되어 ‘신사 와 귀족과 점잖은 부인들이 많이 관람했다’33)고 보도하고 있다. 당시 독자 기고의 일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하몽 션 나 뎡무원을 독니다 뎡혜 부인을 존경니다 그 졀 그 졍졀을 탄복니다 차랄히 곱흔 를 쥐고 길가에 쓰러져 찬바에 어러 죽을지언정 비릿 비릿 동을 엇지랴 부귀영화 여바릴지언졍 엇지 옥 흔 이 몸에 부졍

루명을 엇으랴 옥즁고흔이 될지연뎡 엇지 졍당치 못 계약으로 옥문 밧계 발을  여노을 만고 풍샹을 다 격고도 변 줄 모르 그 졀와 그 억골아 (……) 이와

흔 부인이 엇지 죵 고으로 일시의 운명이 그 굿은 마 놉흔 졀를 시험코 쟈 이라 나 무궁 복과 비샹 영광이 잇슬 줄로 각며 츅슈니다34)

아-불샹도다 뎡혜여 응…뎡혜 뎡혜 쳥컨 하몽 션님도 뎡혜의 쳔백 간난의 일생을 긔록 적마다 맛당히 일어나 감회와 동졍의 눈물을 금키 어려우시리다 우리 독쟈 쇼셜을 읽을 적마다 비샹히 션님을 원망여오 뎡혜를 엇지야 이 러 비경에 지게 셧소35)

이 사은 경셩 모 사중학교의 도이올시다 슈만 명의 「뎡부원」 독쟈 중에 이 사이 뎨일 독 줄로 각홈니다 (……) 미를 부치 쇼셜 가온에서 알지 못 동안에 엇 지식이 막대을 실로 깃겁게 녁이 바이올시다36)

32) 「정부원에 대하야」, <매일신보>, 1914. 10. 29.

33) <매일신보>, 1916. 3. 7 참조.

34) 一女性, 「뎡부원을 보고」, <매일신보>, 1915. 4. 20.

35) 夢外生, <매일신보>, 1915. 4. 21.

36) 一中學生徒, <매일신보>, 1915. 4. 22.

위 인용문들을 통해 당시 이 작품이 독자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음 을 짐작할 수 있다. 기고자들 모두 큰 감명을 받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 작품이 독 자들의 적극적 호응을 얻은 가장 큰 이유는 줄거리의 감상성에 기인한다고 본다. 독 자들은 청순 가련한 주인공의 삶의 궤적을 현실의 모습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눈물 을 흘리며 작품을 읽는 독자의 마음은 곧 감동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 작품은 한 문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이 또한 다수의 서민 독자층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을 것 으로 본다.

갑오개혁 이후 개인의 자아에 대한 근대적 각성이 이루어지면서 서민층이 폭넓게 형성되었다. 국문 보급을 통한 문맹 타파와 함께 1910년 이후 활자본 소설의 대량 출판 시대를 맞아 이들은 소설의 주요 독자층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들은 일상적이 고 평범한 주제에 통속적 내용이 가미된 서사 양식을 요구한다. 또한 직업적 소설가 들이 등장하면서 신문이나 출판사의 상업성에 부응하여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통 속적 작품이 양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상업성을 내세운 소설들은 감상성과 같은 통속성의 요소와 함께 오락성에도 관심 을 두었다. 일례로 「요지경」 예고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이 은 동셔 각국 리야기 즁 뎨일 이상고 신긔 것으로만 아  자미잇게 만달 엇스 우숨거리로 요지경을 구경는 것보다 나흔고로 이  일을 요지 경이라 얏지오. 이 은 려 자와 슈심만흔 자와 심심 사이 번 보면 괴로옴과 슈심과 젹젹 것이 변야  우숨텬디가 될 듯 이오(「요지경」 예 언, 1911.)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하려는 의도가 제목에서도 나타난다. 동서양의 이야기들 중 에서 제일 신기한 것만 골라서 만들었기 때문에 정말 재미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여행을 하거나 심심할 때 파적거리로, 마음이 심란할 때 위로의 방법으로 웃음 보다 좋은 처방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에서 ‘재미’는 곧 흥미를 추구하는 오락성과 직결된다. 따라서 작가는 이데올로 기를 표출할 필요가 없으며, 오직 독자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흥미진진하게 서 술해 나가기만 하면 된다. 신소설의 통속화는 정치 상황의 변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 지만, 신문과의 깊은 관련성도 부인할 수 없다. 신문은 더 많은 구독자 확보를 위해 그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수단으로 신소설을 연재하였다. 그런데 소설에 내 포되어 있는 통속적 요소는 다양한 개성을 지닌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일 때 확실한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신문에 연재된 신소설은 대중적 속성을 지니게 마련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신소설이 당시 검열과 금서조치에서 비교적 자

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계몽성이 약화된 대신 오락성과 통속성이 강화되어 일제의 시선을 비껴갈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이 시기에 소설을 하나의 상품으로 여기는 풍조로 인해 ‘소설 예고’라는 특이한 형 식이 등장한다. 이것은 소설이 신문에 연재되기 전 혹은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시기 에 맞춰 소설 내용이나 가치를 소개하는 것으로서, 다분히 광고성을 띠고 있다. 그 까닭은 소개하는 내용이 다소 과장될 뿐만 아니라, 신문 구독을 권하거나 서적 구입 을 충동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소양정」 예고나 「탄금대」 예고 등 신문에 연재된 대부분의 신소설 예고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봉선화」 연 재 예고에는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독쟈의 눈이 번 여 심야잔등에 오던 잠이 쳔리만리로 다라날 만 봉션화를 보시오 이 쇼셜을 못 보시면 셰샹 쳔만 가지 미 즁애 쳣 손가락을 을 만 한 가지를 일어버림이라고 도 과 말이 아니오 이 쇼셜을 보시랴면 쉽고도 어려오 니 어려온 것은 경향 를 모다 단이며 금젼을 가지고 봉션화라 쇼셜을 차즈 러 야도 업슬 터이니 엇지 어렵지 안이며 쉬운 것은 본보를 쳥구야 일 보 시기곳 시면  먹고 이 닥기로 신문 보고 쇼셜 보고 그 안이 훌륭오 보시오 독자 졔군이여37)

인용문에서 보듯이, 이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과장되어 있다.

그런데 돈을 가지고 서울에 있는 서점을 다 돌아다녀도 이 책을 구할 수 없다는 것 이다. 이 작품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신문을 구독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신문 판매부수를 신장시키려는 사측의 속셈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신문이나 출판사뿐만 아니라 신소설 작가들 역시 철저하게 독자를 의식해서 집필 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일례로 신소설의 핵심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이해조 의 집필 태도 변화에서 이를 확인하고자 한다. 그는 독자들이 고전소설을 즐겨 읽는 현상에 자극을 받아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을 각각 「옥중화」, 「강상련」, 「연 의 각」으로 제목을 바꾸어 출간함으로써 독자층을 확산하고자 했다. 이런 이유로 그 는 초기에 고전소설을 심하게 비판했지만, 스스로 통속성에 안주함으로써 신소설의 문학적 발전에 지장을 주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신소설은 오락성과 상업성에 치중하여 질적으로 저하되었다는 부정적 지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글을 바탕으로 통속적 요소를 작품에 접목시킴으로써 소설의 대중 화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신소설에 대한 다양한 논의는 식민지 체제 하에서도 작품을 양산하는 토대를 마련하여 본격적 근대 대중소설론의 출현에 견인

37) 소학령, 「봉선화」 연재 예고, <매일신보>, 1912.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