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중소설 무용론
거족적인 3‧1운동은 민족 동질성에 기초한 근대적 각성의 계기가 되었다. 자아의 발견과 민족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라는 근대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문 학적으로도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지식인의 고뇌를 그리거나, 하층민의 고통스런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등 현실적 주제를 다룬 작품이 등장한 다. 이런 변모는 비평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서구 문예사조가 일시에 유입되면서 새 로운 시각으로 우리 문학을 평가하려는 논의들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1920년대 전반기 대중소설 관련 논의는 대중소설의 가치에 대한 시비론, 근대의 식 성장에 근거한 독자 수용 문제, KAPF 조직과 프로문학의 대두로 요약된다. 당 시 김동인, 서유준 등은 대중소설 무용론을 내세웠고, 이광수는 대중소설의 긍정적 측면을 수용하고자 했다. 그리고 프로문학이 등장하면서 소설 가치론이나 미학적 논 의보다 대중화 논의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앞에서 밝혔듯이, 우리 문단에는 18세기경부터 대중소설이 이미 존재해 왔지만, 정작 이에 대한 실제 논의는 1919년 김동인의 「소설에 대한 조선 사람의 사상을」이 라는 글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글에서 소설을 순수소설과 통속소설 로 구분하고, 통속소설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피력한다.
통속소설에셔는 우리는 卑코, 劣코, 汚코, 추한 것 밧게는 아모것도 발견치를 못 하오. 거긔는 독창의 閃이 업소. 사상의 烽이 업소 사랑의 엄이 업소. 아모것도 업 소. 독자를 르랴는 비열한 아텸의 사상이 이슬 이오……이러한 저급소설을 보 아셔 유익이 업소. 우리는 소설에 대한 오해의 사상을 곳치고―즉 극유치한 통속소 설에 건전한 문학적 소설로 代하고, 소설과 타락을 연상하는 사상에, 소설과 문화 를 연상하는 사상으로 代하야 우리 사회를 순예술화한 사회로 만드릅시다.6)
‘卑코, 劣코, 汚코, 추한 것’ 외에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는 것, 즉 독창성과 사상성 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통속소설이라는 주장이다. 사람들이 가정소설이나 통속소설 과 같은 흥미 중심 소설을 즐겨 읽는 반면, ‘참예술적 작품 즉 참문학적 소설’(순수소 설-필자)은 전혀 읽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심지어 남이 소설을 읽는 것을 방 해하고, 소설 양식 자체를 인생을 타락케 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백안시한 양반, 학자, 신사, 교사, 예수교 중심 인물 등을 맹렬히 비난한다. 그는 사회가 이렇게 변모하게 된 것은 일제의 억압과 진취적 사상이 없는 유교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건전한 문학적 소설과 문화를 연상하는 사상으로 순예술화한 사회를 만들자’
는 그의 주장은 결코 논리적으로 모순된 것은 아니다. 다만 당대 식자층에 속하는 그가 ‘극유치, 비열, 아첨, 타락, 저급’ 등의 어휘를 동원하여 통속소설을 매도한 것 을 볼 때, 당시 지식인들의 대중소설에 관한 인식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그는 작 가 의식보다 독자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독자들의 저급한 취미와 낮은 독서 수준 이 흥미 위주의 통속소설을 양산하게 만들었다고 본 것이다. 작가의 창조적 가능성 을 추구하기 위해 소수의 선택된 독자를 대상으로 창작할 것인가, 독자 확보를 위해 대중의 기호와 취향에 영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이미 우리 평단에 내재되어 있었 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통속소설이 지니고 있는 제반 요소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흥미 위주인 것, 기적에 가까운 사건, 내용이 점점 미궁으로 들어가는 것, 죽은 줄 알았던 인물이 살 아남, 선과 악의 대결 구도, 위기 일발의 찰나, 등장인물의 정형성, 권선징악적 요소 등이다. 이런 것을 지양하고, 미학적 관점에서 예술적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소설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통속소설을 철저히 부정한 것은 1910년대 이후 통속적 신소설이 급속히 확산 되고 있는 현상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면서 예술지상주의를 추구 한 것은 철저하게 미학적 속성을 준거로 하여 소설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음을 말해 준 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여 오락성이나 상업성에 치중하는 작품 은 독자에게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타락한 소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가 바라는 순예술화한 사회는 곧 대중에게 작가의 독창성과 유익한 사상이 가미된 소설을 애독하 게 함으로써 건전한 문화가 정착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대중소설의 부정적 측면을 지적하고, 작가의 태도를 비판하는 논의가 프로 진영의 서유준에게 이어진다. 그는 「연애문예 박멸론」에서 대중소설을 사회적 질병에 비유 한다.
6) 김동인, 「소설에 대한 조선 사람의 사상을」, <학지광> 제18호, 1919. 8. 15.
現今의 조선 문단은 얼핏 말하면 낭만주의적 경향이 가장 激厚하기 暴을 占한 모양이다. 조선 문단에 작가들은 이와 갓한 愛를 자료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개인 대 개인의 감정적―연애―영원성에 缺한 관능 추구의 성적 행위 인격적 책임 관념이 업는 자유연애로 자료 수집을 爲事하니 이 얼마나 우리의 절실한 사회적 배경을 무시하고 경박한 경지에서 천진난만한 청년의 순진성을 그들이 훼손하엿슴 이랴.7)
이 글은 제목에서부터 강렬한 인상을 준다. 대중소설 특히 무책임한 자유연애를 소재로 한 소설을 질병을 옮기는 세균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이런 종류의 소설이 대중의 정서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표현이라고 본다. 일시적 인 쾌락을 추구하는 성적 행위나 책임감이 배제된 자유연애를 제재로 삼음으로써 젊 은이들의 순진성을 훼손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소설가나 시인은 전반적 예술미 를 포함하여 진리 탐구를 목표로 하고, 고상한 인생관을 세워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 역설한다.
그런데 그는 연애담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건전하고 낭만적인 사 랑 이야기는 수긍하지만, 무책임하고 관능적인 것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3‧1운동 이후 더욱 강화된 식민 통치 체제 하에서 장차 광복 이라는 민족적 사명을 완수해야 할 젊은이들을 향락의 나락으로 몰아넣고 있는 통속 소설 작가들을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유교사상에 기반을 둔 시대상이 반영된 다소 폐쇄적인 문학관에서 비롯된 견해라는 지적이 있을 수도 있다. 왜냐 하면 소설 이 인생의 진리 탐구를 목적으로 창작된다고 할 때, 남녀 문제는 진솔한 삶의 모습 을 담은 의미 있는 제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대중소설 을 부정함으로써 프로문학을 옹호하려는 취지에서 제기된 것이지만, 당시 독자들이 관능적 내용을 담은 소설을 즐겨 읽었음을 반증해 주기도 한다.
이 시기 <개벽>에 실린 이익상의 글을 통해 당시 독자들의 취향과, 이에 대한 문 인들의 시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천박한 성적 문제만을 저급한 독자 의 호기심을 위하여서만 取擇한다면 예술을 오염함이 이에 더함이 업습니다. 나는 연애소설 중에서 ‘우리 문사의 손에서 된 것’, ‘예술적 가치가 잇는 것’을 지금것 읽지 못한 것은 참으로 유감이외다.”8)라고 하여, 외국 연애소설이 만연한 현실을 비판한 다. 대중소설의 관능성에만 집착하여 독자의 취향에 영합하는 것은 예술을 오염시키 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집필 태도가 지속된다면 소설은 예술적 생명력을 점차 상실하여 독자의 쾌락이나 위안을 조장하는 문학으로 전락하게 될 것임을 경고한 것
7) 서유준, 「연애문예 박멸론」, <동아일보>, 1924. 11. 24.
8) 이익상, 「예술적 양심이 결여한 우리 문단」, <개벽>, 1921. 5.
으로 보인다. 따라서 연애담을 다루더라도 단순히 외국 소설을 번역하거나 번안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예술적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작품을 직접 창작하려는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위 논자들은 주로 대중소설의 부정적 측면을 내세워 대중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문학은 본질적으로 독자를 외면할 수 없다는 논리가 타 당하다면, 순정한 예술미를 추구하는 소설 못지 않게 독자에게 위안을 주는 소설도 분명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대중소설의 유해성을 부각시켜 논의 한 것은 무엇보다 소설의 파급력을 명확히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문학 형식은 미학적 요건과 함께 그 형식을 존재할 수 있도록 해 준 시대 상황이 나 사회 제반 요건과의 상호 관계를 파악함으로써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시기에 이광수는 애국계몽 시대의 효용론적 문학관에서 탈피하여 문학을 하나의 독 자적 예술 영역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문학의 심미적 기능에만 관심을 기 울인 것은 아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에 대한 해답이 제기되면, 문 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다시 묻게 된다. 바로 여기서 문학의 효용성 문제가 제 기되는 것이다. 문학을 ‘문‧사‧철’을 포함한 보편적 ‘문’의 개념에서 언어예술로서 ‘문 학’이라는 개념으로 정립시킨 바 있는 그는 문학의 본질적 가치를 ‘정’의 만족을 통한 미적 가치 구현에서 찾고 있다. 그러면서 문학이 세태‧인정을 말해 주고, 도덕성을 함양케 하며, 풍부한 인생 경험을 제시하고, 고상한 쾌미를 제공한다는 부차적 실효 성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9)
프로문학에 대해 강한 비판 의식을 지니고 있었던 그는, “인생의 생활의 低流에 觸 한 문학은 계급을 초월하여서 사람이면 누가 보아도 볼 줄을 모르면 듯기만 해도 문 학의 효과를 生할 수 잇는 문학의 존재”10)를 믿는다. 그의 견해에는 평범하면서도 대중들이 물리지 않고 즐겨 읽을 수 있는 문학에 대한 기대가 내재되어 있다. 이런 그의 기대는 ‘상적(常的) 문학, 정적(正的) 문학, 평범한 문학, 영문학적 문학’11)으 로 귀착된다. 조선인은 중병을 앓고 난 사람과 같이 육체적․정신적으로 허약한 처 지인데, 그들에게 프로문학의 혁명 이론과 같은 강렬한 자극제만 주는 것은 독약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보양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는 대중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평이한 문학을 강조한 것이다.
도덕성을 무시하고 있다는 이유를 근거로 그는 예술지상주의를 부인한다. 신문예
9) 권영민, 한국 민족문학론 연구 , 민음사, 1995, p. 136.
10) 이광수, 「계급을 초월한 예술이라야」, <개벽> 제56호, 1925. 2.
11) 이광수, 「중용과 철저」, <동아일보>, 1926. 1. 2∼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