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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1충분근거율의 네 가지 뿌리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판 서문에서 자신의 주저를 이 해하기 위해서는 충분근거율의 네 가지 뿌리에 대하여 (Über die vierfache WurzeldesSatzesvom zureichenden Grunde)를 먼저 읽어야 한다고 독자에게 요구한다.이 논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주저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 이다.그 논문을 통해 ‘충분근거율’(Satzvom zureichenden Grunde)44)이란 무엇 이고,그것의 타당성이 미치는 범위를 완전히 인식해야만 자신의 사유방식을 이 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또한 근거율이 개체가 인식할 때의 인식형식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충분근거율의 네 가지 뿌리에 대하여 는 쇼펜하우어가 1813년 완성한 박사학 위 논문이다.45)이 논문에서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선험철학의 전통 아래서 우리 의 선천적 인식능력에 대해 검토한다.이를 통해 학문의 기초를 세우고,학문의 적용범위의 한계를 제시하려고 했다.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에서 탐구하는 것은 선천적 종합판단의 가능 근거를 찾는 것이다.여기서 칸트는 보편성과 필연성을 제공하면서 주어와 술어를 결합하게 하는 선천적인 조건에 대해 탐구한다.쇼펜 하우어는 이러한 칸트의 선험철학에 영향을 받아 충분근거율을 주관과 객관을 결합하는 선천적 인식조건으로 파악한다.이러한 충분근거율이 자연과학,논리학, 수학에서 표상의 필연적인 결합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충분근거율은 네 가지 종류가 있는데,생성의 충분근거율은 자연과학에서 원인과 결과를 필연적으로 결합하는 원리이고,인식의 충분근거율은 논리학에서 전제와

44)“Satzvom zureichenden Grunde는 “충족이유율”보다는 “충분근거율”로 번역되는 것이 적합 하다고 생각한다.왜냐하면 쇼펜하우어는 독일어 “Grund”라는 단어를 논리적 이유뿐만이 아니 라,판단의 토대나 기초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쇼펜하우어는 인식의 충분근거율을 정의 내리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이 다른 것은 언제나 판단이 떠받치거나(stutzen)의거하 는(beruhen)어떤 것이므로,독일어 명사,근거(Grund)는 적절하게 선택되었다.”G,121쪽.

45)쇼펜하우어는 1847년에 이 논문을 수정하고 내용을 보충하여 증보판을 발간했다.증보판에서는 인식능력에 대한 유물론적이고 생리학적인 관점이 추가된다.

결론을 필연적으로 결합시키는 원리이다.존재의 충분근거율은 산술과 기하학에 서 표상들을 시간과 공간적으로 결합시키는 원리이며,행위의 충분근거율은 표상 들을 동기에 의해 필연적으로 결합시키는 원리이다.

쇼펜하우어는 충분근거율을 ‘모든 학문’의 기초라고 부른다.46)학문과 지식은 근거와 원인에 대한 것인데,충분근거율은 이러한 근거와 원인을 밝히는 모든 설 명의 원리인 것이다.그래서 충분근거율을 모든 학문의 기초라 할 수 있다.여기 에서 쇼펜하우어는 볼프(C.Wolff)의 명제를 충분근거율의 일반적 공식으로 제시 한다.“왜 그것이 존재하는지 라는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47) 즉 모든 학문은 근거와 이유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문에서 근거와 이유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쇼펜하우어는 충분근거율을 다음과 같이 정의 내린다.

외적 내적 감성으로서 (수용성),그리고 오성과 이성으로 나타나는,인식하는 우 리의 의식은 주관과 객관으로 나누어지고,그 외의 어떤 것도 함축하지 않는다.

주관에 대해 객관이라는 것과 우리의 표상이라는 것은 동일하다.우리의 모든 표 상은 주관의 객관이고,주관의 모든 객관은 우리의 표상이다.그러나 이제 우리의 모든 표상은,합법칙적이며 형식에 있어서 선천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결합 안에 서로 뒤섞여서 놓여 있다는 사실이 발견된다.이 결합에 의해 어떤 것도 그것 자 체로서 존재하는 것이거나 독립적인 것이 아니며,또한 개별적이고 분리된 어떤 것도 우리에게 객관이 될 수 없다.48)

쇼펜하우어에게 있어서 우리의 모든 표상은 주관의 객관이다.표상이 성립하려 면 항상 인식하는 주관과 객관이 나누어져 있어야 한다.그리고 이러한 주관과 객관 사이의 관계를 결합하고 규정하는 법칙이 충분근거율이다.그런데 표상 안 의 사물은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선천적 형식에 의해 결 합된다.그러므로 표상은 다른 것에 의해서,즉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이 런 의미에서 쇼펜하우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46)G,16쪽 참조.

47)G,17쪽.

48)G,41쪽.

근거율의 일반적인 의미는,대체로,언제 어디서나 각각의 사물은 오직 다른 것에 의해 있다는 사실로 소급된다.그래서 이제 근거율은 현존하는 모든 사물의 전체, 즉 세계가 처해있는 우리의 지성을 포함하는 세계에 적용될 수는 없다.왜냐하면 선천적 형식들을 통해 나타나는 그와 같은 세계는 바로 그로 인해 단순한 현상이 기 때문이다.따라서 단지 바로 이 형식들 때문에 세계에 적용되는 것은,세계 자 체에는,즉 그 안에서 나타나는 사물 자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49)

충분근거율은 표상들의 관계들을 규정하는 법칙이다.즉 충분근거율은 표상으 로서의 세계에 적용되는 법칙인 것이다.그러므로 충분근거율은 주관과 독립해서 존재하는 사물 자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여기서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선험적 관념론을 따른다.즉 그는 현상을 사물 자체가 아니라 단순한 표상으로 간주한다.50)즉 실재적 사물의 존재라는 것은 철저하게 표상에 지나지 않는데, 그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충분근거율에 제약된 세계이다.

쇼펜하우어는 원인과 인식근거가 이전 형이상학에서 구분되어 사용되지 않았 다고 지적한다.아리스토텔레스,데카르트,스피노자가 원인과 인식근거를 혼동하 여 사용함으로써,잘못된 신존재 증명의 기초를 놓았다는 것이다.51)이런 이유에 서 그는 충분근거율의 종류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쇼펜하우어는 충분근거율을 네 가지로 구분하는데,그것은 각각 생성․인식․존재․행위의 충 분근거율이다.먼저 생성의 근거율은 표상들을 인과적으로 결합시키는 원리이고, 인식의 근거율은 표상들을 개념적으로 결합시키는 원리이다.존재의 근거율은 표 상들을 공간적 시간적으로,행위의 근거율은 표상들을 동기에 의해 결합시키는 원리이다.이러한 네 가지 충분근거율은 네 가지 형태의 필연성을 부여한다.

‘생성의 충분근거율’은 ‘인과법칙’(GesetzderKausalität)으로 나타난다.생성의 충분근거율은 원인과 결과를 필연적으로 결합하는 관계를 규정하는데,인과법칙 은 우리에게 선천적으로 인식되므로,인과법칙은 경험을 가능케 하는 선험적 법 칙이라고 할 수 있다.쇼펜하우어는 이 원칙을 생성의 충분근거율로 부르는데,

49)G,175쪽.

50)G,47쪽 참조.

51)G,22-34쪽 참조.

그것은 언제나 변화 즉,어떤 생성을 전제하기 때문이다.52)

‘인식의 충분근거율’은 개념,즉 추상적 표상에 관한 것이다.직관적 세계의 모 든 본질을 추상적 개념으로 바꾸는 것이 이성의 기본적인 업무다.53)즉 이성은 개념을 형성하는 능력인 것이다.개념을 통한 활동을 사유라고 하며,이것은 반 성(Reflexion)이라는 단어로도 표현되는데,이 사유하는 능력은 인간의 모든 이론 적인 작업의 뿌리이다.그리고 인식의 충분근거율은 한 판단이 다른 판단과 갖는 관계인데,인식근거 즉 이성을 통해 전제와 결론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존재의 충분근거율’은 공간과 시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법칙이다.존재의 근거 율을 통해 산술과 기하학에서 타당한 인식이 가능하다.쇼펜하우어는 기하학에서 는 개념이 아니라 순수 직관을 통해 타당한 인식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존재의 근거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직관 안에서 직접적으로 제시되는 것이기 때 문이다.

‘행위의 충분근거율’은 ‘동기화의 법칙’(GesetzderMotivation)이다.행위의 충 분근거율의 담당자는 ‘의욕의 주체’인데,우리는 우리 자신을 언제나 의욕하는 것 으로 발견하게 된다.그런데 인식주관은 인식할뿐 인식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의욕의 주체에 어떤 동기가 주어지면 필연적으로 그 행위를 수행 해야 한다.왜냐하면 의욕의 주체는 동기화의 법칙에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그 런데 인간의 행위와 움직임의 근원은 ‘숨겨진 성질’로 남는다.왜 개별적 의지가 그 동기를 통해 움직이게 되는가 하는 물음은 답변될 수 없다.왜냐하면 ‘예지적 성격’(intelligiblerCharakter)은 시간 밖에 놓여 있어 결코 인식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54)쇼펜하우어는 이 통찰이 다른 충분근거율과는 다르고 아주 중 요하다고 언급한다.이 통찰은 자신의 형이상학 전체의 초석이 된다는 것이다.55) 쇼펜하우어는 이 논문 21절과 43절이 자신의 전체 형이상학의 ‘초

52)G,57쪽 참조.

53)쇼펜하우어는 헤겔철학에서 이성 개념이 잘못 사용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이성은 우리 인식 능력의 형식적 부분에만 놓여 있어서 인식이 성립하려면 외부에서 감각자료를 수용해야 한다.

쇼펜하우어의 주장에 따르면 헤겔은 칸트가 이성의 능동적 역할에 대해 강조하는 것을 과장하

쇼펜하우어의 주장에 따르면 헤겔은 칸트가 이성의 능동적 역할에 대해 강조하는 것을 과장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