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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2주관과 표상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는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다.쇼펜하우어는 이 문장이 모든 인식하는 존재에게 적용되는 진리라고 주장한 다.그렇다면 이 문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간단히 말하면 우리는 표상으로서의 세계 즉,사물의 현상만을 인식할 수 있을 뿐 사물 자체는 인식할 수 없다는 것 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표상의 특징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첫째,이 충분근거 율의 ‘공통된 형식’은 주관과 객관으로 나누어진다.둘째,표상의 선천적 형식으 로 충분근거율이 전제된다.모든 표상에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우리의 모든 표상이 주관-객관 형식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이러한 주관-객관 형식은 네 가지 종류의 충분근거율에 전제되어 있는 공통된 형식이다.즉 모든 표상에는 주관과 객관이 전제되어 있다.주관이 있으면 객관이 있고,객관이 있으면 주관 이 있다.따라서 객관이라는 것은 언제나 주관에 의해 제약된 객관이다.세계에 속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주관의 제약을 받게 되고,주관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따라서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쇼펜하우어는 표상의 형식으로 “주관에 대한 객관존재”(das-Objekt-für-ein Subjekt-seyn)라고 서술하지 않은 것이 칸트의 실수라고 주장한다.65)이러한 쇼

64)라이프니츠, 형이상학 논고 ,윤선구 옮김,아카넷,2010,265-266쪽.

65)W I,227쪽 참조.

펜하우어의 입장을 가장 잘 말해주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나는 현상을 사물 자체와 구별하고 이 모든 세계를 현상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가 시적 법칙들을 현상 너머까지 적용시켜서는 결코 안 된다고 갈파했던 것이 칸트 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그가 현상은 오직 상대적으로만 존재한 다는 이 주장을 단순하고 분명하며 부인할 수 없는 진리인 ‘주관 없는 객관은 없 다’라는 명제에서 이끌어내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만일 그렇게 했더라면 그 는 전적으로 항상 주관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객관을 아예 처음부 터 주관에 의존하고 주관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독자적으로,제약을 받지 않고 존재할 수 없는 단순한 현상이라고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66)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주관’은 모든 것을 인식하면서도 어느 것에 의해 서도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왜냐하면 주관은 세계의 담당자이며,모든 현상 과 모든 객관을 통하여 그 전제가 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이처럼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전적으로 주관에 제약된 세계이며,주관에 의해 파악된 세계이다.표상으 로서의 세계를 이끌어가는 자는 바로 주관이다.

객관의 보편적인 형식은 시간과 공간이다.그런데 주관은 시간과 공간 안에 존 재하지 않는다.왜냐하면 주관은 모든 것을 인식하면서도 어느 것에 의해서도 인 식되지 않기 때문에 인식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런데 표상이라는 말과 객 관이라는 말은 같은 표현이다.67)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객관은 주관에 대한 객관 이고 따라서 표상이기 때문이다.요컨대 객관의 형식은 시간과 공간이고,주관은 객관의 형식 외부에 존재한다.그리고 표상은 주관-객관 형식으로 되어있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1권의 표어로 루소의 말을 적었다.

“유년기에서 벗어나라,벗이여,깨어나라!”68)여기서 쇼펜하우어는 유년기를 소박 한 실재론에,성숙한 입장을 관념론에 비유하고 있다.“칸트철학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 사람은 […]흡사 순진무구한 상태,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태어날 때와 같은 자연 그대로의 어린애 같은 실재론의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된다.[…]

66)W I,533쪽.

67)G,41쪽 참조.

68)W I27쪽.

이런 사람과 칸트철학을 이해한 사람의 관계는 미성년자와 성년이 된 사람의 관 계라고 말할 수 있다.”69)

쇼펜하우어는 칸트에 영향을 받아 ‘선험적 관념론’을 주장한다.쇼펜하우어는 칸트의 철학을 ‘선험철학’(Transzendentalphilosophie),또는 선험적 관념론이라고 부르는데,선험적 관념론은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 니라,시간,공간,범주라는 선천적 지성 형식에 따라 구성된 표상이라는 학설을 일컫는다.그런데 선험적 관념론은 ‘초월적’(transzendent)철학과는 구별된다.70) 초월적 철학은 모든 경험의 가능성을 뛰어넘는 학설을 말하는데,쇼펜하우어에게 있어서 초월적 철학은 전래의 독단적 형이상학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험 적’(transzendental)이라는 말은 모든 경험에 독립해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우 리 인식의 ‘선천적’(apriori)조건에 대한 탐구를 말한다.71)쇼펜하우어는 이러한 선천적 조건이 단순히 형식적이고,우리 의식 안에서 생겨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선천적 조건은 주관에 그 원천이 있다는 것이다.말하자면 선험철학은 우리 의식 또는 우리의 두뇌에 주어진 선천적 법칙을 다루는 철학이다.이런 의미에서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을 “두뇌작용의 비판”(Kritik der Gehirnfunktionen)으로 부를 것을 추천한다.72)

여기서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칸트의 입장을 버클리의 입장과 동일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쇼펜하우어는 이러한 관념론의 입장이 데카르트의 회의적인 고찰 에도 이미 나타난다고 본다.그러나 이를 좀더 분명하게 제시한 사람은 버클리라 고 말한다.73)쇼펜하우어는 이로써 버클리를 철학에 불멸의 공적을 세운 것으로 평가한다.버클리는 인간 지식의 원리론 에서 우리의 형성된 관념은 마음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버클리에 따르면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되는 것”

이다(esseestpercipi).74)여기에서 버클리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진다.

69)W I,21쪽.

70)P I,96쪽 참조.

71)여기서 나는 “apriori는 “선천적”으로 “aposteriori는 “후천적”으로 옮기고,“transzendental 은 “선험적”으로,“transzendent는 “초월적”으로 옮긴다.“transzendental은 “초월적”보다는 “ 험적”으로 번역되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왜냐하면 이 용어는 경험을 뛰어넘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라,인간의 경험 가능조건에 대한 탐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72)Spierling,Volker,ArthurSchopenhauerzurEinführung,Hamburg,2010,55쪽 참조.

73)쇼펜하우어는 버클리를 “관념론의 아버지”라고 부른다.P I,91쪽 참조.

74)버클리, 인간 지식의 원리론 ,문정복 옮김,울산대학교출판부,1999,43쪽 이하 참조.

집,산,강 그리고 한 마디로 모든 감각적 대상은 오성에 의해 지각됨과는 별도로 실재적 존재를 가진다는 것이 사람들의 지배적 견해이다.[…]그러나 명백한 모 순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지각할 수 있을 것이다.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한 대 상들은 우리가 감관으로 지각한 것 이외의 어떤 것이겠는가?그리고 우리의 관념 또는 감각 이외에 어떤 것을 우리가 지각하겠는가?또한 이들 관념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또는 그들의 복합체의 어느 것 하나라도 지각됨이 없이 존재한다는 것은 명백히 모순이 아니겠는가?75)

버클리의 입장은 우리의 사유와 지각은 우리 지각의 가능성 너머로 확대될 수 없다는 것이다.인간이 사물의 존재를 사물의 지각됨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사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로는 우리가 그 사물을 지각한 것이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존재라는 것은 항상 지각 됨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버클리는 우리의 관념은 우리의 마음 없 이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76)

쇼펜하우어는 영국의 경험론자인 로크,버클리,흄을 높이 평가한다.77)그는 칸 트철학이 로크,버클리,흄의 전통을 잇는다고 해석한다.특히 칸트가 구분한 사 물 자체와 현상이 로크가 구분한 1차 성질(primary quality)과 2차 성질 (secondary quality)에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로크는 모든 사유의 대상을 ‘관념’이라고 부르고,그 관념을 낳는 주체의 능력을 ‘성질’이라고 부른 다.78)로크의 구분에 따르면 1차 성질은 수,연장,운동 등이고,2차 성질은 색, 소리,맛 등이다.이러한 1차 성질은 사물 자체의 성질이고,2차 성질은 주관의 성질이다.그런데 이런 로크의 주장에 대해서 칸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시 도한다.즉 우리의 인식이 대상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대상이 우리의 인식에 따 른다고 본다.말하자면 로크가 말한 1차 성질이 대상 자체의 성질이 아니라,2차 성질과 마찬가지로 주관이 지닌 선천적 형식이라는 것이다.그러니까 칸트에게

75)위의 책,45쪽.

76)쇼펜하우어는 우파니샤드에서 베단타 학파의 교리 역시 물질이란 마음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는 점을 지적한다.존재와 지각할 수 있는 성질은 동의어라는 것이다.

77) Cartwright, David E., Historical Dictionary of Schopenhauer's Philosophy, Lanham Maryland,2005,99쪽 참조.

78)로크, 인간지성론 ,추영현 옮김,동서문화사,2011,151쪽 참조.

있어서 로크가 제시한 1차 성질은 시간,공간,범주라는 선천적 형식,즉 자발성 (Spontaneität)이고,2차 성질은 감성의 수용성(Rezeptivität)이다.이런 점에서 쇼 펜하우어는 칸트의 선험철학이 로크의 방법을 따르고 있다고 해석한다.79)

쇼펜하우어는 칸트가 버클리의 관념론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보지만,그럼에도 버클리의 관념론과 칸트의 관념론을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초기 관념론 자들,특히 그중에서도 버클리가 설명한 바 있지만,우리는 칸트를 통해 비로소

쇼펜하우어는 칸트가 버클리의 관념론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보지만,그럼에도 버클리의 관념론과 칸트의 관념론을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초기 관념론 자들,특히 그중에서도 버클리가 설명한 바 있지만,우리는 칸트를 통해 비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