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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志)와 진(眞)의 직설적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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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열거한 한시의 언사(言辭)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안창후가 시를 지을 때 화려 하게 꾸미지 않고 반대로 상당히 직설적이고 명시적으로 본인의 심정과 사고를 표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시인이 자신의 감성적 정서를 시를 빌려 표현하려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안창후 본인이 한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한번 살펴보자.

閑翁豈是好吟詩 한가한 늙은이 어찌 시를 읊는 것을 좋아하는가?

詩是閑翁立志時 시는 한가한 늙은이가 뜻을 세울 때 나온다네.

威武曾聞難可屈 일찍이 권세와 무력에 굴복할 수 없음을 들었고 貧困今覺不能移 빈곤함에도 이제는 능히 옮길 수 없음을 깨달았네.

知天賦與從今始 하늘이 부여한 것을 알게 됨 이로부터 시작되었고 存我秉彛自此期 나의 타고난 천성을 보존함 이로부터 기약한다네.

或恐因循徒費日 혹여 머뭇거리고 헛되이 세월만 낭비할까 두려우니 閑翁豈是好吟詩 한가한 늙은이 어찌 시를 읊는 것은 좋아하는가?

閑翁豈是好吟詩 한가한 늙은이 어찌 시를 읊는 것은 좋아하는가?

詩是閑翁革舊時 시는 한가한 늙은이가 옛 것을 고칠 때 나온다네.

守靜戒無煩擾事 조용함을 지켜 번잡하고 어지러운 일이 없도록 경계하며 整容思祛懶慵私 용모를 단정히 하고 게으른 사욕을 없애고자 생각하네.

存天遏欲身亨泰 천성을 보존하고 욕망을 막으면 몸이 형통하게 되고 惡異喜同志險危 다름을 싫어하고 같음을 좋아하면 뜻이 위험해진다네.

淨洗時時加猛省 때때로 깨끗이 하고 깊은 반성을 더하니

閑翁豈是好吟詩 한가한 늙은이 어찌 시를 읊는 것은 좋아하는가?73)

이 시는 「견천묵당효강즉수미음역음, 이수(見天默堂效康莭首尾吟亦吟, 二首)」라는 작 품이다. 이 시에서는 안창후가 시를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안창후는 시를 좋아하고 시를 짓는 이유를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 번째 시에서는 뜻을 세울 때 그 뜻을 유지하기 위하여 한시를 읊는다는 것을 통하 여 심성수양에서 노력하고 얻은 결과를 시로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한시 창 작을 통해 그는 어떤 권력이나 무력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하고 빈곤이라도 그의 마음을 굽히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그는 타고난 천성을 보존하려고 하 면서도 머뭇거리고 세월을 허비할까 스스로를 경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시에서는 한시를 창작할 때 옛 것을 혁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통해 시 가 가져다주는 구체적인 효과를 말하고 있다. 이 효과는 바로 조용함을 지키려 하면 어 지러운 일이 없게 되고, 몸과 얼굴을 가지런히 하면 게으른 사욕이 사라진다는 것 등을 가리킨다.

한편 시의 머리와 끝에서 모두 다 “ 한가한 늙은이 어찌 시를 읊는 것은 좋아하는가?”

라는 식으로 반문하고 있지만 그 내포적 의미는 안창후가 시를 중요시하며, 시를 자신의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안창후는 이 시를 일종의 수미상관 형식으 로 창작함을 통하여 그가 전달하려는 유학적 이념에 대한 강조에 도달하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73) 『한설당유고』 25면.

이렇듯 그는 한시를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일부분으로 인식하다가 한시의 미학에 관 하여 점차 자신만의 감상 능력을 가지게 된다. 그는 이런 감상 능력을 세상과 연결시키 는 과정에서 당시 한시를 창작하던 작법에 대한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현재의 한시에서 문제점을 포착하고 거기에 우려를 나타내면서 비판하기도 하였다. 「탄 말세시망(嘆末世詩亡)」을 보면 안창후의 작시법에 대한 생각을 명확히 알 수 있다.

古詩去餙直言志 옛 시는 꾸밈없이 직접적으로 뜻을 말했으나 今律粉粧摠失眞 지금의 시는 꾸미고 또 꾸며 진실함을 다 잃었다네.

雖然用意編辭地 비록 용의주도하게 말을 엮고 있었으나

僞實難逃有眼人 안목이 있는 사람에게는 진실과 거짓을 숨길 수 없다네.74)

이 시에서 안창후는 지금의 시대를 말세로 규정하고 이에 따라 시가 망할 것을 우려하 고 있다. 그는 옛날의 시와 지금의 시를 대비하는 방법을 통해 현재의 시가 화려함만 추 구하고 진실함이 부족함을 비판하고 있다. 이를 보면 안창후가 한시를 창작할 때 중요하 게 생각한 것은 소박하고 직설적이면서 진실함을 구현할 수 있는 데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서는 아무리 용의주도하게 말을 다듬어 표현하더라도 안목이 있는 사람들은 진실과 거짓을 정확해 구분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안 창후가 본인의 한시에 대해 어느 정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의 한시에 대해 비 판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아울러 안창후가 생각하는 한시의 모습은 志와 眞이 제대로 구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志는 자신의 뜻과 감오이고 眞은 참다운 감정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한시 창작에서 늘 이런 이념 을 가지고 자신의 지향을 표현하고 참다운 감정을 전달했을 것임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안창후는 시적 언어를 사용할 때 화려하고 심오한 수식어보다 오히려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박하고 꾸밈없는 직접적인 언어를 쓰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안 창후는 그의 시에서 사물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늘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한시에서는 공간을 다룰 때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거시적인 공간에서 미시적인 공간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으며, 시간적 묘사에서도 먼 과거(젊은 시절/옛)부 터 가까운 현재(늙어진 후/지금)에 이르는 순서를 선호한다. 이런 방식을 통하여 그의 시 는 시적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정서를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효과를 드러내고 있으며, 더 나아가 강렬한 풍자와 비판을 담은 작품도 적지 않다. 그리고 그의 한시에서는 사경 혹 74) 『한설당유고』 35면.

은 역사적 인물에 관한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주를 이루진 않으며 그 대신 자신 의 지, 감정 그리고 유학적 용사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는 출세하지 못한 국면 앞에서 울분하고 또 울분하다가 유학에 더욱 빠지면서 유학 적 사상을 시로 담아 세상 사람들을 가르치고, 또 시를 통해 자신의 심지와 천성을 보존 하려 하였는데 이 모든 행동은 다 그가 현실적 좌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던 수 단이자 이상 추구의 일환이었다. 즉, 그는 출세하지 못했더라도 여전히 향촌에서 사는 선비로서 시를 빌려 사회의 올바르지 않은 문제점을 바로 잡고 직설적 언어 혹은 강렬한 비판을 이용하는 것을 통하여 바른 풍습으로 바꾸려 하였는데 이는 일종의 사회적 사상 개조라 할 수 있으며, 이로써 자신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의 사회적 개조는 안창후가 이상적인 유학적 가치표준을 위주로 삼은 개조이기 때문에 농민 들이 처한 현실적 고난에 대한 시인의 우려 혹은 비판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이를 보면 그의 사상 개조는 좁은 의미에서 출발하고 노력했던 것이며 큰 차원에서 민생을 고려하 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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