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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방농정 관련 제도의 변천과 논의

한국에서 지방자치제는 1949년 「지방자치법」 제정, 1952년 최초의 지방의회 구성 등의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1961년에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 법」에 따라 효력이 정지당했다. 이후, 1988년에 「지방자치법」 전문을 개정하여 법률상으로는 지방자치제가 부활했고, 1991년에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의회가 다 시 구성되었다. 그러나 실제적인 의미의 지방자치제는 지방자치단체장을 선거로 뽑은 1995년에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지방농정 관련 제도’라고 표현할 수 있는, 법률에 근거한 정책 추진체계가 형성된 것도 실제적인 의미의 지방자치제 가 실시된 1995년 이후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농업·농촌기본법」이 1999년 2월에 제정되고 2000년에 시행되었다. 당시 법률 제4조에 국가·지방자치단체 및 농업인의 책무가 규정되어 있었다. 제4조 ①항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농업의 안정적인 성장 및 발전과 농촌지역개발 등을 위 한 종합적인 시책을 수립하고 이를 시행할 책무를 진다.”고 규정함으로써, 농정

K O R E A R U R A L E C O N O M I C I N S T I T U T E

제2장

기획 및 집행의 주체로서 지방자치단체를 공식화하였다. 아울러 동법 제42조 ① 항에 국가 수준의 농정 계획인 ‘농업·농촌발전기본계획’을 농림부 장관 책임하에 수립하도록 의무화하고, ②항과 ③항에서 각각 광역 지방자치단체장과 기초 지방 자치단체장도 ‘농업·농촌발전기본계획’을 수립하게끔 규정하였다. 이로써 지방 농정에 종합적 계획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렇게 도입한 ‘계획 제도’를 뒷받침할 거버넌스 측면의 제도적 장치로서 동법 제43조에 지방자치단체 수준의 농정심의 회를 구성하도록 규정하였다. 농정심의회의 우선적인 기능은 ‘농업·농촌발전기 본계획’을 심의하는 것으로 정하였다. 이 같은 계획 및 심의 기능이 작동하도록 중 앙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으로서 제44조 ①항에 “농림부장관은 기본 계획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하여 매년 예산편성 시 기본계획에 포함된 사업비가 우 선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규정과 제②항에 “농림부장관은 각 지방자치단체의 농업·농촌발전계획에 대하여 기본계획과의 연계성, 추진 실적 및 성과 등을 평가하여 그 결과에 따라 예산을 차등 지원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었다.

계획제도, 계획 심의 기능을 부여받은 위원회, 계획제도를 작동시킬 재정적 통 제 장치 등을, 실제 작동 여부는 별개로 하더라도, 법률 수준에서는 형식적인 요건 을 최초로 갖춘 계기였다. 그러나 농촌 지방자치단체가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강제하는 구속력 있는 조치는 근년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법률에서는 중앙정부 가 재정을 매개로 농촌 지방자치단체 수준의 기본계획 수립을 견인할 수 있는 근 거조항을 두었으나, 실제로는 잘 작동하지 않았다. 최초의 「농업·농촌기본법」이 규정한 농정심의회도 기본계획을 형식적으로 심의하거나, 농업인후계자 육성사 업 보조금 지급 대상자 선정 심의 정도의 기능을 수행했을 뿐이다. 지방농정심의 회가 대의(代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지 않았다는 점도 농정 심의가 내 실 있게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 중 하나다.4)

4) 가령, 현행 규정인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시행령」 제15조는 기초 지방자치단체의 농정심의 회 위원 구성에 관해 규정한다. 그런데 심의위원 위촉권을 전적으로 지방자치단체장에 부여하고 있 다. 위원은 35명 이내로 구성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이 당연직 위원장을 맡게 되어 있다. 그리고 관계 행정기관의 장 3명 이내, 생산자단체, 농업인단체, 소비자단체 및 식품산업 관련 단체의 장 11명 이내,

한편, 200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하여 유행한 공모제 방식의 개별 국고보조 사업 이 지방자치단체의 농정 시책 기획을 촉진하는 유인으로서 더 자주 작동하였다.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는 공모제 방식의 국고보조 농정 사업을 국고 재원을 추가 적으로 확보할 기회라고 인식한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 간 경쟁을 통해 사업 대 상지를 선정하기 때문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계 차원에서 지방자치단 체의 의존성을 심화시킨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비록, 다수의 국고보조 농정 사업 이 이른바 ‘상향식 접근방법(bottom-up approach)’을 표방하면서 세부 내용을 계 획할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주었지만, 경쟁 과정을 거쳐야 하는 공모제라는 형식 은 또 다른 한편으로 지방의 자율성과 재량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은 것도 사실이 다. 그리고 개별 사업 수준에서는 지역의 여건과 정책 수요를 종합적으로 고려하 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이후, 2008년 들어 균특회계 사업의 상당 부분이 포괄보조 방식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통합적 농촌개발’에 관한 논의가 일어났다. 개별 단위 정책 사업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포괄적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농촌개발 정책에 중요한 과제로 부 각되었다. 국고보조 사업 재원을 제공하는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포괄보조’라는 형식을 채택할 필요성이 높아지는 상황이었다. 국고보조 사업을 포괄보조 방식으 로 추진하려면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일종의 통합적 계획을 수립하지 않고서는 그 취지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방 사무를 재정의하고, 그에 따라 재정 지원의 방식과 내 용을 바꾸어가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균특회계의 경우는 유사 중복성이 강한 단위 사업들을 중심으로 부처 내에서 통폐합하고, 다음 단계로 부처 간의 칸막이를 유연화하여 부처 간 유사 사업을 통폐합한 후, 다수의 단위 사업들을 소수의 정책군으로 축소하여 해당 정책군별로 지방에 포괄적 재정 지원을 하는 수순을 고려할 수 있다. 나아가 단계별로 정책군의 수를 축소함으로써 지자체의 관련 대학·연구소·국제기구에 재직 경력이 있는 전문가 6명 이내, 지역농업 및 식품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농업인 및 식품산업 종사자 대표 13명 이내로 구성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자율성을 보다 증대해 나아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책 추진 프로세스는 ‘지역 별 계획 수립-예산 배정-지역별 집행-지역, 중앙 부처 평가’로 단순화, 체계화할 수 있다.” 송미령 외(2008: 171-172).

이 같은 구상은 개별 단위 사업이 속한 정책 영역 간의 ‘칸막이를 해체하고 지역 수준에서 통합적인 계획과 실행을 가능케 하는 깔때기를 마련하는 것’이 정책 추 진체계 변화의 핵심이라고 간주한 것이다. 최근에는 그 같은 ‘지역 수준의 통합성 확보’라는 과제에 덧붙여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계 차원에서 파트너십 (partnership)이라는 요소를 부가적으로 강조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계획협약 제 도’ 논의가 등장하였다.

지역 수준에서 개별 정책 사업들의 통합성을 높이려는 정책 추진체계 관련 실 험으로는 ‘통합메뉴(패키지) 방식’, ‘포괄보조 방식’, ‘계획협약 제도’ 등을 들 수 있다. ‘통합메뉴 방식’이란 목적과 대상을 달리하는 여러 종류의 개별 국고보조 사 업을 모아서 지방자치단체에 메뉴로 제시하고, 그 가운데 적절한 것들을 선택하 여 시행케 하는 방식이다. 여러 종류의 정책 사업을 연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통 합성’을 지향하지만, 개별 정책 사업 각각의 세부 내용을 지방자치단체가 설계하 거나 기획할 재량은 주어지지 않는다. 포괄보조 방식은 이보다는 더 많은 재량을 지방자치단체에 부여하는 방식이다. 중앙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의 한도 안에 서 지방자치단체가 상당한 재량을 가지고 사업들을 기획할 수 있다. 여러 종류의 사업을 기획하되 통합하고 연계시키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계획을 전제로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보조사업의 목표를 설정하는 데 있어 주도권이 중앙정부에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사업 시행 측면에서 상당한 재량을 갖는다. 계획협약 제도 는 통합메뉴 방식이나 포괄보조 방식과는 질적으로 다른 측면이 있다. 프랑스에 서 도입한 제도에서 연원한 것으로 보이는데, ‘전국 수준의 계획을 전제로 지방이 수립하는 지역계획과 조율하는 체계로서, 중앙-지방 간 협약(계약)이라는 형식으 로 재원을 중앙정부가 일괄 지원하는 제도’라고 요약할 수 있다(송미령 외 2019;

장민기 2019).5)

농촌개발 사업을 중심으로, 국고보조 농정 사업은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통합 적 계획 수립을 강조하고 중앙-지방 관계에서는 대등한 파트너십을 지향했다. 그 러면서 적어도 제도 형식 측면에서는, 분권을 향해 진화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직 본격적으로 도입되지는 않았지만, 농정 영역에서 계획협약 제도를 도입하면 그것은 국고보조 사업 추진 방식을 지방분권을 향해 한걸음 더 이동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림 2-1 국고보조 농정 사업 추진체계의 지방분권적 진화 경로

지역 수준에서 정책 통합·연계 수준 중앙-지방의 파트너십 수준

공모제 방식 통합메뉴 방식

포괄보조 방식

계획협약 제도

자료: 저자 작성.

5) 현재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촌협약’이라는 명칭으로 계획협약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균형발전위

5) 현재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촌협약’이라는 명칭으로 계획협약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균형발전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