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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 단위 지역계획과 지방농정

읍·면 수준에서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계획은 아직은 그 사례가 적고 법률적 근 거가 미약하다. 그렇지만 정부의 뺷자치분권 종합계획뺸에 따라 이른바 ‘마을계획’

이라는 절차가 확산된다면, 농촌에서는 농정의 지방분권화를 촉진할 가능성도 있 다. 특히, 주민 다수가 농업에 종사하는 면 지역에서는 마을계획의 내용 상당 부분 이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농업·농촌 정책과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다. 이 절에서 는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에서 수립한 ‘마을계획’을 사례로 삼아 그 같은 가능성 과 현재 직면한 한계를 논의한다.

홍동면은 거주 인구 3,500명 정도, 인구 규모로는 한국 농촌 면 지역의 평균에 약간 못 미치는 지역이다. 풀무고등농업기술학교로 대표되는 농업인력 육성, 한 국에서 유기농업을 처음 시작한 곳, 협동조합 운동의 전통이 오래된 농촌 지역사 회 등 여러 이유로 주목받는 곳이다. 홍동면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도하여 2019년 6 월에 뺷홍동면 마을계획뺸을 수립하였다. 읍·면 단위 지역계획을 지방자치단체 행 정이 주도해 지역 외부 기관에 용역을 맡겨 수립한 경우는 간혹 있지만, 면 지역 주

K O R E A R U R A L E C O N O M I C I N S T I T U T E

제4장

민이 주도해 지역계획을 수립한 사례는 아주 드물다. 이른바 ‘마을계획’이 지방에

홍동면 마을계획을 수립하는 것 자체가 원래의 목표는 아니었다. 마을계획을 수립하기 한 해 전인 2018년 여름에 “2018 홍동주민 원탁회의”가 열렸다.31)이 모 임은 홍동면 주민들이 생각하는 지역사회 발전 의제를 형성하고 도출하려는 시도 였다. 하루 동안 진행된 원탁회의에서 우선순위가 설정된 의제 27개가 도출되었 다. 이것들을 환경, 정주생활기반, 복지, 농업·경제 등의 분야별 의제로 나누어볼 수 있다. 원탁회의를 진행하면서 분야별 토론을 진행하지 않았지만, 전형적인 농 촌 지역에서 주민들이 관심을 갖는 중요한 지역 의제 중에는 농정이 다루어야 할 것들이 자연스럽게 상당수 포함된다. ‘농업·경제’ 분야로 분류한 의제는 물론이고

‘환경’이나 ‘정주생활기반’ 등의 분야로 분류한 의제들 중에도 농정 사업이 관여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이 많다.

이후, 2019년 들어 홍동면 주민자치위원회는 ‘마을계획단 분과’를 설치하고, 계획 수립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주민 20명으로 마을계획단을 구성·운영하였 다. 소액이지만, 계획 수립에 필요한 예산은 홍성군청이 홍동면에 할당한 주민참 여예산으로 충당하였다.

표 4-2 홍동면 마을계획 수립 일정

시기 활동 유형 주요 내용

2019년 2월~3월 문헌 조사 홍동면 인문, 자연, 문화, 경제 등

2019년 3월 의제 파악 원탁회의 결과 및 주민 수요조사 결과 검토, 반영 2019년 3월~4월 비전 설정 도출된 의제에 바탕을 둔 홍동면 발전 비전 수립 2019년 4월~5월 마을계획 수립 비전에 따른 중장기 마을계획 수립

2019년 4월~5월 2019년 사업계획 수립 2019년 사업 시행계획 수립 자료: 홍성지역협력네트워크(2019)를 참고로 재구성.

31) “2018년 주민참여 제안 사업으로 홍동면이 주최하고 홍동면 주민자치위원회가 주관했다. 참가자 들이 ‘우리가 살고 싶은 홍동은?’이라는 주제로 토론하고 홍동면의 의제를 발굴한다는 목적이었다.

…(중략)… 홍동면 주민과 홍동면 소재 기관단체장, 민간단체 실무자, 주민자치위원, 아동·청소년 등 모두 162명이 참여했다. 참가자 8~10명씩 18개 조로 나누고 조마다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의 도움으로 원탁회의를 진행했다.”(신소희 2019: 152).

표 4-3 홍동면 마을계획에 포함된 주요 추진 과제

없었다. 예산 소요 추정도 다소 비현실적인 대목이 있어 치밀하게 산정한 것이 아 님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홍동면 마을계획’은 주민들이 주도하는 가운데 지역사 회의 발전 의제와 대략적인 실행 전략을 직접 수립한 경험이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이후, 홍동면에 투입될 수 있는 각종 공공 재원의 용도를 결정할 때, ‘홍동면 마을계획’은 중요한 준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결정적으로 조력한 주 체로 홍성군 마을만들기지원센터가 있었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당장 시 행되는 보조 사업 없이도, 지역사회의 의제를 형성하고 도출하는 데 중간지원조 직이 기여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이처럼 읍·면 수준에서 주민이 직접 참여해 수립하는 계획 과정이 지방농정과 관련해 어떤 시사점을 주는가?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읍·면 단위 마을계획 은 지역사회가 공유하는 발전 의제를 명확히 하고 사전에 형성해 두는 수단이 된 다. 국고보조 사업이 추진될 때, 대개는 해당 정책 사업이 제안하는 주제나 의제에 맞추어 그리고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되고 나서야 의제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기 때문에 사업계획 수립에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기 십상이다. 결국, 주민의 정책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읍·면 단위 주민참여 형 계획은 사전에 의제를 정리해 두는 수단이 된다. 둘째, 계획의 내용이 작은 장소 범위에 한정되므로 주민들이 계획 수립 과정에 능동적으로 직접 참여하기에 유리 하고, 구체적인 과제를 도출하기 쉽다. 계획에 포함된 사업을 실제 추진할 때 주민 의 지지와 동력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셋째, 주민 원탁회의 같은 방식으로 의제 를 도출하거나 마을계획을 수립하는 과정 자체가 지역사회의 발전 역량을 축적하 는 학습 과정이 된다. 넷째,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 홍동면 마을계획 사 례에서 보듯이 정책 영역을 가리지 않고 주민 생활상의 필요에 기반을 둔 의제를 도출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은 현실적이고 다양하며 포괄적인 지역 발전 과제 를 산출한다. 그런 포괄성은 자연스러운 필요에 기초한 것이다.

한편, 중앙정부의 국고보조 농정 사업 추진 방식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읍·면 단위 지역계획 수립 사례는 여러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중앙정부가 제공할 수 있는 보조금을 최대한 포괄적이고 폭넓은

용도로 주민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국고보조 사업의 틀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점 을 확인할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국고보조 사업, 특히 농촌개발 정책 영역의 사업은 공모제에서 포괄보조 방식으로, 포괄보조 방식에서 (아직 시행되지는 않 고 있지만 논의되고 있는) 계획협약 방식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보조금 용도의 포 괄성을 확장해왔지만, 충분하지 않다. 사실 농림축산식품부의 소관 정책 사업만 으로 농촌 주민들이 제시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 요구를 완전히 수용하기는 어려 울 것이다. 그럼에도 이상과 같은 ‘포괄 지향’은 계속 견지해야 할 관점이다. 둘째,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정 사업이 주민(농업인)의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여러 정책 사업을 개발하고 확대해왔으나, 지역사회의 발전 의제를 도출하는 것에 관 해서는, 특히 읍·면 수준의 의제 형성 역량 문제에 관해서는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 지 못했다. 읍·면을 단위로 추진하는 농정 사업은 리 단위 또는 시·군 단위 사업의 범위나 숫자에 비해 현저하게 적다.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셋째, 농촌 지역사회 주민의 논의와 의제 형성을 촉진하는 애니메이션(animation)에 조력할 주체로서 중간지원조직에 대해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자원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