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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약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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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컴퓨터 작업을 하다 잠시 쉴 겸 양지바른 베란다에 나가 화분 위에 올라앉은 조약돌을 들여다본다. 오랜 세월을 견디어 둥글 게 닳아진 모습을 보면서, 계곡을 구르고 어느 광산에서 깨지고 이리 저리 채이면서 여기까지 온 여정이 보이는 듯 하였다.

지금 우리 식구나 집안의 사람들도 모두 그런 모습인 듯 하다.

육 남매 맏이인 우리는 직장 관계로 시골에서 부모님을 모시며 살 지 못하고 셋째가 모시고 살고 있었다. 명절이나 돌아가신 시어머니 의 기일이 되면 4형제 가족이 모두 우리 집으로 모이곤 하였다.

15년 전쯤의 어느 해, 추석을 지내러 충북 음성 시골에서 셋째 삼촌 이 갓 결혼했던 동서와 함께 올라오는데 집에 새로 모신 어머니께서 고추장을 병에 담아서 올려 보내셨다. 동서는 가져오기 싫었지만 어 머니께서 자꾸만 갖고 가라고 하시니까 할 수없이 들고 왔다고 하였 다. 오는 중에 차를 여러 번 갈아타야 했다. 날씨는 덥고 차를 몇 번 씩 갈아타야 하니 시간은 하루종일 걸리고 마지막으로 시내버스를 타 고 우리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즈음에 사건이 터졌다.

삼촌이 가만히 보니까 고추장이 병 속에서 부글거리며 자꾸만 뚜껑 이 열리려 하였다. 아무래도 위험하지 싶어 병 뚜껑을 다시 닫으려고 막 손을 대는 순간 그만 고추장이 폭탄처럼 폭발하고 말았다. 삼촌은 손으로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본인한테는 튀지 않고 주변에 있는 다 른 사람들한테만 고추장이 마구 튀겨진 것이다. 그 때가 추석 전 날

이라 모두 한복으로 곱게 명절 차림을 하고 친척집들을 방문하기 위 하여 가고 있는 중인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한테 모두 빨간 고 추장이 마구 튀었으니 그 정황이 어떠했겠는가, 약간 떨어져 앉아 있 던 동서는 나는 저 사람하고 관계없는 사람인양 시치미를 떼고 모르 는 척하고 앉아있었다고 하였다. 삼촌은 사람들한테 얼마나 미안한지 몸둘 바를 몰라 당황하고 있는데, 그 때만해도 사람들이 순박하고 또 시골 사람들이어서 화가 나서 얼굴이 고추장처럼 빨개졌으면서도 뭐 라고도 못하고 씩씩거리기만 할 뿐 뭐라는 사람이 없었단다. 그때 차 에 타고 있던 한 여학생이 휴지를 꺼내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고 삼촌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고추장 병을 대충 챙겨 도망치듯 내려왔다고 하였다. 집에 들어온 동서는 화가 나서 영 마음을 못 풀 고 나는 또 그이야기를 듣고 너무 미안하였다.

그때는 아무도 말도 못했는데 이제는 가끔씩 명절이나 제사 때 형 제들이 모이면 그 때 이야기를 하며 웃고는 한다. 15년 정도가 지난 옛날이니까 그렇지 요즘사람들 같았으면 세탁 비 물어내라고 야단이 났을 거라면서 그 때 휴지를 나누어주었던 여고생의 고마움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두고두고 이야기한다.

그때도 그랬지만 시골에 사는 동서는 늘 여러 가지로 불만이 많았 다. 새댁이고 셋째며느리 이면서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 많은 농사일 에 시달리는 것, 집안의 큰일이 있을 때마다 시골에 모여 일을 치르 기 때문에 온갖 힘든 일에 시달리며 사는 일들로. 그래서 신경성 병 이 생기고 몸이 야위어 가고 하는 데, 형님 댁에 고추장까지 가지고

가다가 그 봉변을 당했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짐작이 간다. 집안 의 대소사에 경제적인 면에서나 그 밖의 일에 책임을 많이 지고 있으 면서도, 동서한테는 언제나 죄인 같은 마음으로 할말도 못하고 사는 맏동서 노릇을 하고있었다.

또한 아버님이 성정이 대단하셔서 모시기가 쉽지 않은 분이셨으며 새로 들어오신 어머니도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또 아버님으로 하여 마음 고생이 많으셔서 몸이 언제나 불편하셨다. 그러니 직접 모시고 사는 동서의 어려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다 셋째보다 늦게 결혼한 둘째 며느리가 들어오고 서울서 태어 나 막내로 자란 탓인지 집안일 보다 자신 편함을 먼저 생각하고, 같 이 돈을 내는 집안 일에 인색 하자 그곳에 여러 가지 갈등이 많이 생 겼다. 이어서 넷째 며느리가 들어오며 더 말도 많고 탈도 많아졌다.

아주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어울려 살다 보니까 어려운 일 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친정의 여자 형제들은 서로 잘되기를 바라 며 도와주려 하지만, 시댁의 동서들은 남끼리 모여서 인지 서로 잘되 는 것을 시샘하며 그렇게 되지를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여러 가지 갈등이나 어려움도 차츰 익숙해지고 각자의 가정에 어려움도 지켜보 면서 세월은 흘러갔다. 또 새로 들어오신 어머니 마저 10여 년 만에 다시 돌아가시고 그 힘든 장례 일을 함께 치르면서 이젠 어떤 동지애 같은 것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아무리 남끼리 만났어도 삶과 죽음을 함께 나눈다는 것이 보통의 인연이겠는가. 그래서 시골의 나이 드신 분들께서는 동서간의 사이가 각별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가끔씩 그 황당했던 고추장 사건이 생각나면 언제나 시골에서 힘겹 게 지내고 있는 동서가 생각난다. 그 당시는 힘겹고 어려웠던 얼굴 붉힐 일이 많던 사람 사는 여러 가지 일들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 드럽게 이해하고 안쓰럽게 생각된다. 그래서 서로를 참고 보아주는 따뜻함이 생기고, 사람의 마음도 세월이 흐르면 둥근 조약돌처럼 닳 아지는 것 같다. 동글동글 예쁜 조약돌을 보면 왠지 그 모습을 닳은 미소가 얼굴에 떠오르듯이, 이제는 웃고 사는 시간이 우리 앞에 더 많이 주어져야지 않나 생각한다. 앞으로 살아온 날보다 길지 않은 세 월을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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