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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민요에 나타난 생활인식

문서에서 제주민요의 배경론적 연구 (페이지 122-184)

한 사회의 구조는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상호작용에 의해서 형 성된다. 그런데 그 사회 구성원들의 사회적 상호작용은 문화의 내용, 특히 가치 와 규범에 의해 결정된다. 제주사회는 척박한 자연환경과 섬이라는 지리적 요인, 협소한 농지, 출륙금지령 같은 사회·역사적 요인 등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유 지되어 왔다. 그리고 현실을 극복하고 합리적인 삶을 도출해내기 위한 노력은 제 주민요를 통하여 진솔하고 구체적인 정서로 표출되고 있다. 따라서 제주민요는 제주사람들의 사회적 상호작용의 결과를 잘 보여주는 문화적 구술체라고 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자연과 사회역사적 상황에 대응하는 제주사람들의 삶의 대응방식 과 생활인식이 제주민요에 어떻게 투영되어 형상화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공동체의식과 공생주의

1) 궨당공동체

전통 농촌은 자치적 지역집단으로서의 마을공동체이며, 이 마을공동체는 ‘자족 적인 사회적 통일체로서 생활권’125)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 있어서 마을은 농촌 사회의 사회·문화적, 심리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생활권의 단위가 되어 왔다. 곧, 마을공동체는 구성원들의 권리와 임무, 역할과 지위를 부여하는 사회적 구실을 통하여 삶의 질서를 유지하고 생활을 지속하게 해온 생활공동체의 주요 사회조 직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화·개방화·세계화가 진행된 현대사회에서도 마을은 여 전히 중요한 사회구조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농어촌지역 사람들의 생활경 험은 마을공동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지리적으로 육지와 떨어져 있고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 해야 했던 제주사람들에게 있어서 마을공동체는 공동 생활권의 영역을 넘어 마 을 구성원들끼리 결속력을 강화하는 사회적 관계의 구심점으로서 중요한 구실을 해 왔다. 제한된 공간에서 오랫동안 삶을 지속하며 살아오는 동안 마을공동체 구성

125) 신행철,「제주마을의 공동생활권으로서의 성격과 그 변화」,『제주사회론』,한울아카데미, 1995, p.106.

원들의 관계는 다원적으로 혈연적 친족관계로 엮여 ‘궨당공동체’를 구성하게 된다.

(가) 아 다  다 난 아들 다섯 딸 다섯 나서

열 실에 열 사둔 난 열 마을에 열 사돈 하니

도녀국이 나 국일러라 도내국이 내 국이로구나

(진성기,『남국의민요』-113, 시집살이노래)

(나) 전싕궂인 요내년 가난 전생 궂은 요 내가 가니

은 나난 요답성제 나난 딸은 나니 여덟 형제 나니

팔도강산에 앗더니 팔도강산에 팔았더니

조선국은 내국이여 에이에∼ 조선국은 내 국이여 에이에~

(2003.11.15 양영자 채록, 서귀포시 예래동, 레는소리 일부)

(가)에서 자식 열을 낳아 열 마을과 사돈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얽히고 설킨 친인척 관계가 형성되어 ‘도녀국’이 모두 자신의 나라라고 노래하고 있다.

제주의 전통사회는 대개 마을 내혼이나 가까운 이웃마을과 혼인이 이루어짐으로 써 자연스럽게 ‘사돈의 팔촌’ 하는 식으로 복잡한 친인척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 마을에는 성펜궨당(부계친)·외펜궨당(모계친)·시궨당(시가친)·처궨당 (처가친)이 이웃에 거주하게 되면서, 누구나 한 다리만 건너면 사돈의 팔촌으로 얽히는 광범위한 친인척 관계가 형성되었는데, 이 공동체가 ‘궨당’이다. 한 마을 내에 성펜궨당, 외펜궨당, 시궨당, 처궨당이 공존하면서 명절이나 혼례, 상례시 서로 협동하고, 생산활동이나 가사 등 현실생활에서 거의 동등하게 접촉하고 유 대관계를 맺는 다원적 공동체생활을 유지했다. 그래서 제주의 마을공동체는 ‘궨 당공동체(친척공동체)’의 총체적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궨당공동체는 마 을공동체가 되고, 마을공동체는 궨당공동체가 되어 공생·공존하는 과정에서 공동 체의식을 강화하며 삶의 터전을 가꿔 왔다.

사돈의 팔촌으로 얽힌 궨당이 한 마을에 살게 되면서 같은 마을, 같은 동네, 이 웃마을간의 생활은 모두 ‘삼춘-조캐’하는 친족 관념 속에 영위되어 제주사회는 강한 지역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제주사회에서는 궨당을 남녀별·친소별로 구 분하지 않고 손윗사람은 모두 삼촌으로 호칭하며, 손아랫사람은 모두 조카로 호 칭한다. 좁은 지역 안에서 긴밀하고 복잡한 친족관계가 형성되다 보니 어느 가지 로든 일가붙이로 연결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굳이 혈연관계를 따지지 않더라도 호칭이 모호한 경우는 모두 ‘삼춘-조캐’로 부름으로써 혈족이 아닌 이웃도 모두 삼촌-조카의 혈맹관계로 결속하게 되어 마을공동체는 강한 궨당공동체를 형성하 게 된다.

부계친과 모계친을 엄격히 구별하고 문중조직이 발달해 있는 육지의 경우는 대 체로 유교적 가치체계와 양반의 전통을 가진 계층끼리 원처혼을 하는 경우가 많 다. 이들은 경제적 기반인 토지를 소유한 계층이며 장남우대상속과 장남위주 관 념이 강한 직계가족을 이상으로 하는 가족126) 형태를 갖고 있다. 그러나 (가)에서 처럼 섬 전체가 자신의 궨당이라는 인식으로 살아가는 제주사회는 육지와는 달리 계층의 차이나 재산소유의 차이가 거의 두드러지지 않는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제주사회의 사람들이 모두 궨당이라는 인식은 공동체의식에 뿌리를 두고 형성 된 것으로 제주 천지가 자신의 나라라는 주권의식과 공동체의식으로 확대·발전된 다. 오늘날 전승되고 있는 (나) 노래는 ‘조선국이 내 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시대 가 변하여 생활과 행동반경이 확대됨에 따라 혼인의 범위도 나라 전체로 넓어지 면서 조선 천지가 내 나라라는 인식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궨당공동체 에 대한 뿌리깊은 의식이 현재적 관점에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가) 만경창파 넙은 밧듸 만경창파 넓은 밭에

구룸찌 종랑 세왕 구름같이 모종이랑 세워

새벨찌 군랑 앚정 샛별같이 역군일랑 앉혀

선소리랑 궂이나만정 선소리랑 궂을망정

끗소리랑 크징 크징 훗소리랑 크게크게

멍석 앙 세운 듯이 멍석 말아 세운 듯이

먼딋 사름 구경 좋게 먼뎃 사람 구경 좋게

밋딋 사름 보기 좋게 밑엣 사람 보기 좋게

칠성찌 벌어진 궨당 칠성같이 벌어진 친척

다찌 다 모다 오랑 별무리같이 다 모여 와서

먼딋 사름 보기좋게 먼뎃 사람 보기좋게

(김영돈,『제주도민요연구 上』-1029, 김매는 노래) (나) 자웃자웃 지드리어라 갸웃갸웃 기다리더라

먹으라코 씨라코민 먹으라코 쓰라고하면

가지낭에 모람이욘다 가지나무에 모람이 연다

열리당캐 왜배나들라 열리당캐 왜배나 들라

먼딋궨당 만나레가게 먼 데 친척 만나러 가자

(김영돈,『제주도민요연구 上』-1004, 해녀 노래)

궨당의 힘은 생업과 대소사에서 십분 발휘되면서 궨당의 위세는 든든한 삶의 126) 최재석,『제주도의 친족조직』, 일지사, 1979, p.169.

배경으로 작용한다. 궨당공동체이면서 마을공동체이기도 한 집단은 김매기, 초가 지붕 일기, 산에서 나무 끌어오기 등 힘든 일을 협동으로 해결해 낼 뿐만 아니 라, 우마를 방목하거나 바다밭에서 해산물을 공동채취 하는 등 생산과 분배활동 을 공유하며 생활을 지속해 왔다.

(가)는 넓은 밭에서 마을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수눌음에 의해 김을 매는 상황에 서 불려진 노래이다. 밤하늘의 북두칠성처럼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궨당들이 모 두 모여들어 수눌음에 참여하여 권력하자고 노래하고 있다. (나)는 왜 배의 등장 을 계기로 먼 데 사는 궨당과 만나 부조와 협업에 대한 기대를 소망하고 있다.

제주사회에서 궨당은 이웃마을로까지 확대되면서 마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멀리 있는 궨당까지 모여들어 협업했던 사회적 풍토를 엿볼 수 있다. 제 주민요는 생업공동체·노동공동체·생활공동체로서의 제주사사회의 대응방식을 보 여준다.

제주사회에서는 다원적이고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궨당공동체가 마을공동체의 주축이 되면서 삶의 질서와 협력을 위한 핵심적 사회구조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제주사회의 궨당공동체는 척박한 자연환경에 대처해 나가려는 생존 전략의 혼인연맹127)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마을 안에서 복잡하고 다원 적인 관계가 형성되다보니 개인의 삶과 인간관계에는 많은 제약을 주기 마련이 었다.

(가) 괸당으로 날 살을거민 친척으로 내 살거라면

나도 괸당 삼듯다 나도 친척 삼서듯한다

건삼밭디 노용삼이 건삼 밭에 노용삼같이

칭진일이 설와라다 층진 일이 설워라한다

나 괸당이 날 울리더라 내 친척이 날 울리더라

(진성기,『남국의민요』-38, 팔자노래)

(나) 랑건 벗이옝 말라 사랑하건 벗이라고 말라

벗의 말은 물웨 먹듯이여 벗의 말은 외 먹듯이여

씨녁 궨당 사귀지 말라 시댁 친척 사귀지말라

앞의선 좋은말 당 앞에선 좋은 말 하다가

돌아사민 잡을 말다 돌아서면 잡을 말 한다

묵은 각단 새각단 새로 묵은 띠 새 띠 사이로

물베염이 솟음이라라 물뱀이 솟음이더라

(김영돈,『제주도민요연구 上』-656, 맷돌·방아노래) 127) 김혜숙,『제주도가족과 궨당』, 제주대출판부, 1999, p.456.

(다) 밧듸 돌은 머들에 간다 밭의 돌은 돌무더기로 간다

질헷 돌은 굴헝에 간다 길의 돌은 구렁에 간다

이 방상에 하좋은 말은 이 방상에 하 좋은 말은

나 신데레 다 모여든다 나한테로 다 모여든다

(진성기,『남국의 민요』-15, 시집살이노래)

(가)는 궨당 사이의 빈부 격차나 계층적 차이로 인해 서러움을 당한 것을 하소

(가)는 궨당 사이의 빈부 격차나 계층적 차이로 인해 서러움을 당한 것을 하소

문서에서 제주민요의 배경론적 연구 (페이지 122-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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