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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네그리의 정치적 주체론

1. 제국으로의 이행

이 장에서는 2008년 다중론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던 네그리의 정치적 주체론 의 내용을 살펴볼 것이다. 네그리는 하트와 함께 발표한 『제국』(네그리·하트, 2001)에서 다중이라는 새로운 해방의 주체를 제시한다. 네그리의 이론에서 다중 개념은 ‘제국으로의 이행’이라는 구조적 변동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제국(Empire) 은 지구화(globalization)된 현대 세계를 지배하는 새로운 권력을 말한다. 네그리 는 제국을 일종의 주권(sovereignty)으로 본다. 제국은 생산과 교환의 지구화와 함께 새롭게 등장한 주권으로, “지구적 교환들을 효과적으로 규제하는 정치적 주 체, 즉 세계를 통치하는 주권”이다(네그리·하트, 2001: 15).

그는 제국을 제국주의(imperialism)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제국이 등 장하기 이전 세계를 지배하는 주권은 국민국가의 주권이었다. 국민국가의 주권은 유럽 열강들이 근대의 전 시기에 걸쳐서 건설한 제국주의의 초석이었다. 근대 국 민국가 체계에 의해 정해진 경계들은 유럽의 식민주의와 경제 팽창의 토대가 되 었다. 제국주의란 유럽 국민국가들의 주권이 자신들의 경계를 넘어서 확장된 것 이었다(네그리·하트, 2001: 16-17). 그러나 네그리는 생산 및 교환이 지구화되면 서 더 이상 제국주의적 방식으로는 세계를 지배할 수 없게 되었고, 국민국가의 주권이 새로운 주권인 제국으로 이행하게 되었다고 본다. 이것이 이른바 ‘제국주 의에서 제국으로의 이행’ 테제이다.

제국으로의 이행은 국민국가의 주권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12) 그러 나 네그리는 그것이 “주권 그 자체가 쇠퇴해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네그리, 2001: 16). 현대에도 국민국가의 주권은 여전히 존재하고, 자본주 의의 중심국가들은 여전히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민국가의 주권이

12) 이러한 주장은 특히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여전히 제국주의적 방식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 지 않느냐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네그리는 미국이 지구적 권력이라는 사실을 의심 하지는 않으며 “미국 권력 자체가 그것과 다른 경제적·정치적 구조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9·11 테러를 “제국의 구성에서 구조적으로 대의되기를 의도하는 힘 들 사이에 개시된 내전”이라고 표현한다(네그리, 2001: 35).

쇠퇴하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국민국가의 일국적 명령만으로는 세계를 효과적 으로 지배할 수 없게 되면서 지구적 생산 및 교환을 지배하기 위해 주권 형태가 현대적으로 변형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제국이다.

제국의 권력은 국민국가와는 다른 새로운 특징을 보인다. 먼저 제국의 권력에 는 중심이 없다. 즉, “제국은 로마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는 어떠한 국민국가도 제국의 중심을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제국의 지배는 뚜렷한 중심 없이 도 현실의 다양한 기구들과 물질적 장치들을 가로지르며 작동된다. 제국의 권력 은 “세계은행과 같은 초국적 실체들에서부터 국민국가들, 그리고 국지적이고 지 역적인 NGO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자율적인 상이한 구조 및 기구 형태들이 함께 기능하는 권력”이다(네그리·하트, 2001: 12).

또한 제국은 국민국가와는 다르게 영토적 경계가 없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제 국의 지배에는 한계가 없다. 제국은 “공간적 총체성을 효과적으로 망라하는, 즉 사실상 전체 문명 세계를 지배하는 체제”이다(네그리·하트, 2001: 19). 제국에는 외부가 없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어느 누구도 제국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국에 대한 저항이 오직 제국 내부 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제국으로의 이행은 훈육사회에서 통제사회로 이행과 함께 일어난다. 네그리는 푸코와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논의에 따라 사회가 훈육사회에서 통제사회 에 이행하면서 자본의 노동에 대한 형식적 포섭이 경제적 차원이나 문화적 차원 뿐만 아니라 사회적 삶(bios) 자체에 스며드는 실질적 포섭으로 이행하였다고 말 한다(네그리·하트, 2001: 54-55). 그는 이러한 제국 권력의 특징을 삶권력 (biopower)으로 표현한다. 삶권력이란 권력이 규범들을 정당화하고 공적인 일에 서 질서를 유지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모든 측면에서 사회적 관계들을 만들어내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제국으로의 이행은 산업 경제에서 정보 경제로의 이행과 함께 일어난다.

네그리는 “근대화는 끝났고, 지구적 경제가 정보 경제를 향한 탈근대화 과정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산업 경제가 정보 경제로, 즉 서비스업과 같은 지 식, 정보, 정서 그리고 소통이 중심 역할을 하는 ‘탈근대적’ 경제로 이행하고 있 다는 것을 뜻한다(네그리·하트, 2001: 376). 네그리는 정보 경제로의 이행에 따라

비물질노동이 헤게모니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비물질노동이란

계급의 투쟁에 대한 자본의 대응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분석은 구조란 곧 행위에 대한 응답으로서만 구성된다는 것으로, 행위자에게 과도한 특권을 부여하는 것으 로 보인다. 그러나 네그리는 “우리의 정치적 문제는 아래로부터 시작하는 모든 투쟁들에 적절한 공간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론의 정치적 의도를 명 확히 한다(네그리, 2011: 37). 그는 제국으로의 이행이 “해방 세력에게 새로운 가 능성을 제공”하고 있으며, “그러한 새로운 투쟁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강조 한다(네그리·하트, 200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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