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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문서에서 제주도 잠수굿 연구 (페이지 34-37)

잠수굿은 현재 동김녕의 속칭 ‘세기알’이라는 바닷가에서 행한다. 성세깃당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성세깃당 안에서 굿을 할 것 같지만 실제는 예전부터 항상 이 바닷가에서 42) 허남춘은 제주 서사무가의 독자성에 대해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5가지로 그 특성을 살피고 있다. 즉 ①기존의 문화를 지키려는 대단한 집착성이 드러나는 점 ②서사무가 속의 여성 주인공이 지닌 자발성, 능동성, 적극성 ③고유명사가 주는 즐거움 ④고대의 질서, 가치관을 느낄 수 있다는 점 ⑤시련 극복의 의지를 일깨우는 점이다. 허남춘, “제 주 서사무가와 한국 신화의 관련성 고찰”,「탐라문화」21호,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 소, 2000, pp.35~38. 참고.

했다고 한다.43) 잠수회의 원로 중의 한 명이고 오랫동안 굿의 직접적인 준비를 맡아 했 던 한중선(75세) 씨의 말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는 집(굿당)이 없어서 뜸(새, 띠)으로 짜서 몇 마디로 묶어 임시로 집 비슷하 게 지어 했다. 이제는 아주 좋아진 것이다. 굿하는 장소는 원래부터 횟집 옆의 장소 (2003년까지 했던 장소: 조사자 주)에서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태풍(비바람 을 말함: 조사자 주)이 불어 굿을 못하게 되자 성세기막(멜막)에 가서 했다. 거기서 굿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해녀가 물 속에서 죽었다. 멜막에서 한 첫 해에 죽었 다. 장소가 나빴다. 우리 6촌 동생이었다. 한씨 집의 딸이었다. 그 때문에 그 후에 는 원래 했던 자리(횟집 옆: 조사자 주)에서만 했다. 그래서 그 장소에 담을 쌓고 쓰레트를 덮어서 자리를 마련해서 굿을 계속 했는데 그 이후에는 아무 일이 없었다.

해녀들에게도 지장이 없었다. 마음이 편안하고 마을도 편안했다.”

그러면서 점점 굿당의 모양을 만들어 갔고 2003년까지 거기서 굿을 했다. 굿당은 그 리 넓지 않은 크기로 돌담을 쌓아 올리고 시멘트를 덧바른 형태였다. 굿당 바로 옆에는 해녀횟집이 자리 잡았다. 그런데 김녕해수욕장이나 해안가 그리고 횟집에 들르는 관광 객들이나 사람들이 굿을 하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그 앞을 부정하게 지나다니는 사 례가 계속 발생했다. 이에 신경이 거슬린 어촌계와 잠수회에서 오랜 논의 끝에 2003년 하반기에 인근 어촌계창고 바로 앞으로 굿당을 신축해 옮겼고, 2004년의 잠수굿부터는 새로운 굿당에서 실시하게 된 것이다. 예전 굿당이나 신축된 곳이나 별로 떨어져 있지 않으며, 같은 ‘세기알바다’를 바라보고 있어 특별히 굿당의 의미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새로 마련한 굿당이 어촌계창고 바로 앞에 오롯이 조용하게 자리 잡은 것을 바라보 고는 잠수들은 나름대로 안심을 하게 되었고, 이제부터는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굿을 치 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동김녕의 잠수굿을 하는 장소는 해녀들의 주 활동 무대가 바다인 만큼 자신들의 물질장소 근처를 택한 것이다.

한편 김정수 前 어촌계장44)은 새로 굿당을 신축하기까지 그간의 과정을 다음과 같

43) 동김녕마을의 잠수굿에 대해서 언급한 기존의 논문이나 여러 가지 자료들 중에 일부 의 글들은 잠수굿을 행하는 장소에 대해서 오류를 보이고 있다. 즉 2003년까지 잠수굿 을 진행했던 세기알 바다의 굿당을 성세깃당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성세깃당은 마을을 가로지르는 舊일주도로 남쪽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세기알의 예전 굿당은 현 재 사라지고 없다.

이 설명하고 있다.

“옛날 굿당을 허물고 새로 만들었는데, 내가 간사할 때는 그 때는 옮겨서는 안 된다 해 가지고 그 때는 80년대는 완강히 해신제를 노출시키려고도 안 하고 몸 이상한 사람도 못 들어오게 했고 당을 못 움직이게 됐었다. 그런데 왜 옮기려고 했느냐 하 면, 파도가 치면 1년에 한번 한 3일만 쓰는 것인데 3일만 써 놓고 문 닿아 버리면 거기 알다시피 거기 파도치면 물이 들어와서 제 지내는 데가 엉망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이걸 나이 먹은 사람들한테 옮기겠다고 하니까 그 사람들이 그 자리만은 옮겨서는 안 된다 해 가지고... 처음은 쓰레트 집이었다, 그러니까 비도 새고 안 되가지고 그래도 못 옮긴다고 하니까 그 자리 그대로 쓰레트만 걷어내고 집만 조금 높여 가지고 슬라브를 쳤다. 벽돌담 위에다 해 가지고 했는데, 그런데 해 녀분들 거기 청소하려고 하면 하루 걸린다. 짠물이 들어오고 모래가 들어오고 하다 보니까 거기 제 지내는 데가 막 이 정도 되었다(조사자에게 오물이 어느 정도 높이 로 쌓이는지 설명해 줌). 그래서 이거 안 되겠다 뭔가 어디 하나 젯당을 하나 지어 야 되겠다 의논을 해 가지고, 그래서 심방한테 물어보고 왜냐면 심방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니까 심방한테도 물어보고. 그러니까 올해 해신제 끝날 때 자기가(심방 이: 조사자 주) 고해를 해 주겠다 해서 다른 데로 옮기겠다는 내용을 고해를 해 주 겠다 해서 결국은 2003년도 하반기에 저쪽에다가 내가 옮기게 된 것이다. 거기(예 전 굿당: 조사자 주)가 바람 불고 바닷가다 보니까 문이 아무리 성한 문이어도 오래 못 간다. 쓰레기라는 쓰레기는 다 들어가고 말이지. 과연 제 지내는 데인데 하루만 우리가 필요할 때 써서는 안 되고 우리가 이거는 일년 열 두 달 깨끗이 써야 되겠 다 해 가지고, 그 자리를 높이려고도 했다. 그런데 높이려고 하니까 그것이 군유지 다 보니까 건축물허가가 안 나오는 거다. 그러니까 안 되겠다 해서, 그런데 새로 지 으려면 돈도 필요하고 그래서 도(제주도: 조사자 주)에서는 땅만 있으면 지어주겠다 해서, 그런데 그 자리는 안 되는 거라. 그래서 우리 어촌계 땅 있는 쪽으로 해서 옮 긴 것이다. 지금 있는 곳은 다 어촌계 땅이며 울타리 둘러진 곳 전부 해서 150평이 다. 이전하게 된 이유들 중에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막 몰려서 굿하는데 어지럽히는

44) 김정수 前 어촌계장(53세)은 동김녕 잠수굿의 이해를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잠수굿을 알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심방과 잠수회를 중심적인 대상으로 하지 만, 한편으로 어촌계장의 역할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김정수 씨는 82년도부 터 어촌계 일을 맡아 보기 시작해 2003년까지 약 22년 정도 했다. 82년도부터 90년도 까지는 어촌계 간사 일을 했고, 91년도부터 2003년도까지는 어촌계장 일을 했다고 한 다. 따라서 잠수들도 김씨의 노고와 협조에 대해서 충분히 인정하고 있으며, 그의 역할 을 크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재임 시기는 한마디로 70년대의 미신타파 정책이 어느 정도 좀 누그러지고 또 90년대 들어 새롭게 각 지역의 전통문화유산이 조명 받을 때까 지를 모두 망라하므로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고 생각한다(김정수 前 어촌계장 인터뷰 일시: 2005. 2. 26. 어촌계사무실).

이유들도 있었고, 거기다가 도로가 붙어 있어서 차들이 막 오고가고 하는 것도 있었 다. 그러니까 우리가 차들을 차단시키려고 양쪽으로 끈도 매고 했는데 그러다보니까 욕먹는 것은 책임자다. 모르는 사람은 왜 차를 막느냐. 해신제는 해신제고 차는 다 니게 해야 하지 않느냐 이런 애로가 아주 많았다. 옛날 자리에서는. 이렇게 여러 가 지 이유로 옮기게 됐는데 그래도 해녀들은 될 수 있는 한 옮기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런데 내가 굿은 꼭 여기서만 하는 것 보다는 더 조용한데 가서 하는 게 더 좋지 않느냐 해서 설득시켜 가지고 이제는 더 좋은 장소로 갔다. 굿당을 옮기는 과정에서 일부 굿당 이전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다지 크게 옮기려고는 안 했는데, 내가 좀 적극적으로 옮겨서 깨끗하고 조용하게 굿을 하자는 의견을 내고 설득을 해서 옮기게 된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의견을 내도 해녀들이 안 하겠다고 하면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서로 삼박자가 맞아 가지고 내가 좀 깨끗 이 조용하게 멋진 자리를 만들어 줄 테니까 거기서 제를 지내라고 해 가지고 그래 서 된 것이다. 심방도 좋다고 하고.”

잠수들은 예전 굿당이 현실적으로 오물이 쌓이고 도로와 인접해 불편하기는 했었지 만 웬만하면 옮기지 않고 어떻게든 굿을 계속 해 보려고 했지만, 상황이 계속 어렵게 맞 물려가자 어촌계장과 잠수회, 심방이 오랫동안 의논하여 결국 굿당을 옮기게 되었다. 현 재 잠수들은 새로 지어진 굿당의 조건에 대해서 아주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 전 굿당과 거리상으로 크게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굿당 자체도 전보다 크고 깨끗하 며 조용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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