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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적이고 인간적인 중국인 이미지

II. 간도배경 소설에 나타난 중국인 이미지의 양상

3. 입체적이고 인간적인 중국인 이미지

‘남의 땅’이 아니라 제2의 고향으로 간도에 뿌리를 내린 정착민작가들의 작품은 ‘조선 유이민들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라는 명제에 대한 탐구로 볼 수 있다. 그들의 작품 에서 간도는 단순히 민족적 수난지나 슬픔의 이주 현장이 아니다. 새로운 고향으로 건설 하겠다는 강한 정착의지가 녹아 있다.

안수길은 간도에서 20년 정도 살았고, 박계주는 간도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자신의 청 소년기까지의 삶을 보냈다. 그들은 오랫동안 유이민들과 동고동락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에서는 중국인 이미지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여기서는 안수길의 초기 단편소설인 「새 벽」(1940), 「벼」(1941), 「원각촌」(1942), 「목축기」(1943)와 박계주의 「모토」(1933), 「인 간제물」(1938), 「사형수」(1942), 「육표」(1942) 등에 나타난 중국인 이미지를 분석하기로 한다.

1)‘적’과 ‘동지’의 이중성:안수길의 소설

안수길은 간도배경 소설에 대한 검토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이다. 김윤식이 평 가대로 “한국 문학의 만주체험을 살피는 데 으뜸가는 작가”76)이다. 안수길은 1935년 조선문단 에 단편소설인 「적십자병원장」과 「붉은 목도리」로 등단하였다. 1977년 사망할 때까지 40년 동안 100여 편에 이르는 작품을 발표해 한국문학사에서 독특한 궤적을 남겼 다. 그는 ‘북향회’라는 문학모임에 가입하여 당시 이주복, 강경애, 김국진, 이학인, 천청송, 박영준 외 다수의 용정시내 각급학교 교사들과 문예청년들과 함께 문학 강연회를 열기도 하고 기관지 북향 77)을 간행하기 하였다. 그 후 1937년에 신경의 만몽일보 와 용 정의 간도일보 를 통합한 만선일보 에서 그는 기자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만선일보 에서 그는 「북향보」라는 장편소설을 연재함으로써 간도 조선 유이민문 학을 주도해 나갔다.

76) 김윤식, 안수길 연구 , 앞의 책, 11쪽.

77) 북향 의 창간호 1935년 12월경에 발행된 것으로 추정되고 30쪽 남짓한 적은 분량에 회원들의 창작 물이 수록되었다. 현재 한국 국내에서는 2,3,4호가 확인되고 있다. (표언복, 앞의 책, 32쪽.)

일반적으로 안수길의 소설은 초기, 중기, 후기로 구분되는데 간도를 배경으로 삼은 소 설은 그의 초기 작품에 해당한다. 안수길이 간도에 있는 동안 창작한 작품을 연대별로 보 면 「새벽」(1935), 「함지쟁이 영감」(1936), 「부엌녀」(1937), 「차중에서」(1940), 「4호실」

(1940), 「한여름밤」(1941), 「벼」(1941), 「원각촌」(1941), 「토성」(1942), 「새마을」(1942),

「목축기」(1943), 「바람」(1943) 등 모두 12편의 중 ․ 단편과 장편 「북향보」(1944)로 정리 된다.78) 중 ․ 단편소설은 모두 그의 첫 작품집인 北原 (1943)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 것은 재만 작가 작품집인 싹트는 대지 (1941), 在滿詩人集 (1942), 在滿朝鮮詩人 集 (1942)의 뒤를 이어 발행되었으며, 개인 창작집으로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12편의 소설들 중에는 「새벽」(1935), 「벼」(1941), 「원각촌」(1941), 「토성」(1942), 「새 마을」(1942), 「목축기」(1943) 6편이 간도지역 조선인들의 고통스런 삶의 실상을 사실적 으로 그렸다. 이것은 안수길 오랜 기간 간도에 이주하여 살면서 경험한 바를 바탕으로 간 도 조선 유이민들의 삶의 방식을 다양한 시각으로 형상화한 결과로 볼 수 있었다. 일제강 점기에 간도 지역에 거주하던 5개 민족79) 중에서 조선인이 가장 비참한 상황에 놓여 있 었다. 안수길의 소설에서는 일제의 횡포는 말할 것도 없이 중국 관헌과 지주들의 횡포, 중국 농민과의 갈등, 일제와 중국인들을 등에 업고 동족을 압박하는 ‘얼되놈’, 마적단들의 폭력 등이 난무하는 극한적 상황 속에서 숱한 역경과 참상을 극복해나가야 하는 조선 유 이민들의 처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러한 여러 세력이 얽혀 있던 시대 배경 하에 창작된 작품들에서 중국인의 등장은 역시 익숙할 만큼 흔하다.

우선 앞부분에 분석했던 유이민작가의 소설에서 조선 유이민들을 괴롭히는 가장 심각한 요인의 하나로 인식되는 중국 토착민들의 행패는 안수길의 작품에서도 재현된다. 이태준 의 「농군」과 최서해의 「홍염」에서 제시한 것처럼 토착민들의 만행은 가난한 조선 농민의 간도이주를 망설이게 한다. 간도에 이주한 유이민이 정착을 포기하여 귀향하게 하며, 간 도에서 조선 유이민 생활을 고단하게 하고 좌절시키기도 하는 첫 번째 요인이다. 안수길 의 대표작인 「벼」에서도 이러한 중국 토착민의 만행이 묘사된다.

「벼」는 길림성 W하 유역에 마을을 이루어 사는 조선 유이민들이 간도에서 뿌리를 내리 고 정착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중국 토착민들은 조선 이주민들이 황무 지를 수전으로 개간하도록 놓아두면 자신들에게 위협요인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해서 이주

78) 김윤식, 안수길 연구 , 앞의 책, 66쪽.

79) ‘만주인’, 일본인, 조선인, 러시아인(백계), 중국인을 가리킴.

민들에게 적개심을 갖는다.

그러나 원주민인 이곳 농부들은 박아지를 보통이에 매여달고 거지 떼같이 몰려오는 백성들에 게 적지 않은 적개심을 느끼고 그들을 모멸하였다.

그것은 이주민으로 말미아마 그들의 지경지(既耕地)가 침해당할까 저어함이였다.

그들은 그들이 이미 개간한 땅 - 그것을 지킴으로써 만족히 여겼고 달리 개척한다거나 황무 지같은 것을 이용할 생각은 하지 않었다. 수전을 모르는 그들에게 우리도 아닌 생각이겠거니와 그들은 습지며 낮은 곳은 한전에 적당타아니하여 그대로 팽개치고 돌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 은 어떤 사람들이고 이용할 수 없는 것인 줄만 여겼다. 그럼으로 이주민들은 떼를 지어들어 와 서 결국은 그들이 이미 갈아놓은 땅에서 농사를 짓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들의 생활은 근저로부터 위협을 당한다는 것이었다.80)

토착민의 모멸과 적대적 태도는 위 인용문에 잘 드러난다. 토착민들은 마침내 조선인들 이 머무는 집을 야밤에 집단 공격하여 여러 명에게 부상을 입히고 박첨지의 맏아들을 죽 게 하는 참극을 만든다. 이 일로 이주민 내에서도 갑론을박이 오가는데 귀국하겠다는 의 견과 황무지를 개간하여 성공하는 것이 곧 원수를 갚는 길이라는 의견이 맞섰다.

사실 이태준의 「농군」과 마찬가지로 안수길의 「벼」 또한 1931년의 ‘만보산 사건’을 원 형으로 창작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역사적 사실과 사뭇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실제 사건은 조선 이주민들이 보호를 받고 일본 경찰이 중국 원주민에게 사격을 했 는데, 「농군」에서는 중국 군인들이 조선 이주민에게 사격을 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벼

」에서는 소현장의 이간 술책으로 인해 사건이 일어났으며 일본의 위세에 중국 육군들이 조선 이주민을 사격하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총을 쏜다. 이주민에 대한 원주민들의 박해 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농군」은 앞에 서술한 바와 같이 실제 일본의 수작으로 조선 국내에 왜곡된 사건 과정이 전해지면서 유민작가로서의 이태준을 자극해 민족주의 차원에 서 창작을 하게 하였다. 그러나 사건 현장인 간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안수길은 달랐다.

그는 일제의 검열과 탄압을 피해 가기 위해 불가피한 방편으로 「벼」와 같은 소설을 썼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작가의 창작 초점을 짐작하기 어렵지만, 안수길도 역시 이민작 가와 마찬가지로 중국토착민의 방해는 간도 유이민들의 이주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난관의

80) 안수길, 「벼」, 허경진 ․ 허휘훈 ․ 채미화 주편, 안수길 전집 , 보고사, 2006, 273쪽. 이하 안수길의 소 설을 인용할 때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안에 작품명과 이 텍스트의 쪽수만 명기함.

일환으로 생각한다.

안수길은 토착민만이 아니라 육군, 순경, 楫私隊, 마적 등 다양한 중국인 이미지를 소설 을 통해 재현하였다. 이는 초기 작품인 「새벽」81)을 통해 확인된다.

「새벽」은 두만강 상류의 산골에 이주한 한 가족이 여러 사건을 겪고 나서 집안이 참혹 한 불행을 맞는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생존하기 위하여 허기를 참으면서 고향 을 떠나 간도라는 황무지에 이주하는 농민들, 조선 이주민과 중국 원주민 간의 모순 관계, 젊은 처녀나 젊은 아내를 담보로 땅을 빌려 경작하였지만 빚을 갚지 못하는 불행한 현실, 중국 순경 ․ 육군 등 여러 세력이 행하는 조선 이주민에 대한 폭행,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소금밀수 등 간도에 사는 조선 유이민들의 가혹한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소설에서 “용돈은 물론이고 복장도 식량도 잘 내어주지 않는 장작림 군벌의 私傭兵인 육군의 생활이란 말 못 되는” 것이다. 그들은 “농촌에 다니면서 약탈하지 않으면 그들의 생활을 유지할 방도가 따로 없”기 때문에 ‘법이 허락한 약탈’을 한다. 그들의 횡포에 대해 호소할 곳이 없었기에 조선 유이민들이 “육군과 순경을 사람같이 안 여기면서도 그들 앞 에 겁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주인공 ‘복동네’ 일가에게는 마적과 함께 육군과 순경을 무서워하였다. 마적의 경우 무섭다는 소문만 들었지 한 번도 그들의 침입을 받은 일이 없었으나, 육군 또는 순경의 침입은 일 년에 몇 차례였기 때문에 “마적보다도 육군 과 순경을 더 무서워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집에 들어올 때 ‘왕바당’이라는 중국말 욕을 하면서 복동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슴을 주먹으로 쥐어박으며 아편을 가져 오라고 하였 다. “점심을 곱게 먹고 그들은 닭 묽은 것을 들고 나갔다”. 그리고 “다른 집에서는 혹은 돼지, 혹은 옷, 혹은 쌀 ― 이렇게 빼앗겼다”. (「새벽」, 187~193쪽)

이러한 중국 육군의 모습은 한마디로 인간성이 없고 스스로 일하지 않으며 폭력으로 남

이러한 중국 육군의 모습은 한마디로 인간성이 없고 스스로 일하지 않으며 폭력으로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