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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응변식 노동정책도 법치경제의 걸림돌

문서에서 법치경제 개혁의 길 (페이지 39-75)

1. 법치경제 가로막는 헌법과 법률

(1) 시장경제질서와 중앙관리질서

정부가 시장경제질서를 존중하느냐 아니면 경제를 중앙에서 관 리하고 적절히 통제하여야 하느냐 하는 것은 법치경제 개혁의 관 점에서 중요한 논의의 출발이 된다.

시장경제질서는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자원이 배분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경제질서이다. 여기서 정부는 공정 한 룰의 운영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세부적인 경제의 운용 과 방향에 대해서 정부는 시장에서 결정된 바에 따른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무정부주의를 의미하는 것 은 아니다. 정부는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법에 따른 시장규 율 메커니즘을 중립적으로 관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정부는 상품 시장에서 경쟁원리가 제대로 작동하게 하기 위하여 독과점을 규 제하고 사업자간 담합이나 불공정거래행위가 나타나지 않도록 규 제한다. 또한, 증권시장이 원활하게 작동되도록 증권거래법과 상 법상의 규제를 통하여 주주와 주주간의 관계, 회사의 경영을 둘러 싼 권리 및 의무관계 등을 잘 정리하고 감시하는 역할도 담당한 다. 한편, 금융시장에서는 은행이 고객의 예금을 잘 관리하고 적 절한 위험관리와 신용평가를 통하여 채무자를 잘 관리하도록 규 제하기도 한다. 시장경제질서에서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경제를 설 계하거나 관리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배격함으로써 코치나 선수가 아닌 심판역할을 제대로 맡도록 정부의 역할을 제한한다.

그러나 중앙관리질서는 상당부분 정부의 계획과 설계에 의하여

그 경제의 밑그림이 그려지고 실제로 경제의 운용과정을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질서를 말한다. 정부가 단순한 룰의 제정과 관리자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수와 코치의 역할을 맡아서 시장에 참여 하고 있다. 이 경우 자원의 배분은 정부가 정하는 정책의 우선순 위, 장단기적인 경제계획상의 중요도 그리고 외적변수에 대한 정 부의 대응방안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된다. 특정산업에 대한 정부의 육성, 보호, 또는 지원방안도 경제운용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중 앙관리질서하에서는 경제에서 정부나 공공부문 및 공기업이 차지 하는 비중이 자연스럽게 커지는 성향이 나타난다. 사회주의 경제 체제뿐 아니라 국가가 적극적으로 경제개발을 추진하였던 여러 국가, 그리고 전후에 주요 산업을 국영화하고 정부주도로 진행시 켰던 유럽의 여러 나라의 경제는 중앙관리질서의 면모를 갖고 있 었다고 할 수 있다.

시장경제질서는 관리경제질서보다 그 효율성 면에서 우수하다.

우선, 관리경제질서는 인위적으로 경제를 움직이려는 방식이기 때 문에 시장경제를 마치 기업이 운영되는 방식과 동일하게 이해하 고 있다. 그러나 관리주의에 입각한 경제의 운용은 가격기구에 의 존하는 것보다 한 사회의 지식과 정보를 활용함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등하다. 또한, 관리경제질서는 정책적으로 특정 산업, 업종, 혹은 기업을 지원하는 경향이 커서 시장경쟁을 배제 하는 치명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어서 경쟁이 가져다주는 경쟁력 의 향상을 제대로 누릴 수 없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5)

5) 유정호(2002).

(2) 시장경제질서와 법치경제의 상생관계

정부가 중앙관리자로서의 역할을 맡게 되면 경제가 법에 의하 여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법이라는 형식은 밟지만 사실상 정부에 의하여 운영된다는 것을 그동안 세계사의 경험은 말해주고 있다.

구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와 독일, 일본, 이태리, 스페인 등 파시즘적 성격을 갖추었던 국가에서는 다소 극단적인 형태의 중앙정부 관리체계가 동원되었었다. 이를 동원하였던 국가에서는 법보다는 정부의 재량적 의지가 더 강력한 집행력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우리나라 정부도 경제개발기에 경제질서의 중 심적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맡아 왔으며 우리나라 헌법을 비롯하 여 각종 경제관련 법규의 중심적 틀을 만들어내었다. 이 경우 특 히 중앙정부를 운영하는 인물의 인간적인 능력과 인맥에 의하여 경제운영이 크게 좌우된다. 따라서 개인적인 판단이나 정부의 자 의적 정책결정이 법치경제운용보다 우선시되며 인위적인 정부의 설계주의가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러나 시장경제질서는 몇몇 엘리트의 영웅주의적 지도력이나 재량적 판단에 의존하기보다는 가격신호와 인센티브로 움직이는 시장시스템에 의하여 자원이 배분된다. 따라서 수요가 폭증하고 공급이 달리는 시장위기의 순간에도 인위적인 정책보다는 가격상 승에 따라 수급조절이 이루어져서 합리적인 자원배분을 유도한다.

따라서 가능한 한 법과 원칙에 의하여 경제가 운영되는 시스템, 즉 법치경제가 주도하는 것이 시장경제질서이다.

물론 이 세상에는 순수한 시장경제질서와 순수한 관리경제질서 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엄격한 관리경제질서에서도 시장의

원리는 은밀하게 숨어들어 작용하게 마련이다. 또한, 시장이 주도 하는 경제에서도 인위적 정책과 설계주의적 계획의 자취를 없앤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경제는 이 두 극단 사이의 한 점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이 경우 중앙관리질서에 가까워질수록 법치보다는 인치와 관치가 발휘될 가능성이 더 커지며 반대로 시장경제질서에 가까워질수록 룰에 의한 법치의 원칙이 존중받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할 수 있다. 사 실상 시장경제질서와 법치경제는 서로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할 수 있다.

(3) 우리 헌법상의 시장경제질서 제약요인

헌법학자들은 우리나라 헌법을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로 해석하 고 있다. 그러나 이는 헌법 제15조의 직업선택의 자유, 제23조 제1 항의 재산권의 보장과 제37조 제2항의 본질적 내용 침해금지, 또 는 헌법의 일반원칙인 최소침해의 원칙, 헌법 제119조 제1항의 자 유시장 경제주의 원칙 규정으로 대표되는 경제에 대한 헌법상의 기본규범만 국한해서 볼 때에만 해당된다.6)

그러나 우리 헌법에는 이러한 기본규범에 반하는 수단규범이 같은 헌법 조항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필요시에는 국가의 개입을 언제든지 불러들일 수 있는 절충주의를 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 한 절충주의는 사실상 많은 경우 정부의 개입과 재량주의를 정당 화하는 수단으로 인식되고 또 그렇게 활용되어 왔다고 볼 수 있 다. 국제적인 비교에 있어서도 우리 헌법은 다음 표에서 알 수 있

6) 정순훈(1997).

듯이 사회주의 국가보다도 심한 통제지향적 경제질서를 규정하고 있다고 비판되고 있다.7)

<표 1> 우리 헌법의 경제통제 조항의 국제비교

경 제력 남용 방지

자연 자원 보호

국 토 균 형 개 발

토지 소유권

제한 경자유

전의 원칙

농어업 보호

중소 기업 보호

소 비자 보 호 운 동

대외 무역 조정

과학 기술 개발

국가 표준 환경권

한국 o o o o o o o o o o o o

미국 x x x x x x x x x x x x

독일

(서독 ) x o x o x x x x x x x x

프랑스 x x x x x x x x x x x x

일본 x x x x x x x x x x x x

구소련 o o x o x o x x o o x o

구동독 o o x o x o x x o o x o

중국 x o x o x x x x o o x o

북한 x o o x x x x x o o x x

쿠바 x o x x x o x x o o x o

자료 : 김정호(1998)

즉, 우리 헌법은 제9장(경제)에서 하위법령에서 규정되어야 할 수단규범적 내용인 경제력 남용방지, 자연자원보호, 국토의 균형 개발, 토지소유권 제한, 경자유전의 원칙, 농어업 보호, 중소기업 보호, 소비자보호 운동, 대외무역조정, 과학기술개발, 국가표준 및 환경권에 대한 내용을 모두 망라하고 있어서 정부와 국가의 광범 위한 통제와 개입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사실 정부의 여러 부처 에서 담당하는 일이 헌법에 규정된 이 같은 통제를 집행하는 일이

7) 김정호(1998).

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헌법에 정해진 일을 열심히 수행하는 법치주의적 정신에 투철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 우 이는 형식적인 관찰에 불과하다. 사실상은 정부의 개입과 중앙 관리적 역할을 형식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서 헌법에 이러한 내 용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공정거래법이다.

공정거래법은 1987년 4월 제1차 법개정을 통하여 제1조 목적에

‘경제력집중 방지’와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추가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공정거래법 제1조에 대하여 위헌 논란이 제기되 자 정부는 제9차 헌법개정을 통하여 헌법 제119조 제2항이 사후 적으로 추가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개별 정부부처의 기능 을 사후적으로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헌법을 수정하였는데 이는 결국 법치의 형식을 빈 관치라고 볼 수 있다.

헌법 제23조 제2항은 법치주의가 지향하여야 할 시장경제질서 의 근간을 이루는 재산권 행사를 제약하고 있다. 즉, 재산권의 행 사가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함으로써 정부의 재 량과 자의성에 따라 개인의 재산권이 크게 침해받을 수 있는 근거 를 마련하고 있다.

동일한 문제가 헌법 제119조 제2항에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는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 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 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함으로써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 을 포괄적으로 승인하고 있다. 특히 ‘경제의 민주화’라는 개념은 불분명하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도 그 실체가 불분명한 개념이다. 이진순(1997)은 헌법 제119조 제2항이 갖고 있는 설계 주의적 합리주의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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