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Ⅴ. 온작품읽기 지도의 결과

1. 원리의 구현

가. 함께 읽기의 즐거움

처음 책을 대했을 때 한 학생은 “아, 난 이런 책 싫어하는데.” 하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책을 펼치는 태도가 심드렁하고 흥미로워하지 않는 것이 역력하게 눈에 띄었다. 책을 읽으면서 조금만 지루한 부분이 나오면 시계를 올려다보는 학생도 적지는 않았다. 그런데 온작품읽기를 마치고 나서 쓴 그 학생의 마지막 독후감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나는 <자전거도둑>을 읽었다. 나는 이 책이 아주 재미있는 책인 것을 이제 야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책이 글만 많이 있다던지, 그림이 조금밖에 없 다고 생각하여서 두꺼운 책을 읽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책은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글을 집중하여 읽다보면 책에 푹 빠져 시간이 가는지 모를 때도 있었고 그 이유 때문에 자전거도둑 에 수남이가 자전거를 가지고 갈 때 아주 스릴이 있었다.” (이하 생략)

혼자 읽었더라면 중간에 그만두거나 느슨해졌을 마음을 함께 읽음으로써 다 잡을 수 있고 무엇보다 집중하기에 더 좋았으며 끝까지 읽고 재미를 느꼈다는 내용이다. 평소에 쉬는 시간에도 단 한번도 책을 읽지 않는 0운이의 글이라 더 반가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책을 함께 읽는 경험은 어릴 때 부모님이 읽어주시는 책을 제외하고는 드물 다. 책 읽는 일은 개인적인 경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온작품읽기를 위해 우리는 함께 읽으며 함께 읽는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긴장감과 공감을 나눌 수 있었다. 마치 예전에 TV가 마을에 한 대 밖에 없어서 다같이 남의 집 대청마루에 앉아 함께 보면서 혼자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갖던 그것과 같았다. 물론 교과서의 텍스트도 함께 읽을 때가 있지만 교과서의 텍스트는 지 면의 한계 때문에 책의 재미에 깊숙이 빠져들었던 경험에는 한계가 있다. 긴 호흡의 책을 혼자라면 던져 버렸을 바로 그런 책을 함께 읽었기에 더 재미있고 더 많이 느낄 수 있었으리라는 것을 예상했었고 동운이의 독후감 첫 부분에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다. 또한 책을 읽을 때 필요한 인내심도 함께 기를 수 있었다.

함께 읽기에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낭독의 즐거움이다. 책은 눈으로도 읽지만 귀로도 읽는다. 우리가 함께 읽을 때 누군가 한 명이 소리내어 읽어주 고 아주 오랜만에 우리는 한 편의 동화를 소리로 들을 수 있었다. 저학년을 지 나서는 자주 있지 않은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책을 오감으로 읽는다면 그 중에 서 가장 많이 쓰는 시각으로 읽기는 너무 많이 해 이제는 눈이 나빠질 지경이 다. 반면 소리로 들으며 읽기는 읽는 사람에 따라 무미건조할 수도 있지만 더 흥미진진하게 읽어주는 목소리를 만나면 우리는 달아나려는 정신의 한 귀퉁이 를 다잡고 책 속에 몰입할 수 있었다.

나. 독서와 쓰기의 통합

<자전거도둑> 속에는 도시의 바람과 시골의 바람을 묘사하는 글이 나오는데 시골출신인 수남이는 도시의 바람과 시골을 바람을 아주 명징한 언어로 비교하 고 있다. 학생들에게 묘사의 좋은 예를 보여 주고 교과서에 설명의 방법 중 비 교와 대조 부분이 나오기도 해서 책에서 도시의 바람과 시골의 바람을 묘사한 부분을 찾아 그대로 적어보라고 하고 이에 대한 느낌이나 내가 만난 제주의 바 람에 대해 써 보는 활동을 했다.

학생들은 도시의 바람과 시골의 바람을 묘사한 부분은 잘 찾아서 썼는데 모 두 똑같은 곳을 찾아 쓰지는 않았다. 한 학생은 도시의 바람에 대해 아래의 글 을 찾아 썼다.

“낮동안 떼어서 세워 놓은 가게 함석 지붕은 얇은 헝겊처럼 곧 뒤집힐 듯이 펄럭대고 골목 위 공중을 가로지른 전화줄에서는 온종일 귀신의 휘파람 같 은 소리가 났다.”(자전거도둑:21)

반면 다른 학생이 찾은 부분은 다음과 같다.

“바람부는 서울의 뒷골목은 흉흉하고 을씨년스러웠다. 먼지는 물론 온갖 잡 동사니들이 다 날아들어 가게 앞에 쓰레기 무더기를 만들어 쓸어도 쓸어도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자전거도둑:22)

또 다른 학생이 찾은 부분은 아래의 글을 찾아 썼다.

“서울 사람들에게는 바람이 손톱만큼도 반가울 리가 없겠다. 바람의 의미를, 간판이 날아가는 횡액, 한없이 날아오는 먼지, 쓰레기 그것 밖에 모르니 까.”(자전거도둑:24)

설명의 방법을 확인하려 찾은 글에서 다음과 같이 다양한 문장들을 찾아 혼 자 읽을 때는 미처 다 찾지 못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에 시골의 바 람을 묘사한 부분은 다같이 찾아 읽으며 속으로 상상해 보았다.

“보리밭은 바람을 얼마나 우아하게 탈 줄 아는가, 큰 나무는 얼마나 우아하 게 탈 줄 아는가, 큰 나무와 작은 나무가 함께 사는 숲은 바람에 얼마나 우 렁차고 비통하게 포효하는가.” (자전거도둑:23)

학생들은 함께 글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광경이 그대로 떠오르고 바람의 느낌 이 상쾌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 글을 읽고 학생들이 쓴 글을 보자면 다음 과 같다.

“ 1시간도 안 걸려 제주 바다에 나가면 파도는 바람과 함께 춤을 추고 그 옆에 유채꽃밭은 샛노란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풍경이 장관이다. 그러나 꼭 좋지만은 않다. 송진 가루가 바람에 날리면 온세상은 누런 가루에 덮이고, 밤이면 배고픈 파도가 가끔 배를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김0리

“ 제주의 바람은 시원하다. 그냥 시원한게 아니고 가만히 서서 맞고 있으면 몸 전체로 부드럽게 퍼져서 기분이 좋아지는 바람이다. 이 바람을 맞고 있 으면 나도 이 바람처럼 다른 사람을 기분좋게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이 바람이 친구와 같은 존재인 것 같다.“ -강0린

두 학생의 글은 제주의 바람의 느낌이 생생하면서도 아름답게 쓰여 있다. 학 생들이 그냥 제주의 바람에 대해 쓰라고 했다면 아마 이런 글이 나오지는 못했 을 것이다. 책 속의 글을 읽으며 수남이가 느끼는 바람을 같이 상상하고 공감

하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바람을 작가처럼 세밀하게 되짚어 보며 글을 썼기 때

같다. 이제는 수남이가 자전거도둑인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수 남이의 자전거를 가져가 자물쇠를 채워놓은 신사도 자전거도둑인 것 같다.

나는 내 생각도 정리가 안되지만 법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글을 쓴 학생은 법이라는 관점에서 어린이에게 더 가혹한 현실과 미성년자에 게 관대한 법을 적용한 사건을 비교하면서 고민한 내용을 서술하면서 자신의 관점에서 <자전거도둑>을 바라본다. 특히나 어린 수남이를 옹호하거나 보호해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어린이 인권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한다.

다. 다양한 시각의 공유

토론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여러 가지 근거를 대면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는 데 그 근거가 매우 다양했다. 토론 중에서 가장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부 분은 도둑질의 정의 부분이다. 실제 학습자들의 대화를 살펴보자.

박0리 : 도둑질은 원래 몰래 남의 물건을 가져오는 것인데 수남이는 바람 때문에 차에 부딪힌 것은 실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남이는 자기 자전 거를 몰래 아니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가져간 것이니 도둑질이 아닙니다.

김0리: 저는 주리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주리가 아까 도둑질은 몰래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국어사전에 보면 도둑질은 몰래 라는 말은 없고 그냥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것이 도둑질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어떻 게 생각하십니까?

교사: 사전에는 몰래라는 말은 없군요. 주리가 생각한 도둑질은 우리가 일 반적으로 생각하는 도둑질의 의미였을거라 생각합니다. 주인이 보고 있는데 도둑질을 하는 경우는 일반적이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주리 생각에는 남 들이 보는 중이므로 도둑질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홍0온: 국어사전에 나온 도둑질과 주리가 생각하는 도둑질이 다를 수 있으 니까 주리는 도둑질을 그렇게 생각한 것이고 해리는 국어사전 속 의미를 생 각한 것 같습니다.

김0리 : 하지만 국어사전에 있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것을 여러 가 지 경험이나 동정심을 유발해서 조금 의미가 다른 것을 쓰는 것보다는 정확 한 것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0영: 국어사전에는 남의 물건을 훔친다고 했지 아침에 안 훔친다고 한 건 아니니까 아침에 한 건 아닐 수 있습니다.

김0리: 아침에 물건을 훔쳤다고 해서 도둑질이 아닙니까?

교사: 주리는 몰래 훔치는 것이 도둑질이라고 한 것이고 남들이 보는 앞에

김0영: 그래, 맞는 건 같기는 해.

실제의 손해 측면에서 보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사실에 근거한 의견이면서 미 처 보지 못한 점을 끄집어 내어 토론에 넣으면서 동정적인 여론을 조금 움직이 기도 했고 새로운 근거이면서 논란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0진이라는 학생은 책의 마지막 구절을 예로 들면서 수남이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 주었다. 다른 학생들은 이에 그건 사실이 아니라 예상이라 어떻 게 될지 모른다고 했지만 많은 학생들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며 수긍 의 표현을 해 주었다.

이렇듯 다양한 생각들이 제시되어 혼자 읽을 때와는 달리 사건의 여러 측면에

이렇듯 다양한 생각들이 제시되어 혼자 읽을 때와는 달리 사건의 여러 측면에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