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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지리지와 지도

문서에서 인천의 섬과 역사문화유산 (페이지 154-158)

1) 지리지

(1)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인천도호부 산천 : 원도(猿島) 부 서쪽 12리 되는 곳에 있으며 섬 가 운데에 여러 섬의 신제단(神祭壇)이 있는데, 봄 가을에 악(岳)·해 (海)독·(瀆)에 제사를 지낼 때에 수령이 친히 행한다. …… 수이도 부의 서쪽 14리에 있다.

•부평도호부 산천 : 호도(虎島) 부의 서쪽 10리에 있고 둘레는 200보 이다. 응도(鷹島) 부의 서쪽 15리에 있고 둘레는 300보이다. 정자 도(亭子島) 부의 서쪽 15리에 있고 둘레는 100보이다. 문지도(文知 島) 부의 서쪽 10리에 있고 둘레는 100보이다. 청라도(靑羅島) 부 의 서쪽 10리에 있고 둘레는 800보이다. 일도(一島) 부의 서쪽 8리 에 있고 둘레는 300보이다. 장도(獐島) 부의 서쪽 6리에 있고 둘레 는 500보이다. 율도(栗島) 부의 서쪽 10리에 있고 둘레는 800보이

3) 인천의 사라진 섬에 관한 전통시대의 지리적 정보는 지리지와 지도류에서 찾을 수 있 다. 그러나 그 수록 내용과 체제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이후 거의 동일하여 대표적인 자료만을 소개한다. 특히 인천과 부평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섬이 기록되어 있으나 김 포의 검단면 소속 섬은 율도만이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인천도호부 산천 『신증동국여지승람』 부평도호부 산천

다. 기도(箕島) 부의 서쪽 20리에 있고 둘레는 50보이다. 김포현 섬 에 관한 기록은 없다.

(2) 1871년 『경기읍지(京畿邑誌)』

•인천도호부 산천 : 원도(猿島) 부의 서쪽 12리에 있다. 섬 안에는 여 러 섬의 신응 제사하는 제단이 있어 봄 가을로 악해독에게 제사할 때 수령이 친행하였으나 지금은 폐하고 다만 기우제를 일곱 차례 지낸다. 수이도(愁伊島) 부의 서쪽 14리에 있다.

•부평도호부 산천 : 호도(虎島) 부의 서쪽 10리에 있고 둘레는 200보 이다. 응도(鷹島) 부의 서쪽 15리에 있고 둘레는 300보이다. 정자 도(亭子島) 부의 서쪽 15리에 있고 둘레는 100보이다. 문지도(文知 島) 부의 서쪽 10리에 있고 둘레는 100보이다. 청라도(靑羅島) 부 의 서쪽 10리에 있고 둘레는 800보이다. 일도(一島) 부의 서쪽 8리 에 있고 둘레는 300보이다. 장도(獐島) 부의 서쪽 6리에 있고 둘레

1871년 『경기읍지』의 「인천도호부」산천과 지도

3장

8

1871년 『경기읍지』의 「김포군」산천과 지도

1871년 『경기읍지』의 「부평도호부」산천과 지도

는 500보이다. 율도(栗島) 부의 서쪽 10리에 있고 둘레는 800보이 다. 기도(箕島) 부의 서쪽 20리에 있고 둘레는 50보이다.

•김포군 산천 : 큰(한)강은 양천의 경계에서 시작하여 통진의 경계 에 이른다. 20리 사이에 박말도·독도·감암이 있다. 조수가 왕래 한다. 감암에서 나누어진 갈래는 나진교에 이르고, 우저(牛渚) 아래 에서 그친다. …… 독도는 군내면에 있다. 박말도는 임촌면에 있다.

율도는 검단면에 있다.

2) 옛 지도

(1) 1750년대 해동지도4)

4) 해동지도의 부평부의 지도에는 섬에 관한 정보는 지도에는 보이지 않고 주기에만 보 이머 주기의 내용 또한 이제까지의 지리지의 정보와 다르지 않다.

1750년대 해동지도의 김포 율도

3장

8

인천부는 제물진두(濟物津頭) 앞 바다에 행궁이 표시되어 있는 얼미 도(孼尾島, 월미도), 목장이 표시되어 있는 용유도와 무의도에서 육지 쪽으로 사도, 수리도, 원도 소도(小島, 소원도)가 보인다. 김포군은 검 단면과 모월곶면 앞 서해 바다에는 율도만 표시되어 있다.

(2) 1736~1767년 여지도

인천부는 제물진두(濟物津頭) 앞 바다에 얼(孼)로 표시되어 있는 월미 도, 용유도와 무의도 안으로 사도, 수리도, 원도 소도(소도, 소원도)가 보인다. 부평부는 지금의 세어도인 서천도, 난지도, 청라도, 장도, 응

1750년대 해동지도의 사도 분도 원도 소원도

1736~67년 여지도의 사도 분도 원도 소원도 1736~67년 여지도의 김포 율도

도, 율도, 기도, 호도 등이 표시되어 있으며,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섬 은 인거(人居)로 구분하였고, 청라도는 절수지(折受地)였음을 표시하고 있다. 김포군은 노장면과 검단면의 앞 서해에 율도만을 표시하고 있다.

1736~67년 여지도의 난지도 청라도 율도 등

3장

8

(3) 화도진도(1879년 경)

화도진 소속 제물남변포대 밑으로 사도, 분도(糞島), 신도(申島)가 표 시되어 있고, 섬 자체에 포대가 설치된 묘도의 포대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특히 이전까지의 지도나 지지류에는 수리도 또는 수이도로 표시 되던 분도란 지명이 처음 보이고, 원도가 신도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제물진에서 수로로 연결되어 있는 월미도 옆에는 소월미도가 표시되어 있다. 지금의 동구지역인 묘도는 물이 빠지면 건너갈 수 있었고, 석축 이 구축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지금의 남동구 일대인 호구포대와 장 도포대 일대에는 성정도(成井島), ●●●島, 대원도(大元島, 대원례도), 소원도(小元島, 소원례도), 원요항서(元曉項嶼), 모도(帽島)가 기록되어 있으며, 대원도에는 우물이 있음을 표시하고 있다.

1879년 『화도진도』의 묘도 1879년 『화도진도』의 호구포대 일대의 섬

1879년 『화도진도』의 제물진 일대의 섬

3장

8

1879년 『화도진도』의 장도포대 일대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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