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적 텍스트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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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가 기본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에 대한 모방적 독서로부터 그것에 대 한 비평을 거치면서 새로운 문학 텍스트를 생산한다고 볼 때, 전통적 문학 양식인 민요나 고전시가, 무가를 패러디하여 쓴 고정희의 장시(長詩)들은 과거에 대한 반성 적 사유를 통하여 현실을 바라보는 전략적 요소가 되었다. 특히 고정희에게 있어 무 가와 마당극을 패러디하여 새롭게 탄생시킨 마당굿시는 전통에 대한 강한 애착과 현 실 참여적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낼 수 있는 창작 방식으로 다가왔다.

고정희의 열한 권의 시집 중 굿의 형식이 차용된 시집은 『실락원 기행』(1981),

『초혼제』(1983),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1989),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 에 여백을 남긴다』(1992)가 해당된다. 이렇게 여러 시집에서 마당굿시들이 쓰여진 배경에는 “조직사회 속에서의 인간성 회복”이라는 문제와, 우리의 전통 가락의 활 용 방안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연구의 결과였음이 다음의 글에서 잘 드러나고 있 다.

그 동안의 창작생활에서 나를 한시도 떠나본 적이 없는 것은 ‘극복’과

‘비전’이라는 문제였다. 내용적으로 나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이 어두운 정황을 극복해야 한다고 믿는 한편 조직사회 속에서의 인간성 회복의 문제가 크나큰 부담으로 따라다녔고, 형식적으로는 우리의 전통적 가락을 여하이 오늘에 새롭게 접목시키느냐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나는 우 리 가락의 우수성을 한 유산으로 활용하고 싶었다.

그러한 고민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 「사람 돌아오는 난장판」과 같은 마 당굿시이고 「우리들의 순장」은 79년에 발간된 첫 시집에서 「차라투스트 라」라는 서구적 제목으로 씌어졌던 시대 인식을 다시 한국적인 언어와 풍 습 속에 재조명해 봤다.43)

43) 고정희, 「후기」, 『초혼제』, 창작과비평사, 1983.

고정희는 ‘어두운 정황을 극복’하고 인간성 회복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자 다소간 어조를 높여야 했으며, 당시로서는 낯설었던 여류작가의 강경한 목소리는 때 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스스로 이러한 비판을 의식하고 있었으나 문 학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아끼지 않았다. 문학과 이념의 상관관계를 거론하는 사람 들은 부지중에 격정적 어조로 흐르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은 이 문제의 거론이 넓은 의미의 정치적 입장과 관련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치는 종교와 함께 쉽 게 사람의 격정을 불러일으키는 성향이 있다.44)

이러한 고정희의 시적 고민에 대한 결과로 쓰인 마당굿시는 그의 시세계에서 다음 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첫째, 우리의 전통 장르인 무가의 시적 접목이다. 고정희가 쓴 마당굿시는, 패러 디된 장르인 무가와 마당극에서 무가가 주, 마당극이 종으로 패러디되는 양상을 보 인다. 즉 마당굿시는 희곡성 내지 연희성이 강화된 새로운 양식으로 탄생되었다. 마 당굿을 체계적으로 제기한 최초의 글은 채희완· 임진택의 「마당극에서 마당굿으 로」였다. 그들은 마당굿의 근간을 이루는 두 가지 정신기조를 ‘놀이정신’과 ‘마 당정신’으로 놓고, 마당굿의 본질적 실체이자 융합적인 계기가 되는 네 가지 성격 을 상황적 진실성과 집단적 신명성 그리고 현장적 운동성과 민중적 전형성으로 설명 하고 있는데,45) 고정희의 마당굿시는 굿의 본래적인 형식 속에 오늘의 사회상을 담 아내는 비판적 수용의 자세로 이를 시대 현실의 형상화에 활용한다.

두 번째, 무가에서 이루어지는 여성의 역할에 주목함으로써 여성적 글쓰기의 토대 를 마련하였다. 굿의 실행자인 무당은 여자의 신분임에도 신과 인간을 함께 대리하 는 특수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무당은 우리 사회에서 양가적인 존재이다. 이들은 반체제적이면서도 동시에 체제 수호적이다. 이들이 반체제적이라 함은 사회적으로 포섭되지 못한 존재들로서 그 불안정성이 기존의 문학적 질서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위는 소속된 사회의 구성원들을 동요시키고 기존 질서의 틈새를 드러냄으 로써 그것의 구조 자체를 위협한다. 따라서 사회의 구성원들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비위치성에 기대어 집단의 차원에서 실현 불가능한 것을 타협하게 해주고 ‘상상의 이동자’가 될 것을 요구한다.46) 즉 무당의 존재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어디에도

44) 유종호, 앞의 책, 226쪽.

45) 민족굿회 편, 『민족과 굿』, 학민사, 1992, 160쪽.

46) 엘렌 식수··카트린 클레망 공저, 이봉지 역, 『새로 태어난 여성』, 나남, 2008, 21~22쪽.

포섭되지 않는 잉여적 존재이면서 고통과 억압, 이승과 저승, 실현 불가능한 것들을 실현해내는 모순적이며 복수적(plural) 성격을 지닌 존재이다.

이렇게 우리의 전통 서사무가에서 여성의 형상이 남성의 모습보다 더욱 다채롭게 그려지는 이유는 아마도 서사무가가 구연되는 무속 자체가 남성보다는 여성과 친연 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사무가에서 그려지는 여성의 형상 중 대표적으로 눈에 띄는 것이 전능성(全能性)이다. 이것은 대체로 남편에게 어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가 생겼을 때, 남편은 그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는 반면, 부인은 그 해결 방법을 쉽 게 제시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거의 모든 굿판에서 구송되는 장편 서사무가 「바리 데기」설화에서도 단지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버림받았던 바리공주가 결국에는 저승 으로 상징되는 서천서역국에 가서 아버지를 살릴 약수를 구해온다. 바리공주는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결코 무사적 영웅성을 보이지 않는다. 빨래를 하고, 논을 갈 며, 무장수와 결혼하여 아들 삼 형제를 출산한다. 그 대가를 치르는 과정에서 바리 공주는 가부장제의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죽음으로 가는 과정에서 제시됨으로써, 죽음이 엄숙함만큼 이 러한 여성의 형상도 아울러 엄숙성을 띠게 된다. 즉 바리공주가 죽음에 맞서 약수를 길러 가듯, 대다수의 여성 청중들은 이를 접함으로써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현실 생활의 부당한 것들에 맞서고자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바리데기」에서의 여 성의 형상은 죽음에 맞서는 과정에서 제시된 것이지만, 그것은 삶을 살아가는 여성 모두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바리공주의 약수는 다름 아닌 삶의 질곡에 갇힌 현실 생활인으로서의 여성 자신들을 살려내기 위한 생명수인 셈이다.

김혜순은 그의 저서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에서 여성 시인을 바리데기 연희 자와 같은 어떤 상징적인 치름, 그 과정을 경험한다고 말한다.47) 이러한 사실에서 여성적 텍스트의 수용, 독해의 새로운 방향성을 노정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정희 또한 여성주의 문학에 대해 “‘여성들이 하는 문학이다’라는 성별 분업을 떠나 지 배 문화를 극복하고 참된 인간해방 공동체를 추구하는 대안 문화로서 ‘모성 문학’

혹은 ‘양성 문화’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문학이라야 진정한 여성주의 문학”48)이라 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이념은 글쓰기 속에서 그대로 드러나는데 대표적으로 남 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성 정체성에서 벗어나 신과 직접 소통하는 전능한 무당의 등

47) 김혜순,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문학동네, 2002.

48) 고정희, 「한국 여성 문학의 흐름-시와 소설을 중심으로」, 조형 외 엮음,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또하나의문화, 1993, 175~177쪽.

장은 그가 말하는 양성문화의 한 단면이라 할 것이다.

세 번째로는, 무가의 형식에 사회비판과 애도의 내용을 담아 문학과 삶이 일치하 는 실천문학인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광주’에 대한 문학적 애도로서 고정희의 현 실에 대한 인식은 그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강렬한 소망을 전제로 하고, 무가의 주술성은 이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 되었다. 즉 고정희는 굿 속에서 시대와 계층과 성을 초월하여 펼쳐지는 민중의 역할에 주목하였고, 이를 그의 시 속에 차용 해옴으로써 비로소 억눌린 그들의 목소리를 적극 드러낼 수 있었다. 또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영혼을 씻김굿의 형식을 통해 위로하고 살아있는 자와 죽은 이들 간 의 소통을 통한 화해를 시도했다.

네 번째, 굿의 신명과 놀이를 이용하여 공동체의 대동단결을 꾀했다. 굿은 신과 인간의 종속관계에서 신과 인간의 평등관계로의 이행과정이다. 굿이 신과 인간이 더 불어 즐기는 놀이일 때, 굿은 곧 연극이다. 굿이 적어도 ‘놀이’ 또는 ‘연극’이 라고 하기 위해서는 신과 인간의 종속관계를 해체하고, 신과 인간의 평등관계가 유 지되어야 한다. 또한 신과 놀이판을 조정하는 배우 모두는 그들의 시간적 현재, 공 간적 현장인 굿판에서 신명을 공유한다. 신명은 신과 인간의 괴리를 자연의 질서 속 에 재편입시켜 신과 인간이 대등한 관계에서 즐기는 신인동락이다. 즉 신과 인간이 절대 평등의 경지에서 놀 때, 신이 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명은 단골 신앙민중의 의욕적인 생활욕구의 표현이며, 민중의 생활 안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온갖 억압 과 수탈과 착취와 부패에 저항하는 내적이며 잠재적인 힘이다. 따라서 굿은 신앙민 족이 만들어 가는 공동창작의 연극인 것이다.49) 이러한 굿판의 성격을 시로써 형상 화한 고정희의 굿시들 또한 민중의 정서와 삶을 포괄하면서 역사적 체험을 공유하는 하나의 장이 되고 있다.

이상으로 고정희 시세계에서 마당굿시가 하는 역할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이 발견되는데 고정희가 차용해온 굿의 성격이다. 그의 시에서는 전라도 지 방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죽은 영혼을 저승으로 편안하게 보내주는 의례인 씻김굿이 다양한 방식으로 차용되었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하여 우 리 역사에서 나타난 억울한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고정희가 시적 실천으로 끌어온 의식적인 창작 방식이다. 우리의 전통 무가에서는 대체적으로 마당굿 속에 씻김굿이 포함되어 있지만, 본고에서는 마당굿시와 씻김굿시를 별도의 장으로 나누어 살펴보

49) 민족굿회 편, 앞의 책, 189~192쪽, 206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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