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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은 이러한 동양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단순 한 자연의 풍경이 아닌, 나와 자연을 동일한 존재로 표현 하며, 은유적 표현으로 내면 의 고통을 드러내었고, 주위 를 둘러싼 현실적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제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아직 자연적인 삶과 문화가 그나마 남아 있는 곳으로, 이러한 환경에서의 예술 활동은 필연적으로 자연에서의 탐 구이며, 삶과 예술의 연장선이라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접근한 <연월>의 소재는 제주의 부속섬, 또는 한라산과 오름을 중심으로 한 바다의 풍경이 주를 이룬 다.

화면에 등장하는 각각의 소재들은 그만의 상징성을 지닌다. 섬과 한라산, 오름 등 지 질학적 형태를 보이는 소재는 오랜 시간 풍화와 침식 등에 의해 깎이면서도 한 자리 에 홀로 외롭게 존재하는 존재자로서 인간 내면의 고통과 상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 며, 긁고 깎아내는 표현방법 자체로 상처받은 내면을 표현하였다.

바다는 현실 세계, 다시 말해 사회를 의미한다. 여기서 사회란, 자아를 둘러싼 관계 와 상황 등을 비롯한 주위 세계를 말한다. 이 세계는 때로는 잔잔한 바다와 같이 나 를 향한 부드러움으로 다가

오지만, 때로는 생채기를 남 길 만큼 거대한 파도가 몰아 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작품에 등장하는 바다의 풍 경은 잔잔한 풍경과 폭풍우 가 몰아치는 풍경 등으로 표 현하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달은 <연 월(戀月)>이라는 제목에서

<그림 39> 「연월(戀月)-산방산」

<그림 40> 「연월(戀月)-차귀도」

알 수 있듯이 그리움의 상징으로써 연민의 대상이며, 동시에 마음의 형상으로 자아(自 我)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즉, 달은 마음에 투사(投射)된 실재이자 환영으로서 상처받은 자아와 그리움, 위로받고자 하는 마음의 표 현인 것이다.

또한, 달은 그리움의 대상으로서 타자(他者)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나’ 역시 누군가의 그리운 이가 되기도 한다는 의미를 포함한 다. 이것은 자연의 순환성과 관련하여 설명 할 수 있다. 순환성(循環成)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노자(老子, AD604(추정)~AD6세기(추

정))를 통해 살펴보면 무릇 생명은 땅에서 와서 땅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였다. 이것 은 <인법지(人法地)>의 발상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생명은 땅을 본받아 창조되었 다. 그러나 생명의 존재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명을 지닌다. 생명의 명(命)은 생사의 사이를 말한다. 이에 대하여 노자는 [도덕경] 1장에서 말하고 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무명, 천지지시, 유명, 만물지모)

말할 수 있는 도(道)는 상도(常道)가 아니고, 말 할 수 있는 명(明)은 상명(常名)이 아니다.

무명(無明)은 천지의 시작이고 유명(有明)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항상 무욕(無浴)으로써 그 무의 오묘함을 보고, 항상 유욕(有浴)으로써 유의 왕래를 본다. 이 무와

유는 동시에 나왔지만, 그 이름을 달리한다. 유/무를 동시에 말하며 현묘(玄妙)하다고 한다.

그것은 온갖 묘리(妙里)가 출물하기 때문이다.47)

노자에 따르면 세계를 개괄하는 두 가지 범주는 선후 관계를 이루는 것이 아닌 같이 있는 것이다. 반대의 개념을 가진 유(有)와 무(無)가 서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존재근 거를 두면서 협력하고 공존한다는 사실이 아주 현묘하다는 것이다. 유(有)와 무(無)의 대립 항들이 서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면서 분명하게 구분되어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존재근거를 나누어 가지면서 혹은 자신의 존재근거를 상대방에게

47) 老子, 「道德經 1章」,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그림 41> 「연월-영실기암」

두면서 꼬여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유(有)와 무(無)는 대등한 관계에 놓여 있으 며, 그 사이에 생명의 명(明)이 있음을 알 수 있다.48)

대부분의 <연월> 작품들은 여백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동양적 미의식을 나타내 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여백’이라는 조형성 은 동양 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데, 특히, 동양에 있어 여백개념을 얘기하는데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이 노장사상이다. 노자의 철 학성과 정신성은 그대로 동양 미학에 있어 공 간 개념을 해석하는데 매우 용이하다. 노자는

“도의 본질은 공허하다. 그러나 그 작용은 항상 무한하고 심오하여 만물의 근본과 같다”라는 표현을 통해 ‘빈공간’에 대해 언급하면서 결국 도(道)의 실체에 대한 표현을 통하여 모든 만 물의 이치를 설명하고 있다. 이는 곧 모든 외 형적인 감각이나 형식의 무위성으로 이어지면 서 동시에 언어의 무위성으로 나타나게 된 다.49)

<연월>의 색채는 빛바랜 흑백사진의 색에서 차용한 것으로, 무채색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 할 것이다. 이러한 절제된 색의 사용은 작품이

말하는 그리움의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되었으며, 자아의 정체성을 느 끼게 하기 위한 동양적 감각을 부각시키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러한 여백과 색채에 대하여 노자는 “오색찬란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눈을 멀게 하고, 감동적인 음악은 사람들로 하여금 귀를 멀게 하고, 푸짐한 음식은 입맛을 버리 게 한다.”50)라고 했는데, 색채라는 시각적 요소가 감상자에게 어떻게 작용하여 보여지 는지 말해주는 것으로, 색이 없는 색, 소리 없는 소리, 맛이 없는 맛이 의미하는 절대

48) 김지은(2017), “자연(自然)의 순환성(循環性)에서 발현되는 차연에 대한 표현 연구”, 홍익대학교 미술 대학원 동양화 전공 석사학위 논문, pp.3〜4.

49) 김영석(2009), “동양의 정신으로 구현한 현대미학의 조형적 탐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전공 석사학위 논문, pp.19〜20.

50) 《老子 12장 檢欲》,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그림 42> 「연월-형제섬」

적 세계관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자는 또, “가장 큰 소리는 들리지 않고, 가 장 큰 형상은 형태가 없다. 도는 숨어 있고 이름이 없다”라고 말하며, “무릇 내면의 기가 외면의 화려함에서 전해지게 되면 형상에서 잃게 되고 형상에서만 구하게 되면 그린 것은 죽은 것이 된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곧 외형적인 화려한 색채인 ‘물지화 (物之華)’를 경계하고 ‘기질구성(氣質俱盛)’, 즉 기(氣)와 질(質)을 다 갖춘 대상의 참된 성정과 본질에 대해 말하고 있다.51) 따라서 무채색으로 표현되어진 작품은 비어짐(空) 속에 감정과 바람(望), 그리고 인간의 삶과 경험의 축적으로 표현되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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