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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대상과 방법

Ⅰ. 서 론

4. 연구의 대상과 방법

담론의 추이는 정치 사회적 지형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나타난다. 1960

년의 4․19혁명과 1987년 6월항쟁, 1993년에 민간정권으로 이양됐고 1998년에 국민의 정부가 출범했던 한국 사회의 정치 변화가 거시적인 척도가 된다. 4․3의 경우는 1988년에 제주도4․3사건민간인희생자반공유족회(이하 4․3반공유족회)가 결성됐으며, 이듬해인 1989년에 제1회 4․3추모제를 통해 재야 단체들이 조직화 됐고 제주 4․3 연구소가 발족됐다. 1994년에 ‘합동위령제’가 봉행됐고, 1999년 에 4․3특별법 제정, 그리고 2003년에 대통령이 공식 사과한 것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담론의 중요 전환점이 됐다. 이 연구에서는 이러한 현상들을 담론이 전환되는 중요한 과도기적 지점으로 인식하고 4․3 담론을 ‘폭동론’과 ‘항쟁론’,

‘양민학살론’, ‘화해와 상생론’으로 구분하고자 한다.

사회는 다양한 담론적 표출의 장(場)으로 이데올로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때문에 각각의 담론이 분절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담론 공간 내에서 담론 간의 투쟁과 합의가 가능하고, 이를 통해 지배적 혹은 주변적으로 위치하 거나 변증법적 합의 절차를 거쳐 제3의 담론이 양산될 수 있는 특수성이 있다.

그 점에서 각각의 담론은 분리되어 독립된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인 연속성 속에 긴장 관계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담론이 각 시기별로 전환되고 새롭 게 위치하게 되더라도 과거의 담론들이 폐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담론 공간 내에서 그 역량이 지배화되느냐 주변화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본격적으로 논의하겠지만 ‘양민학살론’은 양민학살에 대한 역사 인식을 일정 부분 공유하던 ‘폭동론’과 ‘항쟁론’의 일부가 합의 과정을 통해 재구성됨으로써 담론화 될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이 이전 시기에 ‘항쟁이냐, 폭동이냐’와 같은 이 데올로기적 충돌로 인해 짜임새 있게 조직화되지 못했을 뿐이었다. ‘화해’하고

‘상생’하며 ‘평화’를 지향하고 ‘인권’의 가치를 옹호하자는 오늘날의 구호도 이미 4․3 담론이 충돌하고 타협하던 지난 시기부터 존재해 왔던 것이다. 다만 담론 공간에서 주변부로 위치 지어짐에 따라 현실적인 담론적 효과를 창출하지 못한 것뿐이다. 실제로 ‘화해와 상생’이 시대 구호로 주창되는 오늘날까지 간헐적으 로 나타나는 이념 대립과 같은 현상은 담론 공간 내에서 다양한 담론이 병렬적 으로 존재한다는 해석에 대한 실례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는 다음의 그림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그림> 제주 4․3 담론 공간

각 시기별로 전개됐던 4․3 담론은 그것의 사회적 표현 양식이나 상징체계를 통해 접근이 가능한데, 각각의 담론을 구성하는 담론적 표현물을 통해 ‘담론의 주체’와 ‘담론의 정치’, ‘담론의 효과’를 포착하고 담론 분석을 시도할 수 있게 된다. 푸코는 담론적 실천을 지식 생산의 주체인 권력이 독점하고 있다고 설명 한다. 때문에 올바른 담론 분석을 위해서는 담론을 형성하고 유포하며 재생산 시키는 작업에 누가 참여하는가 하는 담론 주체에 대한 접근이 중요하다. 모든 담론적 행위가 주체의 판단과 전략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의 경 우, ‘담론의 정치’는 선택된 ‘사실’ 혹은 배제(거부)된 ‘사실’이 존재하게 되는데, 이는 ‘담론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담론 주체의 전략적 차원에서 작동되 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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