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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목적과 필요성

Ⅰ. 서론

1. 연구목적과 필요성

2014년 로마에서는 ‘韓紙를 활용한 문화재 복원 및 보존’이라는 주제의 심포지 엄이 열렸고, 오랜 기간 원형을 보존해야 하는 문화재의 특성상 복원 및 보존 처 리에 한지가 적합하다는 연구가 발표되어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1) 紙類문화재의 복원에는 대부분 일본의 和紙가 사용되고 있었는데 한지가 복원지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요즘, 루브르 박물관이 화지로 예정되어 있던 문화재 복원을 한지 로 대체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2) 한지가 문화재의 복원 재료로써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한지의 내구성과 채도, 통풍성이 화지보다 우수하 기 때문이다.3) 이와 같은 한지의 우수성은 8세기 중엽에 제작된 무구정광대다라 니경 이나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등이 12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해 지는 것으로도 확인된다.

종이는 중국에서 발명된 이후 서기 105년 後漢의 채륜에 의해 그 제작 방법이 개량되었다.4)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그 기술이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 “문화재청”, 보도/해명, 2014년 10월 15일 수정, 2017년 11월 13일 접속.

http://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List.do?sectionId=all_sec_1&mn=NS_01_02

2) 루브르 박물관은 2017년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앙(Bureau de Maximilien de Baviere)2세 책상’의 서랍 을 한지를 이용하여 복원하는 데 성공하였고, 이에 앞서 2016년에 바티칸은 교황 요한 23세의 유물인 지구본을 해체하여 황변하거나 균열이 간 부분을 한지를 이용하여 복원하였다.

3) 최태호, 「한지 제조기술의 독창성」, 2016 한-이탈리아 한지 학술 심포지엄 자료집 , 국립문화재 연구소外, 2016, 67쪽-70쪽.

4) 중국의 고대 종이는 1930년대~1990년대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출토되었으며 출토지는 陝西省, 甘肅省, 新彊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이 고대 종이들은 채륜이 만든 종이와 달리 종이의 제작 공정을 거치지 않고 마섬유를 압착한 형태가 대부분이었고, 용도 또한 거울이나 세숫대야 가 상하로 겹쳐있을 때 그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이것을 종이로 볼 수 있느냐 하는 학자들 간의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1933년에 발굴된 서기전 49년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종이가 叩解·漂白·煮熟 등의 종이 제작 공정을 거친 것으로 연구결과 밝혀졌으며, 1990 년대에 발굴된 종이인 마방탄지(서기전 179~141 제작 추정)와 현천지(서기전 74~49 제작 추정) 에 각각 그림과 글자가 새겨져 있어 서사용으로 사용된 것이 확인되었다. 이로써 채륜이 종이 의 발명자인가 아닌가의 논쟁이 종식되었고, 채륜은 종이의 개발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김 철, 한지의 이해 , 도서출판 한글, 2012, 31쪽-38쪽 참조).

정확한 전래 시기는 알 수 없고, 일본서기 에 610년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 일본 에 건너가 오경을 가르치고 채색, 종이와 먹 그리고 맷돌을 전해 주었다는 기록 이 있는 것으로 보아,5) 적어도 그 이전에 제지법이 전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제 지법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후 그 제조 공정은 한반도의 실정에 맞게 변화되었 다. 먼저 원료를 보면 중국에서는 주로 麻나 대나무를 紙料로 사용하였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닥나무를 사용하였고, 공정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搗砧을 하여 상 대적으로 높은 밀도와 배색도의 종이를 만들어냈다.6)

우리나라의 종이는 만들어진 시기에 따라 鷄林紙, 高麗紙, 朝鮮紙 등으로 불리 는데 고려시대에 이르러 종이 수요의 증가와 함께 제지술이 크게 발달하였다. 고 려는 국초부터 국가나 왕실에 필요한 서적을 수시로 간행하고 그 판본들을 국가 적 차원에서 관리, 활용하고 있었다. 고려시대의 서적 간행 및 보유 수준은 宋 철종이 송에서 없어진 백여 종의 서적을 고려에서 구해보라고 한 기록에서도 알 수 있다.7) 또한 불교의 발달로 사원에서는 경전의 간행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문인과 학자들 간에는 개인문집의 간행이 성행하였다. 이와 같은 종이의 수요에 대비하여 고려는 국초부터 관청을 중심으로 제지수공업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관 영 제지수공업은 관청에 소속되어 田柴科와 工匠別賜를 받는 감독관인 紙匠의 관리 하에 일반 수공업자들이 賦役의 형태로 근무하며 종이를 생산하는 체제로 운영되었다. 그러던 것이 12세기 이후 전시과의 붕괴 등으로 국가 재정이 악화되 자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또 하나의 관영 제지수공업장이었던 紙所는 고려전기에 종이 생산을 활발하게 주도하였으나, 종이 수요의 증가가 과도한 공납으로 이어 지면서 급속하게 해체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사원수공업은 본래 佛具類나 사원 내 생활 용구 등 자체 내의 수요를 충 당하기 위해 운영되었다. 그러던 것이 고려후기에는 사원전을 기반으로 한 막대

5) 일본서기 권22, 추고 18년, “十八年春三月 高麗王貢上僧曇徵·法定 曇徵 知五經 且能作彩色及紙 墨 幷造碾磑 蓋造碾磑.”

6) 한지는 닥나무의 장섬유를 紙料로 사용하기 때문에 지질이 평활하지 못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종이를 뜨고 건조한 후에 홍두깨나 디딜방아로 골고루 두드려 주는 작업을 하는데, 이를 도침이라 한다. 도침은 종이의 밀도를 높여 조직을 치밀하게 하고 潑墨 특성을 좋 게 하며 광택을 더하여 한지의 품질을 높여준다(정선화, 「전통한지의 제조 기술 및 우수성에 관 한 논고」, 문화재 48, 국립문화재연구소, 2015, 102쪽-110쪽).

7) 고려사 권9, 세가9, 선종 8년 6월, ‘李資義等還自宋 奏云 “帝聞我國書籍多好本 命館伴 書所求書 目錄 授之乃曰 雖有卷第不足者 亦須傳寫附來”’

한 경제력과 관영 수공업장에서 이탈한 전문 인력의 흡수를 바탕으로 그 규모가 확대되었다. 사원은 여러 수공업 품목 중에서도 특히 종이에 큰 관심을 가졌는 데, 종이를 생산하기에 적합한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원이 경전 간행 및 印經 등에 쓰일 막대한 양의 종이를 필요로 하는 최대 수요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원은 활발히 종이를 생산하여 자체 내의 수요를 해결하는 한편, 관영수공업을 대신하여 국가와 민간의 종이 수요를 감당하였다.

고려 말 그 기능과 규모가 확대되어 가던 사원의 제지수공업은 조선의 건국과 함께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게 되었다. 조선은 抑佛崇儒의 국가 이념과 함께 사원의 재산과 인력을 몰수하는 한편, 고려 말 와해된 관영수공업 체제를 복구하 여 늘어나는 종이의 수요에 대비하고자 하였다. 중앙에는 造紙所를, 각 군현에는 官營紙所를 두고 이곳에 지장들을 배치하여 京外紙匠 體制를 확립하였고, 倭楮를 도입하고 官楮田을 운영하는 등 종이 원료의 생산에도 직접 관여하며 원활한 종 이의 공급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처럼 국가 주도의 관영수공업이 운영되는 가운 데 사원의 제지수공업도 지속되고 있었다. 조선전기 수공업제의 운영이 국가 주 도로 이루어져 사원 제지수공업의 존재가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사원은 官紙 匠의 형태로 국가의 관영 제지체제에 소속되거나 또는 사원 자체의 제지수공업 을 통하여 종이를 계속 생산해내고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이와 같은 제지수공업장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전통지의 계승 과정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주체인 사원의 제지활동을 검토하고자 한다. 국가의 보호와 지원 속에서 성장하던 사원이 고려후기에 어떻게 제지수공업의 주체로 부상하게 되었는지를 경제적 배경과 인적 자원의 유입을 중심으로 그 요인을 살 펴볼 것이다. 이 과정에서 관영수공업의 쇠퇴가 사원 제지수공업의 확대로 연결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또한 억불숭유가 국가 이념이었던 조선 초, 관찬 사서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조 선전기 사원의 제지활동을 검토하겠다. 조선전기의 사원은 자체 내의 수요나 영 리를 목적으로 제지 활동을 하였으며 국가의 강제에 의해 종이를 생산하지 않았 다는 기존의 연구에 반하여, 국가가 사원의 제지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자 한다. 국가가 사원의 제지 능력을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사원이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전기에도 뛰어난 제지술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

며, 또한 종이 생산 능력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사원 활용 사례들을 검토하는 것은 곧 조선전기 사원의 제지 능력을 검토하는 과정이 될 것이며, 이와 같은 검토를 통해 그간의 연구에서 조선전기에는 사원의 제지수 공업이 다소 미약하게 이루어졌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보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