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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고려후기에 사원이 어떻게 제지수공업을 확대해 나가고, 왕조 교체 후 조선의 억불책 속에서 어떤 형태로 제지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 았다. 각각의 목적에 따라 이를 재정리하여 살펴보겠다. 먼저 Ⅱ장에서는 관청과 지소로 나뉘는 고려시기 관영수공업장의 쇠퇴와 사원수공업의 발달 과정을 살펴 보았다.

고려전기 국가의 운영상 필요한 종이를 생산하던 관영수공업장은 12세기 이후 서서히 그 기능을 상실해가기 시작하였다. 전시과의 붕괴로 인한 수조지의 감소 와 백성들의 流亡에 따른 戶口의 부족으로 국가의 재정이 악화되었으며, 役에 대 한 대가를 받을 수 없었던 工匠들이 관청을 이탈하여 관영수공업은 전반적으로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佛具類나 사원 내 생활용구 등 자체 내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운영되던 사원수공업은, 고려후기 사원전을 기반으로 한 막대한 경제력의 확보와 관영수공업장에서 이탈한 전문인력의 흡수를 바탕으로 그 규모 가 확대되었다. 사원은 특히 제지수공업에 큰 관심을 가졌다. 이는 사원 스스로 가 불경의 간행이나 印經 등에 쓰일 많은 종이를 필요로 하였기 때문이다.

고려후기 관영수공업이 붕괴된 상황에서 국가와 민간의 종이 수요는 더욱 증 가하였다. 사원은 독자적인 조직을 바탕으로 하는 僧匠制적인 성격과 아울러 準 官匠制적인 생산 활동으로 관영수공업을 대신하여 활발히 종이를 생산하였다.

Ⅲ장에서는 고려후기의 종이 수요처를 국가․사원․민간의 세 부문으로 나누 어 수요의 규모를 살펴보았다.

국가의 종이 수요는 주로 元에 대한 공납지의 증가와 서적의 간행에 의해 이 루어졌다. 중국에 대한 종이의 공납은 宋代에서 元代에 이르기까지 고려 전시기 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고려후기에 들어서면서 막대한 양의 종이가 공물로 반출 되었다. 국가의 서적 간행과 관련해서는 중앙의 秘書省과 각 지방 관서가 긴밀한

협조를 이루어 사서, 과학서, 교육서, 유교서 등의 서적을 활발히 간행하였다.

고려시대의 사원은 가장 뛰어난 인쇄술을 보유한 서적의 출판 장소였다. 전국 에 분포한 사원은 자체적으로 판각 능력을 보유하고 다양한 경전을 간행하였으 며, 간행 후에는 대규모로 유포가 이루어졌다. 특히 국가적 사업이었던 대장경의 조성과 관련해서는 판각 및 인출 과정에서 막대한 종이가 소요되었다.

민간에서는 문인과 학자들 간에 개인문집의 간행이 성행하였다. 문집은 저술된 후 저자의 사후에 후손들에 의해 간행이 이루어졌는데, 고려시기에 간행된 문집 의 수도 적지 않았고 편찬의 규모도 컸음을 알 수 있었다.

국가의 전반적인 종이의 수요는 고려후기로 갈수록 더욱 증가하였는데, 이 시 기의 종이 수요의 규모를 살펴봄으로써 사원 제지수공업의 생산력과 기술력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Ⅳ장에서는 고려후기 확대된 사원의 제지수공업이 조선전기의 변화된 환경 속 에서 어떤 형태로 제지수공업을 계속하고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조선은 건국 후 강력한 억불책을 시행하여 사원의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는 한 편, 급증하는 종이의 수요에 대비하기 위하여 고려 말 와해된 관영 제지수공업을 복구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造紙所와 官營紙所로 이루어지는 京外紙匠體制를 확 립하였고, 倭楮를 도입하고 官楮田을 운영하는 등 종이 원료의 생산에도 직접 관 여하며 원활한 종이의 공급을 위해 노력하였다.

국가 주도의 관영수공업이 운영되는 가운데 사원의 제지수공업이 중단된 것은 아니었다. 먼저 국가는 수공업 관청의 정비 과정에서 사원의 뛰어난 제지 기술을 활용하고자 사원 인력을 官工匠으로 충원하였다. 또한 관영 제지수공업 체제가 완비된 후에도 종이 원료인 닥과 인력의 부족으로 종이의 수급은 원활하지 않아 대규모의 서적 간행이나 인쇄사업에 승려들을 동원하였으며, 사원 자체를 제지 수공업장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한편 묵재일기 를 통해 조선전기 사원의 제지수공업 실태를 파악할 수 있었 다. 묵재일기 에는 안봉사의 승려들이 종이와 닥을 官에 공납하거나 관영지소에 동원되어 종이를 만드는 기록이 다수 보이는데, 일기를 통해 국가가 공물 부과와 노동력 동원 등의 방법으로 사원의 제지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원의 제지전통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신라 경덕왕대에 간행된 大方廣佛 華嚴經 序에는 한 승려가 寫經紙를 얻기 위해 향수를 뿌리며 닥나무를 키웠다 는 기록이 전한다. 고려시대 사원의 제지실태에 대해서는 기록이 부족하지만 고 려 초부터 전국에 분포한 사원들이 판각능력을 보유하고 스스로 경전을 간행하 였던 사실이나, 대규모의 국가적 사업이었던 대장경의 조성 및 印經작업이 사원 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사실을 통해 사원 제지수공업의 기술력과 생산력을 엿 볼 수 있다. 사원에서 이루어진 빈번한 간행사업은 사원 자체 내의 제지수공업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려후기 수공업적 기능과 규모를 확대하고 활발히 종이를 생산하던 사원은 조선의 건국과 함께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게 되었다. 건국 초 태종은 국가의 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고려 말 그 수가 확대된 사원들을 대대적으로 정리하 여 242寺만을 남겨 두었다. 이후 세종은 다시 36寺로 사원을 통합하였는데, 이것 은 인근 小寺를 末寺의 형태로 흡수한 것으로 명종 연간에 사원수는 다시 395寺 로 증가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통폐합 과정에서 국가는 사원의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여 국가의 재정과 인력으로 활용하였다. 한편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고 억불책을 단행하면서도 국가가 공인사찰들을 남겨놓은 것은 불교가 여전히 종교 적인 이념으로 숭신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국가의 운영에 도움이 될 만한 사원들을 존속시킴으로써 사원이 가진 다양한 기술력을 활용하기 위해서였 기도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정은 선초 궁궐의 조성이나 도로 건설 등 국가적인 토목공사와 기와․兵船의 제작 등 수공업적 기술이 필요한 役事에 승려들이 자 주 동원되었던 사실에서 확인된다.

사원의 제지수공업에 있어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국가는 관영 제지수공업 체제를 복구하고 급증하는 종이 수요에 대비하고자 하였지만 그 생산량은 관수 용으로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종이가 생활의 필수품으로 여겨 질 만큼 賻儀用이나 창호지․우산․의복의 제작 등 다용도로 활용되어 민간의 수요도 크게 증가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원은 종이를 생산하여 국가에 필 요한 종이를 공납하였고, 인근 지소에 동원되어 관수용 종이를 만들기도 하였다.

또 사대부의 요청으로 종이를 만들고 있었음이 묵재일기 의 기록을 통해서 확 인된다. 조선전기 사원의 제지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아직 민영

제지수공업이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와 민간의 급증한 종이 수요를 감안 하면 그 생산량이 적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전기 사원의 제지 활동은 자체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이루어 졌다기보다는, 국가와 민간의 급증하는 종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관영수공업의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라 생각된다. 고려시기 에 비해 그 규모가 많이 축소되기는 하였겠지만 이전 시기에 이은 조선전기의 단절됨이 없는 사원의 제지활동은 전란 이후 대대적인 紙役 부과로 이어져 국가 의 종이 수요를 감당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조선전기 경국대전 체제가 완성될 때까지 사원의 제지활동은 고려 의 전통을 잘 계승하면서도 국가가 필요로 하는 수요를 감당하였다는 점에 의미 가 있다. 또한 사원의 수공업 활동이 조선시대 공장체제를 완성하는 데 밑바탕이 되었다는 점과 수공업의 확대와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에 보다 큰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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