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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시각적 시각적 즐거움 시각적 즐거움 즐거움 즐거움

문서에서 일상적 기호에 대한 회화적 접근 (페이지 95-100)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일상의 대상이 예술의 영역에서 새롭게 인식됨으로서 우리는 그 대상에 대한 또 다른 감정이나 해석을 취할 수 있다. 그것은 이미 알 고 있는 것에 대한 심적 여유로움에서 시작되어 기쁨이나 즐거움 더 나아가 행 복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연구자는 이러한 방식의 작업을 통해 갖는 흥미 혹은 재미가 일상적 기호가 지닌 시각적 즐거움의 특성에 기인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근거로서 다음의 내용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는 동시대의 현대 미술을 통해 흥미로운 것이 갖는 이러한 미적 잠재력이 예술작품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917년 뒤샹(Marcel Duchamp, 1887 - 1968)69)이 남성용 소변기를 독립미술가협회의 제1회 전시 회에 <샘>이라는 이름으로 출품 했을 때, 이 기성품 즉 레디메이드70)는 아름다 69)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1887~1968) : 1887년 7월 28 프랑스 블랭빌에서 출생 하였다. 입체파 조각가 R. D.비용, 화가 J.비용의 아우이다. 파리의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공부 하면서 P.세잔의 영향을 받았고, 뒤이어 1911년에 입체파의 일파인 섹시옹 도르에 참가했다.

1911년 파리에서, 1912년 뉴욕의 아모리 쇼에서 동시성을 표시한 회화《계단을 내려오는 나 부2》를 발표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13년부터 다다이즘의 선구로 보이는 반 예술적 작 품발표를 시작, 1915년 도미하자 이듬해 뉴욕에 독립미술협회를 결성하여 반 예술운동을 일 으켰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파리에 돌아와 초현실주의에 협력, 1941년 A. 브르통과 함께 뉴 욕에서 초현실주의전을 열었다.

70) 레디메이드(ready-made) : : : 오브제(objet) 장르 중 하나. <기성품>이라는 뜻이다. 다다: (dada)시대의 M. 뒤샹이 일련의 상품에 서명하였을 뿐인 오브제를 <레디메이드의 오브제>

라고 부른 사실에서 유래한다. 다다나 쉬르리얼리즘(초현실주의)의 오브제는 P. 세잔으로부터 큐비즘(입체파)을 거쳐 20세기 미술에 대두한 물체에의 의식(意識)이 즉물적(卽物的)인 면에서 나타난 것으로서, 특히 초현실주의자들은 의식에 속한 영역의 상징으로서 오브제를 파악하려 고 하였다. 뒤샹의 《샘[泉(천)]》이라고 제목을 단 변기(便器)가 레디메이드의 전형(典型)이 며, 성적 암유(性的暗喩)가 내포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라 할지라도 작가 자신은 이렇게 적고 있다. <뮈트(뒤샹의 가명)가 이 작품을 자기의 손으로 만들었는지의 여부는 대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가 선택한 것일 뿐이다. 그는 생활의 일상적인 물품을 채택해, 새로운 제명(題名)과 새로운 관점에서 그 유용(有用)한 의미가 사라져 없어지도록 진열하였다. 즉, 어떤 물체에 대 한 새로운 사고(思考)를 만들어낸 것이다.> J.J. 루소의 <진리는 사물을 판단하는 정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 바로 그 자체 속에 있다>라는 사상이 산업사회의 레디메이드 속에서

운 것이라기보다는 독특한 관심을 이끄는 것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팅겔리(J.

Tinguely)의 <자동 폭발하는 기계 (self-destroying machine)>라는 작품 역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름다운 것으로서의 의미 보다는 흥미로운 것으로 먼저 다가온다. 미의 개념에 관한 전통적 관점에서 이러한 작품들을 논의하려는 사람 은 맹목적이거나 아니면 그 스스로 흥미로운 존재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 나 흥미로운 것을 일종의 아름다움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만약 우리가 플라톤 의 이론처럼 미를 이상적인 것의 실현으로 정의한다면, 흥미로운 것 역시 아름 다운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왜냐하면 흥미로운 것 역시 그것이 비록 내용이 의미 없는 이상이라 할지라도 어떤 식으로든 이상을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흥미로운 것은 무한한 자유의 이상화(idealization)를 입증해 주는 것이다.71)

이러한 흥미로움과 더불어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본질로서 ‘재미’에 대하여 생 각해 볼 수 있다.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윌리엄 스티븐슨(W. Stephenson) 은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놀이 이론에 대한 개척자적인 인물이다, 그는 모든 커뮤 니케이션 이론에서 으뜸가는 관심의 자리에 놓아야 할 것이 바로 ‘놀이’라는 자 신의 소신을 밝히고 있다. 때문에 그의 이론의 핵심에 놓여 있는 것은 ‘환희, 위 트, 재미, 즐거움, 자유, 공상, 절정 그리고 순수한 환타지와 함께 약간의 장난 기’ 등이다.72) 예술과의 관계에서도 놀이태도의 이러한 ‘재미’라는 요소는 두 가 지 본질적인 즐거움을 통해 특징지을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소통의 즐거움 (communication-pleasure)’이고 또 하나는 새로운 지각을 통한 ‘다시 봐도 새로 움(double-take of recognition)’으로서의 즐거움인 것이다. 73)

소생했다고 할 수 있다.

71) K. 해리스,『현대미술 -그 철학적 의미』, 오병남, 최연희 역 (서울 : 서광사, 1988), p. 98.

72) William Stephenson, The Play Theory of Mass Communicati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7), p. 200.

73) 박성봉, op. cit., p. 286.

1. 1. 1.

1. 소통의 소통의 소통의 소통의 즐거움 즐거움 즐거움 즐거움

윌리엄 스티븐슨에 따르면 대중문화를 통한 상호소통에서 ‘재미를 찾는다’ 라는 것은 심리학자 토머스 자즈(T, Szasz)의 용어로 ‘소통의 즐거움’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고도로 발전된 주관적인 놀이의 한 형태로서 ‘소통의 고통(communication-pain)’에 대조되는 대화의 형태이다. 다시 말해 ‘소통의 즐 거움’은 자아가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에게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고 그 저 대화를 나누는 오로지 즐거움만을 위해 대화하는 이들의 전형적인 방식인 것 이다. 반면에 ‘소통의 고통’은 행위 하라는 명령, 도움을 요청하는 고함, 요구, 설득 또는 지식의 추구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당사자들에게 변화를 일으키려 는 의도를 가진 소통방식인 것이다. 놀이 태도의 ‘재미’라는 요소에서 이러한 ‘소 통의 즐거움’으로서의 성격은 버나드 로젠버그(B. Rosenberg)의 ‘기꺼이 속아 주려는 자세(willing suspension of disbelief)’에 대한 의미의 이해와 충돌하게 된다. 로젠버그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상상력의 고상한 한 형태로서 노력적인 참 여(effortful participation)에 결부시키려 하고 있다.74) 이것은 아마도 미덕이란 노력 속에 있는 것이고, 노력이 없는 즐거움은 의혹의 시선으로 봐야 한다는 오 래된 관념이 노골적으로 되풀이 된 경우일 것이다.75) 보편적인 놀이태도에 있어

‘재미’의 요소는 특히 인간적인 성숙함과 유치함 사이의 소극적인 이분법과 관련

74) Bernard Rosenberg, Mass Culure in America, B. Rosenberg & D. M. White (eds.) 1964. p.9.

75) 물론 버나드 로젠버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재미’를 찾는 한 개인이 아니라 그러한 개 인들을 지배하는 그래서 그들이 교양을 갖춘 문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오락 산업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버나드 로젠버그에 비해 윌리엄 스티븐슨은 개인과 오락산업의 관계에 관해 좀 더 희망적인 미래의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놀이의 ‘소통의 즐 거움’이라는 성격에 대체로 자기 향상적 이라는 측면이 있다는 사실은 제쳐 두고, 재미를 찾 으려는 한 개인의 강력한 요구에는 ‘기꺼이 속아 주려는 자세’라는 태도의 현존이 드러나 있 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문화적인 것으로서 대체로 오락산업 그 자체보다 더 깊은 곳에 위 치하고 있는 한 개인의 삶의 문제이기 쉽다.

하여, 우리의 소위 저속하고 열등한 부분이 고상하고 우월한 부분에 봉사하게끔 억압되고 있다. 그러나 성숙함과 유치함이라는 인간적 두 자아는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정신생활은 이 둘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으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거창히 말하자면 우리의 자아는 문명의 발전 을 지향하는 전진적인 문화의 이상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반면 퇴행적이고 원시 적인 충동은 문화적 이상의 이름으로 부정되고 있는 것이다. 연구자는 이러한 인간의 내적 작용에서 부정되며 원시적이고 유치한 것이라 폄하되는 ‘재미’의 의 미를 일상적 기호의 형식으로 표현함으로서 극복해 내고자 한다.

2.

2. 2.

2. 새로운 새로운 새로운 새로운 지각 지각 지각 지각

새로운 지각으로서 ‘다시 봐도 새로움(double-take of recognition)’을 통한 즐 거움에 관해서는 웨인스 하이머(J. C. Weinsheimer)가 독일의 해석학자 한스 게 오르크 가다머(H.-G. Gadamer)의 『진리와 방법』(1960)을 분석한 연구논문을 통해 잘 지적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을 반복을 통해 식별 해낼 수 있게 됨으로서 느끼는 즐거움만이 전부는 아니다. 다시 봐도 새로운 것 의 즐거움은 이를테면 소격(疏隔)76)화된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알아 본다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알게 되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77)라고 말하고 있 다.

물론 우리가 재미를 확실하게 느끼기를 원한다면 ‘거리를 두거나 낯설게 됨 (being defamiliarized)’에 의한 재미는 ‘친숙하게 됨(being familiarized)’에 의

76) 소격 : 왕래가 없어 서로 멀어짐

77) Joel C. Weinsheimer, Gadamer's Hermeneutics : a reading of Truth and Method (Yale Univ. Press, 1985), p. 109.

한 재미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놀 이가 재미있게 느껴지기 위해서는 그 놀이 자체가 근본적으로 편안하고 친숙하 게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다.78) 우리가 이렇듯 일상의 삶에서 알고 있는 대상을 통한 예술을 만날 때, 우리는 옛 친구와의 만남과 비슷한 그런 종류의 어떤 편 안함을 느낄 수 있다. 만일 그러한 예술이 반복되는 체험에 근거하면서도 신선 한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그 체험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값진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을 통해 ‘다시 알아봄의 즐거움’이란 이러한 맥락에서 소위 ‘단 순히 알아봄으로서의 즐거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이러한 종류의 편안하면서도 신선한 ‘느낌’ 일 것이다. 대부분의 진지한 예술가들은 이전에 제시되거나 알려 지지 않은 대상 혹은 체험영역을 찾고자 하며 이러한 종류의 편안함을 단념하고 무시함으로서 그것이 지닌 가치를 인정하거나 새롭게 재발견하기를 포기한다.

하지만 연구자는 오히려 이러한 일상에서의 대상이 갖고 있는 편안함에 바탕을 둔 일상적 기호가 지니는 의미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것은 익숙함을 넘어 다시 지각됨으로서 새롭게 느껴질 수 있는 또 다른 창조의 의미를 갖는 가능성에 대 한 접근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흥미로운 것 혹은 재미를 통한 시각적 즐거움이 갖는 함 정 또한 존재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작품을 감상하거나 제 작할 때, 오로지 흥미로운 것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게 된다면 결국 흥미로움에 대한 갈망은 이미 제시된 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항상 새로운 것만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불만을 낳게 된다. 또한 흥미로운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 아들여지게 되는 순간 사람들은 더욱 강한 자극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그들은 끝없이 신나고 짜릿한 것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이러 한 끝없는 욕구로 인해 흥미로움이 충격적인 것에 자리를 양보하게 될 것이고 결국 충격적인 것마저 당연한 것이 된다면 마침내 작품은 어떤 식으로도 감동을

78) 박성봉, op. cit., p. 288.

줄 수 없는 무미건조한 대상으로 추락하게 되어 권태와 무감각만이 남게 될 것 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시각적 즐거움만을 목적으로 하는 지각 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며 더불어 다양한 관점을 통해 시각적 즐 거움의 의미를 찾는 접근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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