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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의미와 서양 인식

문서에서 저작자표시 (페이지 62-65)

본 장에서는 작품이 서술하고 있는 세계인식 변화의 의미를 분석하고자 한 다. 이를 통해 해양성을 드러내 보일 수 있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수천 년 동안 대륙적 사고에 파묻혀 있던 明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바다 건너의 세계 는 미지의 공간이었다. 따라서 선박에 몸을 싣고 서양으로 향하는 과정 자체가 모험이자 해양성 탐구의 단초이기에 西洋記 에 나타난 서양의 이미지나 서양 에 대한 인식은 해양성을 추출하는데 매우 유용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할 것이 다. 이에 본장에서는 서양에 대한 이미지와 인식 그리고 그것이 펼쳐지는 이동 경로를 통해 西洋記 의 세계인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작품은 鄭和가 함대를 이끌고 옥새를 찾으러 서양 제국의 다양한 지역을 정 벌해 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말하고 있는 ‘서양’의 의미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오늘 날 보통 서양이라 하는 것은 대체로 유럽 과 북아메리카 英美 문화권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明나라 때 ‘서양’의 개념은 지금과 사뭇 다르다. ‘서양’의 구분은 宋代부터 등장하는데, 元代에서 는 공통되는 ‘南’자를 생략하고 海를 洋으로 바꾸어 동남해를 동양, 서남해 를 서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당시의 ‘동양’에는 자바126)도 포함 되어 있었는데, ‘明代’에 이르러 서양으로 편입되었다. 이는 방위의 관념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며, 유럽 지리학의 영향을 받아 ‘廣東의 正南쪽’이 보르네 오섬 북해안의 ‘文萊國’에 해당한다는 것이 알려졌고, ‘廣東-文萊’를 잇는 선으로 ‘동서양을 구별하게 된 결과’127)이다. 明나라 시기의 ‘서양’은 文 萊國 서쪽의 동남아와 인도 연해안 지역을 가리킨다.128) <지도1>을 통해 더욱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126)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11220&cid=40942&categoryId=33136 127)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84%9C%EC%96%91

128) 百度사전. https://baike.baidu.com/item/%E8%A5%BF%E6%B4%8B/79893?fr=aladdin

<지도1>129)

사전에서 ‘서양’에 대한 정의로 보면, 明나라 초기 남양 범위에 대한 구분 은 기본적으로 元代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르네오(오늘의 칼리만탄 섬)의 文萊國을 기점으로 文萊의 동쪽을 동양이라 하고 文萊의 서쪽 을 서양이라 한다. 그러나 鄭和의 항해를 기록하고 있는 西洋番國志 와 瀛涯 勝覽 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西洋番國志 에서 南浡里國에 대한 소개에 따르면“나라의 서북쪽 바다 중턱에 산봉우리가 평평한 높은 산이 있는데 帽山이라 한다. …… 산의 서쪽이 바로 서양이다. …… 서양을 왕래하는 모든 배는 이 산을 기준으 로 한다.

(國之西北海中有一大平頂高山名帽山, …… 山西大海卽西洋也 …… 凡西 洋過來船俱收此山爲準)”130)

나라의 서북쪽의 바다 중턱에 산봉우리가 평평한 峻山이 있는데 帽山 (오늘날 수마트라의 서북 바다에 있는 Weh IsLand)이라 한다. 산의 서쪽

129) http://www.sohu.com/a/147755357_698472

130) [明]鞏珍 저, 向達 교감, 西洋番國志 , 中華書局, 2000, 北京, p.21.

바다가 바로 서양이다. 서양을 왕래하는 모든 배는 이 산을 기준으로 한 다.

(國之北海內有一大平頂峻山, 名帽山. 山之西大海, 正是西洋也. 西來過洋 船只俱投此山爲準)”131)

상기 두 자료를 통해 보면 鄭和의 항해에서는 南浡里國의 서북쪽에 위치한 帽山의 서쪽 지역을 서양으로 보고 있다.

작품에 따르면 鄭和의 함대는 長江의 어귀로 내려가 金山(지금의 상해上海市 서남쪽의 杭州灣 기슭에 해당하는 항구도시)을 지나 孟河(지금 江蘇省의 武進 를 지나는 장강의 강변에 있는 작은 마을)가 나오고 여기를 지나서 계속 나가 면 바다이다. 배를 타고 남쪽으로 향하면 오른쪽은 浙江과 福建 일대이고, 왼쪽 은 일본 扶桑國이고 앞쪽은 流球國이다. 일본과 流球國을 지나 서쪽으로 향하 면 오른쪽은 廣東과 廣西, 雲南, 貴州이고 왼쪽은 交趾國이다. 여기를 지나 앞 쪽이 바로 軟水洋이고, 거기를 지나면 吸鐵嶺이 나타난다. 여기를 지나야 서양 의 바다로 들어갈 수 있다.132) <지도2>를 통해서 보면 강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다시 서양바다로 들어가는 이동경로를 더욱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지도2>133)

131) [明]馬歡 저, 萬明 교감, 明鈔本 瀛涯勝覽 校注 , 海洋出版社, 2005, 北京, p.50.

132) 羅懋登, 위의 책, p.183 참고.

작품 속에서 軟水洋과 吸鐵嶺을 지나서야 서양바다가 나온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지역은 실존하고 있는 지역이 아니다. 그러나 작품 속 交趾國을 분기점으로 북쪽은 동양이고 남쪽은 서양 바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전에서 는 文萊國을 기점으로 동양과 서양의 구분했고, 西洋番國志 와 瀛涯勝覽 에 서는 南浡里國의 서북쪽을 서양으로 보고 있다. 서양의 지역 구분에 대해 서로 다른 세 가지의 기준으로 갈려졌다. 하지만 鄭和의 항해를 기록하고 있는 서양 은 西洋番國志 와 瀛涯勝覽 의 기록을 기준으로 한다. 이러한 와중에 羅懋登 이 지역 구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실수인지 일부러 이렇게 구분한 건지에 대해서는 입증할 방법이 없다. 작가는 交趾國의 남쪽 지역에서부터 서인도양까 지의 여러 국가를 서양 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위의 <지도2>를 참고해보면 앞 에서 설명했던 文萊, 南浡里國과 交趾國을 기준으로 서양을 구분하는 것에 대 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작품이 사실에 기초하고는 있다하더라도 허구의 산물이므로 작품 내용을 실 제적 지도와 무리하게 일치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작품적 공간을 통 해 이야기를 풀어 가고 있는 작품적 구성만 이해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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