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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고려의 여진정벌을 전후한 시기 고려와 주변국간의 관계와 고려 대외정 책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11세기 중엽 이후로 동북아의 양대 축이었던 遼·宋이 동 요하고 女眞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동북아 주도권 다툼을 위한 각 국의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고려는 이들과의 관계에 적극 대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종은 內治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송과의 통교를 재개하고, 여진에 대해서는 회유와 강압책을 병행하면서 기존의 遼 一國과의 조공책봉관계의 틀을 벗 어나 遼·宋·女眞과 다원적인 외교관계를 맺었다.

당시 송은 神宗代 王安石을 중심으로 新法을 실시함으로써 富國强兵을 꾀하였고, 동시에 遼를 제압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聯麗制遼策’을 펴 나갔다. 북방의 요 또한 고려가 宋·女眞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고, 또 여진의 세력이 점차 강성해지는 것에 위협을 느끼고 있던 상황에서 고려와의 관계를 안정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때문 에 地界劃定, 榷場의 설치와 같은 문제를 일으킴으로써 고려를 견제하는 한편, 고려 의 세공을 면제해 주거나 대량의 하사품을 보내어 위협과 타협의 양면작전을 구사하 였다. 이러한 宋·遼의 처지를 간파했던 고려는 문종대 대외정책에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할 수 있었고, 동북아 질서 재편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宣宗 5년 고려가 요와의 榷場문제를 매듭지으면서 일단락되 었다. 이후로 양국 간에는 더 이상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고, 오히려 고려는 이제 遼와의 관계를 긴밀히 하는데 주력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본문에서 보았던 것 처럼 숙종 즉위초부터 요에 대한 사신파견에 고려가 적극적으로 바뀌었다는 것과 사 행횟수가 크게 증가한 것을 제외하고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고려 는 요와의 관계를 공고히 함으로써 북방에서의 고민거리였던 여진을 장차 정벌하는 데 요의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선종대 대요우위정책으로의 전환은 이러한 목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숙종은 즉위 이후로 문벌귀족의 발호를 막고 미약해진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 여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숙종의 측근세 력을 중심으로 南京建設, 錢幣流通策, 別武班의 설치 등 諸 政策이 시행되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여진에 대한 2차 정벌이 단행되었던 예종대 초반까지 계속되었다. 그 러나 이러한 정책결정 과정에서 대부분의 문벌귀족은 소외되어 불만이 커져갔고 밖

으로는 여진세력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강성해지고 있음을 의식하게 되었다. 고려 는 이러한 대내외적 위기를 맞아 숙종 9년부터 예종 4년까지 여진정벌을 단행하였 다.

고려의 여진정벌은 문종대 이후로 宋·遼·女眞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면서 동북아 시아에서 외교적 우위를 획득한 위에 영토실리를 추구하려 했던 고려의 의지를 적극 반영한 것이었다. 또 국왕권 우위의 정치를 실현시키려는 다양한 모색이 계속되었던 국내정치의 연장선상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도 있겠다. 한편 대외적으로는 요와 송이 모두 복잡한 국내정세로 인하여 고려나 상대국에 대한 관심이 덜할 수밖에 없 었던 상황에서, 여진의 강성함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던 여·요간의 필요에 의해 단 행된 것이었다. 때문에 이 시기 麗·遼관계는 더욱 긴밀해졌고, 상대적으로 宋에 대 해서는 다소 소극적이었으나 계속해서 사신을 파견하는 등 각 국과의 안정된 관계유 지에 힘썼다.

그러나 예종 4년 여진정벌이 실패하면서, 숙종·예종대 초 개혁의도는 방향을 잃 게 되었고, 이를 대신하여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새로운 개혁 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 遼의 쇠퇴와 金의 건국으로 인한 대외관계에서의 일대 전환 이 절실한 상황에서 예종은 송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송의 선진문물을 대 대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이를 계기로 유교이념에 입각한 禮制정비를 본격화하는 방향으로 정국을 운영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고려는 송과의 적극적인 관계가 필요 했던 것이다. 한편 송은 새로이 흥기하고 있는 여진과 연합하여 遼를 견제하고자 하 는 외교적 목표를 위해 고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러한 상호 이해관계가 합치되면 서 양국 사이에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다. 요컨대, 선종대 이후로 예종대 초반까지 요와의 관계를 긴밀히 하면서 상대적으로 宋과는 소원한 관 계를 맺어 왔던 고려는 예종대 이후에는 대외정책을 親宋정책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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