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 중에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지만 기꺼이 인정 하기 힘든 감정이 시기심이다. 자신이 가지지 못하고 향유하지 못하는 것 을 타자가 가지고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을 시기심이라고 정의한다면 그것 은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의 가슴에 대해 느끼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Freud)는 어린 소녀의 남근 선망(penis envy)을 이야기 하며 여 성의 열등감과 결핍을 일반화했지만, 클라인(Melanie Klein)은 시기심을 삶의 시작에서부터 작동하는 타고난 충동으로 본다(Joffe 534). 유아가 젖 을 주는 어머니의 가슴에 대해 느끼는 최초의 시기심은 그 대상을 어머니 에게 옮기며 적절한 만족과 결핍의 상황을 동시에 경험할 때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클라인에 따르면 시기심과 증오의 경험은 모든 사람에 게 공통적이지만 그 감정들의 정도나 강도는 즐거움과 만족의 정도에 따 라 다양하다. 남성에게도 여성의 임신, 출산 능력 혹은 모성애에 대한 시 기심이 있으며 단지 여성보다 성공적으로 승화되었을 뿐이다(Horney 27-38). 결국 시기심이 그처럼 본능적인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 기심이라는 단어를 긍정보다는 부정에 가까운 것으로 분류하고 그것을 느끼는 것조차 은밀하게 숨기도록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모든 것 을 만족시켜 주었던 경험으로부터 무언가가 부족함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시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 과연 그 감정은 비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감정과 도덕이라는 단어는 서로 그 영역이 다른 것처럼 보이나 유독 시기심이라는 감정은 도덕적 정당성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슬프거나 기쁜 감정이 도덕적이라거나 비도덕적이라고 판단하지 못하지 만 우리가 느끼는 시기심의 정당성은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시기심의 대상과 정도의 적절성이 시기심의 정당성을 판단하도록 한 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가진 자에게 시기하지 않는다. 자신은 가지지 못했지만 자신의 삶에 가치 있다 고 생각하는 것을 가진 자를 시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언제나 시기심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교육받으며 그 감정이 정당한 경우에 조차도 스스로 죄책감이나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인간이 유아기부터 느낄 수밖에 없는 원초적 감정으로서의 시기심은 그 적절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사악한 시기심과 온순한 시기심 혹은 파괴적 시기심과 긍정적 시기심을 분류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 수 있는가?
누스바움(Nussbaum)은 시기를 “원초적”(primitive)이라고 말하며 그것 을 버리는 것은 도덕적 진보라고 주장한 바 있다(212). 그러나 응가이 (Sianne Ngai)는 주체의 시기심이 자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것 혹은 하찮은 것으로 생각되어 과민반응, 망상적 혹은 히스테리적인 것으로 부인 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시기심을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공개 적으로 인식하거나 반응하는 유효한 형태로 인정하는 문화적인 인식이 부 족하다는 것이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이 언급한대로 진정한 정치적 충동의 가능성이 없는 “사적인 불만족”(private dissatisfaction) 혹 은 “정신적인 결함”(psychological flaws)으로 축소됨으로써 타자를 향한 비판적인 주체로서의 잠재성은 배제한 채 결핍의 자아를 반영하고 남성 보다는 여성적 성격으로 변형되었다(128-29). 시기심은 인류학적으로 원 시시대에 사유재산을 가지기 시작할 때부터 인간이 느껴왔던 오래된 감 정이지만 신분제도와 사회적 지위의 변화의 유동성이 적었던 과거 그 어 느 때보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일상적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과도한 경쟁사회와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언제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나 재산 그리고 능력들을 스스로 혹은 타자에 의해 끝없이 비교하고 평가받고 있으며 그것을 곧 사회적 성공이나 자기 가치 그리고 현실의 행복과 연결시킨다.
버틀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시기심을 불행의 가장 강력한 원인 중 하나라고 말하며 칭찬이나 찬양으로 그것을 대체할 수 있다고 했지만 과연 그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할까? 시기심이 행복에 대한 장애물 인 것은 확실하지만 우리는 과연 자신의 주변인이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가지지 못한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해 아무런 시기 없이 칭찬으로만 대할 수 있을까? 스스로가 불확실하고 부적절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항상 자신 의 외부를 바라보며 자신이 가진 것과 느끼는 것을 타자가 가진 것과 비 교한다. 그리고 시기심은 정당성과 자원의 공정한 분배에 대한 질문을 제
기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지고자 하는 것을 가지지 못 하게 되었을 때 패자에게 침범하는 시기심은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도 없 으며 때로는 그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생각하여 시 기심과는 다른 형태의 반응이나 감정으로 발현된다. 그 반대의 형태인 찬 탄과 칭찬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그 칭찬에 포함되어 있는 시 기심은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무의식적 시기심은 표면적으로는 온화하지 만 악의적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시대 사회에서 어떤 분야에서건 서로를 비 교하는데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시기심은 자기 가치와 인생의 중요한 목 표들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아무리 우월한 위치에 있는 대상이라고 할지라도 자신과 완전히 동떨어진 상황에 있는 사람을 시기 하지 않는다. 일단 어떤 상황에서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 시기심이 발동하게 되면 단계별로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어떤 분 야에서 자신의 처지와는 반대로 특정한 이익이나 가치를 누리고 있는 자 신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시기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우월하 다해서 적대감을 느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에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에 대해 스스로를 보호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라이벌 을 폄하하고 비방하기 시작한다. 호의적이지 않는 사회적 평가와 비교는 열등감과 수치심으로 이어지고, 실패한 욕망은 적대심과 공격성으로 표출 된다. 시기심을 타자에게 드러내지 않을뿐더러 스스로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하는 것은 그것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혐오적이라고 생각하 기 때문이다. 우울함과 의기소침, 분노, 파괴적 폭력 그리고 극단적으로는 살해에 이르기까지 시기심은 종종 표면적으로는 다른 형태로 드러나고 언제나 여성적 감정 그리고 노골적 혹은 암묵적 패자의 전유물이라고 생 각된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시기심을 여성 고유의 부정적 혹은 비도덕적 인 감정으로 분류하고 그것을 느끼는 주체의 도덕적 결함이나 무능력만 을 비난할 수 있을까? 경쟁심으로 이어져 긍정적 결과의 동인이 되는, 열 등감이나 적대심과 같은 고통이 없는 시기심은 없는 것일까?
본 논문은 90년대 미국영화 <위험한 독신녀>(Single White Female, 1992)1)와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 <여교사>를 중심으로 시기심을 단순히 여성들 간의 갈등관계의 표출이라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성별과
상관없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자기보존적 반응의 한 형태로 해석하고자 한다. 사회적, 문화적 전통에 따라 시기심을 단순히 여성의 감정으로만 분류해왔지만, 그것은 단순히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기보다는 인간의 타고 난 공통적인 감정이고 각 개인이 마주하는 상황과 상대방과의 관계에 따 라 여러 가지 다른 형태로 변화하고 작동하는 정동적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수치심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은폐되어 온 시기심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이 파괴적 결과로 이행되는 것을 방해하고 사회적으로나 개 인적으로 긍정적인 동인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