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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구제금융 이후의 재정운용

한국 정부는 오랫동안 정부예산의 운영에 있어 ‘세입내 세출’ 원칙을 지킨다는 이 른바 건전재정운영을 자랑해 왔다. 그러나 세입내 세출의 원칙은 예산에만 적용되 는 것이었으며 일반회계, 특별회계, 공공기금(외국환평형기금 등 4개기금 제외)을 포함하는 통합재정수지를 기준으로 하면 재정수지는 불균형이었다22 ). 그럼에도 불 구하고 1997년 말의 국채잔액은 28.6조원으로 GNP의 6.7%에 불과하여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었으며 차입금 (0.8%), 국고채무부담행위 (0.8%), 정부차관 (3.7%)까지 합한 순국가채무 (정부보증채무 제외)도 GNP의 12.1%에 불과하였다는 사실은 빠른 경제성장에도 힘입은 바 크지만 적어도 외견상 건전재정운영의 원칙이 단순한 구호 에만 그치지는 않았음을 입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2 3).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현 금주의 회계방식에 따른 심각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연금의 수지구조가 터무니없이 왜곡되어 있어 현 제도 를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엄청난 국민부담이 발생하게 되어 있다 는 사실이다24 ). 국민연금은 1988년에 시행한 뒤 20년이 되는2008년부터 본격적인 노령연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현금주의를 따르는 회계방식 때문에 당분간은 흑자를 보이고 있지만 연금보험금의 갹출에 따른 급여의무를 고려하면 현재가치로는 대규 모 적자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1977년에 이미 기금이 고갈된 군인연금은 1998 년에 7천억 원의 정부지원을 받았으며 1999년에는 적자가 1조원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공무원연금도 1995년 적자로 반전된 후 적자폭이 계속 늘어나 2010 에는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재원조달은 생각하지 않고 너그러운 급 여를 약속해온 사회보험제도의 구조적 결함으로 세입내 세출의 건정재정기조는 안 으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는 셈이다.

아무튼 재정운영 여건은 1998년부터 판이하게 달라지고 있다. 경제위기로 인하여

22) 통합재정수지는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70년부터 1992년까지는 대부분 적자였으나 1993 이후 한동안 국민연금 덕분에 흑자를 보였다. 황성현 (1996), pp. 218-222.

23) 자료: 예산청 (1998), pp. 348-349.

24) 국민연금재정의 장기적 건전성을 위해서는 급여를 대폭 줄이거나 기여를 높이거나 양자 를 조합하는 길밖에 없다. 참고로 현행 제도가 바꾸지 않는다면 국민연금 적립금은 2021년경에 최고값에 도달하였다가 2033년경에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료: 국 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 (1997), p 33.

실업자와 저소득계층의 보호를 위한 새로운 종류의 경상적인 재정지출이 늘어난 것 은 말할 것도 없고 재정금융구조조정, 기업구조조정, 예금자보호, 실업자보호, 중소 기업지원 등을 위한 국공채 발행, 출자전환, 부채탕감, 지급보증, 민간기업 외채에 대한 지급보증 등으로 재정부담은 1997년 말부터 급속도로 늘어났다. 이제 한동안 적자재정의 운영은 불가피하다. 낙관적인 예측을 하는 경향이 있는 정부도 2006년 이나 되어야 균형예산을 편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 국공채발행, 지급보증, 해외차입 등으로 재정기반이 급속하게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중장기적으로 공기업 민영화, 금융구조조정에서 취득한 부실채권과 금 융기관 소유지분의 처분, 세수입증대 등으로 구조조정과정에서 발행된 국공채의 상 당부분을 상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단기간에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 거나 예산의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여 반드시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 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1997년까지의 정부부채가 경제규모에 비 해 매우 작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구조조정이 성공한 이후에는 경제가 다시 빠른 속도로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제성장이 정부채무의 부담에 미치는 효과는 정부의 동태적 예산제약을 분석하 면 알 수 있다. 즉, t 기의 정부채무를 Bt , 이자율을 it , 지급이자를 제외한 재정 지출을 Gt, 조세수입을 Tt , 국민소득을 Yt , 경제성장률을 gt 라고 하면

Bt +1-Bt= it Bt+Gt-Tt

가 성립하고 정부채무/국민소득 비율이 증가하지 않을 조건은 ( Bt +1-Bt)/Bt ≤ g , 즉

it + ( Gt-Tt)/Bt < gt

이다. 따라서 구조조정 이후 경제성장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진다면 정부채무에 대 한 이자지급 후의 재정적자(it Bt + Gt-Tt)가 양의 값을 가져도 경제규모에 비한 정부부채의 부담은 늘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2 5).

25) 반대로 구조조정이 지연되어 성장률이 낮아지면 정부예산이 기초수지에서 흑자를 보여 도 ( Gt-Tt < 0 ) 경제규모보다 부채가 더 빨리 증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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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 정부부채가 과도해 지지 않도록 재정을 운영하는 것은 일단 건전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단기적으로 재정의 기초수지 흑자로 국공채를 상환 하기 위해 무리한 노력을 기울일 이유는 없다. 중단기적으로 보다 중요한 것은 재 정이 국민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고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다. 이를 위해서는 좁게는 조세와 예산을 포괄하는 재정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 을 통해 조세의 중립성과 예산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나아가 공정하고 효율적인 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정경유착과 관치경제의 폐습을 청산하고 정부개혁을 통하여 정책의 질적 수준을 높이며 정부, 금융, 기업 모두가 시장원리에 부합되고 투명하며 공정한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새로운 경제질서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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