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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 서술되어 있는 말갈관련 기록만을 가지고 ‘말갈’의 성향을 논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많은 양의 󰡔삼국사기󰡕기 록을 미처 확인해보지도 않고 다른 사서와 다르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는 ‘위말갈설’이나 한국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서술되고 있는 ‘중 국의 지방 정권에 대한 비칭’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하게 고찰

할 필요가 있다. ‘동이’의 의미에서도 그렇듯이 동이를 중국에서 지 역적 구분을 포함하여 주변민족을 지칭하는 것은 맞지만57) 그것이

‘중화주의’에 의거하여 주변국을 모두 멸시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으 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국가운영체제의 입장에서 보면 자국 중심과 자국의 자존심을 세우는 것은 국제관계에 있어서 일정부분 필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것에 지엽적으로 치중하여 상대국을 오해하 기 시작하는 것에서 국제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 더불어 현재 상호 국가간 다방면에 걸쳐 국제적인 정치, 경제, 문화의 협력관계가 중요 시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지양해야할 부분으로 보인다. 또한 사료의 인용과 해석에 있어서 역사가의 사관이 얼마나 중요하고 후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우리는 정약용의 󰡔강역고-말갈고󰡕, 특 히 그의 ‘위말갈설’에 의해서 되새겨 볼 수 있다.

일부에서는 말갈인식과 마찬가지로 최근 중국의 정치이념이 ‘다민 족 통일국가’로 바뀌면서 현재 중국내의 모든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 시키는 작업이 수행되면서 거란사가 주목받기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이러한 점은 중국학계에서 거란의 범위가 북으로 몽골과 시베리아, 서로는 중앙아시아지역까지 넓게 분포하며 동으로는 한국의 동해까 지 이르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 역사의 연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 는 거란사만큼 효과적인 역사증거가 없으므로 거란사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진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요사󰡕, 󰡔고려사󰡕, 󰡔세종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아방강역고󰡕, 󰡔추리도󰡕 등 자료와 고고학 자료 분포도를 분석한 결과 거란의 동쪽 국경이 오늘날 중국 요녕성 중동 부 지역으로 확정하기도 하는 견해도 있다. 또한 발해의 위치 역시 한반도 북부 지역이 아닌, 만주지역에 위치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고려서북방계의 영역문제와 이에 따른 양국간의 문제도 새롭게 연구 되어야 할 것이며 발해와 여진사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

57) 송옥진, 「동이의 의미에 대한 문헌연구」, 󰡔선도문화󰡕 14, 2013.2.

게 된다고 하였다.58)

마찬가지로 ‘말갈’에 대한 연구도 기본 사료 해석을 한국과 중국 의 사료를 두 측면에서 꼼꼼히 검토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더불어 기존의 중국사서에만 의존하였던 것에서 벗어나 말갈에 대한 많은 정보를 수록하고 있는 󰡔삼국사기󰡕의 내용을 재고하는 것은 계속되는 동아시아, 특히 한중 교류의 흐름을 더욱 원활히 하는 데 있어 밑거 름이 되는 선행작업이 될 것으로 생각되어 이번 졸고 󰡔삼국사기󰡕 말 갈기록에 대한 검토를 해보았으며 향후 부족한 부분은 더 채워 나가 야 할 것이다.

58) 복기대, 「중국학계의 거란 동쪽 국경 인식에 대하여」, 󰡔선도문화󰡕 14. 2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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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