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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홍류동 계곡 석문 ‧ 석각 자료집
-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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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동천"
가야산 홍류동계곡은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특히 봄과 가을에 꽃과 가을 낙엽이 계곡을 붉게 물들여 홍류동이라 명명하였다.
보통 유가, 도가에서 자연을 벗삼는 도인들이 사는 곳을 홍류동천, 옥류동천이라 하였다.
1909년 환경스님이 사자문 밑에 옥류정이라는 정자를 세우고 그 주춧돌에 옥류동천이라 새겼다. 1936년 대홍수 때 정자는 유실되었고 지금은 주춧돌과 석문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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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가야산 홍류동 계곡에는 아미타부처님 명호가 많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해방 이후 첫번째 해인사 주지로 계셨던 환경스님이 1906년에 구선암 바위에 직접쓰고 새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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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 마니 반메훔"
환경스님이 쓴 글이다.
우리나라 불교계에서 가장 많이 외우는 진언 가운데 하나로 주문을 말하면 모든 죄악이 소멸되고 모든 공덕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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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나무미륵존불"
비구니 회진이라는 글씨를 보았을 때 스님의 발원으로 새겨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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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서"
비구니 연안
정법계주(법계를 밝히는 진언) 옴남 호신주(몸을 보호하는 진언) 옴 치림
육자대명왕주 옴마니반메훔 원이차공덕 보금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색극락국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사바세계 중생들의 극락 왕생을 발원하며 새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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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환경스님 회고록에 직접쓰고 새긴것이다 라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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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
해서체로 각인되어 있다. 아래에는 비구니도삼이라고 쓰여져 있다.
1928년 약수암 주지를 지냈던 비구니스님으로 글을 쓴 환경스님에게 화주공덕을 지은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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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회상불보살"
환경스님이 쓴 글로 삼신불(법신, 보신, 화신) 중 하나이다. 법신 비로자나부처님(화엄회상), 보신 아미타부처님(미타회상), 화신 석가 모니부처님(영산회상)을 말한다. 삼신 부처님이 홍류동계곡에 있다는 것은 이곳이 정토세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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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정 석주"
정행타불접연대 / 이욕염왕인옥쇄
행이 맑으면 아미타부처님이 연화장세계로 안내하고 욕심이 많으면 염라대왕 지옥으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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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원표"
원표는 지역마다의 거리를 제시하는 기준점으로 일주문 원표는 고령, 진주, 거창 등 주변지역의 거리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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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석주"
법보종찰 해인사와 선교양종대도량 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어 해인사의 성역을 나타내고 표시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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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탑선원 외나무다리 하마비"
교기통마우 / 후인신차규 / 고래가일조 / 신물가첨보
해석: 다리에 소와 말이 지나는 것을 꺼림이니 후세 사람들은 이를 본보기 삼을지니라. 옛날부터 한 가닥으로 건너지름이니 삼가
첨가하거나 덧붙이지 말도록 하라.
불기 2975(1948년) 무자지추 사립시주지 임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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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탑선원 외나무다리 하마비"
[탁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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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김후신"
김홍도는 조선을 대표하는 화사였으며, 1773년 김후신과 함께 정조의 어진을 그린 기록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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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송시열 글씨"
최치원선생의 둔세시가 마모되어 가는 것을 본 우암 송시열이 안타까워 하며 다시 새겨넣었다.
광분첩석후중만 인어난분지척간 상공시비성도이 고교유수진농산
우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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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송시열 글씨"
[탁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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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둔세시 차운시" - 작자 미상-
칠언절구 4행시로 작자 미상의 최치원선생의 둔세시를 차운한 시이다.
권연염삭협경만/ 깍아지른 산등성을 끼고
백도유천사양간/ 여기저기 흐르는 물이 한골짜기로 쏟아진다.
욕축고운반부득/ 고운(최치원)을 따라잡고 싶어도 여의치 않으니 유공도처창공산/ 지팡이 닿는 곳마다 텅 빈 산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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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둔세시 차운시" - 작자 미상-
[탁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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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둔세시 차운시" - 회암 정혜스님(1685-1741)
문도고운입차만/ 고운(최치원)이 이 산에 들어왔다는 말 들었지만 부지영적의하간/ 신령스런 발자취 어디에서 머물었는지 알 수 없구나
만장개안간심처/ 느긋이 눈을 뜨고 그의 거처를 찾고자 하는데 동자유천정자산/ 움직이는 건 물이요, 고요한 것은 산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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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둔세시 차운시" - 회암 정혜스님(1685-1741)
[탁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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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교 남여 필파"
하교하노라, 해인사는 성지이니 반드시 남녀(가마)를 타고 다니는 행위를 금하노라 라는 뜻이다.
1891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와 법부민사국장을 지낸 서정규의 이름이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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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제시석처비"
가야산 홍류동 고운 제시석처, 918년 이후에 입산하여 현재의 고운암터에 집을 짓고 살면서 무릉교 등 13명소를 정하여 명명하고
자필로 그 이름을 새겼다. 오랜세월이 흐르는 동안 홍수 광간으로 거으리 마멸되고 기구인 광분이자과 결구인 고교 이자 등 네자만 희미하게 남아있으므로 우암 송시열이 농산정 맞은편 문창후 유허비 북쪽 해인사로 올라가는 오른쪽 암벽에 자필로 이시를 새겨 두었는데
대부분 인사들이 이를 고운 전적으로 잘못 알고 있으므로 본위치를 찾아 희미하게 남아 있는 넉 자를 다시 심각하고 후인들의 산견을
없애고자 이 비를 새워두는 바이다. 1996년 가산 이지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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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최선생 둔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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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둔세시"
신라 최치원은 900년대 해인사에 관한 최초 기록인
'해인사선안주원벽기 를 써서 해인사에 대한 창건 기록을 남겼으며 신라 말 국가를 개혁하기 위해 시무 10조를 진성여왕에게 올려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신분의 벽에 막혀 실패하자 스스로 가족과 함께
은둔을 결심하며 해인사를 찾았다.(918년경)
해인사로 찾아들며 읊은 둔세시가 홍류동에 새겨져 있었으나 지금은 세월의 풍파에 광분, 고교 네글자만이 남아 있다. 조선의 유학자
우암 송시열이 마멸되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맞은편 암벽에 자신의 글씨로 다시 새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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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둔세시"
[탁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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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교 교목대시주경치불망비 1903"
옛날 무릉교 다리를 놓을 때 논과 나무를 시주한 분들의 공덕비를 바위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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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계내물입택묘"
이호윤이 쓴 유가야기의 기록에는 붉은 글씨로 경계 안에 집과 묘를 들이지 말라(대계내물입택묘)라고 새기어 있다. 이것은 이순상의 글씨라고 돼 있으며 순상은 관찰사나 지방을 특별순찰하는 관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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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패"
구역의 경계 표시를 나타낸다. 조선시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에 대한 특별지침이 있었고 여기에 해인사의 땅과 임야를 표시해 둔 기록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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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패"
[탁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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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승대"
최고의 경치를 바라보는 곳이란 뜻이다. 초서체로 사문환경서라는 글씨로 보아 환경스님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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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래하생 나무미륵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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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
해인사가 화엄도량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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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화상불보살"
환경스님이 쓴 글로 삼신불(법신, 보신, 화신) 중 하나이다. 법신 비로자나부처님(화엄회상), 보신 아미타부처님(미타회상), 화신 석가모니부처님(영산회상)을 말한다. 삼신 부처님이 홍류동계곡에 있다는
것은 이곳이 정토세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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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문"
홍류동계곡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라 할 수 있다.
옛 선비들의 다녀간 흔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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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환경스님 회고록에는 스님이 20세(1907년)에 새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글자 당 크기가 20cm가 정도가 되고 총 길이가 4m이니 그 크기와 위용을 짐작할
수 있으며 아미타의 오른쪽 획을 일필로 써서 크고 힘차게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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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뢰"
홍류 구곡 중 6곡이다.
계곡이 좁아지고 깊이가 얕아지면서 흰 물줄기가 빛을 만나 옥구슬을 뿜어낸다는 뜻이다. 도로를 개설하면서 옹벽으로
인해 소실될 뻔 하였다. 가까스로 명문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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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재암"
홍류 구곡 중 3곡이다. 분옥폭 아래 계곡을 가로지르는 흰색의 긴 바위를 3등분하여 물이 세줄기로 내려가게 만든 듯한
자연바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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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적봉"
선바위 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상부에는 피리 입대 모양의 바위가 서 있어서 취적봉이라 한다. 최치원선생이 명한 가야산 13명소에 속하며, 취적봉에는
동국대지도를 만든 정향령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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