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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호

수도꼭지를 돌리자 차가운 물줄기가 얼굴올 때린다. 하루 종일 몸에 밴 땀과 먼지들이 물과 함께 등줄기를 타고 내려 간다. 매연으로 컬컬했던 입 안도 차가운 물로 헝I구어 4f자 무척 개운해 진다.

휘파람올 불며 물기가 흐르는 거울을 손바닥으로 닦자 한 시내가 나타난다. 그 사내의 맨몸 위로 물방울이 또르르 홀 러내린다. 살집 좋은 몸매를 혼들자 거울 속 시내의 몸에서 타일바닥 위로 투두둑 물방울이 떨어진다.

갑자기 시내가 몸짓을 멈추고 가울 속의 사내를 노려본다.

시내의 시선은 얼굴에서 가슴으로, 다시 가슴에서 배로 내려 가더니 움직이질 않는다.

거기에 가늘고 긴 지렁이 한마리가 착 달라붙어 숨을 쉴 때 미다 굼틀거리고 있다. 시내가 검지손가락을 * 녀석의 머 라를 건드려 본다. 꼼짝도 하지 않는다. 대신 시내의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흐른다.

다시 시내의 손가락이 녀석의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 쭉 타고 내려간다. 거울속의 남자가 탁 압을 벌린다. 사내의 눈 은 거울 속 일그러진 남자의 눈을 쪼고 있다.

한밤중의 괭란(狂亂)

좀처럼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고통의 찌꺼기들이 거울 속 저 편에 묻어 두었던 기억의 늪으로부터 스물스물 기어나왔다.

태평양올 건너온 아이엠에프의 태풍이 한반도를 휘감으려 할쯤, 그*까 추석올 보름 앞둔 지난 가을 문턱이었다.

연일 계속되는 근으로 물을 먹은 스펀지처럼 무거운 몸 올 이끌고 퇴근하는 닐이 많았다. 그날도 작정이 가까워서야 30 • 의료보장

집에 들어왔고, 늦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쯤 잤을까. 갚은 잠으로부터 의식올 깨우는 통 증이 조심스럽게 느껴졌다. 아랫배에서부터 묵직한 무엇이 차츰 위로 올락오고 있었다. 번뜩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참고 견디면 저절로 없어지겠지. 이녀, 참고 견디다간 괜 히 더 고생하게 될거야. 전에도 그랬짆아. 그래도 갚은 짐에 빠지면 통증이 사라질지도 몰라. 그럴까? 그런데 어째 좀 심 한걸. 억!’

잠자리를 포기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던 중 명치 끝에서 불덩이가 치밀었다. 숨통을 가로막은 듯 숨이 턱에 찼다. 조 금만 더 입바람올 불면 곧 터질 듯한 풍선처럼 배가 불룩해 졌다. 그리고 차츰 숨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니도 모 르게 무릎을 꿇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 시직했다.

‘하느님, 제발 저를 좀 살려주십시오. 예수님, 부처님, 성 모 마리아님 두 손모아 간절하게 빕니다. 이 고통만 저발 멈 추게 해주십시오. 제발!’

머릿속에 떠오르는 절대자를 찾으며 고통이 멈추게 해달라 고 애원하였다. 평소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누구를 매달려서라도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고 통만 사라지게 해준다면 평생 은인이 따로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시작된 갑작스런 한밤중의 위통은 무섭도록 강력한 통증을 일으키며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미치 뜨거운 인두로 가슴을 지지는 듯한 통증은 비명이 되어 나왔고, 참으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커져만 갔다. 통증이 더해지면서 이미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온몸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갈때쯤 꽤 커진 신음소리에

만삭의 아내가 놀라 잠K〉|內 깨어났다

"댱신, 왜그래요. 어디 믾이 아파요. 이 땀 좀 봐.”

아내가 걱정된 눈빛으로 아픈 부위를 물어왔지만 온 방안 올 떼굴떼굴 구르며 신음소리만 낼 뿐 Of무 말도 할 수 없었 다. 아내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전화기를 찾아 119

응급구조를 요청하는 동안 제 정신이 이닌 듯 핫다.

이 날의 통증은 병원 응급실에서 진통제를 맞고 짐이 들어 서야 멈췄다. 그래4 그 후에도 나는 똑같은 통증으로 인해 두 치례나 더 병원 응급실올 찾았다.

안식처에서의 E다른 고통

그로부터 2주 후, 나는 여러 치례의 세탁으로 낡을 대로 낡은 피란 줄무늬의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사실 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입원한 병 원이었지만 반평생을 살아오면서 치 료를 목적으로 병원을 찾은 적 은 없었다. 오직 홍역올 앓았던 초등학생 시절,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면소재지에 있던 보건소 에서 주사 한 대 맞고 돌아온 것 이 고작이었다.

두 번째 통증으로 응급실을 다녀온 후, 단지 급체로 인한 통증이 아닐 것이라는 판단에 내시경 검사를 하였고 위염이 라는 진단올 받았다. 하지만 위염약을 복용했음에도 불구하 고 또다시 통증은 재발했다. 결국 입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되 었다.

보름 동안 잦은 위통으로 인해 식사다운 식사 한번 해보지 못하고 입원한 나는 통증이 있을 때마다 진통제를 맞아가며 정밀진단올 받이야 핫다. 진통제를 맞아서인지 통증이 느껴 지지 읺자 고통은 또다른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먹고 싶은 욕망, 즉 참아왔던 식욕이 거세게 타올랐다. 영양제 주사를 꽂고 있었지만 식욕에 대한 욕구는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났 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물 한 모금마저 못 마시게 하였다.

어쨌든 식욕에 대한 고통은 잠시였다. 입원한 지 일주일이 지나자 내시경 검사를 다시 받게 되었다. 심전도 검사, X-

이 촬영 검사 결과 위 뿐만 아니라 담낭과 담관에 이상이 발 견되었다. 좀더 정확한 진단을 위해 내시경 검사를 다시 한 번 해보자는 담당의사의 밀에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 검사경력이 있었고, 비록 위 밑에 있는 담관까 지 검느(한다 해도 약간 울럭울럭하고 미식거릴 분이라고 여 겼다.

그래4 나의 예상은 철저하게 빗나갔다. 검사대 위에 바스 듬히 워 았을 때만해도 간호사와 농담올 히며 여유를 부렸

다. 검사가 시작되고 위를 자난 내시경이 점점 더 갚숙 이 내려갈쯤 더아상 고통올 견딜 수가 없었다.

“아저씨, 잘 참고 있어요.

아파도 조금만 더 함을 내세 요. 아주 잘하고 계세요.”

간호사 아가씨의 말에 용기를 얻어 좀더 함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니의 의지 력은 곧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온몸이 부들부 들 떨리고 진땀이 솟앴가. 검사를 끝내고 병실로 실려왔 을 때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반죽음 상태에서 병실에 돌 아온 나는 급성 담낭염과 담도염이라는 최종 진단을 받았다.

인에 았는 담석은 담낭을 떼어내는 수술이면 치료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담= 담석은 빼내야 하기 때문에 수술 시간도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수술 후에도 회복이 더딘 편 이죠.’

담당의사는 주먹코에 걸친 도수 높은 안경을 콧잔등 위로 밀어올리며 검사 결과를 알려주었다. 옆에 있던 아내가 산음 하고 있는 나와 의사를 번갈아 쳐다보며 궁금증을 물어보았 다.

"그러면 위통은 담석 때문인가요?”

■그래요. 처음 내시경 검사결과로는 위염 때문인 줄 알았습 의료보장'31

니다만 정밀진단올 하고 보니 담석으로 인해 담낭 안에서 담 즙의 생성이 안 되었던 것이죠. 담즙은 위액과 함께 소화작용 에 도움올 주는 중요한 분비물인데 그만 g잉에 탈이 나서 위 에 무리가 따른 것입니다."

“담낭에 문제가 있다면 간에도 아상이 있는 건 아닌가요?”

놀란 눈빛으로 물어오는 아내의 물음에 담당의사는 진료 일 람표를 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성심성의껏 설명해 주었 다.

“아직 긴에는 아상이 없습니다. 간 수치가 좀 높은 것이 걱 정이지만 수술을 하고 나면 떨어집니다. 이 부분은 걱정을 하 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날 저녁, 전혀 걱정할 것 없다는 담당의사의 확신에도 불 구하고 나는 급속도로 상태가 나

빠졌다.

죽음의 공포와 덫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고통 속에서 두 3째 내시경 검사를

받고 난 다옴 니는 검사의 후유증과 담석통으로 무척 심한 통 증올 겪어야 핫다. 그다지 춥지 않은 병실의 온도였지만 으 슬으슬 몸이 떨려오는 냉한으로 식은땀까지 횰렸다. 뼛속에

서부터 시작된 추위는 담요 한 장으로 다스리기에 역부족인 둣 싶었다. 그런데도 체온은 40도에 다다랐다. 계속해서 올 락가는 고열로 인해 간호사가 달려오고 담당의사가 치료를 했지만 체온은 좀처럼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읺았다. 눈동자 마저 노랗게 변색되어 황달현상올 보이고 있었다. 의사와 간 호사의 다급한 모습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매우 긴박한 상황 이라는 갓을 눈치챌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일반 병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이라면 생명이 매우 위급한 환자만 들어가는

32 의료보장

곳이 아닌가. 혹시 잘못이라도 되면 영안실로 직행? 아, 죽음 이 목전에 았을 민큼 위급한 것인가. 위급하면 간급 수술이라 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은 정말 그렇게 안 좋다는 것인가.

그래도 최소한 생의 문은 닫을 수 있도록 준비할 시간은 주거 야 하지 않은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이러면 아내와 뱃속의 아기는….’

담석증 때문에 중환자실에 들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혹 시 잘못되어 죽음올 맞이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두려움에 덜 컥 겁이 났다. 통증이나 고열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환자실에서의 첫날 밤, 진통제를 맞고 짐이 들었던 나는 울음소리에 깨어났다. 점점 의식이 또렷해 지면서 그것은 올 음소리가 아니라 울부짖는 소리임올 깨달을 수 있었다. 중환 자들 중 한 분이 가까스로 잡고 있던 생명줄을 그만 놓아버린 것이었다. 몽롱했던 정신이 비짝 긴장되였다. 중환자실에 들 어와 처옴 맞는 죽옴이었고, 나와는 침대 하나를 시이에 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니는 죽음에 다한 공포로 ?!해 새벽까지 잠 올 잘수 없었다.

갑자기 보호자에서 유가족으로 바뀐 사람들이 한 치례 몸서 리를 차며 울부짖고 난 다음 주검과 함께 영안실로 내려가자 병실 안은 전처럼 괴괴하였다.

* 병실에 비하면 중환자실은 시장바닥처럼 무척이나 시 끄러운 편이었다. 여기저기서 환자들의 신옴소리가 끊이질 읺았다. 온갖 신음소리가 병실의 차가운 벽에 부딪쳐 소름이 돋도록 으스스하게 울렸다. 나는 하루빨리 이 죽음의 덫으로 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세 번째의 주검올 겪고 난 다음 나는 이 죽음의 공포와 덫 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무섭게 치솟던 고열이 조금 씩 떨어졌고 황달기마저 많이 시라지자 나는 일반 병실로 옮 겨줄 갓을 담당의시에게 간절히 요청했다.

면회가 하루에 세 번 빆에 안 되는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 로 옮기자 낙보다도 더 좋이한 것은 만삭의 아내였다. 4(가 중환자실로 옮겨지던 그날부터 차가운 복도로 나와 만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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