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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적 불일치의 흔함에 호소하는 설명

2.1. 환원주의 대 비환원주의

환원주의는 흄(David Hume)에게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의 삶에서 사람들의 증언이나 목격자들의 보고(report)로부터 기인하는 추 리(reasoning)보다 더 흔하고, 더 유용하며, 더 필수적인 것은 없다. 혹자는 이 런 종류의 추리가 인과 관계에 기반하고 있음을 거부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길 게 반론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논변에 대한 우리의 확신 은 오로지 증언의 진실성(veracity)에 대한 관찰, 혹은 사실과 목격자의 보고 사 이의 일치에 대한 관찰에 기인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기 [때문 이다]. [...] 하나에서 다른 하나를 끌어내는 모든 추론들(inference)이 단순히 그 것들 사이의 항상적이고 규칙적인 연결(conjunction)에 토대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격률이다. 다른 어떤 [추론]이라도 그렇듯, [...] 증언에 대해서도 우리가 그 격률에 예외를 두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어서 동일한 맥락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목격자와 역사가를 신용하는 이유는 증언과 실재(reality) 사이에서 어떠 한 연관성(connexion)이라도 선험적으로(a priori) 지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둘 사이의 일치를 발견하는 것에 우리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Hume 1977 : 74-75)

위 인용문에 따르면, 증언에만 기초해서 정당화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주체가 다른 증언들이 사실과 일치한다는 것을 충분히 많 이 관찰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주체는 오직 다른 증언들이 사실과 일치한다는 것을 충분히 많이 관찰한 경우에만, 증언에 기초해서 정당화 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나와 당신은 등산을 자주 함께 한다. 나는 지도를 볼

줄 모른다. 지도를 보는 일은 늘 당신의 몫이며, 나는 방향을 선택해야할 때마다 당신의 증언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다. 그 때마다 우리는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해왔다. 오늘도 우리는 갈림길을 만났다. 당신은 나에게 ‘왼 쪽으로 가면 골짜기가 있다’라고 증언한다. 이 예에서 우리의 직관은 만 일 내가 <왼쪽으로 가면 골짜기가 있다>라고 믿음을 가진다면 나의 믿 음은 정당화된 믿음일 수 있다는 것이다. 흄에 의하면 나의 믿음의 정당 성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 나는 길 찾기와 관련한 당신의 다른 증언 들이 사실과 일치한다는 것을 충분히 많이 관찰했으며, 오직 그로 인해 오늘도 내가 당신이 증언한 바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 다.

따라서 흄에게 증언은 귀납추론(inductive inference)의 일종이다. 잘 알려진 대로, 그에게 귀납추론은 두 사건이 순차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항상적이고 규칙적으로 지각하고 그런 지각의 결과들을 기억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에, 결국 그에게 증언에 기초한 믿음의 정당성은 지각, 기억, 귀납 추론에 의한 것으로 남김없이 환원된다. 래키는 증언에 관한 흄의 이 같은 이해를 다음 두 가지 논제로 공식화한 다음, 오늘날의 환원주의 를 그 두 논제를 추종하는(commit) 입장으로 규정한다.

첫 번째는 우리가 긍정적 이유 논제(Positive Reasons Thesis)라고 부를 수 있 는 것이다 : 증언적(testimonial) 믿음의 정당화나 보증을 수여하는 것은 바로 청자가 가지고 있는 적절한 긍정적 이유들이다. 이 이유들은 [...] 다른 인식적 원천들, 즉 전형적으로 지각, 기억, 귀납 추론에 의존해야만 한다. 이는 두 번째 논제를 발생시킨다. 우리는 그것을 환원 논제(Reduction Thesis)라고 부를 수 있다. 증언적 믿음들의 정당화나 보증은 비증언적으로 근거된 긍정적 이유들에 의해 제공되기 때문에, 증언적 정당화나 보증은 지각, 기억, 귀납추론의 정당화 로 환원된다. (Lackey 2008 : 144)

래키의 규정을 따라, 필자 또한 환원주의를 (i) 주체가 증언에 기초해서 정당화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 관한 증언자의 다른 증언들

이 사실과 일치한다는 것을 충분히 많이 관찰해야만 하며, 그리하여 (ii) 증언에 기초하여 형성된 믿음의 정당성은 지각, 기억, 귀납추론에 의한 것으로 환원된다고 주장하는 입장으로 이해할 것이다.

이제 비환원주의를 검토하자. 다음의 예를 보라 : 나는 네 살인 어린 이다. 오늘 나는 엄마와 시장에 갔다가 길을 잃었다. 때마침 당신이 엄마 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는 나를 보고 ‘저쪽으로 가면 엄마가 있다’라고 증언한다. 여기서도 우리의 직관은 만일 내가 <저쪽으로 가면 엄마가 있 다>는 믿음을 갖게 되면 나의 믿음은 정당화된 믿음일 수 있다는 것이 다. 환원주의자들은 이를 설명할 수 있는가? 네 살인 어린이가 그들의 말대로 길 찾기에 관한 증언자의 다른 증언들이 사실과 일치한다는 것을 충분히 많이 관찰한 후에, 그런 믿음을 갖게 되었겠는가? 오히려 내가 그런 관찰 없이 그런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더 말이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나의 믿음이 정당화된 믿음일 수 있다는 우리의 직관이 잘못된 것인가? 나의 믿음은 사실 정당성을 결여하는가? 보다 일반화하면, 어린 이들이 증언에만 기초하여 형성한 거의 모든 믿음들은 정당성을 결여하 는가?

비환원주의의 선구자인 리드(Thomas Reid)는 흄의 주장과 달리 우 리가 그러한 관찰 없이도 증언에만 기초해서 정당화된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자연의 창조주는 증언에 의존하는 성향을 인간의 마음에 심어 놓았다. [...] 삶 의 첫 시기에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힘에 거의 전적으로 기대어 판단을 내린다.

이는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데 필수적이다. 만일 어린이가 증언이나 권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도록 틀 지워져 있었더라면, 어린이는 지식의 부족으 로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비명횡사했을 것이다. 내가 거짓말이라는 개념을 가지 기 전, 그들[주변 사람들]이 나를 속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기 전, 나는 그들이 말하는 어떤 것이든 본능적으로 믿었다. [...] 만일 내가 그들의 말 을 믿지 않았다면 오늘날 나는 저능아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이따금씩 내가 거짓말쟁이들에게 이러한 자연적 경신성(輕信性, credulity)을 발휘할지라

도, 전반적으로 그 성향은 나에게 무한한 이점을 준다. 따라서 나는 그것을 대 자연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Reid 1983 : 281-282)

위 인용문에서 리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말을 쉽게 믿는 성향을 날 때 부터 갖추고 있기에, 단지 그로 인해 증언에만 기초해서 믿음을 가지는 데에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주체는 그럴 수 있기 위 해 해당 분야에 관한 증언자의 다른 증언들이 사실과 일치한다는 것을 관찰했을 필요가 없다.

리드를 따르는 오늘날의 비환원주의는 환원주의의 두 가지 논제를 거부하는 입장으로 이해된다. 그 입장에 의하면 (i) 주체는 증언에만 기 초해서 정당화된 믿음을 갖기 위해 해당 분야에 관한 증언자의 다른 증 언들이 사실과 일치한다는 것을 충분히 많이 관찰했을 필요가 없으며, 그리하여 (ii) 증언에만 기초하여 형성된 믿음의 정당성은 지각, 기억, 귀 납 추론에 의한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비환원주의자들은 리드의 입장을 계승하는 한편, 주체에게 해당 믿 음이 거짓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인 ‘격파자(defeater)’26가 부재해야 만 한다는 조건을 추가한다. 이를테면 당신이 서울 시장이 뇌물을 수수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보자. 당신은 나에게 그 사실을 증언했으 며, 나는 서울 시장이 뇌물을 수수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뉴스에서 서울 시장이 뇌물을 수수했다는 악성 루머가 떠돌아다닌 다는 보도를 접하게 되었다. 비환원주의들에 의하면, 이 경우에 내가 여 전히 서울 시장이 뇌물을 수수했다는 믿음을 유지한다면 나의 믿음은 정 당화된 믿음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뉴스가 나의 믿음의 격파자로 역할 하기 때문이다.

환원주의와 비환원주의를 한 번 더 비교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자. 환

26 주체는 한 믿음이 참임을 나타내는 증거들 외에, 그 믿음이 거짓임을 나타내는 증거 들도 가질 수 있다. 주체가 정당화된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전자의 증거들만이 아 니라 후자의 증거들도 고려해야 한다. 인식론자들은 후자의 증거들을 ‘격파자’라고 통 칭한다. 김기현 1998 : 45-48 참고.

원주의에 따르면, 주체가 증언에만 기초해서 정당화된 믿음을 갖기 위해 서는 해당 분야에 관한 증언자의 다른 증언들이 사실과 일치한다는 것을 충분히 관찰해야만 한다는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한다. 반면에 비환원주 의에 따르면, 주체는 그런 조건을 만족시킬 필요가 없으며, 증언된 바에 대한 격파자를 갖고 있지 않은 한, 증언에만 기초하여 정당화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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