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록>에 나타난 질병서사는 저자의 감정을 서술하는 데 치중함으 로써 질병의 체험자로서 환자의 시각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환자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무시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러한 측면에서 살펴보면 유만주(兪晩柱, 1755~1788의
흠영(欽英)
처럼 조선시대 양반 남성이 남긴 일기와는 매우 다른 성격을 지니는 것을 알 수 있다.
흠영
은 저자 자신을 포함하여 가족들의 질병, 처방, 치료과정 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반면 환자 질병에 대한 생각과 감정, 그리 고 환자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생각 등은 거의 서술하지 않고 있다. 가 족이나 자신이 앓는 질병을 학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며, 환자 질병의‘목격자’로서 발병의 원인과 결과, 치료 방법 등을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 을 뿐이다.
<자기록>에서 질병으로 인한 환자의 고통은 그를 보살피는 가족의 고 통을 매개로 하여 재현된다. 목격자로서 저자의 고통이 환자인 남편의 고통을 대신하여 질병서사를 지배하고 있다. 남편의 질병서사는 질병의 증상, 그로 인한 신체의 변화, 치유과정에서 복용한 약물로 서술되며, 질 병체험의 당사자인 환자의 말은 드러나 있지 않다. 이때 환자는 오직 질 병을 앓고 있는 몸을 소유한 물리적 실체로서 물화(物化)되고 타자화되 며, 나아가 질병을 앓고 있는 몸 그 자체로 환치되어 대상화됨으로써 철 저히 소외된다.97)
어머니 질병서사의 경우, 어머니는 후사가 끊길까 걱정하여 아들 낳기 를 바란다. 그런데 둘째 아들을 잃은 뒤,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원통해
더 봉(奉祀)긔탁(寄託)고 박명여(薄命餘生)을 의지코져 노라 (90a.)
97) 이인경, 앞의 글, 2012, 164면.
하면서 치유하기 힘든 병에 걸린다. 비통에 빠진 어머니는 몸이 약해져 다시 더 자식을 바라지 못하는 상황이 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임신한 다. 여기에서 부각되는 서사적 주체는 잇따른 출산으로 쇠약해진 어머니 의 고통이 아니라, 아들을 낳기 위한 도구적인 어머니의 몸이다. 이처럼 어머니의 경우 여성의 몸은 오직 출산과 관련되었을 때에만 유의미한 목 소리를 갖는다. 이는 당시 여성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임신과 출 산에 한정하는 관습 문화적 사유방식을 보여주는 부분이다.98)
고행록
의 경우에도, 작품에서 확인되는 한산 이씨의 목소리는 출산 과정에서 유사하게 드러난다. 첫 출산의 후유증으로 좋지 않은 한산 이씨의 몸은<자기록>에 등장하는 저자 어머니의 모습과 같다. 한산 이씨 또한 출산 으로 몸이 많이 쇠약해졌는데도 잇따라 임신한다.
그런데 남편 질병서사의 경우, 남편은 아무리 아파도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지 않는다. 시어른들은 남편에게 글을 가르쳤고 과거 급제에 큰 기대를 품었으므로, 남편은 기대에 부응하고자 열심히 공부했다. 찬 사랑 방에서 공부하면서 추위는 물론 질병까지 작지 않은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통에 대해 한 번밖에 언급하지 않는다. 다음은 남편 이 매일 아침 어머니 방에 들어와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민망한 사정을 말하는 장면이다.
남편이 매일 아침 어머니 방에 들어와 민망한 사정을 고했으나 변통하 지 못하고 10월 첫 추위까지 그 힘든 추위를 견뎠다. (60~61면.)
이렇게 오래 낫지 않으니 남편도 스스로 깊이 걱정하고 안에서도 시어 머니부터 모두 염려가 깊었다. 시아버지, 시할아버지가 염려하실 것을 두 려워하여 각별히 병의 원인을 숨기고 물어보셔도 대단치 않다고 아뢰서 자세히 모르실 뿐 아니라 원래 이르시기를
“담냉이니 봄이 되면 나을 것이다.” (62면.)
인용문에서 주목할 점은 남편은 고통을 표현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 98) 위의 글, 169-170면.
긴다는 것이다. 남편은 스스로 깊이 걱정함에도 불구하고, 시어른들이 염 려할 것을 두려워하여 각별히 질병의 원인을 숨기며, 그들이 물어보아도 대단하지 않다고 답한다. 남편의 경우 질병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감정들 가운데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부담감이 특히 눈에 띈다. 이렇듯 부담감 으로 인해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지 못하는 남편의 목소리는 질병서사에 서 소외되고 있다. 환자가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타인과 쉽게 소통하지 못하는 것이다. 남편은 심지어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다음 인용문은 남편이 죽음에 임박함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스스로 회복을 믿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곧 나아 질 거라고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남편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감추고 있다.
남편이 가쁜 호흡으로 말소리가 이어지지 않은 채 어머니에게 고하기 를
“제가 곧 나을 것이나 놀라서 숨이 이리 찹니다.” (99~100면.)
남편이 숨을 헐떡이며 겨우 말하기를
“지금은 긴 말을 못하겠으니 내 낫거든 하리라.”
하니 이는 스스로 회복을 믿는 까닭으로 (102~103면.)
임종까지 스스로 회복을 믿는 까닭에 초저녁에 내가 합내에서 들으니 남편이 친정아버지께 여쭙기를
“내 병이 끝내 위태하지 않겠습니까?”
하자 친정아버지가 이르시기를
“그러기야 하겠느냐? 네 병이 위태하면 내가 이리 태연할 것 같으냐?
너는 내 기색만 믿으라.” (104면.)
이와 같은 남편의 질병서사는 일종의 복원의 서사(restitution narrative)로 볼 수 있다. 프랭크가 말하는 복원 서사의 플롯은 ‘어제 나 는 건강했다. 오늘은 나는 아프다. 그러나 내일 나는 다시 건강해질 것이 다’라는 플롯을 갖고 있으며, 건강해져서 잘 지내고 싶은 “자연적인” 욕
망을 반영하는 것이다.99) 저자의 남편 역시 곧 건강해질 수 있다는 욕망 을 가지고 있다.
<자기록>에 나타난 복원 서사는 점쟁이와 관련된 대목을 통해서 확인 할 수 있다. 이는 친정아버지가 이름난 점쟁이에게 점을 쳐 봤다는 내용 이다. 점쟁이는 회복하기가 어렵지만, 만일 환자가 회복하면 과거에 급제 하는 경사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에게 온 친정아버지는 질병 이 곧 나아져 가을에 반드시 과거 시험에 합격할 것이라고 점쟁이의 말 을 살짝 바꿔서 전달한다. 친정아버지가 알려주는 이야기는 일종의 복원 서사에 해당한다. 이는 ‘남편이 전에는 건강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프다.
그러나 남편은 곧 회복한다.’라는 순서가 된다.
프랭크에 의하면 이러한 복원의 플롯은 아픔이 어떻게 나아진 것인지 에 대한 기대를 설정할 뿐만 아니라 고통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에 대한 모델을 제공한다. 풍양 조씨 남편의 경우 과거 급제에 대한 언급이 환자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수 있다. 조씨는 경황없고 무연한 마음에도 과거에 급제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반기고 기뻐하는 남 편의 모습을 적었다. 친정아버지가 알려준 복원의 이야기는 남편 아픔이 곧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설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복원의 궁극적 한계는 필멸(mortality)이다.100) 남편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지속적으로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아파도 회복하여 삶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편은 죽을 때 까지 복원 서사를 구성한다. 그런데 풍양 조씨의 친정어머니는 병이 위 독해지자 스스로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복원 서사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록>에서 환자의 목소리가 소외되어 있으므로 독자들 은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환자들이 보여주는 간접적 인 치유의 기대 또는 절망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99) Arthur Frank, 앞의 책, pp.75-96.
100) 위의 책, p.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