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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적인 평화통일의 기반 구축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남북기본협정 체결과 남북관계 재정립

’을 제시하였는데, 과제 개요에서는 남북관계의 발

전과 한반도 평화정착 제도화가 남북기본협정 체결의 목표라고 설 명하고 있으며, 통일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언급이 없다. 정부의 여 타 공식 문건에서도 남북기본협정과 통일을 직접적으로 연계시킨 표현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2018년 12월 발간된 󰡔문재인 정부의 국가안보전략

󰡕은 남북기본협정 체결과 남북합의의 법제화를 함께

다루면서 “앞으로 체결할 중요한 남북합의는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 로 법제화하여 평화통일을 위한 제도적 자산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157)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정부가 남북기본협정 과 통일의 연계성을 의도적으로 부정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기본협정은 통일보다는 평화공존에 초 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남북기본협정이 통일에 강조점을 두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남북기본협정의 체결을 통해 남북관계가 개선

발전되고 그러한 상태가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 다면, 한반도 평화정착뿐 아니라 통일의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 있 을 것이다. 따라서 남북기본협정의 체결은 점진적인 평화통일의 기 반 구축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와 관련하여 남북기본협정이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인

‘한민족 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이하 “민족공동체통일

방안

”이라 한다)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위치에 대해서도 고찰이 필요

하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노태우 정부가 제시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을 김영삼 정부가 계승하여 보완 ‧

발전시킨 것으로, 통일

157) 국가안보실, 󰡔문재인 정부의 국가안보전략󰡕, p. 49.

은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건설하는 방향에서 점진적

단계적으로 이 루어 나가야 한다는 기조 하에 통일의 과정을 화해

협력 단계, 남북 연합 단계, 통일국가 완성 단계의 3단계로 설정하고 있다.158) 노태 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은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여 평화

와 통일을 위한 기본방향과 남북연합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사항 등 을 담은 민족공동체헌장을 채택함으로써 남북연합을 출범시키는 것 을 상정하고 있으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는 남북연합의 출범 에 대한 설명은 없다. 일각에서는 국제법상 조약의 형식을 통한 남 북연합의 형성을 모색하면서, 남북연합조약과 정부가 추진하는 남 북기본협정 간의 관계에 대한 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한다.159) 또 다 른 일각에서는 남북연합을 ‘낮은 수준의 남북연합’과 ‘높은 수준의

남북연합

’으로 구분하여 남북기본협정을 ‘낮은 수준의 남북연합’의

법적 기초로, 그리고 남북연합조약을 ‘높은 수준의 남북연합’의 법적 기초로 상정하기도 한다.160) 한편, 시민사회에서 바라보는 남북연

158) 1단계인 화해‧협력 단계는 남북이 적대와 불신‧대립관계를 청산하고, 상호 신뢰 속 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화해를 정착시켜 나가면서 실질적인 교류 협력을 실시함으로 써 평화공존을 추구해 나가는 단계이다. 2단계인 남북연합 단계는 남북 간의 공존을 제도화하는 중간과정으로서, 이 단계에서는 남북 간의 합의에 따라 법적‧제도적 장 치가 체계화되어 남북연합 기구들이 창설‧운영되게 된다. 3단계인 통일국가 완성 단계는 남북연합 단계에서 구축된 민족공동의 생활권을 바탕으로 정치공동체를 실 현하여 남북 두 체제를 완전 통합하는 것으로 1민족 1국가의 단일국가를 완성하는 단계이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대해서는 통일원, 󰡔통일백서 1994󰡕 (서울: 통일원, 1994), pp. 53~56; 통일부, “민족공동체통일방안,” <https://www.unikorea.go.kr/

unikorea/policy/Mplan/Pabout/> (검색일: 2020.10.31.).

159) 예컨대, 이무철 외, 󰡔남북연합 연구: 이론적 논의와 해외사례를 중심으로󰡕 (서울:

통일연구원, 2019), p. 213. 이 견해는 남북기본협정을 체결한 후 남북연합조약을 체결할지, 남북기본협정에 남북연합 관련 내용을 포함시킬지, 남북기본협정 없이 바로 남북연합조약을 체결할지는 향후 남북관계의 발전상황을 고려해 판단할 문제 라고 언급하고 있다.

160) 한동대학교 산학협력단,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전략비전: 평화번영의 가교국가(link state) 전략,” (통일부 연구과제 최종보고서, 2018.7.31.), pp. 31~32. 이 견해는 남북기본협정을 바탕으로 한 ‘낮은 수준의 남북연합’을 ‘남북 공동의 집’으로, 그리 고 남북연합조약을 바탕으로 한 ‘높은 수준의 남북연합’을 ‘남북 하나의 집’으로 명명 하고 있다.

합론에 기초하여 남북연합을 “남북의 공동이익을 제도적으로 추진 하고 평화와 통일을 결합시킨 현실 가능한 최대의 협력틀

”로 규정하

고, 2018년 일련의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루어진 폭넓은 합의와 그 이 행을 총괄할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의 개소로 남북연합은 이미 시작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161) 이처럼 남북관계가 이미 남북연합 단계에 들어섰다고 보는 시각에 따른다면, 남북기본협정 구상은 그 필요성이 사라져 사실상 폐기되거나 남북연합 제도화 논의로 수렴 하게 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2018년에 남북관계가 급진전되면서 남북연합 단계로의 진입에 대 한 기대감이 매우 높아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공식적

법적 의 미에서의 남북연합은 남북 간의 명확한 사전합의를 바탕으로 법적 구속력 있는 문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러한 의미에서의 남북연합이 출범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162) 따라서 아직까지 남 북관계는 화해

협력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남 북기본합의서

」와 남북정상회담 합의서들은 여러 가지 유의미한 합

의사항들을 포함하였으나, 일정한 한계를 노정하면서 남북관계를 실질적으로 규율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현재적 시점에서 남북관계 의 공고한 ‘법적 기본 틀(legal framework)’이 마련되어 있다고 보

161) 서보혁, “남북연합의 형성 조건과 과제,” 󰡔창작과 비평󰡕, 제46권 4호 (2018), pp.

379~380. 이 견해는 남북연합이 막 시작했고 이행 수준이 높지 않은데다 북미 간 비핵평화 협상의 정체와 그에 따른 대북제재의 엄격한 적용 등 제약 요소가 많기 때문에 현재의 남북관계는 낮은 단계의 연합제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162) 남북연합의 성격에 대해서는 국가연합과 연방국가 사이에 위치하는 체제연합으로 보는 견해, 기본적으로는 국가연합의 성격과 유사하다고 보는 견해, 연방국가보다 는 국가연합에 가깝지만 특수한 형태로서 영연합 형태에 가깝다고 보는 견해 등 여 러 견해가 존재한다. 과거 통일원의 해석에 의하면, 남북연합 단계에서 남북한은 대외적 측면에서 각기 국제법적 주권국가로 존재하기 때문에 연방국가와는 다르다.

그리고 통일을 지향하면서 특수관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주권국가 간의 관계를 상 정하는 국가연합과도 다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남궁영, “민족공동체통일방안: 평가 및 시사점-‘남북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 관계-,” 󰡔국제지역연구󰡕, 제5권 1호 (2001), pp. 130~132 참조.

기는 어려우며, 화해

협력의 제도화 수준 역시 여전히 미흡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이하에서는 화해

협력이 심화되는 단계 에서 남북이 남북관계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남북기본협정을 체결하고, 협정의 이행

준수를 통해 구축된 상호 간의 신뢰를 발판 삼아 그 다음 단계인 남북연합으로 넘어가는 상 황을 상정하고 관련 쟁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같은 전제와 관 련하여 두 가지 사항을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 남북기본협정은 화해

협력 단계가 일정 기간 지속된다는 가정 하 에 그 법적 기본 틀로서 고려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만일 빠른 시일 내에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진전되어 남북연합 단계로 진입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면 곧바로 남북연합 구성

운영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면 될 것이다. 둘째, 남북기본협정을 ‘민족공동체통일방안’

의 3단계와 연계시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남측의 입장에 입각한 접 근이라는 점이다. 과거 북한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통일의 방식이나 통일의 단계에 대한 합의는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였 다.163) 이후 북한은 2000년 「6

15 남북공동선언」에서 “통일을 위 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 성이 있다”는 것에 동의하였을 뿐이다.

163) 「남북기본합의서」 발효 이후인 1992년 3월 27일 개최된 남북정치분과위원회 제2차 회담에서 남측은 “기본합의서가 발효된 이후 화해협력 시대의 남북한 관계는 ‘잠정적 특수관계’이며, ‘잠정적 특수관계’의 요체는 서로 상대방의 법질서를 인정하고 존중하 며 이에 대하여 간섭하지 아니하는 데 있는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하였다. 이에 대해 북한은 “북남합의서의 리행으로 하여 북남관계가 ≪공존공영의 관계≫로 전환되게 되 었다고 한다거나 북남합의서의 조항들이 ≪평화공존 5개원칙≫과 맥을 같이하고

국제련합헌장≫의 정신과도 일치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북남합의서를 근본적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북남합의서를 통하여 쌍방이 그 무슨 ≪단계적 통일≫에 대해 ≪의견을 같이하였거나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다면, 통일지향적인 북남합의서의 진의를 변질시키는 것으로 될 것이다.”라고 응수하였다. 제성호, 󰡔남북한관계론󰡕, p.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