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채택 배경 및 과정
남북기본합의서는 1980년대 후반 구소련에서 추진된 개혁
‧
개방 정책과 소련 및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전환이라는 탈냉전 의 시대적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남한 은 ‘북방정책’이라는 기조 아래 소련과 중국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 들과의 관계개선과 국교수립을 추진했으며, 북한도 미국 및 일본과 의 관계개선에 나섬으로써, 남북한에 대한 4강의 교차승인 구도의 긴장완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었다.39)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정세 의 변화는 분단의 현실을 인정하고 평화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논 의로 이어졌다.40) 남한의 노태우 정부는 1988년 7월 ‘7‧
7 특별선언’을 통해 “민족구성원 전체가 참여하는 사회
‧
문화‧
경제‧
정치 공동체
”를 이룩하기 위한 남북교류를 제안하였으며, 군사적 긴장을 해소
하고 상호체제를 존중하는 기초위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기본 적인 틀의 마련을 촉구하게 되었다.41) 한편, 사회주의권과 냉전체제 의 붕괴는 국제사회에서의 북한의 입지를 좁게 만들었으며, 북한이
39) 정해구, “남북대화의 가능조건과 제약조건 분석: 7‧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사례를 중심으로,” 통일문제연구, 통권 제30호 (1998), p. 91.
40) 위의 글, p. 92.
41) 통일원, 남북고위급회담 주요쟁점에 대한 쌍방 주장 비교표 (서울: 통일원, 1993), p. 13.
체제위기를 느끼게 하는 계기로 작동하였다.42) 이러한 상황에서 북 한 역시 남한과의 관계개선에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었고, 북한의 태도 변화는 구체적으로 1988년 후반 불가침선언 논의를 위 한 국회회담의 개최와 정치군사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한 최고위급 회담 제의로 나타났다.43)
1988년 11월 16일 북한은 부총리급을 단장, 군총참모장급을 부단 장으로 하는 7~9명 정도의 실권 있는 고위급 정치 군사 대표가 참가 하는 ‘남북고위급 정치
‧
군사회담’ 개최를 제의했으며, 이와는 별도 로 12월 20일에는 남‧
북‧
미 ‘3자회담’ 개최를 제의하였다.44) 북한 의 제의에 대해 남한은 1988년 12월 28일 쌍방 총리를 수석대표로 하는 ‘남북고위당국자회담’ 개최를 수정 제의하였다.45) 남한의 수정 제의에 대해 북한은 1989년 1월 16일 ‘남북고위급 정치‧
군사회담’
개최 제의에 대한 동의로 간주한다며, 관련 예비회담 개최를 제의하 였다.46) 이후 1989년 2월부터 1990년 7월까지 총 8차례의 예비회담 과 2차례의 실무대표접촉이 이뤄졌다. 예비회담에서는 본회담의 명 칭과 의제, 대표단 구성 및 회의 형식 등 본회담 진행과 관련된 제반 절차적 문제 협의가 이루어졌고, 1990년 7월 26일 제8차 예비회담 에서 「남북고위급회담 개최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되었다. 예비회
담의 주요 쟁점의 합의과정은 다음 <표 Ⅱ-1>과 같다.42) 기본합의서 논의 당시 북한의 상황은 ‘사회주의권 붕괴와 피포위의식의 심화’로 요약 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김갑식,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북한의 입장,” 통일정책 연구, 제20권 1호 (2011), pp. 62~63 참조.
43) 정해구, “남북대화의 가능조건과 제약조건 분석: 7‧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사례를 중심으로,” p. 93.
44) 통일부, “남북기본합의서 관련 해설자료,” p. 1, <https://dialogue.unikorea.go.kr /ukd/a/ad/usrtaltotal/View.do?id=400> (검색일: 2020.10.31.); 배광복, 남북대화 1 971-1992: 힘‧선택‧말의 남북관계 역사 (서울: 아연출판부, 2018), p. 314.
45) 위의 글, p. 1.
46) 위의 글, p. 1.
<표 Ⅱ-1> 예비회담의 주요 쟁점 및 합의 과정
남한 북한 최종 합의안
명칭 ‘남북고위당국자회담’ ‘남북고위급정치군사회담’ ‘남북고위급회담’
의제
∙ 6개 항 제시
1) 상호 비방‧중상 중 지 문제
2) 상호 존중 및 불간 섭 문제
3) 다각적인 교류와 협 력 실시 문제 4) 군사적 신뢰 구축 문
제(남북 고위 군사당 국자 간의 직통전화 가설,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 및 평화적 이용, 군인사 상호 교류, 대규모 훈련 사전 통보 및 참관 초정)
5) 남북정상회담 개최 문제
6) 기타 쌍방이 제기하 는 문제
∙ ‘북과 남 사이의 당면한 정치‧군사적 대결 상 태를 해소할 데 대하여’
라는 단일 의제 제시
∙ ‘남북 간의 정치
‧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와 다 각적인 교류협 력 실시 문제’
로 최종 확정
∙ ‘남북 간 다각적인 교류
‧협력과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 문제’
수정안 제시
∙ ‘북남 간의 정치‧군사
적 대결 상태를 해소하 며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를 실현할 데 대하 여’ 절충안 제시
∙ ‘교류‧협력’과 ‘정치군
사적 대결 상태 해소’
가 병행 토의되어야 한 다는 입장에서 상호 편 리한 대로 표기하자고 제의
∙ 의제표기 순서가 토의 순서를 의미하지 않는 다는 전제 하에 ‘정치‧ 군사적 대결 상태 해 소’를 앞에 표기하자고 주장
출처: 배광복, 남북대화 1971-1992: 힘‧선택‧말의 남북관계 역사, pp. 315~316을 바탕 으로 저자 정리.
1990년 9월부터 1991년 10월까지 개최된 제1차부터 제4차까지의 남북고위급회담은 격변하는 국제정세 추이를 주시하면서, 상대방의 협상의도와 협상의지를 탐색하고 기본입장을 조정한 단계라고 요약 된다.47) 제1차부터 제3차 회담까지는 합의서 문건의 형식이 주요 쟁 점이었다. 남한은 본회담에서의 기본합의서 채택과 분과위원회를 통한 분야별 합의서 채택을 주장하였으며, 북한은 불가침선언 채택 과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우선 해소를 주장하였다. 제3차 고위급회 담을 통해 남한과 북한은 정치
‧
군사문제와 교류‧
협력문제의 병행 토의에 합의를 이루었으나, 여전히 합의서 문건 형식은 타결되지 못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1991년 2월 25일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합의 된 제4차 회담은 걸프전쟁(1991년 1월)과 팀스피리트 훈련(1991년 3월)을 이유로 북한에 의해 일방적으로 중단되었다.48)교착상태에 빠졌던 남북고위급회담은 1991년 9월 남북한의 UN 동시 가입과 미국 전략핵의 철수로 인한 한반도 긴장완화와 함께 돌 파구를 마련하게 된다.49) 1991년 10월 22일 재개된 제4차 남북고위 급회담에서 남한과 북한은 각각 ‘남북 간 화해
‧
불가침과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북남 불가침과 화해 및 협력교류에 관한 합의서’를 제시하였고, 타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50) 이후 급진전된 논의 는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의 마지막 날인 1991년 12월 13일 「남북기 본합의서」 채택으로 이어졌다. 동 합의서는 1992년 2월 19일 제6차 회담에서 발효에 필요한 내부절차를 완료했다는 통보를 상호 문건 으로 전달함으로써 정식 발효되었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채택 및
발효와 함께 남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합의47) 임동원, “남북고위급회담과 북한의 협상전략,” 곽태환 외, 북한의 협상전략과 남북한 관계 (서울: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1997), p. 73.
48) 위의 글, p. 88.
49) 정해구, “남북대화의 가능조건과 제약조건 분석: 7‧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사례를 중심으로,” p. 94.
50) 배광복, 남북대화 1971-1992: 힘‧선택‧말의 남북관계 역사, p. 322.
‧
가서명 후 발효시켰으며, 분야별 분과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에 대 한 합의를 이루었다.51) 이어진 제7차 및 제8차 회담을 통해 남북한 은 분야별 이행기구인 공동위원회의 운영에 관한 합의서와 기본합 의서 제1장(남북화해), 제2장(남북불가침), 제3장(남북교류‧
협력)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를 채택‧
발효시켰다.<표 Ⅱ-2> 본회담의 주요 쟁점 및 합의 과정
남한 북한
기본 입장
∙ 정치‧군사 문제 및 교류‧협력 을 포괄하는 기본합의서 아래 복수의 세부 합의서 채택 주장
∙ 남북 불가침 선언 우선 채택 주장
1차 회담 (90.9.
4-7, 서울)
∙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기본합의 서(안) 8개항52)
∙ 다각적인 교류‧협력 실시 방안 10개항
∙ 정치‧군사적 신뢰구축 방안 8개 항 및 남북 간 군비감축 추진방 향 제시
∙ 정치적 대결 상태 해소 방안 6개 항, 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 방안 9개항, 남북 간 불가침의 5개 구 성 요소 제시
∙ 남북 간 불가침 선언 채택과 북 미 간 평화협정 체결 주장
∙ 3개항 긴급문제(UN 가입문제, T/S 훈련 중지, 방북구속자 석방 을 우선 협의‧해결할 것을 주장)
2차 회담 (90.10.
16-19, 평양)
∙ 북측의 주장을 일부 반영한 기본 합의서 수정안 제시
∙ 다각적인 교류‧협력 실시방안 중 제9항 ‘통행, 통신, 통상에 관한 합의서 채택’을 부연한
‘통행, 통신, 경제교류‧협력’에
관한 제안을 제시
∙ ‘남북 간의 화해협력을 위한 공동 선언’으로 수정 제시
∙ 3개항의 긴급문제 우선 해결을 주장
∙ 남북 불가침에 관한 선언(안) 제시
51) 임동원, “남북고위급회담과 북한의 협상전략,” p. 73; 통일부, “남북기본합의서 관련 해설자료,” pp. 3~4.
52) 제1차 회담에서 남한 측이 제시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기본합의서(안) 8개항의 주요 요지는
① 통일이전까지 상대방의 체제 인정‧존중, ② 상호비방‧중상중지 및 상대방의 내정에
대한 불간섭, ③ 상호 의견대립과 분쟁은 당국 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
④ 상대방에 대한 파괴‧전복행위 중지, ⑤ 자유왕래와 다각적인 교류 협력을 실현하고 사회
개방과 민족적 유대를 회복, ⑥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감축 실현, ⑦ 국제무대에서 서로 협력하며 민족의 이익과 자존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 ⑧ 현 휴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이다.
남한 북한
3차 회담 (90.12.
11-14, 서울)
∙ 북한의 주장을 종합적으로 수용
한 ‘남북관계 개선에 관한 기본
합의서’ 수정안 제시
∙ 교류협력 문제와 불가침 문제 협의‧해결 입장을 제시
∙ 3개항의 긴급문제에 ‘베를린 범 민족연합 결성’ 참가와 관련한 구속자 석방 문제를 포함
∙ ‘남북 불가침에 관한 선언’ 우선 채택 입장을 고수
∙ ‘남북고위급회담 공동성명’, ‘남
북불가침에 관한 선언’, ‘남북협 력교류에 관한 선언’ 3개 문건 의 일괄 채택을 제의
4차 회담 (91.10.
22-25, 평양)
∙ 기본합의서 수정안 제시
∙ 합의서 채택 후 열리는 것으로 상정한 정치‧군사 분과위원회 에서 협의할 사항으로 ‘불가침 에 관한 방안’을 제시
∙ 최종적으로 ‘남북간 화해‧불가 침과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제시
∙ 남한이 제2차 회담 시 제시한
‘남북 간의 화해협력을 위한 공 동선언’과 북한이 제시한 ‘불가 침 선언’을 합쳐 ‘남북 불가침과 화해협력에 관한 선언’이라는 단일 문건 채택을 주장
∙ 최종적으로 ‘북남 불가침과 화해 및 협력교류에 관한 합의서’ 제시 실무
대표 접촉
∙ 합의서 명칭: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로 확정
∙ 내용 구성: 전문, 남북화해, 남북불가침, 남북교류‧협력, 수정 및 발효조항
5차 회담 (91.12.
10-13, 서울)
∙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채택
(1991.12.13.)
∙ 남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안) 제의
∙ 핵문제 협의 대표접촉(1991.12.26-31) 개최 후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합의 및 가서명
6차 회담 (92.2.
18-21, 평양)
∙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문본 교환
및 발효(1992.2.19.)
∙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실천 기구로서 분야별 분과위원회 개최에 합의
∙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발효 (1992.2.19.)
∙ 비핵화 공동선언 발효 이후 7차례 고위급회담 대표접촉(1992.2.19.
-3.14)을 통해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구성‧운영 합의서’ 채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