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논의가 중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호 이후 연극에 대한 기존 연구에서 지적한 바, 여러 창작자들은 사회에 대한 절망 뿐 아니라 기존의 “연극의 언어가 갖는 한계, 한사람의 인간 으로 느끼는 좌절감”104)을 마주했으며, 이를 작품 내에서나 또 다른 형 태로 표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창작자뿐 아니라 관객들도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기존의 관극 태도와는 다른 경향을 가지게 되었다. 일례로, 관객들이 구명조끼, 교복, 노란 리본 등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오브제가 무대에 등장하기만 해도 즉각적인 눈물로 반응하였다는 기록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 다. 그런데 창작자와 관객들이 세월호 참사로 인해 보인 트라우마적 반 응은 예외적인 상황이자 극복의 대상으로 여겨졌다.105) 이때의 트라우마 는 특정한 시기에 극장 안에서 나타난 즉각적이고 격렬한 정서적이고 심 리적인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1주기,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할 것인가」에서 이경미는 연극의 언어로 세월호 참사가 낳은 비극을 위로 하려는 시도가 이어졌으나, 많은 작품들이 극장 밖 현실을 자기반성의 시간 없이 서둘러 무대화했기 때문에 결국 소리를 지르고 통곡을 하는 등 정제되지 않은 감정의 과잉으로 침몰해버린 것을 안타까워했다. 특정 한 작품을 사례로 들고 있지는 않지만, 이는 트라우마적 반응에 대한 경 계를 담고 있다.
의 첫 발제를 시작함으로써 이를 선명히 드러냈다. 또한 기국서는 6.25, 4.19, 10.26, 광주 항쟁, 용산 참사, 쌍용자동차 파업 등 자신이 경험한 한국사의 커다란 비극을 이 야기한 후, 세월호 사건이 다른 모든 사건보다 충격이었고 분노나 눈물을 넘어 설명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으며, 이 때문에 “연극을 하지 못하는 공백상태”에 빠져버렸다고 토로했다.
104) 이경미, 「세월호 1주기,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할 것인가」, 연극평론, 77권, 2015, p.
20.
105) 이러한 우울을 회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서의 우울이라는 용 어는 치료되어야 하는 질병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자기관찰하는 과 정에서 등장한 ‘감정적 테마’로 기능하는 기호이다. 즉 행위자들이 세월호 참사와 연관 된 의사소통을 수행할 때, 자신들의 마음의 부서짐을 말하고, 그 비통을 표상하고, 타인 들의 상심을 우려하고, 사회의 슬픔을 관찰하기 위해 선택한 상징이 바로 ‘우울’인 것이 다. 그것은 한 사회의 감정적 연대의 매체, 고통의 분유와 전파의 언어의 성격을 갖는 다. 따라서 우울, 마음의 부서짐은 그 자체로 수용되고 새로운 집합적 가능성 쪽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민주주의의 한 체험 양태를 뜻한다.” (김홍중, 「마음의 부서짐 – 세월 호 참사와 주권적 우울」, 사회와 이론, 제26집, 2015, p. 163.)
또 다른 논의에서도 양근애는 세월호 트라우마에 갇혀있는 듯 보이는 연극들에 대해 다소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혜화동 1번지가 마련한 ‘세월호 이후의 연극, 그 리고 극장’은 여전히 ‘이후’가 아니라 아득히 허방을 짚듯 고통스러 웠던 그 시간의 한가운데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감정을 추스르고 이성적인 눈으로 세월호 이후 현실의 변화를 비판 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있었으나 [...]106)
이 글은 세월호 연극을 향해 “자의식에서 그만 벗어나도 된다고,” 그리 고 “이제 걸음을 옮길 때라고”107) 이야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세월호 사건으로 인한, 극장 안에서 포착할 수 있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창작자의 트라우마적 접근과 관객의 트라우마적 반응은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인 동시에, 연극 또는 연기라고 보기엔 부족한 어떤 것 이다. 왜냐하면 이 논의가 “(이제는) 연극을 하고 연기를 해도 된다고 극 장을 향해 중얼거려본다.”108)는 말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강력한 세월호 트라우마로 인해 일부 세월호 연극에 서 창작자는 기존의 연극 양식에 담지 못하는 감정의 과잉적 표현 등을 여과 없이 무대에 올리고, 관객은 기존에 약속된 관극 방식을 따르지 못 하고 강력한 연상 작용을 일으키는 세월호 사건으로 지속적으로 빨려 들 어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기존의 논의들은 이러한 경향을 보 이는 세월호 연극을 예술 작품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언젠가 정 상화될 수 있는, 그리고 정상화되어야 하는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세월호 트라우마를 들어 재현의 어려움을 제기하는 것은 세월호 연극으로 인해 야기된 기존 연극 창작 및 관람 방식의 균열
106) 양근애, 「세월호 이후의 연극, 그리고 극장 : 재난 이후, 극장의 곤혹」, 공연과 이론, 65호, 2016, p. 218.
107) 위의 글, p. 226.
108) 위의 글, p. 226.
을 ‘예술이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분석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 서 문제가 있다.109)
두 번째로 지적할 세월호 연극의 재현 문제는 흔히 “현실의 스 펙터클을 연극이 따라잡을 수가 없어서”라는 말로 표현되곤 하는 것이 다. 세월호 침몰이라는 재난 자체의 스펙터클, 7층 아파트 한 동 크기의 배가 침몰하고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한순간에 죽었다는 현실적 비 극의 압도감이 연극적 재현 양식을 무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는 다 양한 영상 미디어의 재현이 자아낸 스펙터클 앞에서 느낀 연극적 재현 양식에 대한 좌절감이다. 실제로 세월호 사건은 무분별하다고 일컬어질 만큼 수많은 보도 영상과 탐사 영상들을 쏟아냈다. 세월호 사건은 영상 매체의 발달로 인해 ‘생중계된 재난’이 되었기 때문에 언론 매체를 통한 영상 미디어의 신속성, 긴박성 등이 현저히 드러났다. 배가 가라앉는 모 습 뿐 아니라 유가족들이 오열하는 모습 등을 많은 사람들에게 시시각각 즉각적으로 신속하게 전달했다. 이는 언론보도 대참사110)라고 불릴 정도 로 화려한 스펙터클과 사실감 앞에서 연극적 재현 양식에 대한 무력감을 토로한 것이라 분석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스마트폰을 통해 세월호 희생자들이 배 안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 및 영상이 기록되었고 이중 일부가 복원, 공개되었다는 점 도 지적할 수 있다.111) 이로 인해 영상 매체는 배가 침몰할 당시의 상황 을 가까이에서 현장감 있게 재현할 수 있었고, 세월호 침몰의 원인을 밝 히는 데 도움이 될 실질적인 증거로 여겨지기도 했다. 또한 이러한 자료 가 기존 방송매체보다 더욱 신속하고 확산력 있는 시민들의 SNS나 유 튜브를 통해 배포된 점 역시 영상 매체 재현의 스펙터클을 강화시켰다.
109) 이러한 균열은 단순히 트라우마로 인해 일시적으로 발생한 것도 있을 수 있지만, 연 극 매체의 표현 양식 자체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지점도 있기 때문에 분석의 대 상이 되어야 한다. 3장 참조.
110) 정수영, 「‘세월호 언론보도 대참사’는 복구할 수 있는가? - 저널리즘 규범의 패러다 임 전환을 위한 이론적 성찰」, 커뮤니케이션 이론 11(2), 2015.6, pp. 56-10.3.
111) 세월호 사건은 다른 참사에 비해 다수의 사진, 영상 기록이 존재한다. 이는 SNS나 유튜브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 익숙한 10대 청소년들이 다수 세월호에 탑승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영상 매체의 재현에 맞서 세월호 연극이 채택한 표현 양 식은 배우와 관객의 몸성 강조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크리 에이티브 VaQi’의 <비포 애프터>가 있다. <비포 애프터>는 몸성이 두 드러지는 장면들이 포착된다. 먼저 성수연은 공연의 첫 장면에 등장하여 아버지의 위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대사를 한다. 이후 그녀는 연극의 중간 중간 등장하여 위암에 걸려 야위고 구부러져가는 아버지의 몸을 자 신의 몸으로 표현한다. 투병으로 인해 서서히 변해갔을 ‘아버지’의 몸이 극장 안에서 재현되면서 관객은 상연 시간으로 제한된 짧은 시간동안 급 격히 망가져가는 몸으로서 죽음을 직접 바라보게 된다. 또한 국가로 명 명된 ‘수진’은, 세월호 사건에서 마치 절대 악처럼 묘사되곤 해서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진 국가를 배우의 몸이라는 실체로서 극장 안에 소환하는 효과를 낸다.112) 배가 기울어감에 따라 점차 패닉에 빠지는 학생들의 대 사가 울리는 가운데, 자기 소관이 아니며 아무런 명령을 받지 못했기 때 문에 구조를 진행하지 않는 ‘선원’은 지속적으로 ‘국가’의 눈치를 본다.
이로써 한 번도 눈을 마주쳐본 적이 없는 국가는 배우 장수진의 몸을 통 해 참사를 뻔히 지켜보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무책임한 실체 로서 드러난다. 이처럼 <비포 애프터>는 타인의 죽음이나 국가처럼, 영 상 미디어의 재현이 보여줄 수 없는 방식인 몸의 활용을 통해 세월호 사 건을 그려낸다.
세 번째로, 세월호 사건의 재현의 어려움은 세월호 사건의 현재 진행성에서 기인한다. 세월호 사건이 아직 진상 규명이 되지 않은 사건 이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한 서사화와 애도가 불가능하고 재현의 대상으 로 역사화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주장이다.113) 바꿔 말하자면 세월호 사 건의 진상 규명을 막는 정치적 현실이 사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의미 화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연극화에 어려움을 준다는 것 이다. 즉, 세월호 사건에 대한 연극화는 진상 규명이 되지 않은 현재적 사건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세월호 연극의 정치성이 드러나는 방식인 동
112) Ⅲ장 2절 1항 참조.
113) 양근애, 「‘이후’의 연극, 애도에서 정치로」, 대중문화서사, 제22권 3호, 2016, p.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