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새로운 창작 주체의 등장: 세월호 가족
3.2. 세월호 연극과 노동 연극의 비교
연극 경험이 없는 현실 정치 영역의 사건 당사자가 연극 창작에 참여한 사례는 세월호 연극에서만 나타난 일은 아니다. 1970~80년대 민 주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창작된 노동연극 작품들 역시 해고 노동자들이 대본 창작에 관여하고 직접 무대에 올랐다는 특징을 지닌다.180) 실제로 세월호 연극과 당시의 노동 연극 사이의 몇 가지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 다. 소재로서 대상화되었던 존재들이 연극의 주체가 되었다는 의의를 가 진다는 점 이외에도, 사회 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던 단체(민주노동조합과
179) 이우성, “‘웃음으로 승화한 슬픔’…세월호 피해엄마들 극단 창단”, 연합뉴스, 2016년
10월 20일,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0/19/0200000000AKR20161019130 200061.HTML
180) '변혁운동을 지향하는 문예운동'의 주도세력임을 자처해왔던 연극 운동은 1980년대 이후에는 사회변혁의 주체에 대한 형상화에 힘썼다. '노동연극'은 그 전의 '문제극'과는 달리 전국에서 떨쳐일어난 노동자들의 투쟁과 그러한 투쟁을 가져온 이땅의 노동현실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형상화하였고, 그때까지의 극장공연이나 대학공연 중심에서 한걸 음 나아가 직접 공장공연이라는 활동공간을 확보하면서 연극의 주인공인 노동자대중의 삶과 투쟁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노동운동과 밀접한 연계를 갖게 되었다. (박영정, 「노동 운동의 정세와 연극운동」, 월간말, 1990.8, p. 208.)
416가족연대)의 소모임에서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는 점, 외부의 전문가 들이 이들과 협력하여 창작 및 상연을 진행했다는 점181), 주요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사건 당사자들의 ‘실제 목소리’를 연극에 담고자 했다는 점, 당대 관객들은 상연된 작품이 현실 정치 영역에 개입하려는 의도를 지녔다고 이해했다는 점, 연극에 참여한 이들이 현실 정치 영역에서의 사회 운동에 열심히 참여했던 개인들이라는 점182) 등이 그러하다. 무엇 보다 사건 당사자들이 연극 참여를 많은 사람에게 부당한 사건에 대해 알리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겼다는 점에서 노동 연극과 세월호 연극은 공통점을 보여준다.183)
하지만 이러한 몇 가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연극과 노 동연극은 연극에 참여한 주체와 그 의도, 연극 양식, 기대 효과 등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이 차이점을 밝히기 위해 해고된 노동자가 주체 가 되어 만든 대표적인 노동연극인 <동일방직 문제를 해결하라>184)와 세월호 연극 몇 편185)을 비교할 것이다.<동일방직 문제를 해결하라>는
“노동자들 스스로가 연극의 주체가 되어 마당극 정신인 상황적 진실성을 통하여 현장적 운동성을 담보”한 최초의 연극 작품이자 “그 이후 공연된 노동극의 전사(前史)적 성격을 지닌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181) 노동운동에 도움을 준 이들은 탈춤 동아리 소속 대학생이었고, 세월호 가족과 협업하 여 세월호 연극 창작한 이들은 기성 연극인이었다.
182) “탈춤반이나 연극반에서 예술문화 활동을 한 사람들은 노동조합에서도 열성적인 조직 원으로 모범적인 활동을 펼쳤던 것이다.” (임지희, 「1980년대 초기 노동연극 연구」, 한국극예술연구, 2012, p. 308.)
세월호 진상 규명 운동은 50가정 정도의 세월호 가족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고 있으며, 연 극에 참여하는 모든 세월호 가족들은 거리 시위, 간담회, 성명서 발표 등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183) 노동 연극은 시위 참여 등 적극적이고 집단적인 참여를 촉구하고, 세월호 연극은 세 월호 리본 달기 등 일상 속의 실천적 영역에서의 참여를 촉구했다. 이러한 차이는 정권 의 억압 형태가 노동 운동에는 직접적이고 폭력적으로, 세월호 진상 규명 운동에는 은 밀하게 자행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세월호 이렇게 노동 연극과 세월호 연극이 지닌 사회 참여적 성격은 그 양상을 달리 하기는 했으나, 관객의 의식화 교육 및 정치 활동 의 확장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184) 박우섭 구성, 김봉준 연출,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를 위한 금요기도회’ 2부 상연, 1978년 9월22일, 종로5가 기독교회관 대강당.
185) 당사자의 연극 참여 사례 중 해고 노동자나 세월호 가족이 직접 무대에 오른 사례들 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그날, 당신도 말할 수 있나요?>, <그와 그녀의 옷장>, <이 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지닌다고 할 수 있다.”186) 이러한 비교를 통해 세월호 가족의 연극 참여 가 지니는 독특한 지점을 드러내고자 한다.
먼저 연극의 주체이자 사건의 당사자라 일컬어지는 이들이 각 사건에 개입된 정도에서 차이가 있다. 말하자면 <동일방직 문제를 해결 하라>의 배우들은 동일방직으로부터의 해고를 자신들이 직접 경험한 반 면, 세월호 가족은 세월호 사건을 가족으로서 경험했다.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들은 탄압의 실상을 직접 경험했고, 연극적 재현을 통해 자신들이 겪은 이러한 부당한 “상황적 진실성을 알리고자”187) 했다. 이 때문에
<동일방직 문제를 해결하라>는 이른바 ‘나체 시위’ 사건이나 ‘똥물 투척 사건’ 등 회사 측이 다양한 방식으로 민주 노조를 탄압한 사건들의 전모 를 자세히,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전달”한다.188) 이 연극에서 노동자들은
“스스로 자기 역할을 정리해서 대본”을 만들었기 때문에 “특별히 대사를 외우지 않아도 사건이 진행되면서 저절로 대사가 나오고 이야기 틀거리 를 이해”189)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연극은 노동자를 가해자에 맞서는 희 생자로서의 경험을 표현한다.
그런데 세월호 연극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당사자라기보다는 희생자, 미수습자, 생존자의 가족이다. 이들 역시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연극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 고 그 경험의 내용은 매우 다르다. 세월호 연극에 참여한 세월호 가족은 참사의 생생한 모습보다는, 참사로 목숨을 잃은 가족에 대한 추억과 그 리움을 말하거나190), 세월호 가족으로서 참사 이후 겪고 있는 어려움을 연극적으로 표현한다.191) 참사가 벌어진 후 정부 당국이나 주요 언론의 불합리한 대응에 대해서 말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 역시 “내 자식이 어 떻게 죽었는지 알고자 하는 노력이 짓밟혔다.”는 식으로 가족으로서의
186) 임지희, 「동일방직 문제를 해결하라」, 한국극예술연구, 2010, p. 379.
187) 위의 글, p. 382.
188) 위의 글, p. 386.
189) 위의 글, p. 384.
190) <그날, 당신도 말할 수 있나요?>와 <그와 그녀의 옷장>의 상연 후 발언 자리 191)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경험을 강조한다.
이렇게 연극화하는 내용에 차이가 있는 것은 각 연극에 참여하 는 이들이 스스로를 규정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먼저 노동연극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노동자들의 권익과 민주 주의의 실현에 동참하는 존재로 여긴다. 이는 연극의 내용에서 드러난다.
민주노조에서 만들어진 80년대 노동연극은 공통적으로 노동자 스스로가 노동자로서의 계급 구성원임을 인식하고 노동의 정당한 대가와 인권을 주장하는 등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고 확인해나가는 과정을 표현한 다.192) 이에 따라 “열악한 환경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모습”
이나 “농성이나 시위 등의 투쟁의 모습”193)이 연극에서 주요한 사건으로 등장한다. 실제 사건을 직접 경험하여 대본을 구성한 사람이자 배우로서 이러한 역할을 맡아 무대에 선 이들이 연극을 통해 스스로를 적극적인 노동운동의 주체로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세월호 가족은 자신들이 참사 이전에는 평범한 삶을 살았으며, 진상 규명 운동과 연극에 출연하는 참사 이후의 시기에도 여 전히 현실 정치에 대해 잘 알지는 못 하는 존재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발언은 연극뿐 아니라 언론 기사와 공연 프로그램 등의 기록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현된 바 있으며, 개인적인 지식 및 경험 수준과는 상관없이 세월호 가족들에게서 거의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들 이 이처럼 연극을 통해 스스로를 ‘문외한이자 평범한 시민’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 공작과 연결 시켜 억압하려는 일부 세력에 대한 저항에서 찾을 수 있다. 소위 ‘국민 지우기’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빨갱이라는 딱지 붙이기가 세월호 가족들 에게도 행해졌고, 이들의 진상 규명 운동은 보상금과 특혜를 노린 행위 라 불리기도 했다. 이러한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세월호 가족들은 사망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같은 보편적 정서에 호소했고, 이는 이들 이 스스로를 “참사 이전에는 정치에 관심도 없었던” 존재로 표현하는 이
192) 임지희, 「1980년대 초기 노동연극 연구」, 한국극예술연구, 2012, p. 317.
193) 위의 글, p. 317.
유 중 하나라 할 수 있다.194) 두 번째 이유는 세월호에 대한 문화예술의 작업이 개인적 추모와 기억에 집중되어 있는 경향과 관련이 있다. 여기 서의 ‘기억’은 희생자 각각의 참사 이전의 삶에 대한 기억을 주로 의미한 다. 이에 따라 소설가 및 시인들은 각 희생자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 록하는 작업이 이어졌고, 화가들은 희생자들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한 민 중가수는 희생자 304명의 이름을 모두 부르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195) 따라서 희생자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아 온 가족들은 희생자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들을 잃고 난 후의 경험과 느낌은 어떠했는지를 언론 인터뷰, 증언집 발간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왔으며, 이는 이들이 참 여한 연극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건 당사자의 연극 참여의 관점에서 노동연극과 세월호 연극 간의 또 다른 차이는 연극에 참여하는 목적과 이에 따른 목표 관객에서 도 찾을 수 있다. 두 사례 모두 사회 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던 단체인 민 주노동조합과 416가족연대의 소모임을 통해 연극을 접하고 시작하였으 나, 노동연극은 배우 및 관객인 노동자들의 의식화 교육을 연극의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생각했고, 세월호 연극은 심리 치료 프로그램으로 시작 하여 진상 규명 촉구 운동의 일환으로 전환되었다. 민주노조에서 연극 활동을 이끌었던 소모임은 마당극을 병행하는 탈춤반이었다. 동일방직 탈춤반을 비롯하여 반도상사 연극반, 원풍모방 탈춤반, 콘트롤레이타 코 리아 탈춤반은 마당극 초기 담당자들과 민주노조원들이 연계하여 활동한 대표적인 사례이다.196) 탈춤반을 비롯한 노조의 소모임은 노동문제에 대 한 인식을 넓히고 의식교양을 위한 방안으로 적극 장려되었다. 따라서 소모임을 통하여 노동운동의 주체를 분명히 인식시키는 교육이 꾸준히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소모임 활동은 자연스레 노동조건 개선투쟁으로 연결되었고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의 강력한 뿌리로 자리매김하였다. 특히
<동일방직 문제를 해결하라>는 “관객에게 자신들이 겪은 사건에 대한
194) <그날, 당신도 말할 수 있나요?>, <그와 그녀의 옷장>의 상연 이후 발언.
195) 비슷한 작업이 연극에서 행해진 예는 <그녀를 말해요>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 성 수연이 305명의 이름을 외워서 부른다.
196) 임지희, 「동일방직 문제를 해결하라」, 한국극예술연구, 2010, p. 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