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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공론장의 정치적 의제였던 민중·노동자·여성의 ‘인간 답게 살 권리’란 최근 다양한 각도에서 도전받고 있는 ‘휴머니즘’

에 기반을 둔 사유였다. ‘인간’의 주체로서의 지위와 이를 뒷받침 하는 지식의 정당성이 비판적으로 재고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 서 본 연구는 ‘비인간적인 것’의 개념을 도입하여 이 문제를 고 찰하고자 한다.

‘비인간적인 것’은 휴머니즘의 이상理想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인 식론적·존재론적 한계를 드러내기 위해 고안한 개념으로, 형이상학 적·본질주의적 인간이 아닌, 타자성과 관계성으로 구성되는 인간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그리하여 ‘비인간적인 것’은 인간과 그 삶 의 문제를 ‘변형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인식과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이 절chapter은 ‘비인간적인 것’을 설명할 이론적 자원을 마련 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1980년대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인간과 그 삶의 문제를 자본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할 필요를 제시하 고, ‘비인간적인 것’의 개념적 착안의 출처로부터 구조주의와 포 스트구조주의 비판이론의 탈중심화 된 인간, 포스트휴먼이론의 비인 간에 관한 논점을 짚어보겠다.

1980년대 한국은 경제적 성장의 정점을 기록했던 시공간으로 기억 되는데, 이 성장의 주역이 ‘자본’이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 다. 당시 한국 사회가 봉착해 있던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한히 증식하며 운동하는 자본이 자체의 동학으로 ‘새 로운 버전의 자본주의’를 재생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79) 실제로, 1979-80년 사이 권력 교체기에 나타난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1970년대 후반 박정희 정부가 주도한 성장중심의 경제정책이 경제안 정화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으로 전환된 것이라 할 수 있다.80) 이러한 정책의 전환은 1979년 10월 부마항쟁에서 1980년 5월

79) 데이비드 하비, 황성원 옮김, 자본주의의 17가지 모순, 동녘, 2014, 18면.

80) 하이에크 방한 이후 신현확 경제팀이 1979년 4월에 발표한 ‘경제안정화 종

광주항쟁에 이르는 ‘저항의 국면’과 중첩되면서 경제적 위기와81) 정치적 위기가 동시적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이루어진다..82) 악 화되고 있던 한국의 경제적 상황이 달라지게 된 것은 1986년 정부가 중화학공업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고, 국내의 대기업들에 독점적 특혜 를 주면서부터다. 물가가 안정되고, 일본을 비롯한 외국자본이 특정 기업에 편중되면서 외채 위기가 해결되자 한국의 경제는 성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1980년대의 상황은 자본이 국가기구의 능력을 통제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83) 문제는 이 과정에서 거대해진 자본의 위 력이 대다수의 인간과 삶을 규율하는 제약이 되었다는 점이다. 단적 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이전 시기 전태일로 대표되는 공장 노동자들 을 비인간으로 내몰았던 폭력적 수탈과 착취가 민중 구성원 전반의 문제로 그 의미망을 확장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980년대 한국 은 그 어느 때보다 인간과 자본의 관계가 중요해진 시공간이었고, 그 로 인해 문학은 인간의 살 만한 삶의 필요와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84) 인간의 욕구와 필요, 욕망이 가치의 증식과 전화,

합 시책’의 핵심은 시장기능 강화와 민간 자율성 확대였다. 유신 말기의 핵 심 경제 관료였던 강경식은 이 안정화 시책을 “관 주도에서 시장 경제로 가 는 것”이라고 정리하면서, “성장에서 안정으로, 보호에서 개방으로, 경쟁 촉진으로”라는 내용의 전환을 강조했다. -황병주, 「유신, 자본과의 공모 혹 은 대결」, 권보드래·김성환·김원·천정환·황병주, 1970 박정희 모더니즘

―유신에서 선데이서울까지, 천년의상상, 2015, 40면.

81) 실제로 1979년 봄부터 한국경제는 제2차 석유파동에 의한 유가상승과 미국 의 고금리 정책의 영향으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유가상승은 인플 레이션을 가속화하였고 미국의 금리인상은 외채 부담을 빠른 속도로 누적시 켰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 미국에서 권력 엘리트와 경제정책 패러다임이 교 체되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레이건 정부는 1970년대의 경제위기를 케인스 주의적 국가개입정책에 의한 실패로 규정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자유 시장경제로의 복귀를 주장하면서 경제정책을 전환한다. 박찬종, 「한국 신자 유주의의 정치적 기원—부마항쟁과 광주항쟁 이후의 경제정책 전환」, 사회 와 역사 117, 한국사회사학회, 2018 참조; 「유가 더 낮출 수 있었다」, 조선 일보, 1980.2.2.; 「인상해일, 표류하는 서민가계,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도 없다」, 동아일보, 1980.2.2.; 「임금인상 요구, 노사분규사업장 잇달아」, 매 일경제, 1980.4.25. 참조.

82) 박찬종, 앞의 논문(2018), 95-105면 참조.

83) 데이비드 하비, 강윤혜 옮김,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선순환, 2021, 135면.

84) 경제의 양적 성장이 국민들의 피부에 감지되는 수준에 도달하게 되자 분배

분배가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도록 추동하는 힘이기에, 자본은 인간 의 욕망의 구성과 재구성에 필연적으로 관여한다.85) 따라서 끝없이 변화하는 ‘본성’을 우리와 미래를 둘러싼 정치적·문화적 투쟁이 벌어지는 장소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86) 인간을 변형 가능한 어 떤 것으로 인식하고 상상할 수 있는‘다른’ 관점이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 논문은 ‘비인간적인 것’의 개념을 도입한 다. 이 개념은 푸코의 작업에서 착안한 것이다. 푸코는 ‘인간’이라 는 에피스테메를 통해 근대의 인식론적 지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고 찰하는 과정에서 “쌍둥이 형제같은 타자”가 “사유되지 않은 것”

으로 남아있다고 지적한다. “19세기 인간의 은밀하고 부단한 동반 자”이자 “끈질긴 분신”으로 표현되는 이 사유되지 않은 것을, 푸 코는 인간을 인식할 가능성이 생겨나는 ‘맹점’이라고 표현한다. 그 는 헤겔의 즉자, 쇼펜하우어의 무의식적인 것, 마르크스의 소외된 인 간, 후설의 비현실적인 것과 개념적 유사성을 공유하는 이 ‘사유되 지 않은 것’이 결코 자율적인 방식으로는 숙고되지 않는다고 말한 다.

푸코의 설명을 토대로 이 논문은 “실행되지 않은”채 보충적인 형태와 전도된 명칭으로만 표현될 수 있는 이것을,87) 1980년대 민 중·노동자·여성이 담론의 대상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에 완전히 수렴 하지 않은 채 남아있는 잔여에서 발견한다. 이에 잔여의‘흔적’88)

와 복지, 문화 등 삶의 질과 관련된 인간의 욕구가 표출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1980년대 예술은 계급, 이념 등과 같은 이슈를 전면에 부각시키기에 이 른다. 이영미, 「총론」,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편, 한국 현대 예 술사대계 V, 시공사, 2005, 16-17면.

85) 데이비드 하비, 김성호 옮김, 자본주의와 경제적 이성의 광기, 창비, 2019, 86-88면.

86) 자본에 의해 우리는 사고와 이해를 비롯하여, 제도와 지배이데올로기, 정치 적 주체성, 기술, 사회관계,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관습과 취향의 변화를 겪는다. 자본의“모순을 창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인간은 자본에 의한 변화를 경험하면서도, 사유와 실천, 행동을 통해 인간 자신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데이비드 하비, 앞의 책(2014), 31-32 면.

87) 미셸 푸코, 이규현 옮김, 말과 사물, 민음사, 2012, 447-448면.

88) 각주 39 참조.

‘비인간적인 것’으로 명명하며, 이를 통해 당대의 인식론적 질서 에서 사유되지 못했던 ‘다른’ 인간의 인식의 조건과 인정가능성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비인간적인 것’이 우리로 하여금 묻게 하는 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기보다, ‘우리는 인간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의 비 판이론, 근래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포스트휴먼이론에 이르는 궤적 을 통해 이 문제에 관해 답해보도록 한다.

휴머니즘이 상정한 보편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우연적·허구적 구성물에 불과하다는 점이 밝혀진 것은 알튀세르와 푸코, 데리다의 작업을 통해서였다. 알튀세르는 전후 프랑스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인 간학적·철학적으로 이해되는 경향을 비판하며,89) 인식론적 절단coipure

épistémologique을 통해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

한다. 알튀세르의 이론적 개입은 청년기와 후기 마르크스 사이에 나 타난 이데올로기론의 공백을 포착하면서 시도된다.

…이데올로기는 사실상 “의식”과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데올로기는 심지어 숙 고된 형태로 드러날 때에도 지극히 비의식적이다. …그러나 이 표상들은 무엇보다도 구조로서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들의 “의식”을 경유하지 않고 부과된다. …사람들은 자 신들의 이데올로기를…결코 의식의 형태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세계”의 한 대상으로 서, 그들의 “세계” 자체로서 “산다”.…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살아지는”vécu관계는 이데올로기를 통과한다는 것, 더 정확히 말해서 이데올로기 자체라는 것을 뜻한다. …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살아지는 관계에 관한 것이다. …실상 사 람들은 이데올로기 속에서 자신들의 존재 조건에 대한 자신들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존재 조건에 대한 자신들의 관계를 사는 방식을 표현한다. 이것은 현실적 관계와 “살아지는” “상상적” 관계를 동시에 전제한다. 이데올로기는 따라서 사 람들의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관계의 표현이다.… 이데올로기 속에서 현실적 관계는 불가피하게 상상적 관계 속으로, 즉 하나의 현실을 기술하기보다는 하나의 의지(보수

89)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알튀세르의 이론적 개입은 전후 프랑스의 철학계에 대 두된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적 해석에 반대하여 시작된다. 사르트르나 메를로 퐁티 등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유물론적 역사개념이 사람들을 자본주의의 비 인간적 상태로부터 해방하는 사유체계라고 생각했고, 공산주의 사회가 그들 이 진정한 인간의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가져다줄 것으로 간주하였다. 마 르크스 휴머니즘의 특징은 18세기 계몽주의 시기 프랑스와 독일에서 발전한 휴머니즘, 즉 사람들은 원칙적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치해야 하고 실제 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신념과 비슷하다. 루크 페레터, 심세광 옮김, 루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앨피, 2014, 5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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