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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에서 월간 審評(심평) 제54호 (페이지 3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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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평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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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여행 고전의 소리 향

중 국 문 학 에 서 불 후 의 명 문 장 으 로 알 려 져 있 는 적 벽 부 는 단 순 히 술 잔 치 만 을 노 래 한 것 온 아 니다 . 사 실 적 벽 부 는 동 파 의 인 간 세 상 과 진 리 에 대 한 통 찰 력 이 얼 마 나 깊 었 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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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실 하 게 드 러 내 주 는 문 학 과 철 학 이 절 묘 하 게 어 우 러 져 있 는 글 이다 -

1

범부와 성인이 동거하는 적벽강. 임술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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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7월 (旣望 : 음력 16일)에 소동파가 • 나그네들과 함께 배를 띄우고 노닐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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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강은 바로 중생들의 희로애락이 수 ' 시로 교차하는 생사고해의 무대이다. 흰 !

I

이슬이 강을 가로지르고 있고 물빛이 하 ! 늘과 맞닿아 있는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

하나의 갈댓잎 같은 조각배가 흘러가는 대로 맡겨두고 만경창파 망망한 물결 위 에 떠있노라면 마치 날개가 돋아나서 신 선세계로 오를 것만 같은 기쁨이 밀려온 다. 그러나 이내 귀양 와 있는 자신의 신 세를 돌이켜보고는 하늘 저 편에 있는 임 금님을 그리워하며 수심에 젖는다. 소동

파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 나그네가 부는 퉁소 소리도 깊은 골짜기에 숨어있는 교 룡을 춤추게 할만 하기도 하지만 외로운 배 위에 떠 있는 과부의 눈물을 뽑아내기 도 한다. 여 기 에 나오는 교룡과 과부는 사 소한 일상사에 일희일비하는 우리 중생 의 모습 그 자체이다. 그리고 적벽강에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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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배 위에는 제행무상解行無常)’의 대 변자인 나그네와 적멸위락(寂滅爲W

설파자인 소동파가 아직은 각각 다른 생 각을 품은 채 함께 몸을 싣고 있다.

제행무상의 대변자 나그네

동파의 노랫가사에 맞춰 나그네가 한 곡 조 퉁소 가락을 연주 한다. 희로애락을 자 유자재로 표현하는 실날처럼 끊어지지 않는 나그네의 퉁소 가락에 놀란 동파가 어쩌면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는가 하고 질 문을 던진다. 나그네는 먼저 적벽대전을 끌어들여 적벽강이라는 무대에서 펼쳐졌 던 지난날의 영웅 조조의 영욕을 절묘하 게 대비시키면서 설명한다. ‘달빛이 밝아 지자 별빛이 희미해지니 까마귀와 까치 가 남쪽으로 날아가네” 이 것은 조조가 의 기양양한 상태에서 지은 시가 아니었더 냐. 그러나 서쪽으로 하구를 바라보고 동 쪽으로 무창을 바라보니 산천이 서로 뒤 얽혀서 우울하게도 푸르스름하게 빛났던 이것은 조조가 주유에게 대패해서 곤경 을 당했던 것이 아니더냐. 형주를 격파하 고 강릉으로 내려올 때에는 배가 천리에 이어졌고 깃발이 허공을 뒤덮었다. 그러 나 지금 이 적벽강에는 진실로 한 세대의 영웅이라 할 만한 그의 모습은 자취도 찾 아볼수가 없다.

하물며 강가 모래톱에서 물고기 잡고 땔 나무나 하고 일엽편주에 올라 서로 술이 나 권하고 있는 그대와 나의 신세임에랴.

우리네 신세는 마치 하루살이가 하늘과 땅이라는 거대한 공간에 찰나의 시간 동 안 몸을 맡기고 있는 것과 같고, 아득하기 로는 창해에 떠 있는 좁쌀 한 톨에 불과할 뿐이다. 어찌 우리네 인생이 잠깐인 것을

슬퍼하지 않고 무궁무진 흘러가는 저 장 강의 물결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 가. 나그네는 무상게(無常渴)의 한구절처 럼 “모든 것은 무상해서 생겼다가 없어지 는 것임”을 퉁소가락에 실어서 무상(無 常)의 계절인 가을에 한 곡조 연주를 한 것이다.

적멸위락(寂滅爲樂 설파자 소동파 나그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나서 소 동파가 말한다. “나그네 그대도 저 물과 달을 아느냐? 저 강물이 흘러가는 것이 이와같지만 일찍이 흘러간 적이 없고, 달 이 찼다 기울었다 하는 것이 저와 같지만 끝내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현재 눈 앞에서 흘러가고 있는 강물이 흘 러가는 그 자체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물 불천(物不遷)3 사상을 소동파는 지금 나그 네에게 갈파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목전에서 흘러가고 있는 강물은 과거의 강물이 흘러와서 현재 눈앞에서 흘러가 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강물이 흘러 온 것이 아닌 것처럼 현재의 강물이 어디 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다.

소동파는 이어서 말한다.

변화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천지(天地역시 순간도 유지될 수 없는 것이지만, 불변의 관점에서 보면, 천지만물과 내가 모두 다함 이 없는 것이거늘 또 무엇을 부러워하겠는 가?

소동파는 무상게(無常渴)의 뒷 구절 “생 멸 자체가 사라지면 적멸한 즐거움이 된 다”는 소식을 갈파하고 있다. 바로 이 대 목에서 우리는「적벽부」가 단순히 술잔치

의 풍경을 묘사한 글이 아니라, 소동파의 오도송(语道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치를보는순간, 귀에 들어오는강가 의 바람소리와 눈에 들어오는 달빛은 모 두 무진장한 보배창고가 된다. 그리고 그 것은 적벽강 위에 배를 띄우고 함께 타고 있는 소동파와 나그네가 함께 즐기고 있 는것이다.

나그네와 설파자의 합일(合一

제행무상(諸行無常)의 관점에 젖어있던 나그네가 소동파가 이와 같이 설파해주 는 이야기를 듣고는 법열(法K)의 미소를

머금는다. 그리고 잔을 씻어 다시 잔을 권 한다. 이제는 서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둘이 아닌 것이다. 조금 전에는 중생의 손 으로 술을 마셨다면 지금은 진리를 통찰 한 더 없는 기쁨으로 술을 권하고 있는 것 이다. 나그네와 동파는 안주가 다 떨어지 고 술잔과 소반이 낭자하게 흩어질 때까 지 술판을 벌이고는, 배 안에서 서로를 의 지해서 드러누워 동방에서 해가 환히 떠 오르도록 잠에 빠져든다. 그러나 이 배는 다른 배가 아니라, 바로『적벽부」의 첫 대 목에 나오는 바로 그 배이고, 사람도 바로 그 사람들이며, 이 배가 떠있는 강물은 위 로는 하늘에 닿아있고, 아래로는 해저 땅 바닥에 닿아있다. 그리고 맑은 바람은 여 전히 불어오고있다.m

박상준(동국대학교 역경원 역경위웨 역서:출삼장기지 아비담 비바사론

’ 제행무상Wf無常) 모든 것은 무상하게 변해

버린다는 관점.' 적멸위락®減®© 모든 번뇌 고요해져서 즐거움이 스물불천(物不a)

주의만물은 천류해서 흘러가지않는다는 관점.

문화와 여행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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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r 왔다. 어려서부터 한번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광활한 시베리아 대지, 그 대지에 조용히 울 려 퍼지는종소리, 성스러운바이칼호수, 나 의 어머니 볼가강, 뻬쩨르브르그의 거리, 그 리고 모스크바의 밤… 뭐 이런 광경을늘 상 상하면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보고 싶었 다.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 민요(*)의 제목들 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그리던 곳 들을 차창 풍경으로 내다보면서 이 런 노래들 을 듣고 싶었다. 보뜨까 한잔을 마시면서…

그럴 시간이 없어서 차일피일하다가 황금연 휴라서 뻬쩨르브르그와 모스크바만이 라도 다녀온 것이다. 갈 때는 정말 훙분해 있었다.

시베리아는 못가도, 바이칼 호수와 볼가강 은 보지 못해도 뻬쩨르브르그의 거리, 모스 크바의 밤 그리고 고르키의 단편〈해연(海 燕)의 노래〉에 나오는 빨틱해의 바다제비는 볼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거기에서〈뻬쩨 르브르그의 거리〉나〈모스크바의 밤〉정도 는들을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뻬쩨르브르그 해변에서 보는 빨틱해는 정말 특이했다. 검은 구름이 검푸른 바다 위를 덮 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바다제비들이 그 거 센 바닷바람을 가르며 날아가고 있었다. 고 르키는〈해연의 노래〉에서 바다제비를, 난국 을 헤치며 싸워나가는 혁명가의 모습으로 묘 사했다. 거센 파도와 바람을 헤치며 날아가 는 바다제비의 기상은 정말 감격스러웠다.

〈해연의 노래〉는 아니지만〈학鶴)〉을 머리 속에서 불러본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 다 전사한 독립투사의 넋이 학이 되어 돌아 온다는 노래라서 감동을 더해 주었다.

뻬쩨르브르그의 거리는 정말 쓸쓸했다.〈뻬 쩨르브르그의 거리〉가사에 나오는 뜨베르 스끼 거리, 얌스끼 거리를 가본다. 애인을 애 타게 기다리며 보뜨까 잔을 기우리던 찻집도 보이지 않고 그 거리에 조용히 울려 퍼진다

던 종소리도 없다. 비장한 노래〈빼쩨르브르 그의 거리〉가 어느 골목에서 흘러나올 것도 같은데 그런 노래는 들리지 않고 그냥 삭막 하기만 하다.

〈평화의 종소리 울리는 모스크바의 밤…〉

이것은 사랑받던 가요〈모스크바의 밤〉의 첫 소절이다. 나는 그런 평화의 종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종소리는 커녕 어린이 자전 거의 찌르릉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어찌나 도둑과 강도가 많은 지 낮에도 외국인은 혼 자서 거리를 다닐 수 없다. 호텔 방에서 창밖 을 내다보면서〈모스크바의 밤〉을 콧노래로 불러보는 데서 끝내야 했다.

종소리… 러시아의 옛 노래 가운데 가장 많 이 등장하는 주제이다.〈참으로 수많은 생각 을 자아내는 저녁종소리…〉<단조로운종소 리가 조용히 메아리쳐 퍼지네…〉러시아에 머무는 동안 그런 종소리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요란한 정교회 건물들은 많이 있지 만 지금은 하나의 문화재에 불과하다. 그러 니 종소리를 들을 수가 있겠는가.

허탈한 기분으로 공원 돌의자에 앉아 있는데 민속음악 연주회가 열린다고 해서 한 사람당

100불을 내고 가서 구경을 했다. 아내와 함 께 갔으니 200불이나 들었다. 프로그램에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 민요 곡명이 더러 나 열되어 있어서 발레공연 관람을 포기하고 그 리로 간 것이다. 그런데 실망하고 말았다. 러 시아 민요는 들을 수 있었는데 그게 어디 러 시아 민요인가. 가수인지, 무희인지, 곡마단 원인지 모를 남녀 대여섯 명이 등장한다. 러 시아 전통의상을 입고 바랄라이카와 바이얀 은 들고 있었는데, 곡마다 장난기가 가득하 고 나약한 괴성을 지르면서 익살스런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시베리아 대지를 지축으로 부터 흔들어대는 그런 우람찬 기백은 하나도 없다. 한마디로 그건 코미디였다.

니꼴라이 궁전에서 점심을 먹는데 거기에서 그나마 러시아 민요한두 곡을 피아노연주로

들을 수 있었다. 중년의 여성 피아니스트가 모차르트, 쇼팡, 차이콥스키, 그리고 우리나 라 가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러시아 민요는 들을 수 없었다. 러시아 민요 몇 곡을 부탁했 다. 그제서야〈검은 눈동자〉와〈학〉을 연주 해주는 것 아닌가. 베이스 독창으로 듣지는 못했지만 피아노편곡으로라도 들을 수 있었 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음식점이나 까페, 상점, 길거리 어디를 가나 음악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의 노래는 없었다. 가사는 러시아 말이지만 곡은 팝이나 랩 같은 미국풍 일색이 아닌가.

그들은 이 런 곡을〈로만틱〉이라 했다. 큰 음 반가게를 몇 군데 들렀다. 코미디화한 러시 아 민요 음반은 더러 있었는데 거기에도 내 가 찾는 정통 러시아민요나 가곡음반은 없 었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러시아에는 러시아의 노래가 없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구라파 어디를 가든 그 나라 특유의 민요나 옛노래 를 들을 수 있지 않았는가. 무척이나 아쉬웠 다. 그러다 ‘'앗차” 하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나라는 어떤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을 때다.

외국에서 5-60년 살다가 우리나라를 찾은 사람이〈새야 새야 파랑새야〉, 김천애 씨가 부른〈울밑에 선 봉선화'〉, 현제명 씨가 부른

〈사우(思;®〉, 이인범 씨가 부른〈봄노래〉를 듣고 싶어 한다면, 그리고 그들의 음반을 구 하고자 한다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볼 것 아닌가. 백년 전 사람이 나타났다고… 내가 망발을 해도 유만분수지. 내가 돌았구나 하 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이제 우리나라에도 우리나라 노래가 없구나.〉이런 생각에 이르 니 기운이 짝 빠지고 말았다.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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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는 민요와 옛 노래가구별이 되지않는 다. 민요는 원래 작자미상의 노래이고 옛 노래는 사 작곡가가 있게 마련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민요 노래가 뒤섞여서 이들 모두를 민요라고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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