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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에서 월간 審評(심평) 제54호 (페이지 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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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구 시인 I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눈속의 푸른 풀밭」, '■햇빛의 길을 보았니」, 산문집 '■한국 현대 시인을찾아서,

•스^요문~

시착 노트r 6번 만의초대','⑶생이 낙몁처렬 치고 나면, 남는것이 무엇일까? 풀 길 없는 숙제를 풀기 위하여 깊은 중으로 뜰어가는 사람B 있다. 태어나자란 곳의 다정한 사람들을두고, 달빛과 별빛을 벗하며 낙엽의 깊은 뜻을 새기는것일까?결국은낙엽은 낙엽답게, 사람은 사럄답게 살다 가는 것이라는 평범한허무의 진리를 어찌할 거나, 사람아!

문화와 여행 테 마여 행

시인이 꿈꾸던

‘해상낙원’ 보길도

조용한 해변가에서 들려오는 조약돌 구르는 소리는 보길도에 대한 추억유 더욱 깊게 해준다. 바로 앞바다에는 당사도, 기섬, 짍매섬, 예작도가 바라보이고 날씨가 좋으면 추 자도와 제주도까지 있다.

■ 사친' 임인학(여행작가

•'•'"广.‘丁:

국토의 땅끝까지 갔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배로 한 시 ; 2 간. 조선시대의 한 시인이 머물며 그이의 자취를 고루 ! 고루 남긴 곳. 3백 년 넘게 흐른 세월이지만 그곳엔 아 ! 직도 시인 윤선도의 숨결이 온전히 남아 있다. ; 때는 바야흐로 조선 인조 4년, 나라에는 병자호란이 일 i

어났다. 어지러운 세상을 등진 채 고향땅 해님•에 숨어 ; 살던 윤선도는 이 소식을 듣고 왕을 돕기 위해 강화도 ! 로 떠났다. 그러나 도중에 왕이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 소식을 전해 들은 윤선도는 더 이상 어지럽고 치욕스런 ' 세상꼴을 보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뱃길을 제주도로 돌 !

려버렸다. i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던 그는 우연히 상록수가 우 ! 거진 아름다운 섬을 보았고, 섬에 올라 산수를 둘러보 ! 다 한눈에 반해 제주도 대신 아예 그곳에 터를 잡았다. i

섬의 산세가 피어나는 연꽃을 닮았다 하여 부용동이라 : 이름지었고, 섬의 주봉인 격자봉 밑에 살림집 낙서재 ;

(樂書^)를 지어 책을 읽고 글을 지었다. 그리고 낙서재 : 건너편 산기슭에는 동천석실(洞天石室)을 세워 부용동 : 을 한눈에 굽어 보는 여유를 즐겼으며, 연못을 파고 세 ' 연정(洗然弱을 만들어 풍류의 공간으로 삼았다. 윤선 ; 도는 이처럼 섬 전체를 조경의 범위로 삼을 만큼 통이 : 크고 미적 감각이 뛰어난 이였다. ' 그는 51세에 보길도에 첫발을 디딘 이후 85세로 세상을 :

뜰 때까지 우리나라 국문학사의 금자탑을 이룬 어부사 ; 시사(漁父四時詞) 40수와 32편의 한시를 남겼다. 서

수국(水國)에 가을이 드니 / 고기마저 살쪘어라/ 닻들어 라 : 닻들어 라 / 만경 창파에 마음껏 놀아보자 / :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인간(人間>을 돌아보니 /멀수록 더 !

욱좋다.〈어부¥)사중〉 !

세연정, 빼어난 원림의 미학 :

부용동 정원에서 가장 공들여 꾸민 원림(정원은 일본식 i

표현)이 세연정이다. 세연(洗然)이란 주변 경관이 물에 ;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란 : 뜻으로 담양 소쇄원과 더불어 우리나라 원림의 백미로 ;

꼽힌다. !

자연적인 계류를 돌둑으로 쌓아 연못(세연지)으로 만들 !

1 반달처럼 완만한 해안선을 가진 예송리 해안의 모습. 2 바다에서

채취한미역을 배로 나르고 있는 예송리 주민.

고다시 그물을 끌여들여 인공 연못을만든 뒤 두 연못 사이의 인공섬에 정자{세연정)를 놓아 주변의 다양한 경관을 즐길 수 있게 했는데 윤선도는 여기에 배를 띄 어놓고 미희들과 함께 노래와 춤을 즐기고, 시를 짓거 나 읊으며 세간의 시름을 잊었다 한다. 또한 세연정에 서 조금 올라가면 옥소암이 나오는데 이 바위 위에서 춤을 추면 세연정 연못에 춤추는 그림자가 비춰 정자에 앉아 이를 구경하기도 했다 한다.

낙서재에서 마주 보이는 앞산 기슭 울창한 상록수림의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커다란 바위 사이에 지은 동천석 실이 나온다. 이곳에 서면 부용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이 는데, 주변의 산자락이 낙서재터를둘러 연꽃처럼 피어 나 있어서 부용동이라는 이름을 실감나게 한다. 윤선도 는 석실 근처의 반석 위에 차를 달여 마시며 산 아래를 내 려보며 경관을 즐겼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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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천석실에 서면 부용동이 한눈에들어올 만큼 전망이 좋다. 4 세연정근처에 세운 윤선도 시비.

5 예송리 바닷가에는 모래 대신 새까만 조약돌이 1킬로미터 이상 펼쳐져 있는데파도가 드나들 마다 구르며 내는 잘그락 거리는소리가 듣기좋다.

검은 자갈 구르는 예송리 해안

예송리는 보길도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활처럼 휘어진 해안을 따라 천연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되어 있는 상록 수림이 해안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 다. 예송리 바닷가에는 모래 대신 새까만 조약돌이 1

로미터 이상 펼쳐져 있는데 파도가 드나들 때마다 구르 며 내는 잘그락 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다. 특히 조용한 밤 해변가에서 들려오는 조약돌 구르는 소리는 보길도 에 대한 추억을 더욱 깊게 해준다. 바로 앞바다에는 당 사도, 기섬, 질매섬, 예작도가 바라보이고 날씨가 좋으 면 추자도와 제주도까지 볼 수 있다. 예송리 말= 중 리, 통리 해수욕장 역시 모래사장과 솔숲이 아름다워 여름철이면 많은 피서객이 몰린다.

보길도 동쪽끝 백도리에는 우암 송시 열이 제주도로 유 배가던 중 보길도에 내 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시를 바위에 새긴 ‘글씐바위’ 가 있다. 이곳은 일반인들에게 그다지 알려 지지 않은 곳인데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

20〜30미터 높이의 절벽이 약 3백 미터 가량 이어져 있 으며 절벽 위에는 해송이 울창하다. 또한 절벽 위에 서 면 넓게 펼쳐진 시원스런 바다와수평선이 보이며 날씨

; 가 맑으면 제주도까지 눈에 들어온다.

i 한 시인이 머물며 많은 작품을 남겼던 섬, 보길도. 섬의

! 무엇이 윤선도의 발길을 끌어 훌륭한 작품을 남기 게 했

; 을까? 아마도 자연이리라. 후박나무, 동백나무 등의 늘 푸른 활엽수림과 거기에 둘러싸인 갯돌밭 해안, 섬봉우 리들을 듬성듬성 싸안은 아침 안개, 연꽃 같은 산봉우 서 리, 파도의 일렁임, 바로 이런 자연이 한 인간을 불러 : 시심을 키워준 것이 아니겠는가.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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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는 방법 I 일단 완도나 해남까지 간다. 완도에서는 완도여객선

; 터미널(문의 : 061-554-4586)에서 보길도행 배를 타고 해남은 1 땅끝마을(문의 : 061-533-4269)에 가서 탄다. 승용차도 실을 수 )

: 있으며 보길도에는지프 택시와 일반 버스가다닌다. 선박 출항시

!간과 승선비는 계절에 따라 자주 바뀌니 사전에 위의 전화로 문의

!하는 좋다.

; 숙식 I 청별, 예송리, 중리, 통리 등에 민박집이 많아 숙식에

!편이 없다. 보길도는예전부터 바가지 숙박비가없는 곳이니 숙박

; 비에 대한 시비거리가 없다. 귀향한 시인 강제윤 씨가 운영하는 : 동천다려(061-554-0868)에서 하루 묵으며 시인과 서 누며 세상사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괜찮을 듯. 보길도는 생선회가 i 좋으며 이곳의 멸치, 톳, 미역의 맛과질이 좋은데 예송리에 가면 i 싼값에 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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