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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내정세 가. 정치동향

2003년도 북한 정치는 경제난, 북핵문제 등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국

방위원장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추세가 지속된 것으로 평가된다. 김정일 위 원장에 대한 집단적․조직적 반항이 없었고, 군부도 김 위원장에 대해 충 성을 다하였다.

북한은 김정일 정권 공고화를 위해 ‘선군정치’를 지속하였다. 특히

2002년 10월부터 시작된 북핵문제로 인해 북미간 갈등이 2003년에도 지속

되고, ‘독재자’ 후세인 제거를 위한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되면서 북한

은 연초부터 김정일 정권 ‘결사옹위’를 위해 매진하였다. 김정일 61회 생일

(2.16)을 맞아 ‘중앙보고대회’가 개최되었고, 전체적으로 김정일 업적 찬양

과 ‘선군정치’의 당위성이 부각되면서 핵문제와 관련 ‘대미 항전’이 강조되

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대(1993. 4.9) 10주년 기념 ‘경 축 중앙보고대회’시(4.8)에도 지속되었다. 즉, 김정일의 국가지도자로서의 능 력과 업적이 과시되고, 김정일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이 강조되었다.

김정일 중심의 체제결속 강조는 정권창건 55주년(9.9)즈음 당중앙위 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 공동명의로 된 192개항 ‘당 중앙위원회 구호’ 발

표(4.9), 김정일의 ‘당사업 시작 39주년 경축 중앙보고대회’(6.18) 등을

통해서도 지속되었다. 북한은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에 재추대(9.3)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재추대 평양시 100만 경축대회’(9.4)를 개최하는 등

대대적인 경축분위기를 조성, ‘수령결사옹위’를 과시하였다.

이라크 전 이후에는 북한이 다음 ‘공격대상’이라는 예측이 등장한 가운 데 북한은 미국의 대북 공격 제어를 위해 정치력을 총집중하였다. 북한은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이라크전을 최초 보도(3.21)한 이후 미국과 남측을

비난하면서 내부적으로는 미국과의 결전태세 준비를 독려하였다. 북한은 당․정․군 고위간부들의 참석하에 ‘선군시대 영웅대회’(9.5)를 개최하고 모든 영웅전사들은 사생결단의 의지와 각오를 갖고 반미대결전에 나설 것 을 촉구하였다. 북한은 대내적으로는 김정일 중심의 일심단결과 반미분위 기 고조를 통해 체제결속을 도모하면서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대북 압박 움

직임과 6자회담 등을 겨냥하여 유리한 대미협상 분위기를 조성하려 하였

다.

‘대미 항전’의 연장선상에서 북한은 정권창건 55돌을 맞아 김정일 참

석하에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 및 군중시위’를 개최(9.9)하였다. 행사 자

체는 대량살상무기를 배제하는 등 유연하게 치렀으나 북한체제가 견고함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핵문제관련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이 전환되지 않을 경우 핵 억제력을 계속 강화해 나가겠다는 기존입장을 재확인하였다. 김정 일 위원장은 북미간 대립 과정에서 발생할 지도 모를 ‘유사시’를 대비하고, 군부의 충성을 유도하기 위해 군부에 대한 ‘현지지도’를 강화하였다. 김 위 원장은 12월 20일 현재 전체 90회의 공개활동 중 62회(69%)를 군부대시찰 이나 군관련 행사에 참석했다.

한편, 핵문제로 인한 북미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북한은 정상적 인 정치일정을 소화했다.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6차회의(3.26)가 개최되어 2002년도 국가예산 결산과 2003년도 예산심의, 군사복무법․기구법․도시 계획법․하천법․회계법 등이 승인되었다. 특히 ‘인민생활공채 발행 법령’

이 채택되어 10년 만기의 공채 3종이 발행되었다.

중요한 정치일정으로는 최고인민회의 11기 대의원선거가 실시(8.3)되 어 김정일 등 687명의 대의원이 선출되었다. 10기 대의원들 중 343명이 교 체됨으로써 자연스런 세대교체가 이루어 졌다. 전반적으로 당․정 인사는 큰 변화가 없었고, 군부 주요 인사가 감소한 반면, 경제, 대남 및 외교인사 등의 참여가 확대되었다. 각 분야별 실무형 인사들을 중심으로 김정일 체 제의 안정적 관리와 공고화에 역점을 둔 선택이었다.

북한은 제11기 최고인민회의 제1차 회의를 개최(9.3), 김정일 국방위 원장 재추대, 국가 지도기관 선거, 그리고 핵문제에 대한 기본방침을 표명 하였으나 김정일 집권 2기 출범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정책의 비전은 제 시하지 못하였다. 금번 인사의 특징은 내각 총리에 ‘남한통’인 박봉주가 임 명되었고, 국방위원에 ‘무명인사’인 백세봉이 선출되었다는 점이다. 반면

‘대남통’인 김용순 및 윤기복, 빨치산인 최인덕 차수, 장 철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등이 사망하였다. 특히 김용순의 사망 원인이 교통사고였다는 점을 두고 많은 억측들이 있었다.

2004년에도 북한 체제 및 김정일 정권에 큰 변동은 없을 것으로 전망 된다. 김정일 위원장이 군부를 비롯한 당․정 엘리트들을 장악하고 있고, 북미간 갈등으로 인해 내부 통합이 중요시될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불협화 음이 등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이러한 정치적 안정에도 불구하고 ‘선군정치’는 지속될 것이고, 1세대들의 사망이 증가한데 따른 자연스런 세대교체도 이루어질 것이다.

‘선군정치’ 하에서도 당의 역할에 대한 강조가 계속되면서 당창건 60주년

인 2005년에 개최될 가능성이 높은 제7차 당대회에 대비한 당권 강화가

지속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2004년이 김일성 사망 10주년이라는 점에서 김일성의 ‘유훈’인 경제난 해결에 필요한 서방국가 지원 획득을 위해 핵문제 관련 김정일 위원장의

‘광폭정치’에 입각한 ‘정치적 결단’ 가능성도 있다.

(전현준․북한연구실 선임연구위원)

나. 경제동향

신년공동사설, 1월 중순의 내각회의, 3월 26일 최고인민회의 제10기 6차 회의 등에서 밝혀진 2003년도 경제정책방향은 국방공업 선차론을 새로 이 강조한 것 이외에는 전년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업부문에서는 국 방공업 선차론, 전력, 석탄, 금속공업과 철도운수 중시론, 경공업 현대화 추 진 등을 거론했다. 농업부문에서는 종자개량, 감자농사중시, 두벌농사 구현 등을 통한 농업 생산 증진, 대규모토지정리사업 추진 등이 제시되었다. 이 밖에도 평양 개보수 문제, 경제관리 개선 및 과학기술 발전, 정보산업 중시, 기술 현대화 추진 등이 거론되었다.

2003년 북한문헌은 과거의 중공업 우선론 대신에 전략적 차원에서 국 방공업 우선론을 상시적으로 강조했다. 그러나 그 구체적 실행 방안이나 실제적 변화에 대해서는 뚜렷한 제시가 없었다. 1월 중순의 내각회의에서 도 평양, 남포, 함경북도 등 기존의 군수 관련 공업지대를 주요 대상으로 국방공업에 주력할 것을 구체적 내용없이 강조했다. 이는 북한이 국방공업 발전을 위한 신규 군수산업 시설의 대대적인 건설보다는 기존 관련 공장․ 기업소의 생산 정상화를 통해 군수품 지원 강화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로 분 석할 수 있다.

핵문제, 이라크 전쟁 등의 여파로 지난해와 비교할 때 전반적으로 경

제분야에 대한 관심은 감소했다. 그 증거로는 경제분야에 대한 김정일 국 방위원장의 현지지도가 감소한 것과, 192개의 「당중앙위구호」(4.9)중 경제 관련 내용이 감소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12월 20일 현재, 김정일 위원장의 공개활동은 총 90회였는데, 군 관련 행사 참석이 62회(69%)로 절대적인 위 치를 차지하고 있고, 경제분야는 지난해 24회서 11회로 절반이상 줄었다. 경제부문 현지지도는 상반기에는 평안남도와 함경남도, 하반기에는 황해 남․북도, 함경북도, 자강도, 평안남도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주로 토지정리사업장과 발전소, 목장 등에 집중됐다.

「당중앙위구호」에서는 여전히 경제분야 비중이 가장 높았다. 그러나 2000년에 비해 정치 분야의 비중(24.9%→26.0%)과 군사 분야의 비중

(13.4%→16.7%)이 증가한 반면, 경제분야 비중은 크게 감소했다(34.1%

→26.6%). 또한 경제관련 「구호」의 구성을 보면, 선행부문이 24.3%→

33.4%로 대폭 증가한 반면, 농업․경공업 등 인민생활부문은 32.5%→

25.5%로 대폭 감소했다. 국방공업 관련 구호는 전체의 4%에 불과했다.

5월 중순경에 있었던 「구호」관철 성과보도에서도 선행부문이 70%이상을 차지한데 비해 인민생활부문의 비중은 저조했다.

최고인민회의 제10기 6차 회의(3.26)는 예년과는 달리 내각의 전년도 사업 정형과 당해 년도 과업에 대한 총리보고를 생략했다. 또한 2003년도 예산 집행을 결산하고 2003년도 국가예산을 승인했는데 전년과는 달리 구 체적 재정규모를 밝히지 않고 일부 비목의 구성비만 공개했다. 이밖에도 군사복무법, 기구법, 하천법, 도시계획법, 회계법 등 5개 법안을 승인했다. 2002년도 결산을 보면, 수입은 계획의 100.5%, 지출은 99.8%를 달성하

여, 0.7%의 흑자를 내었다. 2003년도 예산에서 수입은 전년대비 13.6%

증가하며, 지출은 14.4%가 증가하는데, 비목별로는 국방비를 15.4%로

인상 책정한다는 것만 발표되었다. 전년대비 석탄공업 30%이상, 농업 21.3%, 국토건설 18.5%, 전력 12.8%의 예산이 증액되었다. 이처럼 구체적 재정규모를 밝히지 않은 것은 ‘7.1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경제부진과 2003 년도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것을 반영했다.

제10기 6차 회의는 또 ‘여유 화폐 자금을 효과적으로 동원․이용하기’

위해 인민생활공채를 발행한다고 발표했다. 공채판매사업은 5월1일부터 7

월 31일까지 3달간 예정되었으나 7월 이후에도 공채판매 종료를 선언하지

않았다. 북한은 최종적 공채발행 규모를 400-500억원으로 예상했다. 북한 은 그 사용처로서 평양시 개건현대화 공사, 발전소건설과 화력발전소 개건 및 현대화 공사, 평양시․평남․남포시 토지정리, 객차현대화, 강서약수가 공공장 건설, 양강도 백두산혁명사적지 미화사업 등을 거론했다. 공채의 주 요 대상은 당과 정부 관리, 군 고위 장교, 해외근무경험자, 해외에 친척을 둔 인사 등 부유층을 주 대상으로 하였다. 공채 구입은 표면상 애국적 소 행 및 자원성에 입각한 자발적 구매를 중심으로 했으나, 실제에서는 도․ 시․군별로 조직된 비상설 ‘인민생활공채위원회’와 기관, 기업소, 단체들, 리․읍․구․동 사무소들에 조직된 ‘공채협조상무’ 등 기간 조직망에 의거 한 할당 사업이었다. 북한은 또한 ‘공채를 구입해 국가에 헌납하는 주민들 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며 공채 구입 및 국가헌납을 유도했다.

‘7.1경제관리개선조치’의 후속조치들도 취해졌다. 3월에는 ‘농민시장’이

종합시장으로 확대개편되고 개인 매대가 허용되었다. 평양의 통일거리에서 종합시장인 ‘통일시장’이 들어섰고, 광복거리, 문수거리, 락랑거리, 대성거리, 리평천거리 등에서도 11개에 달하는 종합시장 건설이 추진되었다. 또한 11 월 현재 평양에서만 150여개의 야외 매대가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 다. 북한은 “우리는 여러 기회에 걸쳐 경제개혁을 추진하여 왔다”거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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