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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론: 정책선호의 형성과 정치문화유형 이론

윌다브스키의 정책학을 소개하면서 빠뜨려선 안 될 사항이 하나 있다. 그의 정치문화 이론이다. 그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숙이 정치문화연구에 빠져들어간 배경에는 1970년대 이후 미국사회에서 빠르게 진행되던 이념의 양극화가 있다. 특히 정치엘리트들 간의 양극

52) 참고로 이 부분은 Popper(1972: 360-61)에서 인용되었다.

화의 심화(growing polarization of elites) 현상을 목도하면서 그것이 장차 공공정책에 미칠 엄청난 파급효과를 예견한 것이 계기가 된 듯하다. 그에게 정치문화 연구는 “서로 다른 (정치)문화를 가진 사람들에게 무엇이 정책문제로 정의되게 되는가에 대한 연 구”(STP: xxxviii)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면에서 그의 정치문화론은 그의 정책학 을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사항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이를 보론으로 삼고자 한다. 그 이유는 우선 독자가 이 부분을 건너뛰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고, 다음은 정책문제의 발견과 정의에 관한 지금까지의 논의와는 다르게, 여기서 그의 연구의 초점이 정책문제의 발견이 정책선호의 문제일 수 있으며, 정책선호는 정치문 화의 산물임을 보여주는 데 놓여 있어서다.

윌다브스키의 정치문화(유형)이론은,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의 정책선호는 사적이고 주 관적인 것(즉 개인의 지각)만도 아니고, 공적이고 과학적인 것(즉 자연과학)만도 아니며, 그 중간영역에 위치하는 정치문화(political culture), 즉 공유된 신념과 가치(shared beliefs and values)에 지배된다는 가설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 이론은 정치문화의 유형을 (1) 계층주의(혹은 집단주의), (2) 평등주의, (3) 개인주의, (4) 운명주의의 4가지로 구분한다.53) 설명의 편의상 위험문제와 안전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선호를 예로 들어 본 다면 이러하다(최병선, 2003).

(1) 계층주의자들에게 계층(hierarchy)은 제도화된 권한(institutionalized authority)이 다. 분업과 전문화를 당연지사로 여기고 그것에 내재된 권위, 전문가의 판단을 존중한다.

이런 것들을 무시하면 조직의 안정성이 위협을 받고 체제 자체가 허물어진다고 생각한다.

전체를 위해 개인은 희생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편이다. 기술은 사회를 더 강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수단이다. 따라서 정부가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구축해 놓은 각종 안전제도와 정책은 믿고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과 신하는 경향마저 보인다.

53) 일명 격자성(grid)/집단(group)이론이라고도 불리는 Douglas(1982), Douglas and Wildavsky(1982), Wildavsky(1987), Thompson et al.(1990) 등의 정치문화(유형) 이론은 집단성과 격자성이라는 2x2 메트릭스에서 4가지의 정치문화유형을 도출하고 있다. 이 메트릭스에서 개인의 삶이 집단의 구성원 이란 신분에 얼마나 강하게 묶여(bound) 있는지(그래서 그의 선택이나 결정이 얼마나 집단의 선택 과 결정에 지배되는지)를 재는 차원이 집단성이라면, 격자성은 한 개인이 사회적으로 수행해야 할 역할을 부여받는 정도의 깊이를 재는 차원이다. 윌다브스키는 집단성은 “나는 누구인가?(Who am I?)”라는 질문에 대한 답의 형식에서, 격자성은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What shall I do?) 또는

”나는 무엇을 하도록 기대되고 있는가?(What am I supposed to do?)“라는 질문에 대한 답의 형식 에서 가장 잘 대변된다고 말한다(Wildavsky, 1987: 6). 계층주의(집단주의)는 두 차원 모두가 강한 경우이고, 그 반대가 개인주의이다. 집단성은 강하지만 격자성이 낮은 경우가 평등주의이고, 그 반 대의 경우가 운명주의이다. 더 자세한 설명은 최병선(2003) 참고.

(2) 평등주의자들(egalitarians)은 어떤 경우에도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기술도 불신한다. 불평등을 조장하는 시장, 강제력을 가진 계층제를 떠받들고 있는 것이 기술이 라며, 기술 자체에 대해서도 거부반응을 보인다. 숨겨진 위험, 비자발적 위험, 복구가 불 가능한 위험은 절대로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강력한 예방대책을 주문한다.

전문가들도 기득권세력과 마찬가지로 일반시민의 안전과 복지는 안중에 없는 사람들이라 며 신뢰하지 않는다. 이들의 의견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반대하기 일쑤다.

(3) 개인주의자들은 위험을 기회로 본다. 위험이 배제되면 발전의 가능성이나 전망도 사라진다고 본다. 이들에게 기술은 좋은 것이다. 기술이 초래한 위험이나 재난은 신기술 의 개발을 통해,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며, 극복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 는다. 기술의 진보에 따른 이익과 편리가 위험과 손해를 능가하고도 남는다고 판단한다.

사람들은 위험과 재난을 통제할 수 있는 상당한 수준의 능력을 갖고 있으므로 이를 무시 하는 예방일변도의 매우 강한 안전정책은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위 험에 대처하는 능력의 향상에 초점을 맞추는 복원전략을 선호한다.

(4) 운명주의자는 위험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고, 걱정해본들 아무 소용이 없다고 자 포자기한다. 이들은 온통 피해의식과 패배의식에 젖어 있다. 위험이 다른 사람들의 통제 하에 있다고 생각하므로 모든 위험이 이들에게는 비자발적 위험이다. 자기가 위험하다고 본 것은, 전문가 혹은 그 누가 안전하다고 보증할지라도, 믿지 않는다.

무엇이 위험과 안전문제에 대하여 이처럼 서로 다른 관점과 문제의식을 보이고, 상이 한 해결책들을 주장하도록 만드는가? “정책분석은 사람에 관한 것(Policy analysis is about people.)”(STP: 1)이라는 관점에서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가는 관계, 즉 사 회관계(social relations)에 주목하는 그답게, 윌다브스키는 엘리트들의 정치문화의 차이 에서 그 답을 찾았다. 무엇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거나 손해가 되는지, 혹은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또 다른 사람들이 자기와 어떻게 더불어 살기를 원하는지 등은 모 두 각자가 경험해온 사회관계의 해석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Douglas and Wildavsky, 1982: 4).

“정치적 선호는 내생적(endogenous)이다.54) 그것은 서로 다른 ‘삶의 방식(way of life)’을 옹호하거나 반대하는 사회적 상호작용과정에서 파생된다...개개인이 중요한

54) 윌다브스키는 경제학자들이 선호를 외생변수(exogenous variable)로 간주하여, 왜 사람들이 시장에 참여하며, 시장에서의 경쟁과 협상을 통해 삶을 개선하려고 하는지를 비경제학적인 이슈로 다루는 것은 난센스라고 비판한다. 선호를 취향(taste)으로 보아 아예 분석이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 은 더더구나 말이 안 된다며 비웃는다.

결정을 내릴 때, 그의 결정 및 선택은 동시에 문화, 즉 서로 다른 패턴의 사회관행 (social practices)을 정당화하는 공유된 가치(shared vlaues)를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 서 문화이론에서는 공유된 가치와 사회관계는 항상 동행한다. 가치가 합리화해주는 사회관계와 동떨어진 가치가 없고, 그 사회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왜 자신이 그런 사회 관계를 선호하는지를 설명하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한다.”(Wildavsky, 1987:

5)

윌다브스키의 정치문화이론에서 4가지 문화유형 중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는 기존의 유 형이고, 운명주의자들은 사회문제의 해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해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점을 전제하고 보면, 이 이론의 특별한 기여는 평등주의를 제3의 문화유형으로 규정해낸 데 있다. 이 평등주의 문화유형이야말로 오늘날 선진국의 정치경제사회 문제의 정치적 성격을 깊이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아닐 수 없다(Wildavsky, 1991; 최병선, 2003). 이 문화유형을 대표하는 것이 시민단체들인데, 이들은 상당히 광범 위한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정치지형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 다. 이들의 등장과 함께 사회엘리트들의 이념적 양극화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면서, 심하 게는 통치가능성에 대한 의문(question of governability)이 제기될 정도가 되었다(STP:

xvi).

이에 따라 기존의 정책분석은 매우 불충분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정책에 관한 이런 근본적인 관점의 차이, 극심한 가치관의 차이를 기존의 정책분석에서 다룰 수 있는 방법 이 뾰족이 없기 때문이다. 윌다브스키라고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갖고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또 해결이 지난한 문제인지는 그의 문화이론을 통해 서 충분히 확인시켜 주고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봉착하고 있는 최대의 시련이라고나 할 이 문제에 접근하고자 할 때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운 것만도 그의 큰 공로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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