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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의 ‘좌파 신자유주의’

문서에서 PDF 한국과 일본의 노동시장 개혁 (페이지 60-67)

1997년의 외환위기는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와 시장원리주의가 세계화 시대의 표준으로서 정책결정자들에게 불가피한 것이자 문제 해결에 필요

28) http://www.jil.go.jp/researcheye/images/004/02.png. 검색일:2014.10.04..

한 인지적 프로그램으로서 받아들여지는 계기가 되었다. 막 집권한 김대 중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IMF가 요구한 여러 개혁을 수용할 필요에 직면했는데, 1997년 12월 여당 연석회의에서 “한국경제가 사는 길은 IMF의 융자조건을 준수하는 것뿐”이라며 IMF의 요구조건을 수용 할 의사를 밝혔다. IMF의 융자조건에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와 같 은 노동시장에 대한 개혁 요구 역시 담겨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자서 전(2010)에 따르면, 당시 김대중 당선인은 당선 직후 데이비드 립튼 (David Lipton) 미국 재무부차관을 만나야했는데 이와 관련해 미국 뉴욕 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유종근 당시 전북지사로부터 조언 을 구했다. 유종근은 정리해고제 수용과 같은 노동시장 유연화와 관련해 당선인의 의사를 물을 것이라고 조언했고, 실제로 립튼 차관이 한국에서 의 노동 유연성에 대해 묻자 김대중 당선인은 “노동자를 해고해서 기업 이 살아나고 경쟁력을 갖추게 되면 해고된 노동자들은 다시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밝힌다(김대중, 2010).

외환위기의 해결을 위해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요구조건을 수용 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언론과 일부 전문가들로부터 역시 세계화시대의 표준에 맞는 국내 개혁이 이루어져야한다는 주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IMF의 요구조건이 한국 경제의 구조개혁과 발전에 불가피할 뿐 아니라 필요한 개혁이라는 이념이 경제위기 해결을 위한 인 지적 패러다임으로써 뿐만 아니라 규범적 인식으로서도 등장한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지도력 부재로 필요한 구조개혁을 태만히 해오 다가 결국 오늘의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 IMF가 부과하 는 조건은 어차피 우리 자신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포함될 것입 니다. 유감된 일이기는 하나, ‘외압’에 의해서라도 할 일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남덕우 전 국무총리 인터뷰,『조선일보』, 1997.11.24.)

“우리는 세계시장과 거래하면서도 우리식 산술과 사고에 너무 오

래 안주해왔다. … 이 새 구도는 세계시장에서의 진정한 자생력을 갖추기에 충분할 만큼 효율적이고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틀을 갖추어야 한다. 이 구도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금융·자본 자유 화시대에 맞추어 모든 제도와 법제·운행방식의 일대 개편을 조속 히 완결하는 일이다.”(『조선일보』사설, 1997.12.05.)

김대중 대통령과 그가 조언을 구하고 경제정책을 맡긴 경제전문가 그 룹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의 ‘국제적 표준에 맞는 개혁’, 즉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불가피할 뿐 아니라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당선 직후 임창열 경제부총리와의 자리에서 “새 정 부는 철저하게 시장 경제 원칙에 따라 경제 정책을 운영하겠습니다. … 경제 논리만 따를 것입니다.”라고 밝혔다(김대중, 2010). 김대중 정부 시기 경제정책을 담당한 전문가그룹이 1980년대 미국 경제학계에서 신 고전학파가 대두한 시기 유학을 한 인물들이었다는 점 역시 경제정책의 지향을 결정한 중요한 요인이었다.29)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문제 해결의 프로그램으로서 시장원 리주의를 이념으로 받아들였고, 정권을 계승한 노무현 정부 역시 시장원 리주의를 정책기조로 선택했다. 경제정책에 있어 신자유주의와 시장원리 주의에 대한 수용은 대통령 본인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5년 7월 5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시책 점검회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29)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은 1980년대 보스턴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김 대중 대통령이 자서전에서 직접 ‘곧잘 조언을 구했고 그의 조언은 매우 유용 했다’고 인정한 유종근 당시 전북지사 역시 1980년대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인물이었다. 노무현 정부 첫 재정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를 맡았던 김진표는 1988년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공공정책학 석사학위를 취득 했고, 김대중 정부에서 재정경제부 장관을 맡았던 이헌재는 2004년 재정경 제부 장관 겸 부총리로 노무현 정부 경제정책 결정의 핵심요직에 다시 한 번 위치했다. 전후 경제학의 중심이었던 케인즈주의를 비판하고 합리적기대이론 과 통화주의가 대두했던 1980년대 미국 경제학의 중심지에서 공부했던 전문 가집단은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을 공유하고 있는 인식공동체(epistemic community)였다.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 정부는 시장을 어떻게 공정하게 관리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 니다. …우리 대기업들도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더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우리 중소기업들도 함께 갈 수 있 는 그런 대책이 꼭 있어야겠는데, 말씀드렸듯이 역시 이것은 기 본적으로 시장에서 이뤄져야지 정부가 정책적 간섭을 통해서만 잘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30)

사용자단체 역시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확대되어야한다는 입장을 가지 고 있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2000년 5월 1일 보도자료를 통 해 “노동시장 유연성의 증대는 세계화와 정보화의 구조적 요건이자 기업 경쟁력 제고에 필수적인 사안이며, 비정규직 근로자의 증대는 바로 이러 한 구조적 요건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현상이다. 기업경쟁력 향상과 임 금생활자의 ‘삶의 질’의 향상을 위하여 더 중요한 것은 노동시장유연성 을 어떻게 제고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밝혔다.31) 이러한 입장은 2004년 6월에도 재확인되는데, 2004년 6월 24일 회원사 등 경제계 인사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정규직 대책 특별세미나’를 개최한 자리에서 비 정규직 문제는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히면서 전경련 현명관 부회장은 인사말을 통하여 “비정규직 대책은 시장원리에 맡겨야”한다고 주장했다.32)

하지만 한국 내에서 모두에게 시장원리주의가 반드시 불가피한 것이자 경제정책의 주요 이념으로 수용된 것만은 아니었다. 전문가 그룹 내에서

30)노무현재단(http://www.knowhow.or.kr/rmhworld/bbs/view.php?tn=t1&pri_n o=999510424 (검색일: 2014.11.27.).

31) 전국경제인연합회 보도자료(http://www.fki.or.kr/FkiAct/Promotion/Report/

View.aspx?content_id=9b15d613-e7d4-4c81-b535-50220a15f3c8) 검색 일: 2014.12.04.

32) 전국경제인연합회 보도자료(http://www.fki.or.kr/FkiAct/Promotion/Report/

View.aspx?content_id=520617b3-ad18-4616-911d-e2a66fcbb316) 검색 일: 2014.12.04.

는 노동시장의 자유화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가진 집단 역시 존재했 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2006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경제분야 전문가들은 산업양극화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은 반면, 사회 분야전문가 89명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로 보고 있었다(한국개발연구원, 2006).

당시 김대중 정부, 그리고 이를 승계한 노무현 정부는 한국이 1997년 의 외환위기와 같은 경제위기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경제정책이 필요할 뿐 아니라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는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첫째, 김대중 정부는 한국 최초로 정권 교체를 이뤄낸 정부였고, 노무현 정부는 이를 계승한 정권이었다. 이로 인해 신자유주의에 대한 전적인 수용은 정부의 지지기반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문제였다. 둘째, 두 정권 모두 과거 한국의 정권과 대비되는 진보 적 정권을 자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의 수용은 정권의 정체성 과도 관련되는 문제였다.

이에 대한 해법은 유럽으로부터 제시된 것처럼 보인다. 유럽의 주요 정당 역시 1990년대 중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선거에서 어려움을 겪 으면서 정당의 정체성 설정과 관련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 과정에 서 유럽의 주요 정당이었던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Tony Blair)가 제시한 ‘제 3의 길’은, 경제정책에 있어 신자유주의와 자유화를 추진하는 개혁을 수용하면서도 정당의 정체성을 유지하게끔 해주었고, 이와 유사 한 전략으로 독일 사민당의 슈뢰더(Gerhard Schrӧder) 역시 ‘신중도’를 내걸며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와 유사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과 수용은 한국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IMF가 요구한 강도 높은 자유화 개혁을 수용하는 대가로 노동계에 사회복지를 약속했고, 정책에 있어 이러한 양면적 속성 은 김대중 정부 하에서‘생산적 복지’라는 슬로건으로 구체화되었다. 노무 현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3월 23일 국민과 의 인터넷 대화에서 “좌파, 우파 정책을 가릴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에 서 필요한 것을 하고, 서로 모순된 것을 조화시켜가는 것이 중요한 것”

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참여정부는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6.03.23.).

중요한 점은 ‘좌파 신자유주의’가 이론적으로 구체적인 내용이나 이념 적 지향을 가지고 있는가와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 ‘3김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방향 제시로서 당정분리를 강하게 추진했기 때문에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2004년 하반기 이후부터는 대통 령이 행하는 중요한 정치적 결정에서 사실상 소외되어있었고(강원택, 2011), 이는 노무현 대통령으로 하여금 주요 정책에 관한 의사결정에 있어 관료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1990년대 이후 경제정책의 주요 이념으로 신자유주의와 시장원리주의를 수용하고 있던 관료들은 경제정책에 있어 동시다발적 FTA 추진과 같은 굵직한 자유주의적 정책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은 임기 내내 논란이 일수밖에 없었고, “좌측 깜빡이를 켜고서 우회전하는”

정책이라는 비판까지 받았다(이병훈, 2011). 이러한 상황에서 ‘좌파 신 자유주의’라는 발언은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이념적 위치에 놓 여있던 노무현 정부로서 경제정책에 있어 신자유주의를 집행하면서도 동 시에 정권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무엇보다 선거에서 정권의 정책의 정당 성을 지지기반에 호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로 이러한 점이 노무현 정부 하에서 추진된 비정규직보호법의 목적 과 구체적 내용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다. 비정규직보호법은 노 사정위원회에서 노사간의 합의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공익위원들이 공익 위원안을 작성해 정부에 이관했으나, 주요 내용은 노동부 관료들에 의해 작성되었다. 앞서 3장에서 살펴본 바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2004년 9 월 정부가 입법예고한 비정규직보호법 원안의 구체적 내용들은 노사정위 원회 당시 노동계와 경영계간의 입장을 사실상 1대 1로(그러나 보다 시 장원리주의에 방점이 찍힌 형태로) 섞어 놓은 것이었다. 기간제근로에 관해서는 경영계의 3년 연장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노동계의 주장 을 토대로 수정하여 해고제한규정을 마련했고33), 파견근로와 관련해서

33) 앞서 3장에서 살펴보았지만, 노동계(특히 한국노총)의 주장은 해고제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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