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본 바와 같이 외국법에 대한 태도는 각국의 국제사법의 이론의 발전, 民族감정 내지 소송법 체계상의 가치판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외국법 사실설의 형성 및 유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주로 3가지 있 다고 본다. 첫째, 외국법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즉 외국법이 “법”이라고 하지만 법정지법원에게는 익숙하지 않는 사항이므로 사실에 대한 조사와 유사한 방법으로 조사하거나 입증해야 한다. 둘째, 자국법 우위의 사상 이 수반하는 인식이다. 사실설의 이론적 기초로서의 국제예양 및 기득권 이론은 법의 屬地性을 강조하고 다소 자국법 우위의 색채를 띠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에 특히 그러하다. 셋째, 득일에서 각국의 법률의 지위가 평등하다는 관념이 점차 받아들여졌지만 영국에서 사실설은 소송절차상 의 가치판단에 힘입어 계속 유지되어 왔다.85)
그러나 법률설이든지 사실설이든지 모두 논리상의 모순을 가지고 있 다. 뿐만 아니라 실무로부터 보면 양자 간에 절대적인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다. 외국법을 법으로 보더라도 내국법과 동일시하지 않으며, 사실로 보더라도 특수한 사실로 본다. 실무에서 순수한 어느 학설을 취하는 국 가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외국법을 법률이라고 하든 지 사실이라고 하든지 모두 실무와는 차이가 있다.
외국법의 성질이 법인지 사실인지에 대한 인식은 실무상 일부 취급방
84) 2009년 독일 민사소송법 제545조의 개정 이후 외국법 적용위반이 상고심에서 제기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자세하게는 아래 제3장 제5절 참조.
85) 실제로 사비니가 제기한 “국제법적 공동체”라는 개념은 잉글랜드에서 결코 받아들여지 지 않는다. 이것은 잉글랜드에서 지금까지도 사실설을 고집하는 원인 중 하나이다.
Fentiman, “Foreign Law in English Courts”, 108 L.Q. Rev. 142, 143 (1992),
식을 이해하거나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된다. 법원의 실무는 점진적인 변 화과정에 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래 자세하게 살펴보는 바와 같이 독일의 경우 독일 민사소송법 제293조의 문언에 따라 법원이 외국 법을 조사하는 권한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의 이론이든 법 원의 실무이든 이 조항은 법관으로 하여금 직권으로 외국법을 탐지하여 야 하는 의무를 부담하도록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86) 또한 미국에서는 외국법을 법률문제로 정의하게 되었지만 실무상 연방법원에서 외국법을 직권으로 조사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여전히 소극적 심판자의 역할을 하 는 경향이 있다.87)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독일에서 전통적으로 외국법을 법률로 간주하고 미국에서 외국법을 전통적으로 사실로 간주하 기 때문이다.
외국법의 성질에 대한 검토는 각국 법원의 실무의 형성을 이해함에 도움이 됨에도 불구하고 외국법의 성질을 출발점으로 하여 외국법의 적 용을 해결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앞에서 보다시피 법률설이든 사실 설이든 논리나 실무에 대하여 모두 충분한 논거를 제공하지 못한다. 외 국법은 단순한 법률 또는 사실로부터 독립적인 사물이고 반드시 법률이 나 사실과 같이 취급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를 법률이나 사실의 범 주에 귀속시키면서 동시에 이를 외국법적용을 지도하는 논거로 삼는 것 은 타당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제3절 저촉법의 강행적 적용 여부와 외국법의 적용
저촉법의 적용방식에 관해서는 강행적 저촉법이론과 임의적 저촉법이 론의 대립이 존재하고 있다. 강행적 저촉법이론에 따르면 저촉법은 "원 활하고 안정한 국제적 교류를 위하여 각종의 법률관계에 대하여 그것을 규율하기에 가장 적당한 법률을 내외의 법률 중에서 선택·지정하는 법률 이기 때문에 공적인 질서에 관한 법률"88)이므로 강행법적 성질을 띠고
86) 아래 제3장 제1절 참조.
87) 자세하게는 아래 제3장 제1절 참조.
있다. 따라서 저촉법은 당사자가 주장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법관이 직 권으로 적용하여야 한다.89) 이에 반하여 저촉법의 임의적용이란 외국적 요소가 있는 사건에서 법원은 당사자가 저촉법 또는 외국법을 적용한다 고 주장할 때만 저촉법을 적용하게 되고 이러한 주장이 없으면 저촉법 문제를 고려할 필요 없이 국내사건과 마찬가지로 직접 법정지법을 적용 한다고 말한다.90)
오랫동안 영국에서는 임의적용의 방식을 취하고 일부 보통법계 국가들 도 이러한 방식을 계승해 왔다.91) 그러나 보통법계는 저촉법의 임의적용
88) 신창선·윤남순, 16면.
89) 중국 일부 학자는 저촉법의 직권에 의한 적용과 저촉법의 강행법성을 구별한다. 이러한 견 해에 따르면 강행법과 대응한 개념은 임의법이다, 그러나 임의법일지라도 법관은 직권으로 적용해야 한다. 법의 강행법적인 성격은 당사자를 겨냥하는 것이고 당사자가 자신의 의지로 규범의 내용을 좌우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에 반하여 임의법은 당사자가 자신의 의지에 의해 임의법의 내용을 따를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의미한다. 강행법의 의미와 달리 직 권에 의한 적용이란 법관을 대상으로 하여 규범에 대하여 당사자가 주장하거나 신청할 필요 없이 법관이 해당 규범을 직접 적용하는 의무가 있음을 의미한다. 宋晓, "论冲突规则的依职 权适用性质", 《中国国际私法与比较法年刊》 第10卷, 北京大学出版社, 2007, 143页. 그러나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국제사법의 직권에 의한 적용을 ‘국제사법의 강행규정성’으 로 설명한다. 석광현, 『국제사법 해설』, 2013, 128면. 더불어 의미상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 구하고 큰 오해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이 글에서 저촉법의 강행법성과 저촉법의 직권에 의한 적용을 호환적으로 사용하기로 한다.
90) 이러한 저촉법의 임의적용에 대한 설명은 엄격한 개념이 아니고 단지 영미실무에서의 전형 적인 모델로부터 귀납한 것이다. 일부 국가들은 대체로 임의적용의 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세부적인 사항에 다소 차이가 있다. 예컨대 프랑스에서는 민사소송의 쟁점을 자유롭게 처분 할 수 있는 영역과 자유롭게 처분할 수 없는 영역으로 구별하는데 오직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영역에서만 저촉법의 임의적용을 인정한다. 저촉법의 임의적용에 관한 실무상의 차이 에 대해서는 Jänterä-Jareborg, pp.277-285 참조. 아래에서 특별한 지적이 없으면 저촉법 의 임의적용은 이러한 전형적인 모델을 가리킨다.
91) 본문 아래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보통법계는 저촉법의 임의적용 여부에 대해 논리적인 분석과 체계적인 구조를 보이지 않았고 일반적으로 저촉법이 임의적으로 적용된다는 표 현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보통법계에서는 당사자의 주장이 없으면 법관 이 직권으로 외국법을 적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촉법이 직권으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영국에서의 외국법의 적용 방식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Lawrence Colins (with Specialist Editors), Dicey, Morris and Colins, The Conflict of Laws, 15th ed, (Sweet & Maxwell 2012), pp.318-323. 보통법계에서의 저촉법과 외국법의 절차
에 대하여 논리적인 분석과 체계적인 구조를 보이지는 않았다. 이것은 법원의 실무 및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정밀한 이론보다는 영국 법관들과 변호사들의 선호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인다.92) 이에 반하여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저촉법이 다른 법규범과 같은 법적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법 관이 이를 직권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전통적인 입장으로서 주도 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1950년대 말에 대륙법계에 속하는 프랑스에서 저촉법을 임의적으로 적용하는 판례가 나타났다.93) 뿐만 아 니라 그 이후에 프랑스의 법원의 실무는 직권적용과 임의적용 사이에서 계속 흔들려 왔다.94) 1970년에 독일학자인 Flessner는 저촉법의 임의적 용을 주장하였다.95) 1990년대 네덜란드 학자인 De Boer는 "임의적 저 촉법(Facultative Choice of Law)"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저촉법 임의 적용의 견해와 이론을 체계적으로 밝혔다.96) 이로써 저촉법의 임의적용 은 대륙법계 국가에서도 널리 논의되는 쟁점이 되었다.97)
Flessner 및 De Boer와 같은 대륙법계 학자들이 저촉법의 임의적용 문제를 논의할 때에는 예외 없이 외국법 적용의 곤란을 저촉법 임의적용 을 주장하는 근거들 중 하나로 삼는다. 법관이 직권으로 저촉법 규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대륙법 관념에 반하여 Flessner 같은 학자는 소송 당사자들 중 적어도 일방이 주장하였을 때에만 저촉법 규칙을 적용 하고 쌍방 당사자 모두가 저촉법 규칙의 적용을 주장하지 않는 경우에는 법원에서 사건이 국제적인 사건인지 아닌지를 불문하고 법정지법을 적용
적인 지위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Th. M. De Boer, "Facultative Choice of Law-The Procedural Status of Choice-of-Law Rules and Foreign Law", Recueil Des Cours Vol.257 (1996), pp.258-262.
92) Fentiman, p.141.
93)본 논문 제3장 제1절에서 자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94) Jänterä-Jareborg, pp.273-276 참조.
95) 신창선·윤남순, 15면. Jänterä-Jareborg, p.248.
96) Boer, pp.235-427.
97) 저촉법 임의적용 이론의 대륙법계 국가에서의 기원 및 논쟁에 관한 중문문헌은 秦瑞 亭, "强制性冲突法和任意性冲突法理论初探", 《南开学报》 2007年第4期,83-89页. 杜 涛, "法律适用规则的强制性抑或选择性", 《清华法学》 2010年第3期, 97-100页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