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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나오토 총리의 퇴진과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등장

가. 간 나오토 총리의 퇴진

2009

8

30

일 실시된 제

45

회 일본 중의원 선거 결과 하토야마

유키오

(鳩山由紀夫)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이 총

480

개 의석 중

308

을 획득하는 전후 일본 선거사상 최대의 압승을 거두면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

,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

그리고 민주당은 참의원에서의 과반수 확보를 위해 사민당

,

국민신 당의 연립정권 구성을 추구하였고

,

그 결과

2009

9

9

일 민주당

,

사 민당

,

국민신당의

3

당 연립정권 수립이 합의되었다

.

마침내

2009

9

16

일에 소집된 특별국회에서 하토야마 대표가 제

93

대 총리대신에 선출되고 동일 하토야마 연립내각이 정식 출범했다

.

그러나 집권 초기부터 불거진 하토야마 총리와 오자와 이치로 간사 장의 정치자금문제

,

오키나와의 후텐마 비행장

(普天間飛行場, Marine

Corps Air Station Futenma)

이전문제를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 등

계속된 악재로 인해 내각지지율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동반 급락했다

.

이처럼 하토야마 내각의 국민지지율이 계속해서 하락함에 따라 민 주당 내에서는

2010

7

월 참의원 선거를 우려하여 하토야마 총리의 퇴진론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

86

퇴임을 결심한 하토야마 총리는 사회민주당의 연립정권 이탈87이라

86_7월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에서 정원의 반에 해당되는 121인의 의원을 선출하게 되는데

하토야먀 총리가 권좌에 있는 한 민주당의 참패는 피할 수 없고, 결국 하토야마 내각과 함께 민주당 또한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87_사회민주당은 기존 미·일 합의안 복귀에 반발하여 2010년 5월 30일 연립정권으로부터 이탈할 것을 결정하였다. 뺷日本經濟新聞뺸, 2010년 5월 31일; 뺷朝日新聞뺸, 2010년 531.

84 리더십교체기의 동북아 4국의 국내정치 및 대외정책 변화와 한국의 통일외교 전략

는 정치적 갈등을 겪게 되지만

,

천안함 폭침 사건과 한반도 정세의 불 안정

,

중국의

북한 후견인

및 일방적

북한 편들기

에 대한 일본 국내 의

중국 경계론

증대

,

·

일동맹의 갈등에 대한 국민의 비판 고조 등 을 고려하여 미

·

일동맹 강화로의 정책 선회를 강행하였다

.

,

하토야마 총리는 연립정권의 기반 약화에도 불구하고

,

88

2010

7월 참의원 선거 대비의 전략적 일환으로 동년 5월 28일 기존의 미 ·일

합의 사항으로 복귀하는 조치를 취한 뒤89

6

2

일 사임을 표명하였다

.

하토야마 총리가 퇴진함에 따라 간 나오토

(菅 直人)

부총리 겸 재 무장관이

2010

6

4

일 민주당 대표로 선출되었고 동년

6

8

일 간 내각이 출범하였다

.

간 나오토 총리와 내각은

2010

7

월의 참의원 선거의 승리가 최우선 정치적 과제였기 때문에 국민지지도를 제고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

하지만

2010

7

11

,

간 나오토 총리는 취임 약

1

개월 후에 실 시된 제

22

회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하여 과반수의 확보에 실 패하였다. 2010년 7월 11일 실시된 제22회 참의원 선거 결과 총 민주 당은 개선 54석 중 44석을 획득, 10석이 감소하였고, 자민당은 개선 38 석에서

51

석을 획득

, 13

석이 증가하였다

.

그 결과

,

참의원에서는 여당

(

민주당

106

,

국민신당

3

)

으로 총

109

(45%),

야당은

133

(55%)

로 참의원에서 여소야대의 정치 지형이 이루어졌다

.

참의원 선거의 패배에 대한 오자와 그룹의 정치적 비판이 제기되었 지만

,

간 나오토 총리는

2010

9

14

일 당 대표 경선에서 당내 실세

88_민주당, 국민신당, 사회민주당으로 연립정권은 사회민주당의 이탈로 인해 정치적 기 반이 약화되었다. , 참의원에서 사회민주당 5명의 이탈이 초래되었다.

89_하토야마 총리는 2010년 5월 28일에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의 이전지를 ‘오키나와현 (県) 나고(名護)시 헤노코(辺野古)의 주변’으로 명기한 미·일공동성명을 발표하였 . 日本經濟新聞, 2010528(夕刊).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을 누르고 재차 당선되었다

.

간 나오토 총리는 국민지지도의 제고에 노력을 기울여 지지율을

70%

대까지 끌어올렸으나

, 2011

3

월 사상 초유의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으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

7·11

패배에 따른 참의원 내 여소야대의 정치지형

,

민주당 내 오자

와 그룹의 집요한 공세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간 나오토 총리는 퇴진 의 전제조건으로 특별공채법안과 재생에너지특별조치법의 성립을 제 시

·

확보한 뒤

, 2011

8

26

일 사임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 1

3

개 월 만에 퇴진하였다

.

90

나. 민주당 대표 선출의 권력게임과 노다 요시히코의 선출

(1) 2010년 9·14 민주당 대표 경선

간 나오토 총리는

2010년 6월 취임 이후 ‘탈오자와’와 ‘세대교체’를

표방했는데, 동년 9·14 당 대표의 선출은 간 나오토 총리와 오자와 이 치로 전 간사장의 대결로 이루어졌다

.

민주당 내 세력분포는

<

Ⅳ-1>

과 같은데

,

당 대표의 선출을 둘러 싼 권력게임은

반오자와 세력

친오자와 세력

의 대결로 전개되었다

.

민주당 국회의원의 세력분포를 보면

, <

Ⅳ-1>

과 같이 오자와 이 치로 전 간사장이 우위에 있었지만

,

민주당 내의 일반 당원들의 분위기 는 반

(反)

오자와 정서가 강하였다

.

권력게임의 결과는 간 나오토 총리의 재선이었다

.

,

간 나오토 총 리가 반(反)오자와 정서를 배경으로 721 포인트를 획득한 데 비해, 오

90_뺷朝日新聞뺸, 2011년 8월 27일.

86 리더십교체기의 동북아 4국의 국내정치 및 대외정책 변화와 한국의 통일외교 전략

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은

491

포인트밖에 획득하지 못했다

.

91

표 Ⅳ-1 민주당 내

반오자와 세력

친오자와 세력

상황

(20109월 당시)

반오자와 그룹 친오자와 그룹 중간 그룹

∙간 그룹(40명)

∙마에하라 그룹(40명)

∙노다 그룹(30명)

오자와 그룹(150명)

하토야먀 그룹(50명)

구(舊) 사회당 계열 (약30명)

구(舊) 민사당 계열 (약30명)

(2) 2011년 당 대표 선출과 권력게임

간 나오토 총리가

2011

8

26

일 사임을 공식적으로 발표함에 따 라

,

동년

8

29

일 당 대표를 선출하게 되었다

. 8·29

민주당 대표 경선 에는 정치자금 문제로 당원 자격이 정지된 오자와 전 간사장 등

9

명의 의원이 제외되었기 때문에 민주당

407

명 의원 가운데

398

명이 참여할 수 있었다.

8·29

민주당 대표 경선의 룰

(rule)

은 과반수 즉

, 200

표 이상 득표자

가 당 대표로 선출되는 것이었다

. 8·29

민주당 대표 경선은

권력 일선 의 복귀

를 꾀하는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과 이를 저지하려는 반오자 와 세력 즉

,

주류세력 간의 치열한 대결로 전개되었다

.

<

Ⅳ-2>

에 나타난 바 같이

,

가이에다 반리 경제산업상

,

마에하라

세이지 외무상

,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

,

가노 미치히코 농림수산상

,

마 부치 스미오 전 국토교통상 등

5

명의 후보가 치열한 경합을 벌이며 득 표전을 전개하였다

.

91_뺷朝日新聞뺸, 2011년 9월 15일.

표 Ⅳ-2 민주당 내 주요 그룹 및 지지 후보

주류파 반주류파 중간파

마에하라 세이지 노다 요시히코

가이에다 반리

가노 미치히코 마부치 스미오

∙간 나오토 그룹(37명) - 구 사회당, 구 민주개

혁연합, 시민운동가 출 신이 중심

∙마에하라 그룹(25명) - 구 사키가케 및 일본

신당의 중견 및 신진의 원 중심

∙노다 그룹(약 20명) -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

중심

오자와 그룹(130명) - 구 자유당, 호쿠신카

이, 오자와 이치로 정 경숙 출신 의원

하토야마 그룹(46명) - 구 신진당, 민사협회,

사키가케 우파가 중심

요코미치 그룹(약 24명) - 구 사회당계 중심

가와바타 그룹(38명) - 구 민사당계 중심

다루토코 그룹(30명) - 오자와 지지의 중간파

의원이 다수

하타 전 총리 그룹 (23명)

- 구 민정당계 중심 - 신진당 우파 의원 다수

겐바 그룹(35명) - 겐바 측근의 중간파

의원이 다수

요미우리신문, NHK 등이 2011년 8월 28일에 민주당 의원들을 대상 으로 판세 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

92

가이에다 반리 경제산업상

1

,

마에하라 세이지 외무상

2

, ▲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

3

, ▲

가노 미치히코 농림수산상

4

, ▲

마부치 스미오 전 국토교통상

5

위 등이다

.

반면

,

국민여론조사에서는 마에하라 세이지 외무상이

1

위로 나타났 다

.

따라서 일본 언론들은

가이에다 반리 대 마에하라 세이지

2

파 전으로 전망하였다

.

그러나 여론조사와 무관하게

,

여론조사에서 국민지지율

4%

에 불과 하였던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이 대표 경선

1

차 투표에서

102

표를 획득하 여 2위를 한 뒤

,

결선투표에서 215표를 획득하여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

93

92_100여 명은 아직 지지후보를 정하지 못했다고 답변하였다.

88 리더십교체기의 동북아 4국의 국내정치 및 대외정책 변화와 한국의 통일외교 전략

예컨대 반주류파의 가이에다 반리 농림수산상이 대표 경선

1

차 투표 에서

1

위를 하였으나

,

과반수 확득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

노다 요시히 코 재무상이 결선투표에서 마에하라 세이지 외무상

,

가노 미치히코 농 림수산상

,

부치 스미오 전 국토교통상 등의 지지를 기반으로

215

표를 획득하여

177

표를 획득한 가이에다 반리 농림수산상을 누르고 당 대표 로 선출되었다(<표

Ⅳ-3>참조).

표 Ⅳ-3

8·29

민주당 대표 경선 투표 결과

제1차 투표

가이에다 반리 경제산업상 143표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 102표

마에하라 세이지 외무상 74표

가노 미치히코 농림수산상 52표

마부치 스미오 전 국토교통상 24표

결선 투표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 215표

가이에다 반리 경제산업상 177표

(3) 노다 요시히코의 당 대표 선출과 정치적 의미

□ 간 내각의 정책 대부분 계승

국민지지율

4%

에 불과하였던 노다 요시히코가 국민여론조사에서 약

40%

대의 지지율로

1

위를 하였던 마에하라 세이지 외무상을 누르며 제

1

차 대표 경선에서의 예상을 뒤엎고

2

위로 부상하였다

.

그 이유는 간 나오토 총리가 자파 의원들에게 자율투표를 지시했지 만, 5명의 후보 가운데 노다 요시히코가 유일하게 간 내각의 정책을 대 부분 계승했기 때문에 간 나오토 총리 및 간 그룹의 상당수 의원들이

93_뺷朝日新聞뺸, 2011년 8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