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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의 편년에 대한 검토 - ‘압인之자문토기’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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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산문화의 편년에 대한 검토

- ‘압인之자문토기’를 중심으로

김재윤*

홍산문화의 편년은 채색토기를 중심으로 황하강 유역의 앙소문화 편년에 맞춰졌다. 하지만 홍산문 화의 채색토기 가운데 토기기형까지 실체를 알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우하량유적에만 집중되어 채색토 기를 근거로 한 편년은 홍산문화 전체를 아우르기에는 부족하다.

따라서 홍산문화의 대부분 유적에서 출토되는 압인지자문양토기가 이 지역의 이른 신석기문화인 흥륭와문화의 심발형토기에 집중되는 점을 보아서 이에 대한 편년연구가 필요하다.

홍산문화는 소동산 유적과 백음장한 유적의 층위에서 토기의 변화가 보이며, 전체는 1~5기로 구분 된다. 각 기마다 시문방법, 시문도구, 문양형태, 기형에서 변화가 있다. 1기는 6000~5400년 전에 소동 산 1기의 주거지와 흥륭와 유적의 F133호가 해당되며, 압인지자문으로만 시문된 토기가 특징이다. 2기 는 5400~5300년 전 소동산 2기와 흥륭와 유적의 F106호가 속하며, 1기의 토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침 선문양 기법으로 그려진 토기도 확인된다. 3기는 소동산 3기와 위가와포 유적이다. 1~2기의 토기가 지 속되면서, 침선문양의 범위가 줄어들거나 파수가 붙으며, 고배가 생기는 특징이 확인된다. 4기는 서태유 적, 백음장한 4-1기, 노우조구, 상기방영자 등 유적이 해당된다. 3기와 4기의 절대연대는 분석된 토기가 대상이 되는 유적에서 확인된 절대연대가 없어서 그 경계가 불명확하다. 압인지자문토기 가운데서 일부 는 호선의 지자문양이 확인되며, 침선문 가운데서도 곡선적인 문양이 확인된다. 5기는 백음장한 4-2기, 우하량, 나사태 유적이 속하며 5000~4400년 전에 해당된다. 압인지자문양은 호와 옹형토기에서 시문되 고, 침선문토기도 다치구로 그은 토기가 확인되며, 무문양토기도 증가한다. 특히 무문양토기와 채색토기 는 앞선 시기와 달리 기형이 다양하다. 1~4기의 유물이 주로 주거지에서 출토되지만 5기는 우하량유적 의 회괭 및 나사태유적의 무덤에서 출토되어, 1~4기와는 토기 특징 및 유적의 성격에서 차이가 크다.

│주제어│ 홍산문화, 압인지자문토기, 편년, 1~5기, 6000~4400년 전

I 목 차 I

Ⅰ. 머리말

Ⅱ. 연구성과 및 문제제기

Ⅲ. 홍산문화의 토기편년

Ⅳ. 홍산문화 5기 토기의 상이성

Ⅴ. 맺음말

I 요 약 I

* 부산대학교 고고학과

투고일 : 2019. 6. 4. 심사완료일 : 2019. 7. 10. 게재확정일 : 2019. 7. 10.

(2)

Ⅰ. 머리말

한국학계에서 중국동북지역에 대한 청동기시대 연구는 요서지역부터 요동지역, 두만강 유역 및 인접한 연해주 등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한국사의 연구영역으로 인식된다.

반면에 신석기시대연구는 주로 압록강유역과 인접한 요동지역, 두만강 유역과 인접한 연 해주가 대상이었고, 그간 요서지역에 대한 연구는 소하연문화(김재윤 2015, 2018a) 이외에 는 부족한 편이었다. 그 때문인지, 서납목륜하 유역 및 대능하, 소능하 지역(그림 1)에 주로 분포하는 신석기문화인 홍산문화를 일부에서 한국사로 보려는 인식이 있는데, 위험한 발상 임이 지적된 바 있다(김정열 2017, 김재윤 2018b). 홍산문화를 요하문명론 혹은 황제문명론 으로 연결시킨 중국의 연구배경은 이미 알려지고 비판되었으나(신희권 2011, 김정열 2014, 2017), 이 지역이 한국 신석기문화의 연구영역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은 구체화 되지 못했다.

이를 밝히기 위해서는 토기에 대한 연구(김재윤 2017)가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홍산문화에 대한 연구는 주로 무덤과 옥기 중심이다. 고고문화의 가장 기본인 토기는 사 질계통의 ‘之’자문양

토기와 니질계통의 채색토기가 있지만, 주류를 이루는 압인 지자문토기 보다는 소략하게 출토되는 채색토기를 근거로 한 편년연구에 치중 된다(표 1). 그 이유 는 홍산문화의 채 색토기가 앙소문화 로 인해서 발전되었 다는 논의(蘇秉琦, 1987) 때문이다. 이 후로 중국동북지방 의 홍산문화는 중원 에 맞춰져서 연구

되었고, 채색토기가 <그림 1> 홍산문화의 유적

1:합민망합(哈民忙哈); 2: 이도량(二道梁); 3: 백음장한(白音長汗); 4: 서수천(西水泉);

5: 노우조구( 老牛槽溝); 6:상기방영자(上機房營子); 7: 홍산후(紅山後); 8: 위가와포(魏 家窩鋪); 9: 동산취(東山嘴): 10: 흥륭구(興隆溝); 11: 서태(西臺); 12: 흥륭와(興隆窪):

13: 우하량(牛河梁); 14: 소동산(小東山)

(3)

매개역할을 한다.

그런데 채색토기는 주로 옹형토기, 사발 및 통형기에서 확인되지만(그림 8), 압인지자문 토기는 심발형토기에 새겨져서, 그 이전 흥륭와문화부터 이어진 토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 고, 홍산문화의 가장 이른 시기부터 출토되는 유물이다.

뿐만 아니라 기형을 알 수 있고 이 문화의 대표적인 토기로 소개되는 채색토기는 가장 늦 은 시기인 우하량 유적에서 대부분 집중된다(그림 8-6~18ㆍ20). 그렇기 때문에 홍산문화는 채색토기 중심으로 편년을 하면서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며, 모순점이 발견된다.

따라서 홍산문화의 대부분 유적에서 출토되는 압인지자문토기에 대한 편년연구가 필수이 다. 또한 홍산문화와 인접한 지역의 토기를 살피기 위해서도 전통적인 심발형토기에 새겨진 압인지자문토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본고에서는 홍산문화의 토기 가운데, 이미 연구된 채색토기 이외의 압인지자문토기를 중심으로 한 편년을 검토하고자 한다.

Ⅱ. 연구성과 및 문제제기

홍산문화의 토기는 크게 니 질 채색토기와 사질의 압인지자 문토기로 구분되지만, 그 중 채 색토기가 중심이 되어 황하유역 의 앙소문화에서 기원했다는 소 병기(蘇秉琦)(1987)의 의견이 홍 산문화의 편년연구(장성덕(張星 德),1991), 색소분ㆍ이소병(索秀 芬ㆍ李少兵, 2011)에도 그대로 투 영되었다(표1).

채색토기를 중심으로 한 편년은 여러 유적에서 채색토기가 황하유역에서 영향을 받았다 는 전제하에 황하유역의 신석기 앙소문화와 비교해서 각각 후강 1기, 묘저구유형, 반파4기 와 대응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표1; 그림 2; 張星德 1991).

그런데 홍산문화의 소동산 유적 F5호 주거지는 흥륭와 F133호와 같은 단계로 홍산문화의 가장 이른 시기(劉國祥 2016)인데, 채색토기가 출토된다(그림 4-9ㆍ10). 구연부가 내만하는 장동형토기로, 직선문양(그림 4-10)과 곡선문양(그림 4-9)이 그려진 토기가 함께 출토되었다.

<그림 2>. 앙소문화의 후강1기와 묘저구 유형의 채도 (中國社會科學院考古硏究所, 2010, 필자재편집)

1: 후강 H2; 2:후강 H8; 3: 묘저구 H52; 4: 묘저구 채도의 도안

(4)

<표 1> 홍산문화의 편년연구

張星德(1991) 근거 陳國慶 2008 근거 索秀芬ㆍ李少兵(2011)

근거 劉國祥2016 근거

나사태, 대필 야위, 홍산후, 해금산, 지주 산, 서수천, 사 능산

후 강 1 기 의 채 색 토기

1

백음장한 1조, 흥륭 와 F133,106호, 서수 천, 남태자 M13, 나사 태, 홍산후, 이도량2 층-F7, F11

백 음 장 한 과 우하량 유적의 층 위 및 채색 토기편년

흥륭와 백음장한 우하량

6500 흥륭와F133, 소동

산 F1,4,5 흥륭와 유적 과 소동산유 적을 근거로 1기와 2기 분 1 홍 산 1

기-F133

흥륭와 F106, 소동 산F2,8,10

2 6000

백음장한 2조, 서수 천, 이도량, 삼도만자, 사능산, 남태자, 나사

2 홍 산 2 기-F106 홍산1기

후 강 1 기 의 직선적 인 채

나사태, 대필 야위, 홍산후, 서수천, 삼도 만자,성자산, 사과둔

묘저구유 형 의 채

색토기

소동산F6,7,9,11,위

가와포 소동산유적 층위 및 위가 와포 유적과.

서 태 3 호 와 차이.

3 홍산1기

앙소문 화묘조 구유형 의 채 도 와 유사 3

백음장한 3조, 우하량 5지점하층, 일부, 나 사태, 우하량제1지점 4적석총, 동산취

서수천, 서태3호, 지주산, 이도와포, 노우조구, 상기방 5500영자

나사태, 대필 야위, 홍산후, 성자산, 우하 량, 동산취, 호 두구,사과둔, 사능산

반파유형 4기의 채

색토기

우하량하층적석

우하량 유적 4 의 층위

우하량 5지점 상층, 성자산 일부토기, 홍

산후토기 4

홍산3 홍산1기1

홍산2기

1단 우하량상층적석,

하만망합,나사태, 흥륭구

홍산2기2

홍산2기

2단 5000

즉 소동산 유적에서는 직선문양과 곡선문양의 채색토기가 같은 주거지에서 출토된다. 이 는 직선 문양이 주요한 후강1기와 곡선문양이 주요한 묘저구 유형이 층을 달리해서 나타나 서 두 문양이 시간 차가 있다는 의견(索秀芬ㆍ李少兵2011)과는 모순된다.

또한 후강1기와 묘저구유형을 기준으로 한 장성덕의 편년(표 1)에서 서수천 유적은 채색토 기를 중심으로 전~후기, 나사태 유적은 중기에 해당하지만, 류국상(劉國祥)(2016)의 종합 연 구에서는 서수천은 중기 후단, 나사태는 후기후단으로 가장 늦다(표1).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압인지자문양이 중심이 된 편년에서는 서수천 유적과 나사태 유적은 각각 4기와 5기(표6)에 해당한다. 이러한 점을 보아도 홍산문화의 편년을 채색토기를 근거로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진국경(陳國慶)은 발굴된 유물이 아닌 채집품을 중심으로 홍산문화를 편년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홍산문화의 변화가 층위로 확인되는 우하량 5지점과 백 음장한 유적의 2,3 층(표 1)을 기준으로 4기로 구분해서 압인지자문토기를 기형별로 분류했 다(陳國慶 2008). 하지만 그의 편년에서 홍산문화의 가장 빠른 시기 주거지가 백음장한 유적 1조와 흥륭와 유적의 홍산문화층인 F133,106호 주거지로 보았으나, 발굴자료가 늘어나면서 분석된 연구(索秀芬ㆍ李少兵 劉國祥2011; 劉國祥 2016)와 차이가 있다(표 1). 백음장한과 우하량을 제외한 나머지 유적은 채색토기를 기준으로 해서 분석한 후, 백음장한과 우하량 출 토품과 비교했기 때문이다. 유적의 층위가 고려되었지만 결국 분기의 근거가 된 것은 채색 토기여서(陳國慶 2008)에 기존의 채색토기 중심 편년을 벗어나지 못했다.

(5)

최근에는 홍산문화의 편년은 특정유물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유적 내의 선후관계와 절대연대를 살펴서 세분된다(표 1, 劉國祥 2016). 흥륭와 유적 F133호와 F106호 주거지의 선 후관계, 소동산 1기인 F 1호ㆍ 4호ㆍ 5호와 2기인 F 2ㆍ8ㆍ10호 주거지의 선후관계로 홍산 문화의 조기 중에서 가장 이른 두 개의 시간으로 구분했다. 중기에는 소동산 유적의 3기 F 6 ㆍ7ㆍ9ㆍ11호 주거지와 위가와포 유적을 같은 단계로 파악하고, 이들 출토품이 서태 4호 토 기보다 이른 것으로 보아서 단계를 나눴다. 후기는 우하량 유적 하층 적석총보다 늦은 우하 량 상층 적석총과 유사한 유물이 출토되는 합민망합, 나사태, 흥륭구 유적을 홍산문화의 가 장 늦은 시기로 분류했다(표1; 劉國祥 2016).

우선 류국상은 홍산문화의 시작연대는 6500년부터로 보는데(劉國祥 2016), 알려진 홍산 문화의 절대연대측정치 가운데 흥륭와 F133호 Damon연대1)(표 2)와 가장 가깝다.

<표 2> 홍산문화의 절대연대

김정열(2017) 재편집; 220 中國社會科學院考古硏究所 2010; 821;822

유적 측정연대

나이테교정연대

측정연대

나이테교정연대 Damon表

(BP) 고밀도정도표

(BC) Damon表

(BP) 고밀도정도표 (BC)

1기

흥륭와F133③ 5865±90(ZK-1394) 6525±100 4714~4463 5865±90(ZK-1394) 4575±120 4714~4463 흥륭와F142① 5735±85(ZK-2064) 6395±190 4501~4348 5735±85(ZK-2064) 4445±190 4501~4348 흥륭와 F106② 5425±53(ZK-3074) - -

2기 소동산 F8 5340±80 - -

정구자동구 (井溝子東區)F1③

5160±55

(BK2003067) - -

5기

N2Z1봉토 4995±110(ZK-1355) 5600±135 3779-3517 4995±110(ZK-1355) 3650±135 3779~3515 N1F1北綠 4975±85(ZK-1352) 5580±110 3771-3519 4975±85(ZK-1352) 3630±110 3771~3519 4970±80(ZK-1351) 3625±110 3700~3521 NIJI 4970±80(ZK-1351) 5575±110 3700-3521 - - - N2Z1M8 4605±125(ZK-1354) 5145±155 3360-2920 4605±125(ZK-1354) 3195±155 3360~2920 동산취F4② 4895±70(BK-82) 5485±100 3640-3382 4895±70(BK-82079) 3535±100 3640~3382 흥륭구 제2지점F4① 4786±44(ZK-3155) - -

오도만M1 4455±85(ZK-1180) 4965±80 3039-2894 4455±85(ZK-1180) 3015±180 3039~2894

평안보 5655±85(ZK-2408) 4360±190 4458~4249

1) 표 2는 김정열(2017)을 참고로 한 것이다. 류국상의 논문(2015)을 인용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흥륭와 F133호 Damaon연대는 류국상의 논문(2015, 2016a, 2016b)에서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류국상은 홍산문화를 6500년 전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가장 근접한 연대는 흥륭와 유적의 F133호의 Damon연대이다.

(6)

그러나 류국상이 제시한 Damon 연대는 같은 유구의 시료로서 측정된 실험번호도 같지 만, 중국사회과학원고고연구소(2010)에서 제시된 연대와 차이가 확인된다(표 2). 흥륭와 유 적의 F133호와 F142호 주거지 연대 뿐 만 아니라 우하량 유적, 동산취 유적의 측정연대도 발 표된 자료 간의 상당한 차이가 있다.

따라서 Damon연대보다는 측정연대를 기준으로 설명하는 것이 적당하다. 논문에서 알려 진 절대연대 11개2) 중 전기에 해당하는 연대 3개, 후기에 해당하는 연대 7개, 중기에 해당하 는 연대는 2개 뿐이다. 홍산문화의 유적을 모두 6개의 분기로 나누고 같은 편년폭(표 1)으로 설정했는데(劉國祥 2016),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또한 류국상의 편년은 대체로 취락 유적의 층위가 기준이 되었으나(표 1), 중기와 하기 사 이에는 층위로 증명할 수 있는 유적이 없고, 우하량 유적의 절대연대가 근거가 되었다(표 1,2). 그러나 앞 시기의 유적은 주로 취락유적이며, 우하량은 무덤 유적(표)으로 유적 간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토기를 통한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하기의 후단으로 본 합 민망합 유적은 토기가 홍산문화와 유 사한 기형도 있지만, 문양은 전혀 다 른 기법으로 타날문 혹은 격자문(그림 3-1,2,3,7,8,9)을 두드린 것이 주요하다.

이 유적을 근거로 홍산문화와 다른 합민 망합문화(郑钧夫 외 2014)로 규정하기 도 한다.

합민망합 유적의 토기는 요서지역에 서 이 전의 흥륭와문화와 조보구문화에 서도 볼 수 없고, 늦은 시기의 소하연문 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제작기법이다.

단순히 토기 기형이나 주거지 유사성으 로 홍산문화의 범주에서 설명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서 홍산문화의 편년에서 제 외하고자 한다.

2) 홍산문화의 절대연대 측정치는 모두 12개가 알려졌으나(표 2 참고), 류국상(2015,2016a, 2016b)의 논문 에는 11개가 소개되었다.

<그림 3> 합민망합 유적의 토기

(蒙古文物考古究所ㆍ吉林大学边疆考古究中心 2012; 蒙古文物考古究所ㆍ科左中旗文物管理所 2012; 필자 재편집)

(7)

홍산문화의 이른 시 기 유적 중에서 소동산 유적 5호 주거지에서 채색토기가 있기(그림 4-9ㆍ10) 때문에 홍산 문화의 채색토기연구도 필요하다. 그러나 홍산 문화의 채색토기로 알 려진 다양지만 알려진 대부분의 토기는 가장 늦은 시기인 우하량유 적(그림 8-6~18ㆍ20)에 서 주로 출토되기 때문 에 전체를 아우르기에 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홍산문화의 가장 이른 시기 흥륭와 유적의 F133호, 소동산 F5호 주거지부터 압인 지자문토기가 출토되 며, 가장 늦은 시기까지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 를 중심으로 한 편년연 구가 필요하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본고의 홍산문화 2기에서는 침 선문과 압인지자문토기 가 함께 시문되는 토기 도 출토되기 때문에, 침

선문양기법의 토기도 함께 포함하고자 한다.

<그림 4> 소동산 1~3기의 토기遼寧省文物考古究所ㆍ朝市博物館ㆍ朝縣文 物管理所 2004; 필자재편집)

1기-〔1~4: 소동산F1호; 5~10: 소동산 F5호〕;2기-〔11ㆍ13~18ㆍ22~25; 소동산F2 호; 12ㆍ19~21:F8호〕; 3기-〔26~29:소동산F7호; 30~32:소동산F9호 〕

(8)

Ⅲ. 홍산문화의 토기편년

1. 소동산 유적과 백음장한 유적의 토기변화

홍산문화는 흥륭와 유적, 소동산 유적, 우하량 유적의 층위와 절대연대를 근거로 3기 6단 으로 구분되었다(표 1; 劉國祥 2016). 우하량 유적은 5지점의 하층(3층)과 상층(4층)으로 구 분되어 각각 홍산문화 후기의 전ㆍ후단계로 구분되었다(표 1). 그러나 구분된 층에서 출토 된 토기는 대부분 채색토기이고, 본고에서 검토대상이 되는 압인지자문토기는 우하량 유적 에서는 5지점의 5층 회괭에서 출토되어(표 7), 본고에서는 우하량 유적을 두 기로 구분할 필 요가 없다.

현재 홍산문화의 주거지 가운데 가장 이른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흥륭와 유적의 홍산문화 주거지인 F133호(그림 6-3)이고, 이와 같은 유물이 출토되는 곳은 소동산 1기의 주거지이다 (劉國祥 2016). 특히 소동산 유적은 층위에 따라서 유물의 변화가 확인되어서 유물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표 3).

소동산 유적에는 3층에 걸쳐서 홍산문화의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가장 하층(F1ㆍ4ㆍ5호) 에서 확인되는 압인해서 지자로 찍은 문양 토기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토기의 상단과 동체 부의 지자문양 방향이 다른 2단 지자문토기(그림 4-1,2)와 구연부에 융기대(그림 4-4)를 부 치고 전면에 지자문양을 찍은 것, 단순하게 전면이 지자문양으로 시문된 것(그림 4-5)이 있 다. 시문구를 가로방향으로 찍은 잔발형 토기(그림 4-6)도 소동산 F5호 주거지에서 출토된 다. 소동산 1기 주거지에서만 채색토기가 출토되는데, 곡선문양(그림 4-9)과 직선문양(그림 4-10)이 같은 주거지에서 있다(표3).

소동산 2기(F2ㆍ8ㆍ10호)에는 1기에서 확인된 지자문양 토기 2종류는 계속 확인되고 침 선문 기법으로 그려진 토기(그림4-16~18ㆍ21~25)가 새로운 요소이다(표 3). 침선문토기는 구연부와 동체부 하단을 제외하고 집선삼각문을 그린 토기(그림 4-21)와 동체부에만 곡선으 로 그린 토기(그림 4-22,23)도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침선문과 압인문을 찍은 토기(그림 4- 24,25)가 상하단으로 나눠져서 새겨진 토기, 파수가 부착된 잔발형 토기(그림 4-16), 굽이 있 는 잔발형토기(그림 4-12,17)도 있다(표 3).

소동산 3기(F6ㆍ7ㆍ9ㆍ11호)에는 1,2기에서 확인된 2단 지자문토기는 확인되지 않지만, 구연단에 융기대가 붙은 지자문토기(그림 4-28)은 확인되고, 집선문양을 그린 침선문토기도 출토된다. 뿐만 아니라 고배(그림 4-30)와 홍정완(그림 4-31)등 1,2기에서 없었던 기형의 토 기도 출토된다(표 3).

(9)

표 3. 소동산유적과 백음장한 유적의 토기변화

문양시문방법 지자문토기 압인+침선 침선문토기 무문

그림 문양형태와 번호

시문도구 2단

전면

단치구 다치구

집선 삼각형

지그

재그 곡선

소동산1기 1호 4-1,2,4

5호 4-5,8

소동산2기

2호 4-16~18,

21~25

8호 4-11,12,

19,20

백음장한3 5-1~4

소동산3기 7호 4-26~29

9호

백음장한4기

4-1 5~14,16,

17,20

4-2 15,18,19,

21,22

층위를 통해 유물변화는 백음장한 유적에서도 관찰된다. 3기와 4기는 홍산문화층으로(표 4), 3기(그림 5-1~4)에서 4기(그림 5-5~15,17, 18, 21, 22)로 토기의 변화가 보인다. 백음장한 3기의 유물(그림 4-1~3)은 소동산 2기의 F2호(그림 4-11,14,23)에서 출토된 유물과 비교해 볼 수 있다.

백음장한 3기에서도 침선기법이 나타나며, 문양은 곡선적으로 그려진 것이 있는데, 소동 산 2기와 유사하다(표 3). 구연부와 동체부가 구분되어 시문된 지자문토기(그림 6-2)와 전면 에 지자문이 새겨진 토기(그림 6-4)는 같은 방법으로 소동산 1기(그림 4-1,2,5,8)와 2기(그림 4-11,14)에서 확인된다(표 3).

백음장한 4기 토기에는 융대가 붙은 지자문양, 전면 지자문양, 침선문양 가운데 집선삼각 형적인 요소는 백음장한 3기와 소동산 2기와 같은 요소이다(표 3).

그러나 구연부에 융대가 붙은 압인지자문토기(그림 5-6)는 소동산 1,2기 및 백음장한 유적 출토품과는 다른 방향으로 찍혀진 것으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다.

(10)

또 한 침 선 기 법 으 로 서 다 치 구 ( 그 림 5-5,7,12,14)로 그려진 토기, 압인지자문 방법 으로 그려진 호형(그 림 5-18) 및 무문토기 (그림 5-19~22)가 있는 데, 백음장한 3기 및 소 동산 유적에는 없는 요 소이다. 다치구로 시 문된 침선문양은 구연 부에 융대가 붙고 거의 세로로 그은 토기(그 림 5-7), 격자문양(그림 5-5,12,14) 등이 있다.

그런데 지자문이 시 문된 호형토기와 무문 양토기(그림 5-15ㆍ18 ㆍ19ㆍ21ㆍ22)는 주로 홍산문화의 가장 늦은 우하량 유적(표 5; 그림 7-20)에서 주로 확인되기 때문에, 이를 4기 가 운데서 늦은 요소로 4-2기로 구분할 수 있다. 다치구로 그려진 침선문토기와 백음장한 3기에 서 계속되는 요소는 4-1기로 보고자 한다.

따라서 백음장한 3기는 소동산 2기와 거의 같은 특징이기 때문에 같은 단계이고, 백음장한 4기는 소동산 3기와는 다른 새로운 요소가 확인되기 때문에 소동산 3기보다 늦다(표 3; 표 6).

2. 홍산문화의 편년

최근의 연구에는 소동산 1기와 흥륭와 F133호 주거지 출토품을 가장 이른 홍산문화의 유적 으로 보고 있다. 홍산문화의 절대연대 가운데 가장 빠른 연대가 흥륭와 F133호에서 확인되고, 그 출토품이 소동산 1기의 유물과 같은 점 등을 들어서 가장 빠른 단계로 본다(劉國祥 2016)).

소동산 2기는 소동산 1기 보다는 늦은 층위이고, 침선기법으로 시문되는 새로운 방법으로

그림 5. 백음장한 유적의 홍산문화 토기(內蒙古文物考古硏究所, 2004; 필자 재편집) 1~4: 백음장한 3기 을조와 5~11: 백음장한 4기의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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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된 토기가 출토되며, 절대연대로도(표 2) 늦기 때문에 홍산문화 1기보다는 늦은 단계로 볼 수 있다.

<표 4> 백음장한 유적의 층위별 문화양상

층위 문화 유적분기 그림번호

1기 흥륭와문화 백음장한 1기

2기

3기 갑 조보구문화 백음장한 2기

3기 을 홍산문화 백음장한 3기 그림 5-1~4

4기 홍산문화 백음장한 4-1 그림 5-5~14ㆍ16ㆍ17ㆍ20

백음장한 4-2 그림 6-15, 18, 19,21,22

5기 소하연문화 등 백음장한 5기

소동산 3기는 위가와포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같다. 또한 서태 유적(그림 7-1,7,9)에서 출 토되는 토기와 다른 토기가 출토되서 구분된다(劉國祥 2016). 서태유적과 같은 단계로 노우 조구, 상기방영자 유적 등이 해당되는데, 소동산 3기와는 다른 토기가 출토되기 때문이다(표 5). 우선 이들 유적에서는 소동산 3기의 지자문토기와(그림 4-26~29)와는 다른 지자문양이 출토된다. 2기에서 확인되는 구연부에 융대가 붙는 토기가 있지만 지자문양의 간격이 넓어 지고(그림 7-7), 지자문양 방향이 가로 방향(그림 7-2ㆍ4)으로 새겨지기도 하며, 시문도구가 둥글어져서 호선(그림 7-3ㆍ4)처럼 보인다. 또한 2단 압인지자문토기(그림 7-2ㆍ3)가 존재 하지만, 구연부와 동체부의 문양시문너비 비율이 앞선 시기와 다른 점 등을 보아서 소동산 3 기는 서태유적, 노우조구, 상기방영자, 서수천 유적 출토품과 다른 단계로 볼 수 있다. 백음 장한 4-기에서 지자문양이 가로 방향으로 시문되고, 다치구로 시문된 융기대가 붙은 침선문 토기 등을 볼 수 있다.

우하량 유적은 홍산문화의 가장 마지막 단계 유적으로 알려졌다(표 1). 절대연대상으로도 가장 늦고 홍산문화의 토기특징도 앞선 시기와는 차이가 있다. 구연부에 융대가 붙은 압인 지자문토기, 2단지자문 토기 등은 없어지고, 호형의 압인지자문토기, 무문토기, 구연부가 외 반된 압인지자문토기, 파수 등 여러 가지 새로운 요소가 있다. 백음장한 4-2기, 나사태, 흥륭 구 등에서도 같은 요소가 확인된다(표 5). 뒤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으나 우하량유적에서 출토되는 채색토기와 함께 무문의 다양한 토기가 출토되는데, 앞서 설명한 유적에서는 거의 없는 토기여서 우하량 유적은 앞선 시기와는 다른 단계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홍산문화는 5기로 구분할 수 있으며, 각 단계에서는 시문방법, 시문도구, 기형변화 등의 새로운 요소가 확인된다(표 5)

(12)

<표 5> 홍산문화 토기특징 변화

시문방법 압인지자문 압인+침선 침선문 무문 그림번호

시문도구 편평 편평 곡선 편평 곡선 편평 곡선 단치구 다치구

문양형태 단독 2단 융대 동체부

기형 심발형 호,옹 심발형 심발형

1기 4-1~10; 6-1~3

2기 4-11-25; 6-4~9

3기 4-26~32; 6-10~14

4기 7-1~11

5기 7-12~27

1기는 소동산 가장 하층인 F 1ㆍ 4ㆍ 5호 주거지 출토품과 흥륭와 F133가 해당된다(표 6).

1기의 지자문토기는 크게 세 종류인데, 구연부 부근과 동체부의 지자문양의 방향 다른 2단 지자문토기(그림 4-1ㆍ2; 그림 6-3)와 지자문을 전면에 찍고, 구연단에 융기대를 부친 것(그 림 4-4), 전면에 지자문양이 시문된 토기(그림 4-5)도 있다. 시문구를 가로방향으로 찍은 잔 발형 토기(그림 4-6)도 소동산 F5호에서 출토된다.

2기에는 소동산 F 2, 8, 10호 주거지와 흥륭와 F106호 주거지가 해당된다(표 6). 1기에서 출토된 2단 지자문토기와 구연부에 융대가 붙은 토기, 전면 2지자문토기가 계속 확인된다.

그 중에서 구연부에 융기대가 부착된 압인지자문토기는 그 상단에 시문된 방향과 융기대의 단면(그림 4-13), 융기대의 위치(그림 4-12), 동체부에 새겨진 지자문양의 시문 방향(그림 4-19ㆍ20)이 1기와 변화가 있다.

2기에서는 침선문으로 그린 토기가 새롭게 확인된다(표 5). 압인문과 침선문이 복합된 토 기와 침선문으로만 시문된 토기도 있다(그림 4-16~18,21~23; 그림 6-8). 전자는 토기의 상 단에는 삼각집선문, 하단에는 가로 방향 찍은 문양(그림 4-24,25) 혹은 지자문양이 그려진 토기(그림 6-7)가 있다. 또한 침선문 방법으로만 시문된 토기는 구연단과 동체부 하단을 제 외하고 집선삼각문을 채운 토기(그림 4-21)와 집합침선문으로 곡선으로 그린 토기(그림 4–22,23)도 확인된다. 이 시기에는 토기의 파수가 있거나 잔발형에 굽이 붙는 토기가 생긴다 (그림 4-16, 17).

3기에는 소동산 3기가 해당되며, 위가와포 유적도 같은 단계로 파악된다(劉國祥 2016). 1 기와 2기에서 확인된 2단 압인지자문토기는 불투명하지만3), 융기대가 붙은 압인지자문토 3) 3기에 해당되는 위가와포 유적의 보고가 일부만 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향후 자료가 증가하면 2

(13)

기(그림 4-28), 2기의 집 선 삼 각 침 선 문 토 기 (그림 4-27)도 계속 확 인된다. 소동산 유적의 3기에서는 고배형토기 (그림 4-30)가 출토되 며, 위가와포 유적에서 는 심발형토기에 세로 방향 파수가 붙은 것(그 림 4-14)이 새롭게 확인 된다(표 5). 이 토기는 구연부 아래에는 짧게 단사선을 긋고 그 하단 에 세로 침선문을 새긴 것이다. 2기의 복합 침 선문토기는 3기에서는 하단의 지자문이 없어 지는 토기(그림 6-12)로 확인된다.

4기는 서수천 유적, 서태 3호, 지주산, 노우 조구, 백음장한 4기-1의 유물이다(표 6). 구연단 에 융기대가 붙은 토기 (그림 7-4ㆍ7ㆍ10)와 2

단압인지자문토기(그림 7-2ㆍ3)는 1, 2, 3기에서 부터 4기 까지 지속된다(표 5).

그러나 3기까지 지자문양이 직선적인 문양인데 비해서, 4기가 되면 곡선적인 지자문이 확 인되는(그림 7-3ㆍ4), 1~3기의 압인지자문토기에 사용된 도구와는 다른 굽어진 시문도구를 이용했던 것으로 판단된다(표 5). 또한 지자문양의 간격도 3기에 비해서 넓어진다. 뿐만 아 니라 지자문양 방향이 이전 까지 세로 방향이 대부분이었으나, 가로 방향도 확인할 수 있다

단지자문토기가 확인될 가능성이 높다.

그림 6. 홍산문화의 1~3기 토기(遼寧省文物考古究所 외 2004;內蒙古文物考古硏 究所, 2004; 中國社會科學院考古硏究所內蒙古工作隊, 1985; 필자 재편집)

1ㆍ2: 소동산 F1; 3: 흥륭와 F133; 4~6ㆍ8: 소동산 F2;7:백음장한3기; 9: 소동산 F8;10ㆍ11:소동산 F7:12~14: 위가와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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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홍산문화의 4~5기 토기(林秀貞ㆍ楊虎 2013;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2012; 劉國祥 2016; 蒙古 自治區文物考古究所ㆍ吉林大邊疆考古究中心, 2012; 필자 재편집)

1ㆍ7ㆍ9: 서태; 6: 노우조구; 4ㆍ10ㆍ11: 상기방영자; 12ㆍ18~20: 우하량 2지점H1; 13ㆍ15: 우하량 5지점Z2H41;14:우하량 5지점Z2H14; 16ㆍ17: 나사태; 21ㆍ23ㆍ25ㆍ27: 흥륭구; 22: 우하량 5지점 Z2H2 ; 26: 우하량5지점; 28: 우하량 1지점 Z1

(15)

(그림 7-2,4)

침선문으로 그려진 토기 문양은 3기와 같은 집선 삼각문토기(그림 7-8ㆍ9)외에도 세로방향의 침선 문토기(그림 7-11)가 확인되며, 곡선의 부채꼴(그림 7-14)문양이 동체부에만 시문된 토기도 새롭게 확 인된다(표 5).

5기는 우하량 유적, 나사태, 흥륭구 유적의 토기 이다(표 6).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하량유적은 하 층과 상층으로 구분되지만, 이는 무덤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압인지자문토기는 회괭에서만 출토(표 7)되기 때문에 압인지자문토기를 중심으로 한 토기 편년과는 무관하다.

5기에서는 압인지자문토기는 구연부에 융대가 붙은 토기는 없고, 구연부에 침선을 돌린 토기(그림 7–12; 19)가 확인되는데 이는 4기에는 없던 요소이다. 또한 지자문양은 호와 옹, 항아리 등 다양한 기형에 새겨진다(표 5). 특히 상하단으로 구분된 2단 지자문양은 발형토기 가 아닌 호형토기(그림 7-24)에서 시문된다(표 5).

한편 침선문토기는 앞선 시기에 보이는 삼각집선문이나 세로 방향은 없어지고, 가로 방 향으로 비스듬하게 긋는 토기(그림 7-14)와 가로와 세로가 복잡하게 풀어진 문양토기(그림 7-15), 곡선적인 문양(그림7-28) 등이 있는데, 다치구로 시문된 것이다. 한편 압인지자문토 기와 함께 무문양토기가 우하량 회괭(그림 7-20)에서 출토된다(표 7). 무문양토기는 백음장 한 4-2기에서도 대량으로 출토된다.

필자는 앞서 문제제기 한 바와 같이, 홍산문화의 알려진 절대연대 12개 (표 2)가운데 측정 연대를 기준으로 홍산문화의 각 기의 연대를 파악하고자 한다. 가장 오래된 연대는 흥륭와 F133주거지를 기준으로 할 수 있으며, 대략 6000년 전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홍산문화 이후의 소하연문화는 대남구 유적의 M76(김재윤 2018a; 34 표 2)를 기준으로 4300 년 전부 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오도만 유적의 연대가 홍산문화의 가장 늦은 시기에 속한다.

그렇다면 홍산문화의 알려진 측정연대(표 2)는 본고의 1기, 2기, 5기에서만 해당되며, 토 기가 알려지지 않은 정구자동구 유적의 연대는 본고의 3~4기 사이이다. 그러나 토기가 확인 되지 않아서 3기와 4기의 정확한 경계는 알 수 없다(표 6).

1기는 6000년 전부터 시작되며, 흥륭와 F106호를 기준으로 하면 5400 년 전까지이다(표 2; 표 6). 2기는 1기가 끝나는 시점부터 소동산 F8호 주거지를 기준으로 5300년 전 까지이다.

<표 6> 홍산문화의 편년

분기 B.P. 유적

1기 6000 5400

5300

5000

4400

흥륭와F133, 소동산 F1,4,5

2기 흥륭와 F106, 소동산F2,8,10, 백음장한 3기

3기 소동산F6,7,9,11,위가와포

4기

서수천, 서태4호, 지주산, 노 우조구, 상기방영자, 백음장 한 4기-1

5기 우하량, 나사태, 흥륭구, 백 음장한 4-2

(16)

그 외 우하량, 동산취, 흥륭구 유적은 토기로 보아서 5기에 해당하고, 그 측정연대는 홍산문 화 중에서 가장 늦은 연대로 5000~4400년 전에 해당한다. 3기 및 4기는 2기의 하한과 5기의 상한을 기준으로 5300~5000년 전 으로 볼 수 있다.

Ⅳ. 홍산문화 5기 토기의 상이성

홍산문화 5기 토기는 1~4기 에서 출토되는 토기와는 문양 시문방법과 기형에서 차이가 크다(표 5). 4기까지 존재하 던 전면에 지자문양이 시문된 발형토기는 없어진다. 구연부 가 외반하고 파수가 붙은 토 기(그림 7-21ㆍ23) 혹은 전혀 구형(그림 7-27) 혹은 옹형토 기에 압인지자문이 시문된다.

침선문토기도 문양의 변화가 심한데 구연부 아래에 돌대가 붙고, 그 아래에 다치구로 침 선을 둥글게 그은 토기(그림 7-28)도 출토된다(표 5).

또한 현재 알려진 홍산문화 의 채색토기는 대부분 5기의 우하량유적에서 출토되는데, 옹(甕)(그림 8-6), 통형기(筒 形器), 발(鉢)(그림 8-14), 발 형기(鉢形器), 탑형기(塔形器) (그림 8-15) 등이다. 그 외에 채색토기는 아니지만 누공기 개(樓空器蓋)(그림 7-20), 원

<그림 8>. 홍산문화의 채색토기 및 여러 가지 기형의 토기(遼寧省文物考 究所 외 2004; 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2012;劉國祥 2016; 林秀貞ㆍ楊 虎 2013; 필자 재편집)

1ㆍ2: 소동산F5; 3: 위가와포; 4: 나사태 5: 지주산; 6ㆍ9~18ㆍ20: 우하량 유적; 7ㆍ8: 호두구; 19: 서태

(17)

족반(圓足盤)(그림 8-17), 삼족충(三足)(그림8-16) 등 다양한 기형이 있으며, 이는 다른 유적에서는 출 토되지 않는다(遼寧省文物 考古硏究所, 2012).

물론 홍산문화 1기의 소 동산 F2호에서도 채색토기 가 출토되지만(그림 8-1ㆍ 2), 그 기형은 구연부가 내 만한 옹에 한정된다. 3기 의 위가와포 출토품(그림 8-3)도 우하량 유적과는 기 형 및 문양 차이가 크다.

5기의 토기가 앞선 단계 와 다른 점은 유적의 성격 에서도 드러난다. 5기를 대표하는 우하량 유적은 대규모 무덤유적이며, 앞 선 시기인 1~4기는 취락에 서 출토되었다(표 7).

현재 홍산문화의 무덤으로 알려진 유적은 우하량유적과 같은 시기에는 동산취, 호두구 (그림 9-8)유적이 있다(劉國祥 2016). 호두구 유적의 1호는 우하량유적의 16지점 4호무덤 (N16M4호)과 무덤구조와 출토유물이 유사하다. 동물모양옥기와 구운형옥패, 구슬, 벽, 봉형 기와 함께 채색토기가 확인되었다.(方殿春, 刘葆华 1994)

우하량 보다 이른 시기의 무덤은 백음장한(그림 9-6ㆍ7)과 남태자 유적(그림 9-1~5)이 있 다(劉國祥 2016). 백음장한 유적은 백음장한 4기에서 M14, M15, M17 무덤이 확인되었으나, 출토유물 가운데 압인지자문토기가 없어서, 본고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 본고에서 대상이 된 백음장한 4기 유물은 주거지 출토품이다.

또한 무덤 가운데 남태자 유적도 우하량 보다는 이른 시기로 보고 있으나(劉國祥 2016), 13호 무덤 외에는 그 출토품은 빈약해서 토기정황은 잘 알 수 없다. 남태자 13호 무덤(그림

<그림 9> 홍산문화의 무덤(蒙古文物考古究所 1994,;2004; ,方殿春ㆍ刘葆 1994; 필자재편집)

1~4: 남태자 M13; 5: 남태자 M10호, 6: 백음장한 M15: 7: 백음장한 M17; 8:

호두구

(18)

9-1~4)에서 지자문토기(그림 9-2~4)가 출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남태자 13호는 토 광묘로 우하량 유적과는 무덤형식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5기에 해당하는 유적 가운데 나사태유적과 흥륭구 유적은 취락유적이지만, 지자문이 그려 진 토기는 그 이전부터 있던 심발형토기가 아닌, 구연부가 외반하고 파수가 부착되거나(그 림 7-21,23) 혹은 호형토기(그림 7-26, 27)로 우하량 혹은 백음장한 4-2기와 같은 성격의 토 기이다.

5기에서는 토기문양에서 가로방향의 지자문이 많아지며, 침선문양도 비스듬하거나 난잡 하게 시문되며, 3~4기에서 보이는 삼각집선문양이나 세로방향침선문은 없어진다. 5기에서 출토되는 우하량 유적의 토기는 압인지자문토기와 침선문토기가 있기는 하지만 회괭출토품 으로 무덤 출토품은 아니다(표 7).

따라서 본고의 홍산문화 5기에 해당하는 토기는 앞서 분석된 1~4기의 압인지자문토기의 기형 및 침선문토기 특징 뿐만 아니라 유적 성격에서 차이가 크다. 5기 토기 가운데 채색토 기도 앞선 시기의 토기와는 달리 다양한 기형에 시문되며, 우하량 유적에서만 집중해서 나타 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하량 유적과 이전 시기의 무덤형식 및 토기는 서로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표 7> 홍산문화의 유적성격

시대문화 성격 그림번호

흥륭와 흥륭와문화

홍산문화 마을유적

7

8, 19

소동산 홍산문화 마을유적

주거지 10기, 회괭 20기)

F5: 1~3 F1: 4~7

F2:9,10,14, 15, 17, 20, 22,23, 26,27 F10: 12, 13, 28 F8: 16,18,24, 25 F7: 31~34,36

백음장한

1,2기흥륭와문화 3기갑조:조보구문화

3기을조:홍산문화 4기:홍산문화

3기와 4기 마을유적 백음장한3기:11,21

위가와포 홍산문화 마을유적

(주거지103기, 회괭201기) 29,30,35

서수천 홍산문화 마을유적

회괭 8 3,9

(19)

서태 홍산문화 주거지 19기 회괭79기

8

1,7,8

노우조구 홍산문화 주거지7기 회괭 42기 6

상기방영자 홍산문화

주거지10기 회괭과수혈 178기

무덤 10기 토기가마3기

토기가마;4,10,11

16, 17

나사태 홍산문화 파손된 주거지

흥륭구 홍산문화 주거지9기

회괭 55기 21,23,25,27

우하량 홍산문화

무덤-2지점,3지점,5지점,16지점,13 지점

제사유적-1지점

1지점Z1:28 2지점:Z4H1-12,18~20

5지점:Z2H2:22 Z2H41: 13, 15, Z2H16:24,

Z2H4:26 Z2H14:14

Ⅴ. 맺음말

우리나라 학계에서 중국동북지역의 신석기시대 연구가 대부분 압록강 유역 혹은 두만강 유역의 주변지역에 집중되고 있다. 그 사이에 중국동북지역의 대표적인 신석기문화로 생각 되는 홍산문화가 일부 연구자에 의해서 한국사의 연구영역으로 인식되지만 위험한 생각임 은 이미 지적된 바 있다.

홍산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토기편년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중국학계에서는 채 색토기를 중심으로 한 편년연구가 위주인데, 이 문화의 토기가 대부분 압인지자문토기가 집 중된다는 점에서 이 토기를 중심으로 한 편년연구가 필요하다.

홍산문화가 6000년 전께부터 시작해서 4400년 전까지 1~5기로 편년 할 수 있다. 홍산문화 의 가장 마지막 시기까지 압인지자문토기가 확인되지만, 각 기 별로 새로운 문양 시문방법, 문양형태, 기형의 변화가 보인다. 1기에는 압인지자문양은 크게 3개의 문양형태로 구분된 다. 2기에는 1기의 유물이 지속되는 가운데, 침선문 기법으로 새겨지는 토기가 확인된다. 3 기에는 문양시문방법과 형태 등은 비슷하지만, 지자문양의 방향, 간격 등 세부적인 문양에서 는 차이가 있으며 새로운 기형도 생긴다. 4기에는 압인지자문양 가운데 일부는 호선으로 변 화되며, 압인지자문양의 방향, 문양 폭 등에서 변화가 있다. 5기에는 압인지자문양이 호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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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에서 확인되며, 침선문양도 다치구로 그은 것, 무문토기의 확대 등 차별성이 확인된다. 뿐 만 아니라 다양한 채색토기 및 기형의 다변화, 유적성격 등은 1~4기에 비해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최근 연구에서 홍산문화가 6500년 전(류국상 2016)부터 시작된다고 보았으나, 앞서 지적 한 바와 같이 문헌마다 그 연대에 편차가 심하다. 이를 이용하는 점이나 황하강 유역의 앙소 문화 채색토기 편년에 맞추어 홍산문화를 살피는 것은 이 문화를 문명화 하려는 국수주의적 중국학계의 연구배경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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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chronology of the zigzag pattern pottery of Hongshan culture

Kim Jae youn (Pusan National University)

It is necessary to study for chronology, considering that the zigzag pattern earthenware excavated from most of the remains of the Hongshan culture concentrates on the early neolithic culture of the area, the BAL styled pottery of the area.

In the Hongshan culture, the process of change of the earthenware is visible in the soil of Xiaodongshan site and Baiyinchanghan site, and the whole is divided into 1~5 groups. In each period, there is a change in how to draw patterns, drawing tools, patterns, and type of pottery. The first is characterized by pottery painted in a zigzag pattern from 6000 to 5400 years ago. The second period is 5400-5,300 years ago and the first earthenware continues, while the pottery painted by the method of engraving is also confirmed. In the third period, one or two earthenware is maintained, and the range of the earthenware painted by the method of engraving the pattern is reduced, and the features of the earthenware with the handle and KOBAE styled potteries are confirmed. Fourthly, among the zigzag pattern pottery, a part is changed into a zigzag pattern of a fan shape, and a curved pattern is also generated by engraving the pattern.

The 5th zigzag patterns are painted in the pottery pots and OHG styled pottery, the tools engraving the patterns are also comb - shaped tools that increase pottery without patterns increases. Unlike the 1st~4th period, the fifth period differs greatly from the features of the pottery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excavated remains.

│Keywords│ Hongshan culture, 6000~4400 years ago, 1-5 periods, the zigzag pattern pottery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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