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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도보통지》무예론에 관한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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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예도보통지》무예론에 관한 연구

-수련과 비교를 중심으로-

최복규

(Korean Institute for Martial Arts)

Martial Arts Theory about practice and a test in the martial arts manual Mooyedobotongji(武藝圖譜通志)

Choi, Bok-Kyu

(Korean Institute for Martial Arts)

Abstract

Through this study I tried to examine the discourse of martial arts and reconstruct the practice and test system of Sippalki in Chosun Dynasty.

I investigated typical concept of body and practice system at that time, they have a prototype of body for each martial arts, but they believed it can be changeable by practice. More than anything else the concept of 'Ki' is the most important thing, which is the fundamental thing that can make body, soul and mind harmonious through practice.

The three categories, thrust, cut, and strike are the basic division of Sippalki. The martial art in every category has its own practice and test system. Self practice and sparring are considered ver important at the same time.

This gives us a very good inspiration about the modern martial sport, like Taekwondo, sanda etcetera.

however the martial arts tradition of Korea gradually disappeared due to the Western cultural invasion of modern times and the lack of adequate response to this invasion. This process is still affecting the current martial arts study and cultivation.

* 본 논문은 필자의 박사학위논문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Key words: martial arts, martial arts theory, Sippalki, Mooyedobotongji * Email: oryung5@dreamwiz.com

(2)

Ⅰ. 서론

《무예도보통지》에 관한 연구가 많이 있어왔 지만 사실《무예도보통지》에 대한 본격적인 연 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 몇 년 들어서 이다. 간헐적으로 연구 논문이 발표되고, 또 실기 에 대한 결과물들이 보고되고 있지만 역시 흡족 할 만한 수준은 아닌 듯하다. 그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동안《무예도보통지》에 대해서 상당히 소 모적인 논쟁, 즉《무예도보통지》의 무예가 전통 무예인가 아닌가라는 점에 집중되어 있어서 ‘사 실’ 그대로의 ‘이해’를 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무예도보통지》의 내용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보다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 여야 하는가에 대한 이념적인 논쟁에 무게가 실 리게 하였다. 그런 점에서《무예도보통지》에 대 한 본격적인 연구와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졌 다고 보기는 힘들다. 지금부터 해결해야 할 과제 가 바로《무예도보통지》그 자체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싶다.

《무예도보통지》는 조선후기라고 하는 시간 축과 한중일이라고 하는 삼국이 맞닿은 지점에서 탄생한 시대적인 구성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단순히 사변적인 논의의 결과물이 아니라 200여 년에 걸친 전투 경험과 연구가 축 적된 실천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무예도보통지》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다양한 변인들과 착종되어 있다는 것은 역으로

《무예도보통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변인들의 착종관계 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무예도보통지》편찬 당대의 인식구조를 재구성 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들은 기술적인 면에 서 개별적으로 독립된 무예로서 존재할 뿐 아니

라 전술적으로 각 무예 간의 상호 보완적인 측면 도 함께 존재하며, 전습과 수련을 위한 나름대로 의 교육 체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일본이나 중국 과의 전쟁이나 전투 등 문화접변 과정에서 현지 상황에 적응한 무예로 특색을 가지게 된다는 점 등 많은 부분이 단순한 기예의 상호 전수나 교류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 들이 상당수 연구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본고에서는 이 가운데《무예도보통지》가 담 고 있는 무예론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무예론이라고 하면 무예 관한 다양한 논의들이 포함될 수 있다. 예컨대, 수련론이나 비교[실기시 험]와 같이 전통적인 교육과정에 해당하는 내용 이나 무예 실기와 전법과의 관련성 속에서 무예 이론의 변화 과정을 살핀다거나, 각 지역이나 단 체의 무예가 서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 해서 살펴보는 비교론적인 내용 등도 모두 무예 론에 포함될 수 있다. 본고는 무예론 가운데 특 히 수련과정과《무예도보통지》무예 분류 기준에 따른 각 무예들의 수련과 비교에 대한 내용을 중 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기존에 이루어진《무예도보통지》편찬의 역사 적 측면에 대한 연구에 덧붙여 당대의 무예에 대 한 구체적인 실상을 제공함으로써 조선후기 武藝 史를 이해하는데 일조하기를 기대해 본다.

Ⅱ.《무예도보통지》무예의 수련 과정

《무예도보통지》담고 있는 무예의 양은 당대 어느 문헌보다도 포괄적이며 광범위하다. 찌르기 [刺], 찍어베기[砍], 치기[擊]의 분류 기준에 따라 총 18가지의 무예[十八技]와 이를 마상에서 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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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상4기, 그리고 별도의 응용종목인 마상재와 격구가 포함되어 있다.1)

다양한 무예들을 수록하고 있는데 반하여 이 러한 무예들이 어떠한 순서로 학습되고 수련되었 는지에 대한 정보는 구체적으로 담겨 있지 않기 때문에 교육과정에 대한 내용은 관련 자료들과 문헌들을 통해 재구성해야 하는 입장이다.

무예 수련 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단서는《무 예도보통지》권4의 <권법>편에서 볼 수 있다. 권 법이 큰 전쟁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맨몸을 다루는 기술을 익힐 수 있으므로 초보자가 무예 에 입문하면서 반드시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2) 맨몸 수련이 여타 병장기의 수련에 선행해야한다 는 생각은 제반 병기가 팔의 연장이라는 인식과 관련이 있다. 즉 맨몸 기술의 적용 범위가 병기 를 통해서 확장된다는 것이다. 뒤에서 구체적으 로 다루게 되겠지만 적용범위는 거리에 따라 장 병(長兵, long range attack)과 단병(短兵, short range attack)으로 나눌 수 있다. 십팔기는 적용 범위가 화기나 궁시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단병으로 분류된다.3)

1)《무예도보통지》무예의 명칭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다. 크게 보아 ‘십팔기’와 ‘24기’, ‘24반’으로 나눌 수 있는데, 본고에서는 ‘십팔기’로 통일하여 부른다.《무 예도보통지》의 서문에서 보이듯 ‘십팔기’가 공식 명 칭으로 사용되었고, 여러 사료에서도 ‘십팔기’는 ‘고유 명사’로 사용된 반면 ‘24기’나 ‘24반’은 매우 제한적으 로 종목 수를 나타내는데 그치기 때문이다.《무예도보 통지》의 무예 명칭에 관해서는 박금수, 2007 <조선후 기 공식무예의 명칭 '十八技'에 대한 고찰>《한국체육 학회지》46권 제5호를 참조하기 바란다.

2)《무예도보통지》권4, 권법條.

3) 조선후기 들어 화약무기가 활성화되면서《무예도보통 지》에 등장하는 냉병기는 화기에 대해 상대적으로 단병무예로 인식되었다.《무예도보통지》에서는 이러 한 단병무예의 세부적인 분류기준으로 찌르기, 찍어베 기, 치기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단병무예 내에서 다시 상대적인 적용 범위를 고려한다면 찍어베는 무 예는 단병 가운데 단병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몸의 움직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 다른 병장기를 다루기 힘들다는 인식으로 인해 기술적 인 심화 순서 혹은 수준의 변화를 권법에서 병장 기로 이행하도록 규정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몸의 움직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는 구체적으로 수법(守法), 신법(身法), 각법(脚法) 을 가리킨다. 수법은 상대를 직접 가격하거나 방 어하는데 사용되는 손과 팔, 팔꿈치, 어깨 등 상 지의 움직임 원리를 말하며,4) 각법은 몸을 빠르 게 이동시키거나 발로 차거나 걸어 넘기는 기술 을 말한다. 신법은 팔과 다리의 중간에 해당하는 몸통의 움직임에 대한 원리로 양자를 긴밀하게 연결시키며 몸을 움츠리거나 틀어서 운동의 폭과 역량을 조절하는 방법을 가리킨다.5)

기초 기술로서 권법의 중요성은 다른 무예들 과의 표현 양식에서 차이가 나는 데서도 알 수 있다.《무예도보통지》의 여타 무예들은 수련복 이나 갑옷 등의 복장을 하고 있는 반면 권법에서 만 유독 웃옷을 벗은 맨몸으로 그려져 있다. 이 는 손목이나 팔꿈치, 양 손목의 음양, 두발의 순 보(順步), 요보(拗步), 허실 등을 분명히 나타내어 정확한 자세를 익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 다.6)

권법의 수련을 통해 신체 각 부위에 요구되는

무예 분류에 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최복규, 2005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무예 분류의 특징과 그 의미>《한국체육학회지》Vol.44 No.4를 참조하기 바 란다.

4)《무예도보통지》<권법>편에서 가격 기술의 대표적인 것으로 고사평세가 있으며, 팔꿈치 기술로는 도삽세, 염주세, 잡아채는 기술로는 금나세 등을 들 수 있다.

5) 수법의 빠르면서도 날카로워야 하며[便利], 각법은 가 벼우면서도 굳건해야[輕固] 하고, 신법은 활발하면서도 편리해야[活便] 한다는 것이 다리와 몸 움직임의 기본 원리였다(《기효신서》(조선본) 권5 <수족편> 참조).

6) 이와 같은 해석은《무비지》권90 <소림곤법천종 삼>

에서 정충두가 질문에 답하는 내용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4)

움직임의 원칙들을 구현하게 되면 이를 무기를 가지고 하는 다른 무예의 움직임에 동일하게 적 용할 수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아이디어였다.7)

하지만 권법의 수련이후 다양한 병장기 수련 으로 바로 이어진 것 같지는 않다. 장창, 죽장창, 당파 등을 비롯해 본국검, 예도, 쌍검 등의 다양 한 무예들이 곧바로 맨몸의 움직임과 연결되기에 는 요구되는 변인들과 처리해야할 정보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이를 연결할 수 있는 중간 단계의 수련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찌르는 무예는 두 손을 앞으로 밀어내는 움직 임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찍어베는 경우는 어깨 관절을 중심으로 포물선을 이루며 휘두르는 동작 이 주를 이루게 된다. 이렇게 팔을 뻗어내는 움 직임과 축을 중심으로 휘두르는 동작이 적절하게 결합된 움직임은 곤법에서 매우 중시하는 것들이 다.

곤법이 권법 다음의 수련법으로 중시된 이유 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곤법은 실전적인 무예로서 중요성보다 교육과정 상의 중 요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8) 기병들과의 전투 에서 혹은 원앙진을 구성하는 한 부분 기술로 활 용이 되기는 했지만 곤봉에 달려 있는 날 길이나 전체적인 길이를 고려할 때 장창처럼 긴 병기의 이점을 가진 것도 아니고 또 검이나 도처럼 근거 리의 이점을 활용할 수도 없는 애매한 구조를 가

7) 최복규, 2002 <《무예도보통지》권법에 관한 연구>

《한국체육학회지》제41권 4호, 36쪽.

8)《무예제보》나《무예제보번역속집》에서 보듯이 ‘곤법’

이 전쟁의 무예로 전혀 효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창이나 도처럼 날카로운 날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 에서 곤봉은 다른 무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잔인 하게’ 여겨졌다. 소림사에서 곤법을 중시했다는 것도 이런 무기로서의 위협적인 성격보다 수련을 위한 수 단으로서의 성격이 반영되었다고 보는 것이 무술사가 들의 견해이다(曠文楠, 1991 <試論少林武術體系的形 成>《成都體育學院學報》 vol17, no.2 제1절 명대후기 소림무기 무술의 발전 참조)

지고 있다.

비록 실전적인 가치는 다른 무예들에 비해 떨 어지지만 교육적인 가치에서 곤봉은 무시될 수 없었다. 이러한 인식은 곤봉을 모든 무예의 시작 [首]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다. 무예의 시작이 란 다시 말해 무기를 다루는 기술[武藝]은 곤법 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살 펴본 권법은 실전이나 실용성과는 큰 관련이 없 지만 바로 곤법을 통해 본격적인 무예를 시작하 기 위한 말 그대로 입문 과정으로 중시되었다.

무예를 시작하기 위한 단계로서 곤법의 중요 성은 심지어 유가의《사서(四書)》에 비견되기도 했다. 다음의 기록을 보자.

곤봉을 사용하는 것은《사서》를 읽는 것과 같다. 구(鉤), 도(刀), 창(槍), 파(鈀)는 각각 하나 의 경(經)을 익히는 것과 같다.《사서》를 이미 이해했다면《육경(六經)》의 이치 또한 이해가 된다. 만약 곤봉을 사용할 수 있다면 각각의 날 카로운 무기의 사용법 또한 이를 통해서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9)

《사서》는 유가의 도통을 전수하고 있다고 일컬어지는 것으로 전통시대 유학 공부의 기초가 되는 과목들이었다.《사서》를 익힌 후에《육 경》으로 심화시켜 가듯이 무예 또한 곤법을 기 초로 하여 구, 도, 창, 파로 심화시켜 가야한다는 것이다.

곤법 이후에 익히게 되는 각각의 무예는 역시 나름대로의 수련 과정이 존재했는데, 일반적인 수련 체계가 권법, 곤법 그리고 각종 장단병(長 短兵) 무예 순으로 이루지지만 개별 무예들이 가 지는 특수성으로 인해 각 무예들 특유의 기술 습

9) 用棍如讀四書 鉤刀槍鈀 如各習一經 四書旣明 六經之 理亦明矣 若能棍 則各利器之法 從此得矣.(《기효신 서》(조선본) 권4 <단기장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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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 내지는 연습 과정 역시 별도로 필요했다.

예를 들면, 검법 수련에서는 안법(眼法), 격법 (擊法), 자법(刺法), 세법(洗法)의 순서로 익히게 된다던지, 창법에서 먼저 진퇴(進退), 신법(身法), 보법(步法), 대소문(大小門), 권(圈)을 익히고, 권 (圈)과 관(串)의 수법을 충분히 연습한 후 육진 (六進), 팔모(八母), 이십사세(二十四勢)를 익힌다 고 하는 것들은 검이나 창의 독특한 수련 방법에 해당한다.10)

또한 각 수련 과정에서는 기술들을 혼자서 수 련하는 방법[舞]과 두 사람이 함께 겨루는 방법 [對], 그리고 다양한 단련을 통해 힘을 키우는 훈 련 등이 중요한 수련 내용이었다. 이러한 무예의 교육 과정은 한 무예에서 뿐 아니라 여타 무예들 과의 관계에서도 서로 상호보완적이며, 유기적으 로 연결되어 실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1)

다음에서는 본격적으로 각 무예들의 구체적인 수련과 비교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Ⅲ. 무예 수련과 비교의 일반론

십팔기의 수련과 비교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십팔기를 수련하는 무예인[병사]의 선발 요건을 통해 당대인들이 생각한 무예인들의 신체론을 먼 저 살펴보기로 한다. 이후 전체적인 무예의 평가 원칙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10) 凡學槍 先以進退身法步法與大小門圈 圈串手法演熟 繼 以六進八母二十四勢的廝殺(《陣紀》권2, <技用篇>).

11) 각 무예의 독립적인 수련 뿐 아니라 검과 검의 대련, 곤봉과 곤봉의 대련 등 같은 무예의 겨루기, 그리고 창과 등패의 대련, 도검류와 마병과의 겨루기 등 다양 한 형태의 가상 적을 상대로 하는 실전적인 훈련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확연히 드러난다(《기 효신서》(조선본) 권6 <비교편> 참조).

1. 십팔기의 신체론12)

《무예도보통지》의 분류 양식에서 보듯이 십 팔기는 크게 세 범주로 나뉜다. 찌르는 무예, 찍 어 베는 무예, 치는 무예로 각 무예들은 각 범주 안에서 개별 무예별로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성격을 규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일례로 찌르는 무예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는 장창과 낭선, 당파는 전체적으로는 같은 범주에 속한다고 보지만 성격상으로는 확연한 차이를 가 진다. 예를 들면 길이 면에서 장창이 1장 5척, 낭 선이 20척에 이르는 반면 당파는 7척6촌으로 장 창의 절반에 해당한다. 또한 장창이 높은 살상력 을 가진 공격 무기인 반면 낭선은 방어에 주력한 무기이다.

무기들의 형태상의 특징 외에도 각 무예들의 전법 상의 역할에 따라서 그 성격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낭선은 원앙진의 선봉에서 담장의 역할 을 하여 상대의 공격을 막고 아군에게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것이 주 역할이었다. 장창은 낭선 을 비호하며 상대를 살상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 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각 무기를 다루는 사 람들에 대한 선발 규정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 다. 장창이나 낭선이 길고 무겁다는 점에서 이를 다루기 위해서는 우선 힘이 세어야 했으며, 낭선 의 경우 선봉에 서서 적군에게는 위압감을 주면 서 아군에게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줘야했으므로 체격이 커야했다. 장창 역시 상대를 살상하기 위 해서는 정신력이 뛰어나야 했으며, 무거운 무기 를 다루기 위해 뼛심[骨力]이 뛰어나야 했다. 당

12) 각주 3)에서 언급한 것처럼《무예도보통지》무예의 공식적인 명칭은 ‘십팔기’이다. 그리고 본고에서는 마 상무예에 관해서는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으며, 보병 무예인 십팔기에 국한해 다루기 때문에 ‘《무예도보통 지》의 무예’ 대신 ‘십팔기’로 간단히 부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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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는 상대적으로 짧고 가볍기 때문에 낭선수나 장창수보다는 힘이 약해도 되었지만 역시 상대의 창을 마고 죽여야 하는 임무를 담당했기 때문에 용맹과 위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선발요건이었 다.13)

반면 원앙진의 선봉에 서야 하는 등패는 몇 자에 불과한 방패에 몸을 가리고 일어나고 엎드 리는 것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어야 하므로 체격 이 중간이면서 신체가 유연한 사람을 선발해야 했다.14)

병사들의 선별 요건만으로 본다면 십팔기 수 련에 적당한 신체 유형이 결정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당대인들의 사고방식이었던 것으로 된다.

마치 동물들이 발톱과 이빨, 비늘과 껍질을 가지 고 있는 것처럼 자신에게 맞는 병기를 활용할 수 있으면 적을 제압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제재 를 받게 되므로 신체의 조건에 따라 각기 알맞은 무기를 다루게 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15)

하지만 이러한 결정론적인 사고방식만으로 무 예인의 신체를 한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 하면 단순히 각 무예에 적합한 병사들만 선발하 는 것을 우선 요건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련에 의해 신체적인 조건의 상당부분을 보완할 수 있으며, 수련 이전과 이후의 몸이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인식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무예가 높아지면 담이 세어지게 된다”는 표 현에서 알 수 있듯이 수련을 통해서 사람들의 성 정(性情)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한 가지를 전 심으로 수련해 익숙해지게 되면 동시에 자신감 [膽]도 커진다고 본 것이다.16) 특히 담을 중시한

13) 성백효 역, 1996《병학지남연의》(Ⅱ)(국방군사연구소) 32-3쪽.

14) 앞의 책, 32쪽.

15) 앞의 책, 39쪽.

16) 諺曰, 藝高人膽大. 是藝高止可添壯有膽之人, 非懦弱膽 小之人, 苟熟一技而卽膽大也(《기효신서》(조선본) 권1

것은 무예가 뛰어나거나 힘이 좋다고 하더라도 담력이 약하면 적을 만났을 경우 평소 수련한 무 예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었 다.17)

무예라는 외적인 기예와 이를 운용하는 몸, 그 리고 그 주체인 마음을 관통하는 하나의 일관된 사상 체계는 역시 ‘기(氣)’였다. 무예는 몸에 바탕 을 두고 있으며, 몸은 기가 외부로 발현된 것이 며, 이 기는 마음[心]이 주재한다는 사고 체계가 신체론의 바탕에 깔려 있다. “기가 밖으로 드러 나더라도 그 뿌리는 마음에 있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기를 강하게 하는 방법의 하나로 그 근본이 되는 마음을 단련해야 하는데, 그 방법 가운데 하나로 무예 수련을 든 것은 후천적인 수 련을 통해 심성을 다룰 수 있다는 실천 이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18)

2. 십팔기 수련의 평가 기준

전통사회에서 십팔기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 을 지키고 적을 죽여서 공을 세우는 것이었다.

무예가 상대보다 못하다면 상대가 나를 죽이게 되므로 무예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은 결국 생명이 필요 없다는 것과 같다고 여겼다.19)

<속오편> ‘原選兵’ 참조).

17) 성백효 역, 1996《병학지남연의》(Ⅱ)(국방군사연구소) 38쪽.

18) 夫人有此身, 先有此心. 氣發于外, 根之于心. … (중략) 練心則氣自壯(《기효신서》(조선본) 권11 <담기편>

‘담기해’ 참조). 전통시대 무예에 관한 신체사상은 보 다 심도 깊게 다뤄져야 하지만 본고에서는 수련과 관 련된 기본적인 생각만을 짚어보는 것에서 만족하기로 한다. 무예에 관한 신체론에 대해 보다 상세한 논문을 준비 중에 있다.

19) 爾武藝高, 決殺了賊, 賊如何又會殺爾. 若武藝不如他, 他決殺了你, 若不學武藝, 是不要性命也(《기효신서》

(조선본) 권6 <비교편> ‘비무예해’ 참조).

(7)

무예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무예 수련이 단순 히 수련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전에서 활용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게 하였다.

십팔기의 수련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변된다. 하 나는 기법의 수련이고 다른 하나는 실전의 응용 이었다. 기법의 수련은 정해진 원칙과 규격에 따 라 개인이 연습을 통해 숙련하는 것을 말하며, 실전의 응용은 두 사람이 같은 무예 혹은 서로 다른 무예를 사용해 실전을 가상한 대결을 통해 연습을 하였다. 무술 기법의 개인적인 수련이나 연무(練武)를 무(舞)이라고 하며, 두 사람이 겨루 는 수련 방법인 대련(對練)을 대(對)라고 하는데, 크게 9가지 원칙에 의해서 구분되었다.

먼저 상중하(上中下)의 구분이 있으며, 각 구 분에 다시 상중하를 두어 9단계의 구분을 하였 다. 즉 상등(上等)에 상상(上上), 상중(上中), 상하 (上下)가, 중등(中等)에는 중상(中上), 중중(中中), 중하(中下)가 있으며, 하등(下等)에는 하상(下上), 하중(下中), 하하(下下)가 있다.

특히 이러한 구분을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는 자는 초등(超等)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지극히 정 밀하면서 지극히 숙련되어 상상의 수준을 넘어서 며, 득수응심(得手應心:마음먹은 대로 손이 움직 임)할 수 있고, 스스로 무예의 도리를 깨달아 다 른 사람에게 전수할 수 있는 수준을 말한다.

상상은 연무와 대련에 힘 있고 맹렬하며 법도 에 어긋나지 않고, 득수응심에 다소 못 미치는 단계, 상중은 연무와 대련에 힘 있고 맹렬하며 법도에 어긋나지 않고, 또한 빠른 속도로 할 수 있거나 혹 빠르기는 하나 힘이 다소 약한 것, 혹 빠르기만 한 것을 말하며, 상하는 연무와 대련에 힘 있고 맹렬하며 법도에 어긋나지 않으나 다소 늦거나 힘이 약한 수준을 말한다.

연무와 대련이 법도에 합치하며 또 숙련이 되 어 있지만 약간 느리거나 약간 약한 것이 중상, 연무와 대련이 힘 있고 맹렬하며 법도에 맞으나

다소 익숙하지 않은 것은 중중, 연무와 대련이 힘 있고 맹렬하며 법도에 맞으나 서로 합치되는 정도가 조금 서툰 것은 중하, 기예는 다소 익숙 하지만 법도를 모르거나, 법도에 합치되기는 하 나 익숙하지 못한 것, 익숙하나 느리고 둔한 것 은 하상, 연무는 하지만 대련을 모르거나 대련은 하지만 연무를 모르는 것은 하중, 연무와 대련 중 하나는 할 줄 아나 서투르거나 연무와 대련 모두 법도에 어긋나는 것은 비록 숙련이 되어있 더라도 하하며, 연무와 대련 두 가지를 전혀 모 르는 자와 익히지 못한 것은 부지(不知: 아무 것 도 모르는 것)로 구분하였다.20)

여기에서 무예 평가 기준이 연무와 대련의 복 합적인 평가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 요가 있다. 단순히 무예 기법을 법칙에 맞게 제 대로 운용하는 것만을 중시하거나 무조건 실전만 잘하면 된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고 양자를 중시 하고 있다는 점은 무예 수련에 대한 전통적인 사 고의 일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21)

연무에서 중요시한 것은 신법, 수법, 보법이며, 법도에 맞는 움직임을 구사할 수 있는가가 관건 이었는데, 이는 종목을 불문하고 요구되는 항목 들이었다. 신법, 수법, 보법의 수련에서 중시한 것으로 힘과 정확성의 두 가지 요소를 들 수 있 다.

손의 힘을 단련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평상시 무거운 병장기를 사용하여 익숙해진 다음에 실전 에서 가벼운 병장기를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20)《기효신서》(조선본) 권6 <비교편> ‘비분구칙’ 참조.

21) 예를 들면, 우슈의 표현 경기는 연무에 해당하고, 산 타는 대련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발전방식이 과연 옳 은가에 대한 질문을 해볼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체 육 활동으로 행해지는 무예가 양자 가운데 어느 하나 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통적인 무예론을 좀 더 심도 있게 탐구하면 이러한 편향된 수련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단서를 찾을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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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이었다. 다음 다리를 단련하는 방법으로는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는 것으로 무게를 점점 증가시켜 단련을 하고 적을 상대할 때는 제 거하게 되면 다리가 가벼우면서도 민첩하게 된 다. 몸의 단련은 평상시 무거운 갑옷과 무거운 물건으로 부하를 주어 더욱 증가시키게 되면 실 제 전투에서 몸이 가벼워져 진퇴가 빨라지게 되 는 법을 사용했다.22)

정확성은 신법, 수법, 보법이 요구하는 개별적 인 기준들을 충족하는가, 그리고 동시에 이러한 신체 각 부위의 움직임이 서로 합치되는가를 살 피는 것으로 평가를 하였다.23)

또 대련에서는 같은 무예, 예컨대 장창과 장 창, 혹은 곤봉과 곤봉의 대련이나 서로 다른 무 예와의 대련 등을 통해 연무에서 익힌 기술들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가를 평가하였다.

물론 원칙적인 평가 기준이 있다고 하더라도 개별 무예의 특성에 따라 다소 다르게 적용될 수 밖에 없는데, 이 부분은 다음 절에서 다루기로 한다.

Ⅳ.《무예도보통지》무예의 수련과 비교

24)

1. 찌르는 무예의 수련과 비교

장창은 길이 1장5척 길이의 창으로, 조선전기

22)《연병실기》권4 <연수족>.

23)《기효신서》(18권본) 권6 <비교무예상벌편>.

24) 필자의 박사논문 가운데 제4장 3절인 ‘《무예도보통 지》의 무예론: 수련과 비교’를 수정 보완한 것이다.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최복규, 2003 《‘무예도보통 지’ 편찬의 역사적 배경과 무예론》(서울대박사학위논 문).

의 기록인《경국대전》에도 비슷한 15척 5촌의 창을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25) 그런데 당 시 시험에 사용된 창의 무게가 30근이라고 되어 있다. 창보다 길이가 긴 낭선[20척]의 무게가 7근 이며, 창의 절반 길이인 당파가 5근인 것을 감안 하면 창도 비슷한 무게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 는데, 유독 창의 무게가 30근이나 되는 것은 왜 일까?

앞의 3장 2절에서 살펴본 것처럼 손의 힘을 단련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무거운 무기로 시험을 치루는 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평상시 수련에 서 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무겁고 긴 것을 사용함으로써 힘을 키우는 것으로 이러한 방법은 널리 활용되는 방법이었다.

《무예도보통지》편찬에서도 인용되고 있는

《소림곤법천종》의 저자인 정종유(程宗猷)는 창 법 수련에 사용하는 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 하고 있다.

예로부터 길이가 8장인 것을 장창이라고 하였다. 주척(周尺)으로 계산하면 단지 1장4 척4촌이다. 내가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것 은 목간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길이 1장 8척, 무게는 12근이었다. 두 번째 는 길이 1장 7척, 무게는 9근이었다. 세 번 째는 길이 1장 6척, 무게는 7근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평상시 연습하는 것으로 먼저 길고 무거운 것을 잡고 이후에 짧고

25) 무예계에서는 예로부터 창을 무예의 으뜸으로 쳤다.

창은 길이 면에서 기타 병장기보다 이로울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 짧게도 사용함으로써[長兵短用] 장단 (長短)의 묘용(妙用)을 살릴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그래서 “창을 모든 병장기 가운데 왕이라고 하였으며, 먼 거리에 있는 적을 제압하는데 창보다 이로운 무기 가 없다고 한 것이다(시노다고이치, 1992《무기와 방 어구》(신동기 역, 2001 들녘), 98쪽과 吳殳, <槍王說>

《手臂錄》(1996, 逸文出版有限公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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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것을 사용한다. 이것이 바로 힘을 단련하는[練力] 법이다. 세 번째는 적을 제 압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만약 더 가볍고 짧게 하려면 옛 법을 따라 1장 4척으로 할 수 있다. 매우 이로운 법이다.26)

《기효신서》(18권본)나 《연병실기》등에도 같은 내용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는 비단 정종 유 개인의 수련법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매우 일 반적인 수련법이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창을 배우는 순서는 앞으로 나아가고 물러나 는 법[進退], 몸을 운용하는 법[身法], 걸음을 운 용하는 법[步法], 대소문[大小門], 권(圈)을 익혔는 데, 특히 권(圈)과 관(串)의 수법을 중시했다. 이 러한 기본기를 익힌 후에 육진(六進), 팔모(八母), 이십사세(二十四勢)를 익혔다.27)

이십사세는《무예도보통지》의 권1의 ‘장창’조 에서는 장창전보와 장창후보로 정리되어 있는데,

《무예도보통지》에서는 수련 과정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십 사세를 익히기 위한 전단계로 상당한 기본기와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언급한 진퇴, 신법, 보법, 수법은 개 인 연무[單槍]을 시험하는 평가 기준으로도 곧바 로 활용되었다.28) 개인 연무에서는 창자루가 가 볍게 떨릴 정도로 힘이 있으며 손 움직임이 익숙 한 것을 상등(上等)으로 쳤다. 또 두 사람이 창으 로 대련하는 것도 함께 시험함으로써 실전에서의 활용도를 측정했는데, 상대의 창을 걷어내며 곧 바로 들어갈 수 있으면 상등이었다. 만약 상대 창을 걷어내고도 나아갈 줄 모르고 창을 멈추고

26) 程宗猷, 1986 <長槍式說>《少林刀槍棍法闡宗》(華聯 出版社) 70쪽.

27)《陣紀》권2, <技用篇>.

28)《기효신서》(18권본) 권6 <비교무예상벌편>.

상대가 들어오길 기다리는 것은 하하등(下下等) 이었다.29) 이 외에도 20보 거리에 높이 5척, 폭 8 촌의 나무 기둥을 세우고, 여기에 눈, 목구멍, 심 장, 허리, 다리의 다섯 구멍을 뚫어 나무공을 그 안에 넣은 다음 20보 밖에서 한 사람씩 자세를 취하며 앞으로 뛰어나가 다섯 구멍을 찔러 나무 공을 찍어내는 평가도 하였다.30)

당파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데 두 사람이 나란 히 서서 당파를 운용하게 하여 자루에 힘이 있 고, 연무가 숙련되었으며 빠르고 짜임새가 있는 것을 상등(上等)으로 평가하였다. 특히 당파는 장 창과 대련하는 것을 시험하였는데, 창이 유인해 도 움직이지 않고 자세를 지키고 있다가 창이 나 오는 것을 틈타 앞으로 치고 찌르며 들어갈 수 있으면 상등으로 쳤다.31)

무예로서 창법이 이론 및 실기 체계에서 앞에 서 살펴본 것처럼 어느 정도 완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이 모든 군사들에게 동등하게 교육되지는 않은 것 같다.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상의 제법은 대단히 복잡해 보인다. 병사 들은 어리석은데 어찌 하나하나 모두 익힐 수 있겠는가? 다만 부득불 갖춰서 실어 놓는 것 이니 스스로 용심(用心)이 있는 자는 정밀하게 가르칠 것이다. 병사들은 오직 봉(封), 폐(閉), 착(捉), 나(拏), 상란(上攔), 하란(下攔)의 여섯 가지 창법만 익히면 된다. 봉, 폐, 착, 나에는 대문과 소문이 있다. 이것이면 사용하기에 충 분하다.32)

29)《기효신서》(조선본) 권6 <비교편>

30) 이러한 평가법은《기효신서》(18권본) 권6 <비교무예 상벌편>과 《陣紀》권2, <技用篇>에 모두 동일하게 보인다.

31)《기효신서》(조선본) 권6 <비교편>

32)《기효신서》(조선 본), 권3 <수족편>.《陣紀》권2 <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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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창법의 궁극적인 경지는 기법에 대 한 이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손과 마음, 그 리고 창이 하나로 융화되어 마음이 평온한 상태 로 유지될 수 있으며, 또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 고, 움직임에 여유가 있으며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었다.33)

3. 찍어 베는[砍] 무예의 수련과 비교

《무예도보통지》의 권2와 권3에 수록되어 있 는 찍어 베는 무예에는 쌍수도, 예도, 왜검, 제독 검, 본국검, 쌍검, 월도, 협도, 등패로 십팔기 가 운데 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상당히 비중이 크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찍어 베는 무예가 중시된 이유는 전투 초기에 는 화기나 궁시와 같은 원거리 무예가 사용되지 만 결국 승패는 근접전에서 찍어 베는 무예에 의 해서 결판이 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찍어 베는 무예는 직접적인 근접전에서 적을 제압해야 하기 때문에 담력을 키우는데 매 우 효과적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담력은 평소에 익힌 무예를 실전에서 능숙하게 펼칠 수 있도록 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였다.

특히 십팔기 가운데 쌍수도나 왜검, 교전은 일 본과 관련이 있는 무예들이었다. 임진왜란을 겪 으면서 일본의 검술에 많은 피해를 보았던 조선 은 이에 대한 보완책을 강구하게 되는데, 쌍수도 나 왜검, 교전이 바로 그 결과물인 셈이다.

검법을 익히는 순서에 대해서는 ‘조선세법’편 에 보인다. 먼저 안법, 격법, 자법, 세법을 익히게 되는데, 안법은 상대와의 시선처리에 관한 기술

用篇>에도 거의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데, 봉(封), 폐 (閉), 착(捉), 나(拏), 상란(上攔), 하란(下攔)의 여섯 가 지 창법 대신 봉(封), 폐(閉), 착(捉), 나(拏), 수(守)의 다섯 가지 창법으로 말하고 있는 점만 차이가 있다.

33)《陣紀》권2, <技用篇>.

을 가리킨다. 안법 다음에 익히게 되는 것이 바 로 검법의 기본 기술인 격자격세(擊刺格洗)의 사 법이다. 격법은 검 날의 전단이나 중단을 이용해 위에서 아래를 향해 곧바로 내려치거나, 좌우로 비스듬히 내려치는 기술을 가리킨다. 자법은 검 첨을 이용해 찌르는 기법, 격법(格法)은 방어하는 법으로 상대의 공격이나 병기를 차단하고 풀어버 리는 기법, 끝으로 세법은 검봉이 스치듯이 왕래 하며 상대를 공격하는 기법을 말한다.34)

이러한 기본 기법을 익히고 난 후 개별 세에 대한 수련을 하게 되는데, 그 기법이《무예도보 통지》의 ‘예도’조에 보인다. 물론 이와 더불어 다양한 투로의 수련이 병행되었음은 주지의 사실 이다.

비교에 있어서는 개인 연무에서는 빠른 속도 로 할 수 있는가가 매우 중요했다. 상대적으로 짧은 무기인 도검류에서 속도는 병장기의 길이를 보완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중시되었다.

대련에서도 속도를 중시했는데, 목도를 사용하여 대련을 하되 들었다 내려치는 속도가 빨라 상대 가 그 틈을 타고 침범하지 못하게 하면 상등으로 평가한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35)

찍어 베는 무예에 활용되는 환도는 보조적인 무예로도 활용되었는데, 궁수나 등패수에게 환도 는 필수적으로 지녀야 하는 무기였다.

특히 등패수는 표창과 함께 환도를 사용하도 록 했는데, 상대의 장병기와 대적하였을 때 표창 을 던져 상대의 허점이 드러나게 하여 그 틈을 타고 들어가 환도로 공격하는 기법을 활용하였 다.

등패의 시험에서는 표창과 환도의 적절한 사 용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표창의

34) 격자격세(擊刺格洗)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김광 석, 1995《본국검》(동문선) 69-74쪽을 참조하기 바란 다.

35)《기효신서》(조선본), 권6 <비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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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는 단순히 원거리[작은 삼십보]에서 표적을 세우고 표창을 던져 정확도를 측정하는 것으로 평가를 했다.36)

하지만 등패수에게 표창은 상대를 죽이기 위 한 치명적인 무기가 아니었다. 단지 원거리에서 먼저 표창을 던져 상대의 시선을 빼앗는 것에 목 적이 있었다. 표창을 던지게 되면 피하지 않을 경우 상대가 맞을 것이고, 만일 피하게 되면 그 틈이 곧 허점이 되게 된다. 이때를 놓치지 말고 치고 들어가 상대를 제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등패의 주된 역할이었다. 공격의 목표는 기병일 경우 상대 말의 다리를 공격하고, 보군일 경우는 다리였다.

이러한 훈련은 정해진 법식이 있어서 이것을 따라 훈련이 진행되었다.37) 또한 등패수는 장창 수와도 대련을 시험했는데, 다음의 기록에 자세 하다.

(등패수)가 장창수와 대련을 하도록 한다.

창이 이르면 조급해하지 말아야 하며 먼저 움 직이지 않아야 한다. 창이 일단 찔러 들어오면 창을 따라 창두를 뒤로 뺄 때 쫒아 들어간다.

또 들어가는 것을 멈추었을 때는 걸음걸음마 다 창을 방어하며 사람을 방어해서는 안 된다.

등패로는 창을 막고 도로는 상대를 벤다.38)

등패와 장창의 대련에 대한 평가는 등패수가 창수의 몸에 이를 수 있어야 상등으로 쳤다. 연 무는 숙련이 되어 있지 못하지만 대련이 숙련되 었으면 중등, 연무는 숙련이 되어 있지만 대련이

36) 校鏢槍 立銀錢三箇, 小三十步內命中, 或上, 或中, 或 下, 不差爲熟(《기효신서》(조선본), 권6 <비교편>).

37)《기효신서》(조선본), 권6 <비교편>.

38) 舞過卽用長槍手對戳, 槍到不慌忙, 不先動. 槍一戳, 卽 隨槍而進, 槍頭縮後又止. 進時步步防槍, 不必防人, 牌 向槍遮, 刀向人砍(《기효신서》(조선본), 권6 <비교편>).

숙련되지 않았으면 하등으로 평가되었다. 특히 창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성급하게 움직이는 자 는 담력이 없는 자로 써서는 안 되는 것으로 평 가하고 있다. 또 등패와 도를 어지럽게 사용하고 막을 줄 모르는 자는 하하등으로 쳤다.39)

등패수는 연습에서는 전진과 후퇴를 모두 익 히지만 진(陣)을 형성한 상황에서는 후퇴가 허용 되지 않았는데, 이는 실전의 상황을 가상한 것으 로 실전에서는 등패수가 뒤로 물러나게 되면 진 이 무너지게 되어 적에게 허점을 보이게 되므로 금지한 것이다.40)

특히 이러한 평가 기준에서는 매우 중요한 무 예 이론이 반영되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평가 기준은 다음의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A: 창이 이르면 조급해하지 말아야 하며 먼 저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B: 창이 일단 찔러 들어오면 창을 따라 창 두를 뒤로 뺄 때 쫒아 들어간다. (상대가) 창두 를 뒤로 뺄 때 쫓아 들어간다. 전진할 때는 걸 음걸음마다 창을 방어하며 사람을 방어해서는 안 된다.

C: 등패로는 창을 막고 도로는 상대를 벤 다. 단지 창수의 몸에 이를 수 있어야 상등이 다.

A, B, C는 비교의 기준에 대한 설명이지만 동 시에 여기에는 등패수의 움직임을 규정하는 하나 의 이론 체계가 담겨있다. 등패수의 심리상태를 나타내고 있는 A는 장병인 창과 맞닥뜨렸을 때 상대 창의 움직임에 말려들면 안 된다는 것을 나

39)《기효신서》(조선본), 권6 <비교편>.

40) 전법(戰法)에서는 공격 명령이 떨어졌는데 공격을 안 하고 머뭇거리는 것, 후퇴 명령이 없었음에도 불구하 고 뒤로 물러나는 것, 뒤를 돌아보는 것 등은 군법에 회부되어 처벌을 받는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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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내고 있다. 상대의 움직임을 기다리다 궁극적 으로 허점을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창이 공격해 들어 올 때 생기는 허점을 이용하는 원리가 B인 데, 발창(發槍)을 해서 팔이 쭉 뻗어졌다 회수되 는 순간의 빈틈을 놓치지 말고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41)

유대유의 총결가 가운데 “상대의 힘이 지나간 다음의 부드러움을 이용하라(柔乘他力後)”42)라는 말과도 통하는 의미이다. 그리고 연이어 들어가 면서 걸음걸음마다 창을 방어하라는 것은 수법과 신법, 보법이 나란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말 한다. 걸음마다 수법이 같이 움직여야 움직임에 틈이 생기지 않아 상대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창을 방어해야 한다는 것은 상대의 움직 임 때문에 상대의 공격의 초점을 놓쳐서는 안 된 다는 것이다. C는 양손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보법이 영활하게 움직여 상대 깊숙이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위의 예들을 통해 하나의 무예에도 여러 가지 원리들이 적용되어 훈련되고 수련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원리들은 무예이론으로 정리되어 후대로 전해지게 되는데, 무예이론에는

41)《기효신서》(조선본) 권3 <장기단용해>에서는 장병기 는 짧게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 이유 는 장창을 찔렀을 때 상대의 급소를 맞히면 괜찮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회수할 때 상대의 단병이 치고 들 어오게 되므로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장병기를 짧 게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문에 ‘長槍 架手易老’라는 것은 바로 곧장 찔러 들어가는 순간 허 점이 생기기 쉽다는 의미이다. 판본에 따라서는 ‘長槍 架手進老’라고도 되어 있는데 모두 같은 의미이다. 상 대 단병기는 바로 이 순간이 공격의 중요 기회가 된 다.

42) 창으로 상대를 찔렀을 때 팔이 쭉 펴진 최종 상태에 서는 다시 팔을 굽혀 창을 회수해 와야 다음 움직임 으로 연결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때가 힘의 측면 에서는 끊기는 순간이 생기는 때이다. 이때는 약간의 힘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상대의 힘이 지나간 다음 부드러움을 틈타라는 것은 바로 이 시점을 이용하라는 의미이다.

어떻게 움직여야 한다는 적극적인 이론체계도 있 지만 또 이에 더하여 각각의 무예에 대해서 특별 히 금지하는 내용도 있다. 무예 수련을 하다보면 원래의 법식에 맞지 않는 것이 생기게 되고, 경 우에 따라서는 보여주기 위해 겉보기에는 화려하 지만 실전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쓸데없는 동작 이 들어가기도 한다. 이렇게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으면서 겉보기에만 화려한 무예를 화법(花法) 이라고 하여 금지하였던 것이다. 등패로 가리고 구르는 것과 같이 동선(動線)이 큰 동작이나 기 법이 화법에 해당한다고 하였다.43) 화법은 어느 경우에도 금지시키는 내용이었다. 이는 실전적인 효과를 중시하는 군사 훈련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치는[擊] 무예의 수련과 비교

《무예도보통지》권4의 치는 무예에는 권법, 곤봉, 편곤, 마상편곤, 격구, 마상재가 포함되어 있다.44)

치는 무예는 여타 무예의 기본에 해당되는 무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권법과 곤봉 등은 모든 무예의 기초로서 중시되 었다.

권법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은 여러 사료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지만 실제적인 모습을 추정 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권법 시험에 서도 다른 무예의 평가 기준과 마찬가지로 9등급 으로 나눠 등수를 매긴 것으로 확인된다.《어영 청중순등록》에는 각종 무예에 대한 시험에서 상 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권법에 대해서 대개

43)《기효신서》(18권본), <기효혹문> 참조.

44) 마상재는 원칙적으로는 이러한 분류와는 관계가 없지 만 격구와 비슷하기 때문에 같이 분류되었다(《무예도 보통지》 <범례편> 참조).

(13)

상하(上下)의 평가를 받은 자에게 의해 무명 1필 을 상으로 내리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곤법에서는 특히 유대유의 곤법이 유명하였다.

이 곤법이 수록되어 있는 유대유의 저작인《검경 (劍經)》은《기효신서》에 그대로 인용되어 있으 며, 우리나라의 곤법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유대유는 곤법을 익히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내용은 노래 형식[歌訣]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결 은 각 무예에서 익혀야 할 요점을 암기하기 쉽게 운율이 있는 시구의 형식으로 정리한 것으로 이 를 바탕으로 하여 실제적인 기술을 익혔다. 다음 은 가결의 한 예이다.

상대의 힘이 출발하기 전에는 강하게 치고 들어가며, 상대의 힘이 막 지났을 때는 부드럽 게 흘려버린다. 상대가 서두르면 나는 기다리 며 누구와 싸우던지 간에 치는 것을 알아야 한다.45)

음양은 서로 바뀌어야 한다. 양손은 똑바르 며 앞다리는 굽히고 뒷다리는 펴야 한다. 한번 찌르고 한번 들어 올리며 전신에 힘이 들어가 며, 걸음걸음마다 앞으로 나아가면 천하무적이 다.46)

첫 번째 가결은 상대와 겨룰 때 공방에 관한 힘의 처리 기술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고, 두 번 째는 인체의 움직임 가운데 서로 대립되는 요소 를 변화시켜 운용하여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 외에도 봉으로 겨룰 때 발생할 수 있는 온 갖 가능성들에 대해서 분석하고 이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 상세히 언급하고 있는데, 이 부분 이 곤법 이론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45)《기효신서》(18권 본), 권12 <短兵長用說>

46)《기효신서》(18권 본), 권12 <短兵長用說>.

상대가 강하게 들어오면 강하게 맞서는 것이 아니라 약하게 맞서며 상대가 약하면 반대로 강 하게 들어간다거나, 또 상대가 높은 위치에 곤봉 을 가지고 있을 경우 상대가 내려치도록 하여 그 힘을 이용해 눌러 공격하도록 하며, 낮게 있을 경우에는 들어 올리도록 하여 붙어 들어가 공격 하는 것, 힘의 운용에 있어서는 허리의 힘을 가 장 중요하게 여겼으며, 다음이 뒷손, 그 다음이 앞 손을 강조한 것 등 상당한 수준의 무예 이론 이 정리되어 있었다.47)

곤법의 시험에서는 이러한 이론들이 실제적으 로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평가가 주된 과제였 다.

두 사람이 서로 겨룰 때 내려치는 것이 소 리가 나고 묵직하며 힘이 있고, 상대를 기다리 지 않으며 쳐야할 곳을 정확하게 치고, 상대의 곤(棍)을 내려 눌러 젖히고 들어가며 또 기술 의 가짓수[路數]가 많으면 상등(上等)이다. 치 는 것이 힘은 없으나 익숙한 자와 힘이 있지 만 아직 익숙하지 않은 자는 중등(中等)이다.

힘이 약하고 치는 것과 들어 올리는 것이 느 려서 적을 기다리는 자는 하하등(下下等)이 다.48)

위 글은 힘과 기술의 적절한 안배를 통하여 어느 하나만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가 모두 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확성 과 힘을 함께 키우는 방법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 는 다음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루 동안 한번 내려치고 한번 들어올리 는[一打一揭] 훈련을 자습(自習)하게 하면 내

47) 보다 세부적인 내용은《기효신서》(조선 본), 권6 <短 器獐茸解> 가운데 곤법 부분을 참조하기 바란다.

48)《기효신서》(조선 본), 권6 <比較篇>

(14)

려치고 들어 올리는 것이 모두 소리가 나게 된다. 오래 되면 저절로 힘이 생겨 위로는 눈 높이를 넘지 않고 아래로는 무릎을 내려가지 않는다.49)

하지만 무예 이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몸의 단련이나 시험에 관한 내용에 대해 서만 정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곤법의 이론 가운데 상당 부분은 상대 움직임과 자세에 따라 어떻게 곤을 운용할 것인ㄱ에 대한, 말 그대로 매우 실천적이며, 실용적인 부분에 관한 것이다.

다음은 매우 유명한 이론 설명이다.

모두 상대의 세를 따르고 상대의 힘을 빌 리는 것이다. 다만 빠르게 변화하고 또 나아 가는 것 같으면서 실제는 물러나며 이후에 나아간다면 크게 이길 것이다. 묻기를 “어떻 게 상대의 세를 따르며 상대의 힘을 빌릴 수 있는가?”라고 하였다. 대답하였다. “이것을 깨뜨리는 법을 안다면 지극히 묘하고도 묘한 요결을 얻는 것이다. 대개 상대의 힘이 어디 에서 나오는가를 알아야 하며 나는 그곳에서 상대의 힘과 맞서서는 안 된다. 구력(舊力)이 약간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새로운 힘이 나오 기 전에 그것을 틈타고 들어간다. 이것이 상 대의 세를 따르고 상대의 힘을 빌릴 수 있는 이유이다. 위에 있는 것은 아래로 내려오는 빈틈을 이용하며, 아래 있는 것은 위로 올라 오는 빈틈을 이용한다. 모든 경우가 다 이러 하므로 글로 다 쓰기는 어려움이 있다. 구 (鉤), 도(刀), 창(槍), 곤(棍) 천보만보 나가더 라도 모두 상대의 구력이 약간 지나가고 신 력이 나오기 전에 급히 들어가 압살하는 것 일 뿐이다. 나는 ‘구력약과, 신력미발(舊力略 過, 新力未發)’ 이 여덟 글자를 지극히 묘하 고도 묘하다고 생각한다! 앞의 치는 위치[拍

49)《기효신서》(18권 본), 권12 <短兵長用說>.

位]에 대한 말도 모두 이러한 이치이다.50)

위의 내용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분석하기 위 해 인용문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A: 곤법의 핵심은 무엇인가?

B: 상대의 세를 따르고 상대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A': 상대의 세를 따르고 상대의 힘을 빌리 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B': 구력이 약간 지나가고 신력이 아직 나 오지 않은[舊力略過 新力未發] 순간을 이용해 야 한다.

유대유는 곤법의 핵심에 대해 상대의 세를 따 르고 상대의 힘을 빌리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있 다. 몰론 이러한 내용이 단순히 곤법에만 적용되 는 무예 이론이 아니라 여타 무예나 권법에도 역 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뒤에 이은 구(鉤), 도 (刀), 창(槍) 등의 병기들에도 모두 적용된다고 하는 언급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곤법의 핵심을 묻는 질문A에 대한 대답은 상 대의 세를 따르고 상대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B]. 상대의 세를 따르고 상대의 힘을 빌리는 방 법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A'와 B'이다. 결국 무 예 이론의 핵심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구력이 약간 지나가고 신력이 아직 나오지 않은 순간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력이 지나가고 신력이 아직 나오지 않은 순 간이란 어떤 순간인가? 우리가 힘을 쓴다고 하는 인체의 모든 동작은 굴근(屈筋)과 신근(伸筋)의 작용이라고 하는 두 가지의 복합적인 근육 운동 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근육은 펴지면 굽 혀져야 하며 반대로 굽혀지면 펴져야 한다. 구력 이 막 지나갔을 때란 바로 어떤 동작, 예를 들면 주먹을 지르는 동작에서 주먹을 뻗었을 때 완전

50)《기효신서》(조선본), 권5 <手足篇>.

(15)

히 뻗어지기 직전의 순간을 가리킨다. 이때는 근 육이 완전히 이완되는 상태로 다른 동작을 하기 위해서는 팔을 거두어 들여야 한다. 주먹이 완전 히 뻗어지기 직전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동작[힘]

이 나오기 바로 전의 상황이 바로 이 순간이다.

이 순간만큼은 힘이나 동작에 있어서 공백이 생 기게 되는데, 바로 이 순간을 노리고 들어가야 상대의 세를 이용하며 힘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이 다.

치는 무예의 핵심적인 이론은 곤법에서 대표 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러한 곤법의 이론은 다른 여타 무예로 곧바로 응용될 수 있는 것들이 었다. 이러한 결론은 앞의 무예 수련과정에서 곤 법이 왜 모든 무예의 어머니가 되는지를 구체적 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Ⅳ. 결론

본고에서는《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되어 있는

‘십팔기’에 관련된 무예이론[무예론(武藝論)]을 고 찰하였다.

《무예도보통지》가 역사적 구성물이라고 하 는 점은 우리의 이해가 그 역사의 지평까지 확대 되어야만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 에 착안하여《무예도보통지》에서는 직접적으로 언급이 되지 않은 내용들을 당대의 문헌들과의 비교 검토를 통하여 십팔기에 어떠한 무예이론들 이 축적되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수련과 비교 가 이루어졌는가를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각 무예들이 일정한 이론적 바탕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현재의 관점으로 볼 때도 역시 상당한 수준에 이르는 것 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연무와 대련을 함께 중시 한 것은 오늘날의 무예의 경기화나 발전방안에서

도 시사점을 주는 바라고 할 수 있다.

권법에서 곤법으로 그리고 각 개별 무예로 수 련 과정이 이루어지며, “구력(舊力)이 약간 지나 가고 새로운 힘이 나오기 전(舊力略過 新力未 發)”에 공격을 해야 한다는 것과 같이 매우 정밀 한 수준의 무예 이론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무 예를 통해 신체와 마음의 단련, 그리고 질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 역시 본 연구의 중 요한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무예 전통은 19세기로 접어들 어 근대적인 과학 기술로 무장한 서양 세력의 도 전에 직면하면서 시대적인 역할이 점차 축소된 다. 중국이나 일본이 전통적인 무예를 심신단련 을 위한 체육활동으로 계승한데 반해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와 전쟁 등을 겪으면서 무예와 무예 에 관한 학적 전통이 제대로 계승되지 못하였다.

이 과정에서 유입된 일본무술에 대한 비판적 시 각이 대두되었으며, 무예의 전통성 논쟁이 일기 도 했다.

보다 생산적이 논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무예에 관한 구체적인 이해가 선행되어 야 하는데, 이러한 연구의 일환으로 실제적인 실 기의 복원 및 재현을 포함한 무예의 학문적 전통 을 세우는 작업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해본다. 궁 극적으로 전통무예는 ‘과거’에 존재하는 것이 아 니라 ‘현재’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에 초점이 맞 춰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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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투고일 : 2007년 9월 10일 심사완료일 : 2007년 10월 26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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