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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회화의 실존적 수용 과정에 관한 연구 –본인의 작업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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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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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투고일_2020.12.10. 심사기간_2021.01.01-14. 게재확정일_2021.01.27. DOI https://doi.org/10.47294/KSBDA.22.1.26. 추상회화의 실존적 수용 과정에 관한 연구 -본인의 작업을 중심으로A Study on the Existential Acceptance Process of Abstract Painting -focused on Jeong, yun-young’s art works정윤영, 국민대학교 대학원 / 김태진(교신저자),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회화전공 Jeong, Yun Young_Graduate School of Kookmin University / Kim, Tae Jin(Corresponding author)_Department of Fine Art, Kookmin University. 차례. 1. 서론 2. 추상회화의 경계와 모순 2.1. 안에–있음 2.2. 경계 지우기 - 미와 추 2.3. 우연과 즉흥 3. 실존적 수용 과정 연구 3.1. 개인의 정체성 3.2. 여성으로서의 신체 3.3. 불완전함 4. 결론 References. 기초조형학연구 22권 1호 (통권103호). 345.

(2) 추상회화의 실존적 수용 과정에 관한 연구 -본인의 작업을 중심으로A Study on the Existential Acceptance Process of Abstract Painting -focused on Jeong, yun-young’s art works정윤영, 국민대학교 대학원 / 김태진(교신저자),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회화전공 Jeong, Yun Young_Graduate School of Kookmin University / Kim, Tae Jin(Corresponding author)_Department of Fine Art, Kookmin University. 요약. 본 논문은 추상 회화에서 존재와 시간이 맺는 관계가 상호적으로 수렴되며 화면에 형상화되는 과정에 관한 연구이다. 오늘날의 시각 예술은 서로 다른 시 · 공간의 다원성, 이질성, 혼성성의 특징을 보이며,. 중심어 추상회화 실존성 사라짐 중층성. 개별화하고 있다. 이 같은 동시대의 맥락 안에서 연구자의 작업은 혼성적 요소 사이의 상호작용을 바 탕으로 한 직관적 방향성의 생성, 그것이 일종의 불확실성을 전제한 조형 언어로서 작동한다는 점이 다. 연구의 목적은 실존에 관한 관심에 기반하여 가시적인 것에 제한되지 않고, 현존을 드러내는 해방 공간으로서의 추상 회화를 다시금 고찰하며, 연구자의 작업에 담긴 인간의 미묘한 감성과 숭고한 정서 의 충돌이 공존하고 교차하는 과정을 추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계를 희석하는 새로운 종합의 틀을 제시하여 동시대 미술의 창조적 시각을 견인하는 개념을 차별화하기 위함이다. 연구 방법에 있어서는 연구자의 작업에서 다룬 시간성과 실존성의 문제를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 개념으로 살펴봤고, 서사 공간으로서의 추상 회화에서 경계를 지우는 미와 추의 문제에 대해서는 로젠크란츠의 ‘추의 미 학’과 브룩스의 ‘육체와 예술’에 관한 입장을 참조했다. 추상적 화면에서 개입되는 우연성과 즉흥성에 있어서는 랑시에르의 ‘반 재현적 예술’을, 그 외 실존적 수용의 시각화 과정에 대해서는 로젠버그의 ‘개인의 정체성’, 라캉의 ‘주체성의 상실’, 베르그송의 ‘직관’ 개념 등 다양한 양식의 융합을 통해 하나 의 작품이 지니는 순수조형의 차원을 벗어나 경계의 확장을 꾀하였다. 결론적으로 연구자의 작업 속 ‘실존성’은 시간 속에서 관계적으로 공간을 교차하는 서로 다른 궤적의 결합 그 자체다. 형상의 해체와 전환이 반복되는 추상 회화는 ‘하나의 연속’이며, 영속적 미완의 상태로서 관계성에 대한 논의를 확장 시킨다. 의식의 복합적 차원을 다루며 실존성을 수용해가는 회화적 매체와 미학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은 추상에 접근하는 또 다른 방법론으로서, 회화의 실천적 자율성을 재인식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ABSTRACT. This research is the study on the process of relationship between existence and time in abstract painting that is mutually converged and shaped on the screen. Today's visual arts are. Keywords abstract painting existentiality extinction layer. characterized and individualized by the features of plurality, heterogeneity, and hybridity of different times and spaces. Within this contemporary context, the researcher's work is based on the generation of intuitive directions that are based on interactions between hybrid elements, which operate as a formative language preconditioned with the kind of uncertainty. The purpose of this re-examination of abstract paintings, as a liberating space that reveals the underlying existence, which is not only limited to visibility, is to trace the process of collisions of human subtle sensibilities and emotions. On that basis, by presenting a new framework of synthesis, the approach was made to dilute the boundaries of creative vision of contemporary art. As for the research methods, the matter of timeliness and existentiality was examined by borrowing concepts from Heidegger's In-der-Welt-sein, and the issue of beauty and ugliness that is absent of boundary was adopted from Rosenkranz's Aesthetics of Ugliness and Brooks’s Body Work.. As. for. the. coincidence. and. improvisation. on. the. abstract. screen,. Ranciere's. Anti-replicated Art and Rosenberg's Individual Identity, Lacan's Loss of Subjectivity and Bergson's Intuition were adopted in terms of the visualization process of existential acceptance. As for the result, the existence in the researcher's work is itself a combination of different trajectories that go across spaces in relation with time. Abstract paintings, which repeatedly dismantle and transition features, are one continuous flow and expand the concept of the interconnectedness as a permanent unfinished state. Addressing the complex dimensions of 본 논문은 연구자의 2020년. consciousness and exploring pictorial media and aesthetic possibilities that embrace existentiality. 미술박사 학위논문의 일부를. is another methodology that approaches abstraction, which is meaningful in that it examines. 발췌함.. practical autonomy of painting in a new light. 346.

(3) 1. 서론 예술은 시대를 거듭하며 삶과 점점 밀접해졌다. 시각 예술 중에서도 특히 추상 회화는 한 개인 의 모든 감정, 느낌, 정서와 생각의 편린을 구체적인 물질의 형태를 빌려 세상 밖으로 표현한다. 연구자는 작업에서 삶의 궤적을 반추해내는 매개로서 층위의 중첩을 차용하는 방식으로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사실상 미술의 영역에서 작가의 작품과 작가의 삶이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은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삶의 환경 속에서 스스로 경험한 사적인 기억을 추상적 으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온 연구자는 실존주의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하여 식물로서 신체 를 그려내어 인간 생명의 유한성을 작업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따라서 본 연구를 시작한 동기는 가시적인 것에 제한되지 않고 현존을 드러내는 해방의 공간으로서의 추상 회화를 다시금 살펴 보기 위한 것이었다. 연구자의 작업은 과거 불완전한 상태였던 자신의 몸에 대한 최초의 기록을 추상적인 일련의 패턴으로 표현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복잡한 감성과 숭고한 정서가 충돌하고 공존하며 교차하는 과정을 추적하고, 경계를 희석시키는 새로운 통합과 종합의 조형 원리로서 중첩된 개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연구자의 작업에서 다루고 있는 시간의 겹쳐짐은 과거의 역사가 우리의 현재 시간과 공간에 영향을 미치고 규정하게 된다는 점이다. 누구나 현재의 삶 속에서 살아감과 동시에 그 이면의 것들을 인식하게 되지만,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이질적인 요소들 간의 예기치 않은 역설적인 상호 관계적 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연구자는 실존적 수용의 입장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직접 적으로 경험한 중첩이 지닌 존재와 시간이 맺는 상호관계적인 양상과 그림에 수용되어지는 변화와 전개의 궤적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예술 작품을 창작할 때 실제 존재하는 사물을 그리는 것이 보편적이었 지만, 이와 함께 추상은 수천 년 전부터 현재까지 예술의 본질을 형성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추상 회화는 대상의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와 계획적인 구성 등을 배제하고, 색과 선, 명암과 기하학적 형태로 화면을 구성하거나 몸짓을 이용하여 그려내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존재에 관한 실존적인 태도를 담아내기도 한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연구자가 생각하는 실존성 개념에 대하여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연구자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실존성은 단순히 세계 내 존재로서 삶의 한 단면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반되고 모순되는 것들의 공존과 결합을 통해 생명 그 자체를 바라보고자 하는 것에 가깝다. 연구자의 작업에서 표현된 ‘실존성’은 시간 속에서 관계적으로 공간을 가로지르는 서로 다른 경험과 궤적의 결합 그 자체다. 형상의 해체와 전환이 반복되는 추상 회화는 ‘하나의 연속’이자 ‘영속적인 미완결의 상태’이며, 관계적인 의미의 실존성은 연구자 작업의 주된 주제 의식이기도 하다. 이렇게 연구 자의 작품이 서사적 공간으로서 다중적으로 기능하며 ‘세계-내-존재’와 ‘개인의 정체성’ 개념 을 함유한 다면적인 양상을 살펴보고, 그것들이 추상적 화면에 수용되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자의 작업과 현대미술에서 소재와 방식이 유사한 작가들의 작품을 비교하여 분석 해 보고자 한다.. 2. 추상회화의 경계와 모순 2.1. 안에–있음 연구자의 작업에서 등장하는 식물과 신체를 연상시키는 중첩된 형상은 각각의 층위가 서로 끌어당기면서 교차하고, 서로 동조하기도 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는 조형적 표상에 가깝다. 연구 자가 작업을 이끌어감에 있어서 ‘실존성’에 천착한 이유는 어떤 방식이든 태도를 취하려는 존재 자체인 현존재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투병의 상황에서 직접 존재하는 그대로의 모습을 회화적 으로 구현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실존적인 문제와 관련하여 하이데거는 저서 󰡔존재와 시간󰡕 에서 인간 존재 그 자체의 모습은 세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이 같은 인간의 존재 방식이 <세계–내-존재> 즉, 세계 ‘안에-있음’이라고 설명한다. 연구자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의미의 기초조형학연구 22권 1호 (통권103호). 347.

(4) 그물망으로 얽혀있는 전체로서의 세계는 화면 위에 층위를 이루며 켜켜이 중첩된 색채와 형상 은 서로 뒤섞이며 하나의 무한한 흐름의 과정을 이룬다. 추상 회화를 다루는 연구자에게 있어서 ‘경계’를 희석한다는 것은 실존적 물음으로 이어지고, 이는 작업 공정에서 에너지의 충돌을 최 소화하고자 하는 것과 연관된다. 대립하는 부분을 어루만져서 충돌을 잦아들게 하면서 긴장을 감소시키려는 노력이며, 우발적인 불일치성을 포용하기 위한 시도이다. 때때로 작업의 순간마 다 화면 속 요소들은 그 성격이 독자적으로 부여되기도 하지만, 연구자 작업의 주요 주제인 ‘경계’는 상이한 의식의 층위를 넘나들며 생명과 삶에 관한 의지를 바탕으로 그 층위 간의 관계 성을 다시금 모색하게 한다.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신체와 식물 이미지가 중첩되면서 기존의 것이 개량됨과 동시에 병행하기도 하며 포괄적인 의미의 종합으로 향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작품 <안에-있음 (In-Sein) 8><Figure 1>은 연구자가 병상에 서의 경험을 겪은 뒤 일정 시간이 흐르고 그려 낸 것인데, 중환자실에서 느꼈던 신체의 식물 같았던 느낌, 의식의 비정상적인 흐름 등을 형 상화했다. 혼수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형상은 종종 흐릿해지고 단절 되거나 왜곡되기를 반복하고, 의식의 분절은 환각에 가까운 상태로 꿈과 현실이 오버랩되었 <Figure 1> Jeong, Yun-young · <In-Sein 8> · Oriental. Color on Silk Layered Canvas · 91×117cm · 2014. 다. 화면 하단부의 어두운 색감은 심연으로 가 라앉는 느낌을, 상단부의 밝은 색감은 자유롭 게 분열되는 느낌을 표현했다. 화면의 중심부. 에는 생명력을 의미하는 꽃의 이미지가 떠올라 있고, 그 후면에는 침잠해 있는 상태로 신체 장기 이미지가 겹쳐진 상태가 된다. 그림 속의 이미지는 객체가 아니라, 그 시선의 주체로서 자아를 돌아보게 한다. 어쩌면 이 작업의 근본적인 주제는 현재의 존재론, 즉 시간 속에서 존재 한다는 것인데, 이는 덧없는 존재로서 삶을 영위하는 것에 대한 불안정성을 함의하고 있다. 막연한 느낌, 스쳐 가는 생각, 안타까운 기억들은 모호하고 단절되고 불구화된 파편들이지만 연구자는 그것을 매개로 해서 궁극적으로는 삶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갖추어 가는 과정을 드러 낸다. 이는 삶의 여러 자취와 단상을 형상화하는 일이며 동시에 그것들을 다시 불러모아 풍부하 고 아름답게 재구성하는 일이다. 연구자가 또 다른 기억의 겹을 만들고 지나간 기억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것을 반복되는 시간 안에서 자신과 세계가 새롭게 대면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2.2. 경계 지우기 - 미와 추 현재까지 예술의 근원을 이루는 것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미(美)’일 것이다. 미의 사전적 정의 는 ‘마음 속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에 대한 만족감’을 뜻하지만, 미에 대한 가치 판단 기준은 반(反)미적인 것을 의미하는 ‘추(醜)’의 개념을 빌려 이해해볼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추는 미 의 대립 개념으로서 미적 규범에 저항하는 것이지만 넓은 범주에서는 추 또한 미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숭고미나 비장미 같은 정서적인 미적 감정은 형식에 치우친 미보다도 아름다울 수 있으며, 추는 그 자체로는 절대적 가치를 갖지 않지만, 전체 속에서의 대비를 통해 미를 한층 복잡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어준다. 󰡔추의 미학󰡕에서 로젠크란츠는 추를 예술의 본질적 구성 요소라고 설명하며, 예술이 이념의 현상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것과 뒤얽 힌 부정적인 것, 즉, 추가 결여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어떤 종류의 숭고는 몰형식 성에 있어서 추의 요소를 포함하며, 비장은 종종 혐오스러운 것, 사악한 것에 대한 표현을 동반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골계는 비루하고 약소한 것에 대한 표현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추와 결부 된다. 결국 추는 미를 향한 욕구에 반대하면서 예술 작품에 고유한 긴장을 산출하며 미적 범주 의 체계에서 불협화음의 요소를 포함하는 것으로서 순수미와 대척점에 놓인 것이다(Robert, 2015/1996, p.334). 348.

(5) <Figure 2> Jeong, Yun-young · <Pseudocopulation> · Oriental Color on Hemp Cloth · 52×180cm · 2019. 이항대립으로서의 미와 추가 아닌 경계의 구분을 희석하는 열린 경계 선으로서의 미와 추에 대한 조형적인 모색은 연구자의 작업에서도 보 인다. <Pseudocopulation><Figure 2>에서 연구자는 몸소 체험한 실 존적 문제 상황을 작업에 끌어들여 병상에서 생존을 위해 고통을 감내 했던 처절한 경험을 육체 이미지에 기초하여 드러냈다. 작품 <Pseudocopulation><Figure 3>에서는 신체를 하나의 경험을 축적 하는 연속체로 상정하고, 기하학적 형태인 삼각형 캔버스의 조합에 기 초한 건축적 구조로 드러내고자 했다. 이는 미학적으로 자기 증명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닌,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뒤섞어 놓으면서 타자 <Figure 3> Jeong,. 에게 동화되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브룩스가. Yun-young · <Pseudo. 저서 󰡔육체와 예술󰡕에서 설명한 육체 개념에 대한 견해를 살펴볼 필요. copulation> · Oriental. 가 있다. 그는 ‘자연의 일부인 육체가 어떻게 인간의 상징체계의 하나,. Color on Silk Layered. 즉 기호가 되는가?’를 묻는다. 엄밀한 의미에서 자연의 일부인 육체는. Canvas · Equilateral Triangle 40cm (each) ·. 인간의 의미 작용과는 무관한 타자로 볼 수 있지만, 실제로 우리는 육. 2019. 체가 자신의 일부임을 인식하고 있다. 왜냐하면, 육체의 질병이나 죽음. 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근원적 경험이기 때문이다(Brooks, 2000/1993, pp.522523). 근대 이래 인간이 자신의 육체를 문제투성이로 느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애쓴 근원적 인 경험은 예술가의 육체가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묻는 브룩스의 통찰을 연상시킨다. 2.3. 우연과 즉흥 연구자는 회화에서 모종의 경계가 다양한 상상력이 덧대어진 추상화 과정을 통해 희석되며, 고정된 체계나 구조가 그로 인해 겪는 일련의 변화를 시각화하려 했다. 서로 다른 영역은 의식 의 층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연속성을 지니게 되며, 그 과정 안에서 표상의 본질이 드러나기 도 한다. 대부분의 회화 작품에서 작가의 어떤 태도, 양식, 방법론은 어느 정도의 주관성을 포함하지만, 그중에서도 추상회화는 작가의 무의식 세계를 반영하거나 직관적 표현 행위의 결 과인 경우가 많다. 연구자는 이러한 직관 속에서 작가의 순간적 판단에서 발현되는 ‘우연’과 ‘즉흥’이 개입된다고 인식했으며, 작업에 있어서 이처럼 내면으로부터의 동의를 구하는 일련의 과정을 지속해서 실험했는데, 이는 <Her Painting was Opaque to Me><Figure 4>에서도 나타난다. 이것은 비대상적 화면을 구성하는 것에 집중하며, 조금 더 본격적인 추상으로 나아가 는 단초의 역할을 한 작품이다. 작가의 손놀림, 순간의 우연성, 그리고 붓질의 감각을 통해 자유로운 연상의 세계로 이끄는 것은 우연성과 즉흥성의 탐구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조형적 실천이다. 연구자 작업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추상적인 궤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랑시에르의 ‘반재현적 예술’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상이함으로서의 재현’이라는 개념에 직접적으로 연 기초조형학연구 22권 1호 (통권103호). 349.

(6) 계되는데, 이미지의 특정한 체제를 글과 시각 적 형태 간의 관계로 지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 다. 예술에 있어서 이미지는 그 자체로 상이함이 며, 가시적인 것에 제한되지 않는다(Ranciere, 2014/2003, p.7). 랑시에르는 감성의 분할에 입각하여 구분한 예술의 체제 중에서도 미적 체제가 예술을 특정 규칙, 장르의 위계질서로 부터 자율성을 확립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 <Figure 4> Jeong, Yun-young · <Her Painting was. Opaque to Me> · Oriental Color on Silk Layered Canvas · 162.2×260.6cm · 2020. 는 삶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으며 인간 해방을 이행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강조하는 것이었 으며, 모든 영역에서 구축된 위계의 경계가 소. 멸하는 것이다. 숭고와 미를 비롯한 글과 그림, 추상과 구상, 이념과 물질적 형태 등을 모두 통합되어야 할 감각의 영역으로 바라본 랑시에르의 견해는(Kim, H., 2011, pp.49-50), 궁극 적으로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를 흐리고 중첩된 층위를 축적하면서 실존적 흔적들을 수용해가 는 과정을 담은 연구자의 작업과 중요한 지점에서 조응한다. 즉흥적으로 화면 안에서 펼쳐지는 조형적 실험들은 연구자의 구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끌어가는 자율적인 창조 행위이자 삶 이라는 타율적인 층위를 포용하며 순수조형 차원의 지평을 확장해가는 지속적인 수용의 과정 이라 할 수 있다.. 3. 실존적 수용 과정 연구 3.1. 개인의 정체성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연구자의 작업에 담긴 표현주의적 요소는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과 반응 을 직관적으로 다뤘다는 지점에서 추상표현주의에서 ‘개인의 정체성’이라는 특성을 탐구한 로 젠버그의 통찰을 연상시킨다. 그가 이 개념을 정립하면서 개인과 사회의 능동적 상호작용에 주목하면서, 실존주의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개인이 주체적 행동가로서 창의적인 힘을 행사 해야 한다’고 강조한 점은 작업의 주제로 삶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 연구자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특히 그의 글 「인물의 변화와 극」에서는 ‘실행 불가능한 자아’를 찾아가는 인간의 여정 에 관한 언급과 함께 인간이 목표지점을 확실히 모른 채 어딘가를 향해 가면서 방향감을 터득하 는 인생의 의미에 관하여 설명했다(Kim, H., 2009, p.43). 추상표현주의 회화가 인간의 복잡한 감성과 숭고한 정서를 순수조형 언어의 사용을 통해 보여준다는 점과 연구자의 작업에서 생성 적 리듬을 수용하며 열린 경계선에 대한 실존적인 모색을 가시화하는 과정은 연결된다. 식물이 나 신체의 형태로부터 생의 흔적을 이끌어내는 추상적인 작업을 통해 내밀한 개인적 경험을 상징적으로 변환시켰다. 여기서 연구자가 언급한 ‘상징’의 의미는 ‘형상(形像)으로서의 상징’에 가깝다. 형상은 다시 사물의 생긴 모양이나 상태를 뜻하는 ‘형태(form)’와 마음과 감각에 의하 여 떠오르는 대상의 모습을 떠올리거나 표현한 형태인 ‘형상(figure)’으로 구분되는데, 연구자 의 작업에서 드러난 상징은 이 두 가지 항목에 모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상징은 추상적인 관념을 구체적인 형상으로서 지향하는 것이지만, 연구자의 작업에서 추상적이고 모호한 상태 를 재료 삼아 수정하고, 겹치는 것은 분명한 형상을 지향하는 것만은 아니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연구자의 작업에서 상징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연구자의 주관적인 경험에서 비롯 된 고통의 기억은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존재를 대면하는 일이다. 형상을 그려내는 실천을 통해 서 새롭게 형성되는 자신만의 시간을 성찰의 과정으로 이끄는 것이다. 과거에 생명을 잃어가면 서 수술받은 처절한 경험을 상기시키지만, 오히려 이러한 기억을 예술의 과정으로 수용하는 것은 그것을 건강과 삶,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질문으로 연결지었다. 작품 속에 드러 난 고통과 욕망, 아름다움과 건강, 육체적 갈망에서 비롯된 삶에 대한 희구는 한데 뒤섞인 채 모순된 동거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것들은 ‘과연 아름답기만 한 것인가?’를 350.

(7) 반문하게 한다. 다시금 되찾은 건강은 완결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신체의 어떤 부위가 어떻게 아팠었는지에 대한 기억을 상기하며, 단백질 덩어리인 몸을 어느 순간 탈 물질적인 존재 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물적 대상으로 자신의 육체를 발견하게 되는 경험은 비천함을 수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창작의 원천이 되어준 경험으로 인해 받은 상처를 봉합하기 위해 물질임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이것은 자신의 육체를 미적 대상으로 표현하여 변형된 형태로 재발견하려는 욕망이기도 하며, 구체적으로 그 욕망은 생명 그 자체이자, 생명 흐름의 과정이며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힘이다. 연구자의 작업에서는 그와 동시에 자신의 육체가 물질 에 불과한 것임을 인정하려는 수긍의 과정이 동반하여 일어난다. 이것은 고통의 시간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력으로 인한 결과는 의도한 바와 꼭 부합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부정과 수긍이 동시에 한 곳에 존재하는 양태를 보인다.. <Figure 5> Jeong, Yun-young · <An Opaque Body> · Oriental Color on Silk Layered Canvas · Hexagon 30cm. (each) · 2019. <An Opaque Body><Figure 5>에서 신체와 식물이라는 형태가 배접이라는 방식(바탕 면부 터 채워나가면서 형상을 비워내는 기법이나 투명하게 밑그림을 비춰주면서 얹히는)으로 중첩 되는 과정에서 미세한 이질감이 발생한다. 중첩은 생태적 상태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데, 여기 서 생태적 상태는 어떤 존재가 유기적이고 포괄적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다. 결국, 중첩은 같은 공간 속에 존재함과 동시에 이질감을 발생시키고 미묘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며 연기(緣起)로 서의 삶에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작업의 형체는 어떠한 계획도 없이 시작된 채, 예정된 의도 안에서 움직이며 완성을 향해 움직이는 대신, 화면 위 중첩 속에서 의미를 비껴가 있다. 이렇게 매 순간 속에서 움직이는 창작의 과정은 어떤 면에서 삶 속 존재의 방식과 닮아있다. 화면에 ‘스며듦’의 방식으로 중첩을 구현한 폴 젠킨스는 1960년대부터 선보인 ‘현상’ 연작 중 하나인 <Phenomena Kwan Yin><Figure 6>에 서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게 하는’ 정신적 원형에 대한 이미지를 담았 다. 프라이밍(priming) 되지 않은 캔버스를 얼룩지게 하는 동시에 반투 명한 안료의 흐름을 제어하고자 노력한 결과물은 화면 속 격렬한 물결 <Figure 6> Paul Jenkins ·. 모양이 환각적인 풍경처럼 보이게 한다. 그는 실제로 괴테의 「색채론」. <Phenomena Kwan Yin> ·. 과 융의 만다라, 선불교 등을 심도 있게 탐구하며 광범위한 현상학적. Acrylic on Canvas ·. 회화를 제작했다. 화면 안에서 감각적인 물질로서의 안료를 구체화하. 223.5×302.5cm · 1969. 는 기회와 통제의 조합은 현상 자체로서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보여준. 다. 엄밀하게 그의 작품은 물질인 안료를 다루는 경험적 현상에서 비롯된 감각적 직관으로부터 절대적 인식에 이르는 정신의 과정이 담겨있으므로 실존적이라기보다는 현상학적 특징에 더 가까이 다가선다. 하지만 이와 달리 연구자의 작업은 현상학적 존재론의 성격을 일부 보이는데, 구분할 수 없이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이 화면 안에 표현되었다. 연구자 자신이 ‘세계-내-존재’로서 세계의 일부분임과 동시에 세계의 주인이기도 한 존재 방 식인 (하이데거가 언급한 바에 따르면) ‘현존재의 이중적 존재 방식’이 동물 같기도 식물 같기 기초조형학연구 22권 1호 (통권103호). 351.

(8) 도 한 화면 속 이미지 간의 충돌과 공존 속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개인의 정체성을 주제 의식으로 다룬다는 것은 형식적 모더니즘의 이상적인 틀을 답습하고, 현재를 지우고, 과거에서 예측 가능한 미래로 이행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연구자 의 작업에 있어서 또 다른 층위를 이루는 주제 는 무의식이며, 이를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한 매 개가 되는 것이 바로 표현주의적 접근 방식이 다. 무의식의 세계가 시공을 초월하여 연결되 어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자의 작품 <A Uterus is Different from a Vagina><Figure 7>에는 <Figure 7> Jeong, Yun-young · <A Uterus is Different. from a Vagina> · Mixed Media on Silk Layered Canvas· 31.8×40.9cm · 2018. 우주를 연결하는 그물망이 존재한다. 마치 행 성처럼 보이기도 하는 파편이 각각의 의미 있 는 존재들로 곳곳에 흩어져 있으면서 그물망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물리학에서는 그물망 이론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의식과 각각의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로서의 우주를 표현하기도 하는데, 연구자의 작품 속 배경에 인드라망(因陀羅網)과 같은 그물을 지어놓은 것은 나름의 연관성을 가진다. <Phalaenopsis Hilo Pink><Figure 8>에서 볼 수 있듯이, 수차례의 배접을 통해 복잡한 공 정으로 층위를 만들어가는 것은 모호함을 더해 가는 장치이기도 하고, 연구자가 하나의 심리 상태 위에 한 겹을 더하고 또 더하면서 증식과 소멸을 반복하는 조형적 흔적을 쌓는 것이다. 작품의 표면에 얹힌 색채는 캔버스의 가장 밑 바닥부터 여러 층위로 덮인 비단 겹의 사이사 이로 스며든다. 이는 숨겨짐과 동시에 드러나 있는 것이며, 그것들은 연구자가 그려온 궤적 의 층위가 서로 개입되며 관계한 산물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관객은 처음에는 가장 겉에 있는 면을 대면하게 되지만 은연중에 거꾸로 <Figure 8> Jeong, Yun-young · <Phalaenopsis Hilo Pink>. 다시 안쪽을 향해 새로운 감각을 쫓아 들어가. · Color on Silk Layered Canvas · 72.7×60.6cm · 2019. 게 된다. 이미지가 자율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상상의 운동 속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피할 수 없는 병마의 고통에 직면하여 생명의 유한함을 뼈저리게 체험했던 고독한 시간, 생명에 대한 갈망과 애착, 자연생태계에 편재하는 생명의 지속을 위한 다채롭고 지난한 노력에 대한 성찰 등이 그의 작업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임을 되돌아 보게 된다. 자신의 신체에 인각된 고통의 기억, 그리고 존재의 연약함을 일상적으로 자각 하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유한함은 작가에게 중요한 성찰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존재의 조건이기도 하다. (Jeong, 2019, p.31). 김희영이 설명한 바와 같이, 연구자는 작업에서 다소 직접적인 방식으로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뤘다. 하지만 이와 함께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적이기까지 한 모순적인 사고와 감정들이 자아 안에 공존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예시로 들 수 있는 또 다른 작품 <20080903> <Figure 9>의 제목은 숫자로만 구성되었는데 이는 연구자가 첫 수술을 받은 날의 날짜이다. 352.

(9) 이는 어떤 의미에서 그 이전의 연구자가 죽고 다시 태어난 날이라고 할 수 있다. 두려움과 절 망, 희망으로 뒤범벅된 혼돈의 날이었으며, 그 로부터 몇 차례의 수술이 더 이어졌고 시간은 10년이 넘게 흘렀다. 그날의 체험이 그림이라 는 결과로, 감정에 충실한 자신의 삶에 관한 이 <Figure 9> Jeong, Yun-young · <20080903> · Oriental. Color on Silk · 140×296cm · 2019. 야기로 꽃을 피웠다. 꽃의 씨방, 혹은 여성의 질, 소음순, 자궁 내막을 연상하게 하는 이미지 와 수술 직전 사진으로 기록된 자신의 결점으. 로 얼룩진 상태의 몸 이미지를 겹쳐 그렸다. 그 형태들은 고정되거나 갇혀있지 않으며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고, 매번 새로운 이미지와 의미로 재탄생한다. 배접하지 않은 상태로 흐늘거리는 두 겹의 얇은 비단에 중첩된 이미지들은 무작위로 겹쳐지면서 서로 충돌하거나 공존하기도 하는 상태를 유지한다. 3.2. 여성으로서의 신체 여성으로 느끼는 신체의 성격은 일부 생식기를 연상시키는 반추상적 붓질에 의존해 있는 것만 은 아니다. 생성적 에너지를 암시하는 여성의 신체는 다양한 상징성을 가지고 표현되어 왔다. 연구자의 여성성과 신체에 관한 표현을 비교 분석하기 위해 추상표현주의 작가 중에서도 다양 한 주제와 형식을 탐구한 조안 스나이더의 작업 <Flesh Flock Painting with Strokes and Stripes><Figure 10>를 살펴보면, 여성의 신체 이미지와 공격적인 붓놀림을 결합해 다양한 주제와 형식을 탐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랜 기간 미혼모로 살아온 개인적인 경험과 공동체 적 경험 모두를 오가는 추상적인 회화 기법에는 여성적 감수성이 명시적으로 드러난다(Fig, 2017/2009, p.207). 그녀의 작업 <My Work><Figure 11>와 <Clit Pink><Figure 12>에 서는 여성의 질 입구, 가슴 같은 여성 해부학을 연상시키는 모양과 자국을 사용한다.. <Figure 10> Joan Snyder · <Flesh. <Figure 11> Joan Snyder ·. <Figure 12> Joan Snyder ·. Flock Painting with Strokes and. <My Work> · Etching, Woodcut. <Clit Pink> · Pastel on. Stripes> · Acrylic, Flock on Canvas. · 55.9×64.1cm · 1997. Paper · 22.86×30.48cm ·. · 127×129.5cm · 1969. 1968. 나는 어쩔 수 없는 질병과 질곡 중에서도 삶에 감사하고 그 기쁨을 깊이 추구하는 것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많은 작업 주제 중에서도 스스로 겪었던 아픔과 고통에 대해 다루면서 불행한 기억을 소환할 수 밖에 없으므로 언제 나 조심스럽다. 개인적인 내밀한 아픔을 매개 삼은 작업이 단순하고 진부한 질병의 소산 정도로 이해되지 않기를 바라며 나의 고통을 일종의 복원하기 위한 존재로서 다루고 싶었 다. 나에게 ‘여성성’이라는 것은 존재를 확장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앓아온 병은 나에게 분명히 실존적인 매개가 되어주었다. 메마른 몸의 면면을 다시금 떠올리며 병의 기척을 상기하는 것은 암흑과 같은 시간을 견디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작업에서 드러나는 여성성 그리고 질병을 보편적인 은유의 소재로서 사용하고 싶지 는 않았다. 식물처럼 여리지만 한편으로 강인한 여성으로서 생의 밑바닥을 경험한 후, 보 다 겸허하게 죽음의 그늘에 자리한 생을 받아들이는 한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작업 노트 기초조형학연구 22권 1호 (통권103호). 353.

(10) 작품 <Night Like Plants><Figure 13>에서 연구자는 스스로의 경험과 관련된 중첩된 기억 을 여러 층위로 표현했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여성으로서의 신체’를 그 렸다. 이는 자칫 다소 진부한 여성성에 대한 페 미니즘적 클리셰(cliche)로 오독될 위험성이 있지만, 그것과는 차이가 있음을 논의에 앞서 밝힌다. 연구자에게 ‘여성적인 것’은 연약하고, 나약한 어떤 것, 즉, ‘강하지 않음’이지만, 끈질 긴 생명력에 관한 보다 본질적인 문제와 관련 된다. 포용하고 더 나은 것으로 개선하고자 하 는, 세계를 향해 던지는 온화한 질문이다. 연구 자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매일 대면하고 있 으며, 작업 역시 몸의 감각과 시간의 흔적이 남 은 여성적인 상태와 관련이 깊다. 작업을 통해 <Figure 13> Jeong, Yun-young · <Night Like Plants> ·. 여성으로서 겪은 질병과 고통을 이야기하고,. Oriental Color on Silk Layered Canvas · 116.8×91cm ·. 통렬함과 부드러움, 강함과 약함 같은 모순되. 2017. 고 긴장된 상처를 경감시키는 것이다. 이와 함. 께 ‘나약한 것은 꼭 열등한 것인가?’하는 근본적인 의구심은 살아남아서 나약했던 경험을 극복 하는 과정 중에 있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연구자는 작업의 과정에서 즉자적이지만 불완전 한 여성으로서의 몸과 식물 이미지를 교합시켜서 이제는 사라진, 건강했던 스스로의 세계와 다시 만난다. 몸져누워 병마와 사투했던 과정을 상기시키고 작업을 통해 그 너머를 바라보면서 삶 속의 성장을 도모한다. 재현된 ‘의미’는 부유하는 상태에서 교환적으로 서로 얽히면서 다시 금 새로움을 형성한다. 연구자의 작업에서는 가장 밑바탕의 이미지가 드러났다 사라지면서 낯 섦을 유발하기도 하고, 층위 사이사이에 논리적인 연관성이 없이 연결되어나가는 독특한 상상 이 깃들어 있기도 하다. 연구자의 또 다른 작품 <Rainbow Eucalyptus with Black Spathes and Bright Green Leaves><Figure 14>는 유칼립투스 디글럽 타 나무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것이다. 유칼 립투스는 ‘덮인다’와 ‘아름다운’의 뜻이 합쳐진 <Figure 14> Jeong, Yun-young · <Rainbow Eucalyptus. 합성어로서, 뱀이나 곤충이 허물을 벗는 것처. with Black Spathes and Bright Green Leaves> · Oriental. 럼 목피 갈이를 통해 무지개를 연상시키는 색. Color on Silk (paper) · 143×74cm (each) · 2019. 상으로 나무의 표면이 알록달록하게 변화하는 것을 지칭한다. 사실상 탈피는 껍데기만 벗어. 던지는 게 아니고 살점이 뜯기는 고통을 참아야 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힘들어도 거듭나야 한다 는 내용을 담았다. 이와 동시에 여성으로서 느끼는 신체의 성격을 다루었는데, 화면에서 대체로 성적인 차원에서의 육체 일부만을 보이게 두거나, 화면 속 신체의 장기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들 은 어떤 면에서 하나의 작은 세계로 볼 수 있다. 다른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여성의 몸과 그 본연의 모습, 그리고 그 몸이 경험하는 복합적인 상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3.3. 불완전함 본 연구에서 일관되게 서술한 것처럼 연구자가 작업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다룬 화두는 ‘완전하 지 않은 상태’에 관한 것이었다. 연구자의 작품 <Untitled_4><Figure 15>를 살펴보면, 화면 속에 직조된 추상 공간의 중심에 위치한 만다라를 연상시키는 둥근 원형의 이미지가 떠올라 354.

(11) 있다. 그 위에 반투명한 안료의 얼룩들로 여울진 표면을 더하고 지움으로써 유기적으로 얽힌 불완전한 존재의 양상을 드러내고자 했으며, 이는 지우기, 즉 ‘사라짐(aphanisis)(Buchanan, 2017/2010, p.288)’이라는 코드로 연결된다. 연구자의 작업에서 사라짐은 일종의 방어기제로 서 작동하며, 갈등에서 발생한 불안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는 심리 의식으로 볼 수 있다. 라캉이 사용한 이 용어는 ‘주체성의 상실’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지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사의한 특성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연구자의 작업에서도 어떤 현 상이 발생하려는 찰나에 그것을 제어하면서 채움과 비움을 반복하는 화면은 생성의 충만함과 소멸의 공허함을 오가며 불완전함과 완전함 사이의 관계를 무한히 확대시킨다. 연구자의 작업에서 드러난 표현주의적 특성이 나 우연적인 붓질의 흔적, 불완전하고 자유분 방한 구도에 대한 이해는 작품을 해석하는 새 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도 ‘자유 연상’은 중요한 주제 의식을 담고 있 다. 꿈과 판타지를 지탱하는 무의식적 사고에 접근하는 수단으로서 프로이트가 발전시킨 정 신분석의 치료적 기술이기도 한 ‘자유 연상’은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든 표현하며, 어 <Figure 15> Jeong, Yun-young · <Untitled_4> · Oriental. 떤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며, 의지적. Color on Cotton · 142×214cm · 2012. 반응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구상이. 추상이 되기도 하고, 추상이 구상이 되기도 하면서 서로 교차된다. 화면 구성을 새롭게 하는 불규칙한 파편화는 경계와 분리를 소멸시키면서 통합한다. 정형임과 동시에 비정형이기도 한 화면은 모호하고 잠정적인 상태로 놓여있다. 시간에 대한 의식 작용에 관심을 둔 베르그송 은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이 갖는 성질을 내재 적인 것과 외재적인 것으로 구분했다. 어떤 면 에서 추상과 구상을 구분하는 분류는 외재적 성질에 관한 것에 불과할 수 있지만, 물질인 천 <Figure 16> Cy Twombly · <Untitled (Roses)> · 4 Parts;. Acrylic and Crayon on Wood · 252.5×742.9cm · 2008. 위에 그려진 이미지를 바라보며 물질의 성질에 연연하지 않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종의 지적 작용인 ‘직관’을 통하여 본능으로부터 지성의. 영역을 향해 나아갈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만물과 하나가 될 수 있고, 물질이 사라진 세계 안에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직관은 대상이 갖는 특수한 성질에 공감하는 것이다. 사이 톰블리의 작품 <Untitled (Roses)><Figure 16>에서는 장미꽃을 연상시키는 이미지에 구상 적인 형태는 있지만, 형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꽃으로 볼 명확한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심리적인 움직임이 작동하는 것이다. 작품을 대면하는 순간 고정된 이미지에 사로잡히게 되기도 하지만, 열린 상태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마음은 이미지를 통지받게 되고, 우리의 마음은 이를 순간적으로 부정하기도 한다.. 4. 결론 본 논문은 추상 회화에서 존재와 시간이 맺는 관계가 상호적으로 수렴되며 화면에 형상화되는 과정에 관한 연구이다. 연구자의 작업에서는 혼성적인 요소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한 직관적인 방향성의 생성, 그것이 일종의 불확실성을 전제한 조형 언어로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출발한 본 연구에서 실존주의에 관한 관심을 기반으로 한 추상 회화가 가시적인 것에 제한되지 않고, 현존을 드러내는 해방의 공간으로서 존재와 시간의 대화를 매개하는 역할을 해왔음을 기초조형학연구 22권 1호 (통권103호). 355.

(12) 규명했다. 살아있는 불완전한 생체로서의 몸을 회화적 실천의 주제와 동기로 삼는 것은 생존의 욕구와 죽음의 두려움, 아름다운 생명력과 죽음에 다가가는 비참함의 경계를 대면하는 일이다. 상충하며 공존하기도 하는 충동과 욕망, 그리고 미감 등은 회화의 과정 안에서 일련의 경계를 희석하며 어우러져 실존적인 물음에 이르게 한다. 즉 비참함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중에 느끼는 죽음 충동과 삶에 대한 역설적 욕망이 색과 형태로 겹쳐지고 층위를 넘나들며 뜻밖의 긍정적 조화의 상태를 맞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연구는 모순된 에너지의 충돌을 최소화하 고 긴장을 감소시키려는 노력 등이 회화적 실천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성찰한 것이며 하나의 실존적 상황으로부터 미감의 분석을 도출하려 한 노력이다. 연구자의 작업에서 수용된 ‘실존성’ 은 시간 속에서 관계적으로 공간을 가로지르는 서로 다른 경험과 궤적의 결합 그 자체이며, ‘있어오면서, 마주하면서, 다가가는 것’이다. 형상의 해체와 전환이 반복되는 추상 회화는 ‘하나 의 연속’이며, 영속적인 미완결의 상태로서 관계성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킨다. 의식의 복합적인 차원을 다루면서 종합적인 용광로와 같은 상태의 실존성을 수용해 나아가는 추상 회화의 매체 로서의 성격과 미학의 동시대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은 추상에 접근하는 또 다른 잠정적인 방법론으로서, 회화적 실천의 자율성이 갖는 의미를 진단하고 제시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References Brooks, P. (2000). Body Work : Objects of Desire in Modern Narrative (Lee, B. J. & Han, A. K. Trans.). Moonji. (Original work published 1993). Buchanan, I. (2017). A Dictionary of Critical Theory (Yoon, M. J. & Lee, S. J. Trans.). Jamobook. (Original work published 2010). Fig, J. (2017). Inside the Painter's Studio (Kim, J. K. Trans.). Viz and biz. (Original work published 2009). Jeong, Y. Y. (2020). A Study of Correlational Expression through Overlapping Paintings : Focused. on My Works (Published) [Doctoral dissertation, Kookmin University]. Kim, H. Y. (2011). Abstraction Beyond Autonomy: Jacques Ranciere Politics of the Aesthetic.. Journal of Contemporary Art Studies, 15(2), 41-77. Kim, H. Y. (2009). Harold Rosenberg's Critique of the Modernist Criticism. Korean Studies Information. Ranciere, J. (2014). The Future of the Image (Kim, S. W. Trans.). Hyunsil Moonhwa. (Original work published 2003). Robert S. N. (2015). Critical Terms for Art History (Chung, Y. S. Trans.). Mijinsa. (Original work published 1996)..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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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관련 문서